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음을 추구하다. 노네임프레스의 시작
—‘노네임프레스’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아마도 이 질문은 많이 받았을 테니… 두 분이 노네임프레스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어떤 디자인을 하고 있었을까요?
장영웅(이하 영웅). 인터뷰를 하는 시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대답들이 있지만, 시작에 대한 답변은 항상 명확했던 것 같아요.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 중이었는데요. 여러 도움을 받으면서 프로젝트 팀의 모양으로 시작했어요. 이후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서 몇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도 했지만,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재의 모양으로 흘러온 것 같아요. 다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즈음에 방송국이나 항공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에 관심이 있었어요. 방송국이었다면 다양한 매체로 송출되거나 현장에서 운용되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고, 항공사였다면… 글쎄요. 그 즈음부터 비행기를 워낙 좋아해서. 한 번은 꼭 비행기 동체에 도장되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박수연(이하 수연). 저는 2020년에 장영웅 디자이너와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노네임프레스에 합류했는데요. 서울에서 4년 정도 다양한 환경에서 일해보고 잠시 대전에 돌아온 상태였어요. 처음에는 스타트업에서 2년 정도 있었고, 그다음은 대기업 인하우스 – 스튜디오 – 상품 기획 – 교육 쪽으로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탐색해 보고, 오래 다닐만한 회사를 찾았던 것 같아요. 다음 회사가 정해지기 전까지 고향에서 프리랜서로 있을 생각이었기에 아마 1인 스튜디오 혹은 중간에 다시 취업해서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인 직군에서 일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연 디자이너님의 합류를 기준으로 보면 노네임프레스는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초창기 스튜디오와 비교해 오늘날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영웅. ‘경계 없음NO-BOUNDARY’이 저희의 슬로건인데요. 그 때문인지 아니면 저희의 기질이 원래 그러한 것인지… 계속 새로운 것을 하게 돼요.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는 유사한 일이라도 조금이라도 안 해 본 방법을 고민하죠.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던 종이를 써본다거나. 사서 고생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웃음) 그런데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까 그 속에서 생기는 불안함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은 더 늘어났고요.
수연. 현재는 새롭게 멤버로 합류한 천선진 디자이너를 비롯해 인턴·어시스턴트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클라이언트와의 조율만 중요했다면, 이제는 내부 구성원들과의 조율도 중요하다고 느껴요. 당장 이 작업을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같이 나아가기 위해 발을 맞추는 것 혹은 그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울러 요즘 제일 기분 좋은 건 주변에 저희가 작업한 사례가 많아진 점이에요. 초창기에는 다른 회사들이 한 작업을 예시로 설명드리곤 했는데, 이제는 저희가 진행한 프로젝트로 면밀히 논의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운영하기 in 대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를 만날 때마다 늘 그 창업 과정이 궁금하더군요. 어디선가 뚝딱! 하고 만들어 내는 것 같은데, 사실 사업자 등록부터 세금 신고까지… 처음이라면 낯선 일 투성이잖아요.
영웅. 운영에 대한 부분은 항상 숙제를 얻어맞고,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오히려 사업자 등록이나 세금 신고 등의 과정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게 재밌기도 했어요. 디자인은 사실 답이 없잖아요. 반면에 앞서 이야기한 과정은 정답과 오답이 명확해서 이를 해결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있거든요. 지금의 숙제는 협업자들이 많아지면서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되,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작업을 진행하는 방법론과 정확한 커뮤니케이션 툴킷을 만드는 일이에요.
수연. 나라 장터, 나라빌, 채권 발행, 보증 관련 등 회사마다 다른 계약 방식들에 늘 머리가 복잡했고, 게다가 저희한테 윈도 운영체제 컴퓨터가 없었거든요. 주변 PC방에 찾아가서 상담원과 통화하고, 블로그 글 찾아보고… 반나절 동안 계약 관련 일로 에너지를 쓴 적도 있어요. 시행착오도 많았죠. 이제는 세무 관련 담당해 주는 곳이 생겨서 원천세를 비롯한 세금 처리가 많이 편해졌어요. 사무실 한편에 결제를 위한 윈도 노트북도 생겼고요.
—스튜디오 운영을 위한 초기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셨어요?
수연. 처음 사무실 마련과 환경 조성은 서울에서 자취하고 남은 보증금으로 어느 정도 기본 세팅은 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월세가 저렴한 편이었고, 건물이 리모델링을 마친 직후라서 바닥 말고는 크게 손볼 곳이 없었거든요. 나름 일 복이 많아서 둘 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이걸 합쳐 일하면서 나눠 가졌던 기억이 나요. 초기에는 정말 기본 용돈만 될 정도의 수익을 가져갔어요. 꿈돌이 관련 상품을 만들 때도 자체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저희가 지출하는 비용이 높았는데 나름 금리가 낮은 보험 대출을 찾아보고 비용을 마련했었죠.
