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2

서울에서 1시간, 파주 헤이리 콩치노 콩크리트 ①

1만 장 LP, 1920년대 빈티지 오디오를 경험할 수 있는 곳

Briefing

콩치노 콩크리트 

 
 
뇌가 소리를 인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5초. 청각은 인간의 오감 중 자극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감각이자,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일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면 본능처럼 음악을 찾는다. 운전 중이거나 달릴 때 혹은 잠들기 직전 고요한 순간까지 음악은 공기처럼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음악이 주는 감정의 파동, 그 아름다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콘서트홀 ‘콩치노 콩크리트’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최적의 음악 감상을 목표로 설계된 이곳은 청각을 중심에 두고 공간의 모든 요소를 정밀하게 조율했다. 건축과 풍경 그리고 듣는다는 행위에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 콩치노 콩크리트의 디테일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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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옆, 음악이 숨 쉬는 콘크리트 건물

경기도 파주, 자유로를 달리다 샛길로 접어들어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 같은 콘크리트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임진강과 송악산을 내려다보는 기운 좋은 터에 자리한 이 건축물의 이름은 콩치노 콩크리트다. 2021년 5월 문을 연 이후 매주 수백 명의 관객이 찾는 파주의 대표 공간이자, SNS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현재진행형의 명소다. 

 

‘콩치노 콩크리트’는 ‘노래하다, 연주하다, 화합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콩치노(Concino)와 ‘경연대회’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콩쿠르(Concours)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름이다. 여기에 공간의 주재료인 콘크리트의 ‘콘’을 ‘콩’으로 변형하고, 세 단어의 앞부분을 조합해 이곳이 지향하는 가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첫인상만큼이나 독특한 이 공간은 음악과 건축, 자연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경험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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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장의 LP컬렉션과 빈티지 오디오가 있는 공간

 

콩치노 콩크리트는 한 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모은 1만여 장의 LP 컬렉션과 희귀한 빈티지 오디오, 그리고 음악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응집돼 탄생했다. 이곳의 설립자는 음악 애호가이자 열정적인 오디오 컬렉터인 오정수 대표. 평일에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주말이면 턴테이블 앞에 선 디제이로 변신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자란 그는 10대 시절, 형이 사용하던 야마하 오디오 시스템과 일본에서 가져온 소니 워크맨을 통해 처음으로 ‘듣는 즐거움’을 알았다. 그 경험은 곧 음반과 테이프 수집으로 이어졌고, 수업이 끝나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관람하거나 용산 전자상가에서 오디오를 구경하곤 했다.

 

20대 초반, 오 대표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털어 영국 로저스의 빈티지 스피커 LS3/5A를 구입했다. 이후 하이엔드 오디오는 물론, 1920~30년대 빈티지 장비까지 수집 범위를 넓혀가며 사운드의 깊이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에서 어렵게 들여온 극장용 스피커 두 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희귀 모델로, 독일에서 문화재로 분류하고 반출 심사까지 거쳐야 할 만큼 귀한 것이었다. 혼자 듣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그 마음은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구상으로 이어졌다.

콩치노 콩크리트를 구상하면서 오 대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클래식과 재즈 음반이 원래 극장처럼 넓은 공간에서 울리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울림과 깊은 공간감을 가정용 오디오 시스템으로 체감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그때부터 보다 나은 청음 환경을 꿈꾸기 시작했다. 결국 음악의 울림과 깊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 결실이 바로 콩치노 콩크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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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의 본질에 집중한 건축

 
총 4층 규모인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2층과 3층은 음악 감상을 위한 전용 홀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마치 공간 전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울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디에 앉아도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울림이 귓가를 채우고, 소리의 결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정교하게 설계된 덕분이다. 한쪽 벽을 채운 큰 창 너머로는 강과 산이 어우러진 푸른 풍경이 펼쳐지며, 그 순간의 몰입을 더욱 깊게 이끈다.
 

이 공간은 설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소리’를 최우선에 두고 탄생했다. 약 300평 규모의 부지를 음악 감상에 최적화된 장소로 만들기 위해, 오정수 대표는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신중히 결정했다. 건축가를 선택하는 일부터 깊은 고민이 따랐다. 수개월간의 탐색과 숙고 끝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건축가에게 이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처음부터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박물관처럼 층을 나눠 다양한 기능을 담는 구조는 생각하지 않았죠. 기능적 효율보다 음악의 본질적인 울림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청음 환경을 구현했어요.” 오정수 대표의 철학은 건축 구조는 물론, 사용된 재료의 물성에까지 깊숙이 반영됐다.

