2023-08-24

여행하듯 일하는 워케이션, 오-피스제주 사계 ①

: file no.1 : 오늘은 사계리로 출근합니다

Briefing

오-피스제주 사계

일과 휴식의 양립을 지향하는 근무형태 ‘워케이션(Worcation, Work+Vacation)’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워케이션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전 세계 기업의 근무 문화가 원격 중심으로 바뀌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반드시 집이 아니더라도 디지털 업무 기기를 갖췄다면 휴가지에서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MZ세대의 워케이션 선호도가 높아지며 시장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태동 단계로 볼 수 있는 국내에 워케이션 제도를 안착하고 이를 글로벌로 키워가려는 브랜드가 있다. 2019년 설립해 현재 제주 조천읍과 사계리 그리고 캄보디아 시엠 리프에 워케이션 공간을 운영 중인 ‘오-피스(O-Peace)’다. 그중에서도 산방산이 훤히 보이는 사계리에 자리 잡은 사계점은 이용자가 평화로운 환경에서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워케이션에 필요한 기능들을 단일 건물에 집적했다. 공유 오피스와 공유 스테이를 한데 묶은 이곳에서 워커들은 따로 또 같이 일하고 쉬며 머무른다.

“We hope you work in peace.” 오-피스는 그저 책상 한자리 빌려주는 워케이션 공간이 아니라 ‘침해 당하지 않는 평화로움과 몰입의 시간’을 선물하는 공간을 꿈꾼다. 많은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쏟는다면 그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세상이 더 일하기 좋은 곳이 되도록 고군분투 중인 오-피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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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고 싶은 당신, 떠나라

오-피스 박성은, 박현주 공동대표는 7년 전 서울을 떠나 제주로 왔다. 대도시에 살며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았지만, 일과 육아를 쉼 없이 병행하다 보니 번아웃을 겪게 되었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더 빨리 지쳐버린 게 아닐까 생각한 이들은 아이들과 자연 가까이 지내며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제주 이주를 결심했다. 섬 안에서도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곳을 찾던 끝에 조천읍에 터를 잡았다. 흙을 밟고, 바다 내음을 맡고, 생동하는 계절을 감각하며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은 다시금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했다.

오-피스제주 사계 로비 전경

두 대표는 낯선 환경이 주는 환기와 몰입의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일하는 방식, 워케이션을 제안하기 위해 오-피스를 설립하고 일과 휴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짓기 시작했다. 조천읍에 공유 오피스와 공유 스테이, 독채 스테이로 구성된 조천 1호점을 연 다음으로는 단일 건물에서 워케이션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조천점보다 큰 규모에 객실 수를 늘리고, 워크스페이스를 키우고, 세미나실을 갖춰 팀 단위로도 근무가 가능한 곳이길 바랐다. 마침 투자를 유치하게 되면서 꿈은 점차 구체화 되어갔다. 공항에서 제주 유일의 고속 간선도로 ‘평화로’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사계리에서 조건에 꼭 맞는 건물을 찾았다. 평화로 끝에서 만나는 오-피스제주 사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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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쉼의 조화로운 공존

사계리에 들어서 산방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거리에 다다르면 오-피스제주 사계가 있다. 오-피스는 본래 호텔로 운영 중이던 ‘ㄷ’ 자 형태의 3층 규모 백색 건물을 사계점으로 탈바꿈했다. 모래 사(沙)를 쓰는 지명에서 느껴지는 건조함을 모티프로 어느 사막에서 볼 법한 건물을 떠올리며 직접 조색한 컬러로 외관을 칠해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건물 내부는 구조상 면적이 가장 큰 1층에 워크스페이스를 조성하고 로비와 세미나실을 함께 배치한 형태다. 2층과 3층에는 총 4개 유형의 20개 객실을 두어 이용자는 건물 내에서 일과 휴식을 모두 누리며 워케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오-피스가 사계점을 설계하며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건물의 전체적인 레이아웃과 이용자의 캐릭터 설정이다. 공간 자체를 작은 도시로 바라보며 조닝을 해보기도 하고, 이곳을 찾는 이용자의 입장이 되어 어떤 동선으로 공간을 경험할지, 또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일을 하게 될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정면에는 워크스페이스 이용자를 위한 바, 좌측에는 독립 부스, 우측에는 다른 이용자와 책상을 공유하는 좌석 형태인 핫데스크가 보인다.
화상회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음 기능을 갖춘 부스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긴 형태로 탁 트인 워크스페이스 안에 각각의 장점을 지닌 좌석 유형을 다채롭게 마련했다. 자율좌석제로 비어 있는 좌석에 앉아 다른 이용자와 책상을 공유하는 핫데스크(hot desk), 파티션으로 분리성을 더해 집중도를 높인 독립 부스, 화상회의를 위한 방음 부스, 소규모 회의실과 30인 이상 다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 등 이용자는 업무 특성과 본인의 성향에 알맞은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

최대 8인까지 이용 가능한 회의실. 회의 특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캐주얼한 분위기의 오픈된 공간과 비교적 정돈된 룸을 두고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회의실과 방음 부스 외에는 좌석 이용이 자유롭다 보니 일하는 동안 몇 차례 이동하며 다양한 좌석을 경험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집중 업무 시간에는 독립 부스에서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몸에 피로가 쌓이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데스크로 옮겨 일어선 채 일한다. 잠시 쉼이 필요할 때면 워크스페이스 한편에 마련된 바(bar)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며 회의실 뒤편의 작은 서재에 가 책을 읽거나 핫데스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사계점 스테이 객실은 4개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은 그중 산방산을 마주 보는 ‘스탠다드 산방’ 객실 전경