—대전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의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장점이야 말씀하신 렌트 비용이 아닐까 싶은데. 그 외의 장단점이 있다면요?
영웅. 단점은 대전이어도, 서울이어도 비슷한 것 같아요. 렌트 비용이 더 저렴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서울에도 잘 구하면 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컨디션은 다를 수 있겠지만요.
다만 서울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모든 것이 수행되는 지역의 기조 아래에서 일하다 보면 ‘적당히 끝내기’에 대한 유혹이 늘 찾아와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분야의 특성상 ‘익숙한 것에 젖어들지 말자’, ‘적당한 것보다 조금 더 잘, 더 많이’ 와 같은 생각을 지녀야 스스로의 만족도가 생기더라고요.
수연. 그리고 수도권에 비해 관련 분야의 전공자가 부족해요. 같은 시각 디자인이어도 그 안에 여러 분야가 있잖아요. 특히 저희가 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는 지역에서 점점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지역 인재를 채용하는 데 있어서 회사와 지원자 모두 좀 더 큰 결심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면, 거처를 옮겨야 하는 문제 같은 거 말이죠. 대부분 회사는 그런 지원자를 부담스러워하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이번 연도 채용에는 지역적인 부분은 아예 배제하고 지원자를 바라보려고 했어요. 함께 일하면 너무 좋을 것 같거나, 너무 성실한 지원자인데 단순히 멀다는 이유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두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아쉬운 일일 것 같았거든요.
또, 스튜디오가 비교적 많지 않아서인지 교류도 잦은 편이에요. 다들 지역에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욕심이 많아요. 가끔씩 여유 될 때 만나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려고 해요. 초창기에는 먼저 일하고 계신 스튜디오 실장님들이 구비하면 좋을 서류들부터 견적석, 계약서 작성에 관한 조언 등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문득 궁금한데. 노네임프레스 주변에 함께 자리 잡은 디자이너 혹은 스튜디오도 있나요?
수연. 아주 가까운 곳에 ‘스튜디오 플롯’, ‘백색공간‘, ‘굿퀘스천‘, ‘사이에서‘가 있습니다. 가까워서 가끔 출근길 혹은 식당에서 마주치기도 해요. 자주 교류하는 스튜디오로는 슬로먼트, 엔아이엔 스튜디오가 유성 쪽에 사무실을 같이 쓰고 계시고요. 최근에 좀비출판에서 출간하는 책 「스몰 스튜디오, 스몰 신, 대전, 대구」을 위해 라운드테이블 자리를 만들어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튜디오 여섯 팀(굿퀘스천, 노네임프레스, 백색공간, 실기활동, 슬로먼트, 엔아이엔)을 다 같이 만난 적이 있어요. 언급된 팀 말고도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튜디오가 더 있을 텐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흔히 디자이너가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하면 마인드를 달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운영이 곧 생존이니까 말이죠. 본격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영웅. 스스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점은 없어요. 저의 경우는 첫 사회생활이 곧 스튜디오 운영이었거든요. 다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하게 일하려고 하고, 상대방에게 의견을 말할 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수연. 자연스럽게 운영 관점의 이야기를 더 찾아보고 듣게 돼요. 특히 주변의 동향을 더 빨리 살피게 되는데, 어떤 문화 공간이 새로 생긴다거나 투자와 행사 소식을 포함한 지역 내·외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어요. 커뮤니티에서 운영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소모임이 있다면 시간 내서 참여하려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FDSC 견계잘쓰 워크숍’에 다녀와서 저희가 쓰고 있는 견적서와 계약 서류를 점검하기도 했어요.
—한편 스튜디오 운영을 위해서는 자영업자 그리고 영업 사원의 마인드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기서 자영업자는 자체 프로젝트를 말하는 것일 테고, 영업 사원은 클라이언트 잡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노네임프레스가 클라이언트를 사로잡는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영웅. 처음에는 디자인 기획이나 비주얼을 개발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계약 업무를 포함한 프로젝트 진행 전반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모호하지 않게,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노네임프레스를 시작했을 때에는 지역에서 젊은 편에 속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능력보다도 일을 어설프지 않게 잘 처리하는 회사라는 모양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디자인이야 어차피 더 잘하게 될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그래서 견적서나 계약서 같은 공적 문서의 서류 서식을 정확하게 만드는 작업을 가장 먼저 했습니다.
수연. 만약 저희가 기획 단계에서 개입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범위 안에서 확장할 수 있는 예시를 많이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작년에 진행한 <시선수집>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시에요. <시선수집>은 대전문화재단에서 매년 진행하는 대전청년작가장터 프로그램인데요. 작가들의 다양한 관점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의 시선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의미를 담아 ‘시선수집’을 부제로 택했어요.
