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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2022-07-19

지속가능한 백패킹 라이프스타일, 제로그램

가벼움을 향한 도전, 환경을 위한 발걸음

0g. 무게가 없다고 느껴질 만큼 가벼운 장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처럼 제로그램의 제품은 가볍다. 가능한 한 가뿐하게 꾸린 배낭을 짊어지고 자연을 누비는 울트라 라이트 백패커를 흡족하게 만든다. 기술력도 출중하다. IT회사 개발자들이 혁신을 꿈꾸며 시작한 브랜드답다. 제로그램은 ‘지속가능한 백패킹 라이프스타일’을 슬로건으로 삼은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의 파타고니아’를 꿈꾼다. 팬덤을 형성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의 현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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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수력과 통기성이 우수한 모노 필라멘트로 결로 침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빠르고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원 폴 시스템 텐트, 엘찰텐 프로 2P 텐트(단종). © designpress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로 떠난다고 가정해보자. 800km가 넘는 길을 한 달 이상 걷는 여정. 너른 들판 위에 펼친 텐트 안에서 여러 밤을 보내야 한다.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입을 수 있다. 장비는 성능이 뛰어난 것들로 고른다. 모든 짐은 배낭에 담아 짊어져야 하니 단 1g이라도 가벼운 쪽이 좋다. 이처럼 장거리 트레일엔 뛰어난 기능과 가벼움을 동시에 충족하는 장비가 필수다. 백패킹을 위한 초경량 장비가 필요한 순간이다.

 

제로그램은 IT회사 개발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온라인 쇼핑몰 솔루션을 만드는 IT회사 ‘유젠’의 개발자 중엔 백패킹과 캠핑 같은 아웃도어 라이프 애호가가 여럿 있었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만큼 자연에서의 여가를 즐기던 이들은 취미를 공유하던 끝에 사내 벤처를 시작했다. 더 가볍고 더 혁신적인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는 3년의 준비를 거쳐 2011년 ‘제로그램’으로 탄생했다. 이어 2014년 독립 법인 ‘젠아웃도어’를 출범했다. 취미를 일로 발전시킨 개발자들의 덕업일치로 만든 제로그램은 첫선을 보인 당시엔 찾아볼 수 없던 초경량 고성능 스펙으로 아웃도어 시장을 재편했다. 1kg이 채 되지 않는 경량 텐트와 카본, 티타늄 소재의 경량 백패킹 용품은 백패커뿐 아니라 캠퍼와 하이커들까지 사로잡았다.

리싸이클 나일론과 카본듀랄루민 폴, 마그네슘 합금 허브로 친환경과 초경량을 모두 만족하는 하이커 체어. © designpress

꼭 필요한 장비만 간편하고 가볍게 꾸려 자연 깊숙이에서 즐기되, 자연환경에 영향을 주는 일은 최소화하겠다는 마음은 첫 제품을 개발하던 때부터 지녀온 제로그램의 철학이다. 제로그램은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에 관해 꾸준한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의 파타고니아”를 자처하는 까닭은 파타고니아의 환경에 대한 관심과 행보가 제로그램이 설립 당시부터 품어온 생각과 결이 같기 때문이다.

자연을 즐기되 떠나올 땐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제로그램의 모토를 담아, 야영 중 발생하는 쓰레기를 다시 가져와 처리하는 용도의 플로깅백. © designpress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업이 여럿 있어왔지만, 파타고니아만큼 꾸준한 목소리를 낸 브랜드는 거의 없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충분히 리스펙트를 받을 만하고요. 제로그램은 그들을 오마주하면서 한국에도 그런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자는 포부가 있어요.”

지난 10여 년간 제로그램은 로스트블루 캠페인, 플로깅 행사, 그린백패커 프로그램 등을 꾸리며 친환경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최근엔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고 리사이클링 소재를 개발하는 것에도 힘을 쏟고 있다. 얼마 전 출시한 ‘리사이클넷 박스’은 국내 최초로 폐그물을 재활용한 제품이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고 지속해나가는 꾸준함은 제로그램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면 개폐가 가능한 중거리용 롤탑 45리터급 백팩, 로스트 크릭 40 © designpress

2018년부터는 백패킹에 걸맞은 기능성 의류를 선보였고, 지난해 브랜드 리론칭을 계기로 일상생활도 아우를 수 있는 패션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 같은 행보를 이끈 제로그램의 이종훈 대표는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코오롱FnC를 거쳐 아웃도어 브랜드 디스커버리의 총괄을 역임한 패션 전문가다. 아웃도어 모티브의 캐주얼 브랜드를 이끄는 동안 시장 확대의 가능성을 엿봤다는 그는, 아웃도어 시장에 2030을 위시한 젊은 세대에 걸맞은 감각적인 패션이 등장할 시점이라고 점쳤다. 산이 아닌 곳에선 TPO는 무시한 듯 올드한 등산복 대신 일상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아웃도어로 일반 신규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각오다.

Interview with 제로그램

이종훈 대표
이종훈 대표 © designpress

블로그와 SNS에서 아웃도어 제품 관련한 포스팅을 살펴봤는데 “묻고 따지지도 않고 제로그램의 텐트를 장만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제품력에 대한 인정과 신뢰일 텐데요. 제로그램은 태생부터 혁신을 꿈꾸는 개발자의 손에서 탄생했고, 그에 걸맞은 기술력을 갖췄죠. 그런 제품을 기반으로 백패킹 헤비 유저분들이 제로그램의 마니아를 자청하셨고 브랜드를 견인해주셨어요. 제로그램이라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도는 온라인 판매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요.