오-피스는 동일한 구조를 가지되 객실마다 다른 디테일을 지닌 4개 타입의 스테이를 구성했다. ‘스탠다드룸’은 누구나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본 타입 객실로, 아늑한 분위기의 우드톤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사계리 풍경을 마주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창을 크게 내고, 객실 내에도 업무 공간으로 활용 가능한 데스크를 배치해 편의를 더했다. 스탠다드룸을 바탕으로 변주를 준 3개 객실에는 각각 다른 특성을 반영했다. 창으로 산방산이 바로 보여 객실 내에서도 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스탠다드 산방’, 같은 컨디션에 별도의 자쿠지룸을 마련해 보다 여유롭게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스탠다드 산방 with 자쿠지’는 특히 워케이셔너들에게 인기다. 반려동물과 함께 휴가를 계획하는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강아지용 계단과 러그 등을 갖춘 반려동물 동반 객실 ‘스탠다드 댕댕’은 반려인에게 반가운 선택지로 꼽히고 있다.

‘오-피스제주 사계’ 층별 구성

3층 | 스테이 객실

2층 | 스테이 객실

1층 | 로비 & 워크스페이스 & 세미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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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경험하는 유연하고 느슨한 연결

워케이션을 위해 오-피스제주 사계를 찾는 이들은 나이와 전공, 직군이 다양하다. 스타트업 대표는 물론이고 기업의 복지제도를 활용해 며칠간 머무르며 워케이션을 경험하는 마케터, 근무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리모트 워커 등 이곳에는 매일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인다. 발길 끊이지 않는 제주 대표 관광지에 비하면 유명 맛집이나 카페와 같은 즐길 거리가 없다시피 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고 교류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오-피스 아워는 누구나 참여해 ‘불멍’을 즐기거나 다른 참여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 ⓒO-Peace

오-피스 아워(O-Peace Hour)는 오-피스의 대표적인 네트워킹 프로그램이다. 어둑한 저녁 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에는 2무(2無) 원칙이 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업무를 하는지 묻지 않는 것. 서로 부담을 지우지 말자는 의도로 정한 룰이었으나 일을 잘, 그리고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워케이션을 떠나온 참여자들이 일에 대한 고민과 목표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참여자들은 이 시간 서로의 관점을 헤아리며 일을 구심점으로 낯선 누군가와 연대감을 가지기도 한다.

‘사계리 바당 요가’ 프로그램은 사계해안의 파도가 닿는 방파제까지 걷기 명상으로 이동한 후 요가와 명상을 진행한다. ⓒO-Peace
‘사운드 워킹’ 프로그램의 한 장면. 제주 곶자왈을 거닐며 지향성 마이크로 자연이 내는 소리를 수집하고 있다. ⓒO-Peace

제주 자연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걷기 명상과 바당*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하는 ‘사계리 바당 요가’와 제주 곶자왈 산책로를 거닐며 선택적 녹취가 가능한 지향성 마이크를 통해 자연의 소리를 기록하는 ‘사운드 워킹’ 프로그램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이와 함께 걸으며 사색에 잠기고 풀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험은 스스로를 새롭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바당: 제주 방언으로 바다를 이르는 말
탁구 경기장을 겸하는 세미나실. 출입문 상단에 설치된 ‘Ping-Pong’ 간판이 눈에 띈다.

이 밖에 오-피스 커뮤니티 매니저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홀로 사계점을 찾은 이들이 네트워크 형성이나 그룹 단위 운동에 수요가 있는 것을 발견하자 매니저들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해 리더가 된 것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원하는 사람에 한해 점심을 함께 하는 ‘수요미식회’와 목요일이면 사계해안을 따라 달리는 ‘목요러닝클럽’은 참여도가 높다. 처음 오-피스를 방문한 이용자에게도 매니저가 세심한 안내와 가벼운 권유를 건네고 있어 프로그램이 꾸준히 진행되는 중이다. 세미나실은 예약자가 없는 경우 탁구 경기장으로 모습을 바꾼다. 출입문 상단에 ‘Ping-Pong’ 간판이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해지는 시간이나 환기가 필요할 때 이용자들은 이곳에 모여 직접 룰을 만들고 팀을 짜 경기를 펼친 다음 다시 워크스페이스로 이동해 일에 몰입한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여행하듯 일하는 워케이션, 오-피스제주 사계

▶ : file no.1 : 오늘은 사계리로 출근합니다

▶ : file no.2 : 경계를 확장하며 일하는 사람들

▶ : file no.3 : 지속을 위한 오-피스의 프로젝트 리스트

글 김가인 기자

사진 박성욱 (파시트 스튜디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O-Peace

프로젝트
[Post-It] 오-피스제주 사계
장소
오-피스제주 사계 (오픈 시기: 2022년 7월 1일)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향교로 214
기획자/디렉터
O-Peace
크리에이터
O-Peace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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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듯 일하는 워케이션, 오-피스제주 사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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