‘수집’을 담을 수 있는 박스를 콘셉트로 첫 번째 포스터는 큰 박스, 마지막 장터의 포스터는 작가 수 별로 31개의 박스를 쌓아 전개했고, 초대장도 박스를 뜯는 느낌이 들도록 미싱(지네발) 패키지로 제작했습니다. 박스 테이프, 엽서집, 도록 또한 이러한 콘셉트 아래 일관된 경험을 주는 것에 집중했고요.
시선수집 포스터처럼 모션 포스터로 이어질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나오는 경우, 증강현실 기술로 연결되는 장치를 마련해서 전시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죠. 항상 가지고 있는 관련된 샘플이나 사례를 소개해 드리면 프로젝트가 더 풍성해지더라고요. 이런 논의가 가능한 프로젝트는 최대한 가지를 많이 뻗어내려고 합니다.
—올해 함께 일해보고 싶은 클라이언트나 욕심나는 프로젝트도 있을까요?
영웅. 몇 가지가 있는데요. 스튜디오 초반에는 다른 지역의 클라이언트와도 다양한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지역 내의 기관들과 일하는 작업이 오히려 많은 비중을 차지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다시금 타 지역의 수많은 클라이언트와 일하면서 ‘교통의 중심’인 대전의 역할을 톡톡히 보여주고 싶어요.
더불어 노네임프레스를 많은 분들에게 알린 작업은 아무래도 ‘꿈돌이’ 작업일 텐데요. 마침 올해가 이 지역에서 열렸던 가장 큰 국제 행사인 <대전 엑스포>의 30주년이 되는 해거든요. 꿈돌이가 30살을 맞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수행하거나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같이 일해보고 싶은 클라이언트는 대전 밖에, 욕심나는 프로젝트는 대전의 중심에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수연. 그리고 종이로 제작되거나 가상 공간에서 경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간까지 확장되는 브랜딩 프로젝트도 경험해 보고 싶어요. 브랜딩 작업은 결국 긴 호흡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거든요. 브랜딩 작업을 하다 보면 늘 공간 기획부터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디자이너 장영웅 ⇔ 디자이너 박수연
—오늘날 완전체의 노네임프레스가 되기 전에 두 분은 처음에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시면서 알게 되신 거잖아요. 한 공간에 있는 만큼 아무래도 서로의 작업을 흘깃흘깃 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서로의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봤을지가 궁금합니다.
영웅. 따뜻하고 안정적인 디자인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이 멋있어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이 확실하고 그것을 본인의 작업에 슬쩍슬쩍 잘 녹여내요. 구조적이고 시스템이 정립된 작업을 선호하던 당시의 저와는 반대되는 분위기와 인상을 지녔다고 생각해서 같이 일하는 걸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었어요.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수연. 영웅 디자이너는 꼼꼼해요. 디테일 한 부분까지 잘 보면서도 용기 있게 성큼성큼 시도하고, 또 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냉탕과 온탕을 잘 오간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항상 뭔가 잘 잃어버려서 디테일은 내가 챙겨야겠지 싶었는데, 작업할 때 정말 자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놀랐어요. 학습 능력도 빠르고, 새로운 툴도 금방 적응하고 활용할 줄 아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어요?
영웅. 항상 작업실에 붙어있는 선배? 항상 무언가를 알고 있고… 그때의 저는 항상 정신없고 무언가를 빼먹는 사람이었는데 수연 디자이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달까요. 저에겐 되게 크고 편한 사람의 인상이었고, 늘 서울에서 열리는 워크숍이나 세미나에 가는 걸 좋아해서 어렴풋이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죠.
수연. 첫인상으로는 스무 살 그 언저리 똘망똘망하고,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자연스럽게 서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면서 늘 알아서 길을 잘 찾아가는 친구로 기억해요. 처음에는 제가 알려주는 게 많았는데 어느새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네요.
—노네임프레스를 함께 운영하는 디자이너로서 서로의 장점을 꼽자면요?
영웅. 수연 디자이너는 수집에 독보적으로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아마 머릿속에 수집 도서관이 정말 정말 크게 조성되어 있을 거예요. 어떤 프로젝트든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례를 제시해 주면서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해요. 가장 큰 강점인 것 같아요.
수연. 디자인뿐만 아니라 통틀어서 영웅 디자이너는 핵심을 명확히 짚어낼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앞으로 작업은 어떤 방식이어야 할지, 지금 이 작업에서 어떤 부분을 더 보여줘야 하는지 등의 전략적인 부분을 잘 캐치하는 덕분에 성장 속도도 빠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강점은 커뮤니케이션으로도 이어지는데요. 특히 디렉팅 할 때 중간중간 문제없도록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정리해 주는 역할에도 탁월해서 외부 인원과의 협업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어요. 물론 클라이언트와의 협업에서도 디자인의 중심을 잘 지켜내고요.
