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7

송지오 하우스가 도산에 세운 블랙 큐브, 갤러리 느와 ①

: file no.1 : 패션과 예술이 공존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갤러리 느와 외관. 제공: 송지오

Briefing

갤러리 느와

5월, 서울 도산공원 복판에 차갑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은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의 정체는 디자이너 브랜드 송지오(SONGZIO)의 플래그십 스토어 갤러리 느와(GALERIE NOIR). ‘검은 미술관’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이곳은 패션과 예술을 결합한 플래그십 스토어이자 현대미술 갤러리다. 송지오 하우스가 전개 중인 브랜드 제품과 디자이너 송지오의 드로잉, 미디어 아트 등과 더불어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인 것.

갤러리 느와 외관. 제공: 송지오

1993년 시작해 한국 패션계에 굵직한 궤적을 남겨 온 이 브랜드가 론칭 30주년 하고도 한 해가 더 지난 올해 이러한 공간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송지오라는 브랜드는 오래도록 컬렉션 작업과 아트 활동에 주력해 왔어요. 브랜드 라인이나 유통 채널을 다양화하는 등 상업 활동에 집중한 지는 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죠. 브랜드를 더욱 확장하는 일에 무게를 두다 보니, 정체성이 확실한 공간을 구상하고 구체화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송재우 송지오 인터내셔널 대표·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송재우 디렉터)의 설명이다. “브랜드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줄 공간이 필요해졌어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브랜드를 찾는 고객들이 늘기도 했고요. 이제는 여러 고객에게 브랜드의 성격과 지향을 잘 보여줄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갤러리 느와 1층 공간

패션의 성지로 떠오르는 서울 성수동, 한남동 등 다양한 입지를 고민했으나 끝내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에 자리 잡은 것도 브랜드의 성격을 고려한 결과다. 한창 변화와 젊음의 기운이 약동하는 지역보다는 번화한 지 오래되어 비교적 차분한 지역이 어울리겠다고 판단한 것. 오래전 ‘로데오’라 불렸던 도산공원은 송지오라는 브랜드가 출발한 곳이기에, 각별한 의미를 품은 지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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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것이 부딪힐 때

송재우 디렉터가 건축 디자인을 총괄한 공간의 콘셉트는 ‘질서와 무질서’. 대칭과 비대칭, 빛과 어둠, 곡선과 각, 선형과 비선형, 고전주의와 전위주의 등 상충하는 듯한 요소들을 동시에 사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송지오는 동양적이면서 서양적이고, 거칠면서 부드럽고… 그런 이중적이고 상반적인 요소들이 빚어내는 미학을 추구해 왔어요. 그 개념이 자연스레 공간에도 반영됐습니다. 송지오의 옷에 쓰이는 디테일들, 이를테면 슬릿(slit)이라든가 직선과 커브 등을 갤러리 느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고전적이고 자연적인 목재와 현대적이고 공업적인 콘크리트를 건물의 주요 소재로 선택한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목재와 콘크리트가 어우러져 있다.
2층의 벽에는 옷의 슬릿처럼 긴 사각형 형태의 홈을 팠다. 또한 2층 벽을 수직으로 세우지 않고 사선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율동감을 줬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에 이르는 규모로 완성된 갤러리 느와에서는 송지오 하우스의 컬렉션 브랜드 ‘송지오(SONGZIO)’부터 컨템포러리 남성복 브랜드 ‘송지오 옴므(SONGZIO HOMME)’, 유스 브랜드 ‘지제로(ZZERO)’ 등 다양한 라인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송지오’라는 하나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라인별로 지향하는 스타일이나 주력 아이템이 다른 것은 당연할 터. 그런 면에서 볼 때 갤러리 느와는 송지오, 송지오 옴므, 지제로 등 여러 라인의 제품이 한 건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점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지하 1층
2층

어떤 위치에 어떤 라인을 놓을 것인지 미리 구상하고 건물을 디자인했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디자인할 때는 다섯 개 구역으로 나눠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어느 구역에서는 질감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어느 구역에서는 대칭과 비대칭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겠다, 하는 정도만 계획했죠. 다만 보여주고 싶은 것과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목재와 콘크리트, 대칭과 비대칭처럼 각기 상반되는 요소들을 구역마다 반영했다는 점이 여러 구역을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주는 공통점인 셈이죠.”

