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화담숲
도시에서도 계절은 흐르지만, 숲에서 체감하는 사계는 유독 선명하다. 빌딩 사이를 걷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 가로수 행렬로는 성이 차지 않을 때 사람들은 애써 자연으로 향한다. 대도시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광주에 정성스레 가꿔진 자연이 있다. LG상록재단이 2013년에 개원한 생태수목원, 화담숲이다.
화담숲은 여러 전문가의 노력으로 ‘정성스레 가꿔진 자연’이다. 자연의 사전적 의미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헤아려보면, 인력으로 자연을 살리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 아닐까. 게다가 극진히 가꾼 이들의 숲에는 남녀노소를 넘어 잘 가꿔진 환경을 찾던 야생동식물마저 모인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제시하는 화담숲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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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돌아간 길들
화담숲을 건립하기 전에 부지 적정성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선뜻 수목원 조성에 적절한 장소라는 의견을 내지 못했다. 화담숲은 정광산 발이봉 골짜기에 있다. 수목원 대지 고도차가 뚜렷하고, 입구까지 올라가는 데에도 스키장 리프트 시설을 이용할 정도다. 평지보다 경사가 많은 산지에 지은 수목원이면 산을 뒤엎는 대규모 공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들은 기존 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자생식물을 하나하나 조사해 살릴 수 있는 것들을 끈으로 묶어 표시했고, 불쑥 튀어나온 나무와 바위를 피해 산책로 데크길을 지었다.
화담숲이 잊지 않은 건 자연의 주인이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지만, 숲의 주인은 식물이고, 곤충이고, 동물이라는 사실을 유념했다. 대체로 자생식물과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 토종 수종을 선택해 심었고, 계곡에 살던 반딧불이 서식지를 해치지 않고 보존했다. 덕분에 화담숲의 가을 풍경에는 단풍을 보러온 인파 틈으로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가 보였다. 숲 어딘가에는 도롱뇽과 고슴도치도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수목원이 아니라 그저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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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화담숲은 계단 대신 경사도가 낮은 데크길로 구성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수목원이다. 설계 단계부터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3대가 들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초기에는 간과된 디테일이 있었지만, 고객의 소리를 참고하며 점차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책로 경사도는 약 6%로 *무장애숲길 최소 기준인 8%보다 낮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령자나 장애인도 활동 보조인이 있다면 무리 없이 수목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무장애숲길: 계단, 돌 등 장애물이 없어 휠체어나 유모차도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산책길.
수목원 전반에 걸쳐 운영하는 모노레일도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장치다. 모노레일만 타고 한 바퀴 둘러보아도 화담숲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오르막길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모노레일 1승강장에서 2승강장까지만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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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자연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결이 같지만, 수목원과 일반 공원은 조성 취지·정의·기능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공원은 쾌적한 도시 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 아래 시민들의 건강·휴식·정서 생활의 향상을 돕는 공간이다. 반면 수목원은 수목 유전자원을 수집·증식·보존·관리하기 위한 시설로 이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역할까지 겸한다. 화담숲 수목들에 해설판이 있는 것도 그래서다.
곳곳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수목에 대한 역사와 지식이 적혀있다. 소나무 나이를 아는 법, 분재 표찰을 읽는 법 등 알고 나면 보이는 것이 더 많다. 화담숲은 어름치, 남생이, 원앙 등 토종생물을 보호하고 증식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전시한 테마관 자연생태관은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우리 생물에 대한 관심과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지혜를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계절 산책 프로그램과 체험형 전시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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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전이를 위한 공간, 화담채
화담숲에 들어가기 전, 관문처럼 놓인 건물이 있다. 2024년 3월에 개관한 화담채다. 화담채는 화담숲의 첫 번째 테마원이자, 자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 작품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숲길의 출발에 위치한 건물은 어떤 고민과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추구하는 LG상록재단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화담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with
김용미 LG상록재단 책임
ㅡ 화담채는 어떤 공간인가요?
화담숲의 첫 번째 테마원이자 자연과 예술로 호흡하는 복합문화공간이에요. 전통가옥에서 손님맞이 역할을 하던 사랑채에서 이름을 따온 것처럼, 화담숲을 찾는 모든 분을 환대하는 장소이기도 해요. 도시 생활을 하다 화담숲을 찾아온 분들에게 잠시 쉬어갈 전이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ㅡ 화담채는 어떤 방식으로 화담숲과 전이되나요?