보다 가볍고 보다 혁신적인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로 출발한 제로그램의 기술력은 많은 헤비 유저의 만족을 이끌어냈다. 지난해부터는 일상도 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아웃도어 웨어를 제안해 더 많은 대중과의 접점을 유도하고 있다. 메쉬 나일론 원단으로 만들어 통기성과 개방성이 뛰어난 안티버그 텐트, 22 실버패스 A메쉬. © designpress

제로그램 론칭 당시엔 그만한 스펙을 따라올 만한 타사 제품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고성능과 초경량에 특화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선 노하우가 필요한데, 그 노하우를 쌓는 데엔 시간이 소요되니까요. 제로그램은 지난 10년 이상 연구와 개발을 꾸준히 해왔고 탄탄한 노하우를 갖췄죠. 동일 스펙의 제품이라면 그 어떤 브랜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무리한 급성장을 꾀하기보단 한 단계씩 만들어 올라가면서 안정감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홍대 근처에 위치한 제로그램의 쇼룸 ‘제로그램 헛’.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으로 마당에 텐트와 타프를 설치해 두고, 고객이 체험과 휴식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했다. 또 백패킹과 캠핑에 경험이 많은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 텐트 설치법이나 관리법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신제품 체험도 가능하다. © designpress

지난해 리론칭을 하면서 브랜드를 재정비하셨는데요. 패션 아이템을 대폭 키운 것이 가장 눈에 띕니다.

작년 3월에 리론칭을 했으니 이제 1년이 좀 지났네요. 의류 카테고리에서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아웃도어 라이프와 일상 모두에서 즐길 수 있는 옷을 출시한 거예요. 일본 아웃도어 의류 시장을 살펴보면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알피니스트, 국내에 가장 흔한 아웃도어 무드의 라이프스타일 캐주얼, 트레킹이나 캠핑, 페스티벌 등을 아우르는 라이트 아웃도어 정도로 구분되고요. 그중 절반 이상의 비율을 라이트 아웃도어가 차지하거든요. 최근 국내 시장도 아웃도어 문화를 다양하게 접한 젊은 세대들이 주 소비층으로 떠올랐죠. 시장의 세대교체에 대비하기 위해 기능을 지키면서도 감성적인 접근과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더한 의류를 선보일 때라고 봤어요.

© designpress

소프트한 패션을 선보이는 것이 기존 제로그램 마니아들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진 면도 있습니다.

기어 브랜드가 말랑한 패션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여 헤비 유저들은 서운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브랜드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 봤어요. 백패킹 고객을 충족시키는 것만큼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사실 장비는 의류나 신발에 비해 마진이 적은 편이에요. 시장 자체도 작지만 빅 비즈니스를 만들기도 어렵죠. 이에 반해 의류는 훨씬 큰 마켓입니다. 나이키를 예를 들면, 스포츠 고객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일상에서 입고 신잖아요. 그렇게 해야 회사 몸집이 커지고 그 수익을 개발에 투자할 수 있어요. 이제 제로그램의 전략은 지난 10년간 해왔던 진정성과 스토리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잇는 비즈니스를 연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어요.

© designpress

리론칭 이후 제로그램이 그간 해왔던 친환경 행보도 넓어졌어요.

제로그램은 설립 초기부터 친환경, 지속가능한 백패킹 문화를 이야기해왔고요. 이젠 자연을 즐기고 다가가는 브랜드를 넘어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내는 브랜드가 되고자 합니다. 지금은 실질적인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시대잖아요. 기후 위기나 쓰레기 포화 같은 환경 문제는 이미 피부에 와 닿는 일이라는 것을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지금껏 해온 캠페인과 여러 환경 보호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한편, 소재나 제품으로도 우리가 추구하는 친환경 가치를 증명하려 해요. 리사이클링 소재로 만든 텐트나 의류를 출시한 것 등이 그렇죠.

 

최근 폐그물을 이용해 제품을 출시했죠. 이름부터 ‘리사이클넷 박스’예요.

폐그물로 제작한 테이블이에요. 남해안에서 건져 올린 폐그물 30%와 나일론 폐원사 70%를 가공해 만들었고요.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는 어디에나 문제를 일으키지만, 깊은 바닷속에 버려진 폐그물로 바다 생물이 몸살을 앓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폐그물을 업사이클링하면 어업 종사자에게 도움이 되고, 언젠가 바다 생태계가 나아지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자발적으로 폐그물을 수거해 판매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고요. 별도의 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폐그물과 폐원사의 색상을 자연스럽게 살려 업사이클링의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했죠.

© designpress

브랜드가 하는 행사임에도 백패킹 관련 캠페인에 대해 고객의 호응이 높은 편이에요.

함께 공감하며 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꾸준히 행사를 만들어온 덕분에 고객과 연대감이 쌓였죠. 지난 4~5년간은 코리아 백패커스 데이나 백패킹 관련 행사를 해왔는데, 올 9월엔 친환경 테마 페스티벌을 열 예정이에요. 100명 정도가 함께하는 스피치와 트레킹, 환경에 관심 많은 아티스트의 미니 콘서트 등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마 미국과 유럽에서 보던 환경 페스티벌과 흡사한 방향이 될 것 같아요.

 

환경을 위한, 이른바 착한 소비에 대해 의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요. 지금껏 꾸준히 친환경의 가치를 이야기해온 제로그램에겐 반가운 일이겠어요.

‘지속가능한’이라는 문구는 환경과 관련해 주로 쓰지만 기업활동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1~2년 안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응원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야 하죠. 동일한 스펙 선상에서 제로그램을 선택하면 더 가치 있는 소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까지 잘 버텨낼 힘을 키워야 하고요. 제로그램처럼 환경을 위해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돈쭐을 내주자”며 키우고 싶은 브랜드가 되는 것도 꿈이에요.

기획 김만나 편집장

주리아 에디터

사진 박성호, 이명수(인물) 포토그래퍼

모델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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