현재 스튜디오 신유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3층 갤러리 공간
4층 루프톱 ‘자르당 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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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패션, 사유

완성된 공간에 가장 먼저 배치된 것은 예술 작품이다. 의류보다도 유화, 드로잉, 미디어 아트 등 작품이 놓일 자리를 먼저 잡은 것. “저희 제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많아요. 백화점 매장도 있고 아울렛 매장도 있죠. 플래그십 스토어는 다른 공간이어야 했어요. 우리가 쌓은 아트워크를 보여준다는 목적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 목적 아래 송지오 디자이너의 유화와 드로잉들이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검은 나무를 쌓아 올린 설치 작품 〈BLACK EYE〉가 루프톱 ‘자르당 느와(JARDIN NOIR, 검은 정원이라는 뜻)’에 자리 잡았다.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송지오 디자이너의 유화와 드로잉 일부

쌓아 온 예술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일이 이 브랜드에게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예술이란 송지오의 뿌리이자 그 정체성을 빚어낸 원천이다. 송지오 디자이너는 언제나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에서 매 시즌 디자인이 시작되기 때문. 순수성을 간직한 아트 작업은 송지오라는 브랜드를 오래 지탱해 온 루틴과도 같다. 그 루틴에서 탄생한 작품 일부를 갤러리 느와에서 만날 수 있다.

루프톱에 자리 잡은 설치 작품 〈BLACK EYE〉 제공: 송지오

3층 공간 전체를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를 여는 갤러리로 구성한 데서도 이곳이 지향하는 바를 가늠할 수 있다. 갤러리 공간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교류하는 장이자 패션과 예술이 자연스레 영향을 주고받도록 하는 바탕이 된다. 이 공간에서는 개관전으로 작가 성립의 개인전 〈무아〉가 열렸고,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신유’의 개인전 〈구성의 해체〉가 7월 28일까지 진행된다.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 일부 ​

철저하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송지오라는 브랜드와 무드가 잘 어우러지는 작가들의 전시를 열게 됐다고. 성립은 검은색을 주로 사용한 서정적인 드로잉으로 특히 유명한 작가이고, 스튜디오 신유 역시 태워 검은빛을 띠는 통나무를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이제까지 전시를 함께한 작가님들께서 공간과 어울리면서도 흥미로운 시도를 해주셨어요. 이를테면 스튜디오 신유는 갤러리 공간뿐 아니라 1층 공간에 자리할 존재감 있는 작품을 구상해 주셨죠. 덕분에 공간의 정체성이 더욱 재미있어졌고요. 또 현재 전시된 많은 작품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선보인 신작입니다. 그래서 작품과 공간이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사진 왼쪽, 탑을 연상케 하는 설치 작품 역시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이다. 스튜디오 신유는 이번 전시를 통해 패션 공간과 예술 공간의 경계를 해체한다.
스튜디오 신유의 전시에서는 작가 노트 일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왼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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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오픈이 의미하는 것

갤러리 느와를 시작으로, 송지오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늘려가는 일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프랑스 파리 플래그십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근 시일 내 미국에도 매장을 오픈할 수 있도록, 뉴욕과 LA를 중심으로 입지를 살피고 있다고. 송재우 디렉터는 해외에 매장을 여는 건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데 있어서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브랜드가 글로벌화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은 가장 큰 이유가 홀세일 방식이에요. 직영 매장이 아니라 편집숍 개념의 매장에 입점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요.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에 한 단계가 더 있기 때문에 사업적인 시도를 하기가 어렵죠. 또 브랜드 단독 매장이 아니기에 브랜드의 감성을 보여주기도 쉽지 않아요. 기존의 방식대로 간다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 데는 현재 한국 문화를 둘러싼 분위기가 긍정적이라는 배경도 주효했다. “5~6년 전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지금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요.”

적벽돌을 주요 소재로 사용한 도산대로점

매 시즌 컬렉션을 디렉팅하는 일뿐 아니라, 사업성을 분석하고 해외 진출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공간 디자인까지 살피는 디렉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촘촘하게 살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회사가, 브랜드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죠. 개인적인 즐거움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웃음) 송지오는 누가 보아도 한국을 대표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반드시 돼야 하니까요.” 자연스레 흘러나온 ‘반드시’라는 부사가 그의 태도를 언뜻 드러내는 듯했다. 송재우 디렉터의 송지오와 갤러리 느와 이야기는 2편의 인터뷰에서 이어진다.

김유영 기자

사진 강현욱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송지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송지오 하우스가 도산에 세운 블랙 큐브, 갤러리 느와

▶ : file no.1 : 패션과 예술이 공존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 file no.2 : 지키면서 성장하기

      : file no.3 : 송지오의 중요한 순간

프로젝트
[Post-It] 갤러리 느와
장소
갤러리 느와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2길 54
시간
11:00~20:00
기획자/디렉터
기획 | 송지오, 시공사 | 창조플랜, 건축주 | 송지오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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