화담채는 화담숲의 여러 테마원이 집약된 공간이라고 봅니다. 화담숲에 들어가기 전에 자연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거죠. 별채와 본채, 그 사이를 잇는 뜰까지 나무, 돌, 꽃, 새, 물고기, 곤충 등 자연을 매개로 한 여러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작가의 눈으로 해석한 자연을 통해 또 다른 방식의 자연을 체감할 수 있죠.
화담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별관으로 가는 ‘오브제 계단’이에요. 모양이 독특해요.
계단을 오브제처럼 지그재그 형태로 구현했어요. 심긴 소나무를 피해 설치한 모양이기도 해서,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공간의 철학이 담겨있기도 해요. 그리고 계단을 오르면서 난간 옆으로 솟은 소나무를 자연스레 관람하길 바랐어요.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은 흔히 하나로 고정되어 있잖아요. 오브제 계단을 오르면서 나무를 보면 밑동부터 줄기, 잎까지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어요. 나무를 마치 작품 하나를 감상하듯 보게 되는 거죠.
계단을 오르면 미디어아트 전용관인 별채가 나와요. 화담숲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 미디어아트라는 게 색다르게 느껴져요.
공간을 찾는 분들에게 극적인 변화를 한번 주고 싶었어요. 전시장에 들어가면 화담숲의 사계절을 학습한 LG 생성형 AI 프로그램 엑사원 아틀리에가 만든 〈THE NEW HWADAMSUP〉과 이희원 작가의 〈플라워〉를 볼 수 있어요. 〈플라워〉는 피고 지는 야생화의 시간을 타임랩스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볼 법한 꽃의 자생 과정을 커다란 미디어아트로 관찰할 수 있죠.
본관에 있는 이석 작가의 미디어 아트 〈Wavy Forest〉는 방문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종이에 직접 채색한 민물고기 그림을 스크린으로 띄울 수 있어요. 내가 그린 민물고기는 스크린 속 빛의 숲을 유영하게 되죠. 그 바탕이 되는 민물고기는 LG상록재단에서 생태계 보호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어류 도감 「한국의 민물고기」에 등장하는 어종이에요. 토종 민물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견인하고, 아이들의 생태계 학습을 돕기 위한 이유도 있어요.
키네틱아트 작품인 정우원 작가의 〈새〉도 아이들의 관심도가 높을 것 같아요.
맞아요. 화담채는 보다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숲이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이곳에서 독특한 형태의 작품도 보고, 여러 체험도 하면서 ‘화담’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이야기를 꽃피우길 바랐어요.
화담채는 숲과 연결되는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도시의 건축과는 시작점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LG상록재단과 화담숲이 가진 철학처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무작정 건물의 미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화담숲과 어우러지면서도 자연의 배경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죠. 인위성이 강한 재료는 되도록 피했고, 자연에서 나는 것을 활용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기도 했고요. 아까 말씀드린 오브제 계단도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요. 회색 콘크리트가 가진 삭막한 인상을 지우기 위해 흙색을 더하고 송판 무늬를 찍어 자연적인 느낌을 줬어요.
본채 내부 공간 ‘사랑’은 다른 곳보다 한국적인 분위기가 짙어요.
툇마루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쉼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지로 벽을 하고, 바닥은 콩기름을 바른 장판을 깔아 온돌처럼 만들었죠. 천장에 보이는 서까래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 동물인 황새의 날개를 형상화했어요. LG상록재단에서 진행했던 황새 복원 사업과도 결을 같이하는 상징적인 요소죠.
앞으로 화담숲이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나요?
그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닌,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감각하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그걸 바탕으로 ‘화담’이라는 이름처럼 서로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 쉬어가기도 하는 따뜻한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또, 자연을 모티브로 활동하는 작가님들을 발굴해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화담숲
장소 화담숲
주소 경기 광주시 도척면 도척윗로 278-1
주관 LG상록재단
시공 관리 감독 및 운영 (주)디앤오(D&O)
조경 설계 아르떼,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조경 시공 백상엘엔씨(주)
글 김기수 기자
사진 황지현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화담숲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수목원, 화담숲
: file no.1 : 수목원은 숲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