 
1층 외벽은 높이 7미터의 담장과 필로티 구조로 설계해 소리의 흐름과 외부 시선을 동시에 고려했다. 오페라 하우스처럼 시야와 울림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려는 의도였다. 홀의 천장은 9미터 이상으로 높이고, 벽면은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콘크리트 내부에는 15cm 두께의 흡음재와 방음재를 겹겹이 넣고, 그 위에 시멘트 블록을 덧대어 진동을 안정적으로 제어했다. 이 다층 구조는 음향을 효과적으로 잡아주는 동시에 재료 본연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 미학까지 더했다. 장식 없이 드러낸 거친 콘크리트의 물성은 기능과 미를 동시에 아우른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가장 섬세하게 고려된 요소는 잔향이다. 소리의 명료도와 청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벽면 곳곳에는 태운 송판과 굴곡진 콘크리트를 배치해 난반사 효과를 유도했다. 후면 벽에는 미세한 구멍을 내어 강한 음파를 흡수하고 불필요한 잔향을 줄이는 흡음 효과를 더했다. 덕분에 맑은소리는 선명하면서도 고르게 울려 퍼진다.

 

창틀 역시 알루미늄 대신 주철 소재로 특수 제작해 소리의 울림을 방해하는 윙윙윙거림을 제거했다. 또한 과도한 채광이나 개방감은 청각적 몰입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 창의 크기, 위치, 방향까지 섬세하게 조정했다. 풍경과 소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자연광과 조망마저 청음이라는 목적 아래 신중히 조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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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담은 오디오 아카이브

 

콩치노 콩크리트 곳곳에는 한 편의 오디오 박물관을 떠올리게 하는 컬렉션이 숨 쉬고 있다. 빈티지 축음기와 스피커, 오리지널 포스터, LP 자켓 등 시대의 흔적을 품은 오브제가 공간을 채운다. 클래식과 재즈 마니아라면 단번에 감탄할 만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1877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포노그래프’다. 음향기기의 역사를 새로 쓴 이 기기는 오늘날 음악 감상 방식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라흐마니노프의 친필 사인이 담긴 희귀 음반과 함께 전시돼 그  상징성을 더한다.

 

 

그중에서도 이 공간의 상징은 유로노 주니어와 웨스턴 일렉트릭의 극장용 축음기다. 특히 유로노 주니어는 전 세계에 단 서너 대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두대가 이곳에 있다. 희귀성과 역사성을 모두 갖춘 이 기기는 지금도 살아 있는 소리로 공간을 채우며, 사람과 음악 그리고 공간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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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디저트도 대화도 없는 공간

이곳에는 커피도 디저트도 없다. 오직 음악만이 존재한다. 요즘처럼 복합문화공간이 일상화되고, 다양한 기능이 결합된 공간이 넘쳐나는 시대에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오정수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두뇌는 보통 미각에 먼저 반응해요. 그다음이 청각이고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소리, 즉 음악을 가장 먼저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식음료의 유혹도, 가벼운 대화도 과감히 배제한 이유다.

 

카페 운영의 편의를 포기하면서까지 추구한 것은 바로 ‘몰입’이었다. 간단한 물 한병만 제공받는 대신, 이곳을 찾은 관객은 입장권 한 장으로 시간의 제약 없이 머무를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이 구성은,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 ‘소리를 듣는 일’을 최우선으로 모든 경험을 설계한 이 공간은, 오히려 그 자체로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음악을 오롯이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콩치노 콩크리트는 더할 나위 없는 ‘청각의 성소’다. 

 

콩치노 콩크리트

 

장소 콩치노 콩크리트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7 2층

대지면적 1,842㎡

건축면적 575.1㎡

연면적 998.92㎡

건축 설계 및 감리 민현준+건축사사무소 엠피에이알티

시공 노아종합건설(주)

수용인원 350명

운영시간 월,화,금 오후 14:00~19:00,
                  주말 12:00~19:00 (매주 수,목 휴무)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길보경 객원기자

사진 김시진

편집 김지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콩치노 콩크리트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서울에서 1시간, 파주 헤이리 콩치노 콩크리트

▶  : file no.1 : 사람들은 왜 콘서트홀을 경험하러 갈까?

       : file no.2 : 덕후의 집념으로 완성한 청음 공간

       : file no.3 : 감각을 일깨우는 ‘콩치노’의 시간 

프로젝트
[Post-It] 콩치노 콩크리트
장소
콩치노 콩크리트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7 2층
헤이팝
팝업 공간 마케팅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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