저는 그런 영웅 디자이너를 보면서 ‘꼭 회사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느껴요.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파악하면서 체득하는 것들에 질투도 안 날 정도로 탁월함이 분명 있어요.
—서로가 다른 장점을 지닌 만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견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수연. 사실 저희가 굉장히 자주 싸워요. 아마 제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싸워 본 사람이 장영웅 디자이너일 거예요. 그래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이제는 서로를 많이 알고 있고, 솔직해질 수 있어서 건강하게 싸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을 많이 살피는 편인데요. 영웅 실장님은 싸우고 10분 뒤에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하고 있어서 ‘아 다행이다.’ 하고 저도 부정적인 기분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친구가 약 오르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오히려 같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이제는 서로 스트레스를 컨트롤하는 노하우가 생겨서 On/Off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고요. 저는 주로 혼자만의 시간이 있으면 곧잘 해결되어서, 그 기분이 오래가지 않고 다음 날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일상과 공간을 말하다.
—디자이너로서 선호하는 작업 공간 환경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연. 저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우드톤의 공간을 좋아해서 휴일에 방문하는 카페도 그런 공간을 많이 찾는 편이에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디자인 스튜디오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해요. 가끔 책이나 발주한 상품을 배송받을 때마다 절실히 느끼는 부분인데요. 한 번은 리소 인쇄기를 들이는데 기사님이 1시간 반 동안 계단에서 고생하셔서 너무 죄송했어요. 언젠가는 스튜디오 이사할 날이 올 텐데 이 많은 짐을 어떻게 옮기지?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사무실을 계약하고 잠깐 핀터레스트에 모았던 사진들이 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래도 원하는 사무실에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요. 책장부터 포스터함, 이동 카트, 회의실 등 이제는 얼추 저희가 꿈꿨던 사무실이 되었습니다.
—향후에 새로운 스튜디오 공간을 찾는다면 이것만은 꼭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부분도 있을까요?
수연. 현재 공간과 위치에 큰 불만은 없지만, 이후 확장해서 옮기는 사무실은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먼저 확인할 것 같아요. 저희 스튜디오가 있는 곳은 특히나 주차 공간이 복잡하고 협소하거든요.(덕분에 운전을 시작하고 주차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관리가 어려운 카펫 바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영웅.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한편 스튜디오 내에 정해 둔 규칙이나 규율도 있을까요? 적당한 규칙이나 루틴은 작업에도 도움이 되곤 하잖아요.
수연. 다른 것보다 항상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스튜디오와 클라이언트의 목표를 정리해 보고 시작해요. 저희의 욕망은 ‘안 해봤던 스타일의 작업해 보기’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매체 써보기’, 혹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끝내기’ 등 상황마다 지향점이 달라지거든요.
올해부터는 전년도 남은 작업을 마무리한 시점인 1~2월 사이에 비워내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다 같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오니까 활력도 생기고 일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하면 매년 루틴으로 지켜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영웅. 조직의 규모가 앞으로 점점 확장될 수도 있는데, 이런 루틴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약 속에서 새로운 창조성이 발휘되는 게 우리 일의 특징이잖아요. 이런 느슨한 체크 리스트나 규범들을 만들어서 업무 혹은 조직 문화에도 적용시키면 시간 낭비는 줄어들겠죠.
—스튜디오를 벗어난 시간, 그러니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어떻게 보내세요?
수연. 저는 덥지 않고, 움직이기 좋을 때는 대부분 서울에 가서 궁금한 전시나 공간을 보러 다녀요. 요즘은 차가 생기면서 다른 지역으로 훌쩍 놀러 가기도 편해졌어요. 이제는 눈과 발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대전의 조용한 카페에 가서 책을 보기도 하고,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려고 해요. 다른 지역에서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느라 바쁜데, 대전에 있을 때에는 조용하고 익숙한 곳에 찾아가 휴식을 취하는 독특한 루틴이 생겼습니다. (웃음)
—디자이너로서 건강하게 작업하기 위한 자신만의 일상 속 노하우가 있다면요?
영웅. 건강하게 작업하려면 신체적인 요건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컨트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곧 재산인 업의 특성상 시간의 압박이 곧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다가오는데, 이것을 운동이나 혹은 그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등의 개인적인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하는데… 아직은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요.
수연.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늘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멀리했는데 다시 반성하게 되네요. 건강이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잘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라 이제는 건강도 잘 챙겨 보려고 합니다.
글 이정훈 기자
자료 제공 노네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