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의 디렉터 쟝-피에르 블랑(Jean-Pierre Blanc)이 젊고 재능 있는 패션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이에르(Hyères)에서 시작한 이에르 국제 패션 및 사진 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mode, photographie et accessoires de Hyères).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통해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공모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수많은 스타 디자이너들을 탄생시키면서 젊은 창작자들에게 일종의 꿈의 실현을 위한 목적지로도 여겨진다. 매 해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새롭게 구성되는 심사위원단과 세계적인 브랜드, 기관 및 미디어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페스티벌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형성되는 커넥션을 통해 디자이너들은 페스티벌 참가와 동시에 취업 및 새로운 프로젝트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런 이유로 본선 진출자로 선정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업계에 재능을 노출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87년생 최랄라 작가는 37회 이에르 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으로 내년에 열리는 38회 행사의 심사위원 자격과 빌라 노아유에서의 개인전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빌라 노아유와 패션 브랜드들의 크리에이티브 비주얼을 제작하는 프로덕션 에이전시 셰리프 프로젝트(Sheriff Projects)와의 파트너쉽을 통해 12월 14일 6점의 작품을 빨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2023년 1월 13일부터 2월 25일까지 마레 지구에 위치한 셰리프 갤러리에서 개인전 <블루(Blue)>가 열릴 예정이다.
Interview with 최랄라 포토그래퍼
— 이에르 페스티벌 사진 부문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안은 소감이 듣고 싶다.
수상 당시 수많은 외국인들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바보처럼 웃기만 했던 것 같다. 페스티벌 본선 진출자로서의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만 활동 하다 보니 프랑스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 자체로도 행복했는데, 전시 기간 동안 같이 출전했던 10명의 사진가들과 친해져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거기에다가 상까지 받으니 그동안 개인적으로 가졌던 여러 생각과 걱정이 말끔히 정리된 느낌이다.
— 한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갑자기 이에르 페스티벌에 도전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국내 활동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중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파트너를 만나게 되었고, 해외 진출을 위한 공모전을 제안하여 이에르 페스티벌에 도전하게 되었다. 해외로 나가야만 한다는 일종의 절박한 상황이 이런 도전을 만들었다.
— 남프랑스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대회와 다르다고 알고 있다. 사진 부문 첫 한국인 수상자인 만큼 직접 경험해 본 대회의 인상을 공유해 주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 같다.
10월인데도 가벼운 차림으로 남프랑스 특유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풍경 속에서 공모전을 진행하는 게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공모전의 준비과정은 겉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장면과 달리 매우 까다롭고 마지막까지 긴장되는 순간이다. 공모전의 참여는 20장의 디지털 이미지 파일을 1차적으로 응모한 뒤 1차 합격자들에 한 해 규격 사이즈의 프린트물 2차로 제출하게 되고, 37회 심사위원단으로 특별히 구성된 이들의 심사를 통해 최종 본선 진출자 10명이 선정된다.
이제부터가 공모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10명의 진출자들은 주최 측의 지원 아래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시노그래피(scenography)로 전시 공간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그리고 전시 준비가 완료되면서 페스티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페스티벌 기간인 5일 동안 수많은 방문객들이 공모전을 즐기고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다. 관람객들은 가장 좋아하는 작품/사진가를 투표할 수 있고 이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가에게는 대중상(인기상)이 수여되는데 그랑프리와 함께 이 상도 함께 받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젊은 작가로서 놀랍고 벅찬데,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37회 심사위원들 앞에서 직접 작품 설명을 진행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사진가 피에르 드뷔셰르(Pierre Debusschere), 칼린 제이콥스(Carlijn Jacobs), 알라이야 그리고 보테가 베네타의 크레이티브 디렉터, iD 매거진 편집장 그리고 전년도 그랑프리 수상자로 직접 마주한다는 자체로도 긴장되는 이름들이었는데,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니 파트너가 준비해온 영어로 된 작품 설명서를 그대로 다 외워서 말했다. 이후의 과정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자면 무척 길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제대로 까다롭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멋진 공모전’이라는 인상이다.
—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깊이감이 느껴지는 색채 표현이 인상적이다. 테크닉 외에 색에 대한 연구를 따로 하는 편인가?
색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지만 촬영 전에 어떤 색을 사용할 것인지 정하고, 촬영 순간 느껴지는 색을 페인트 조색 차트를 보고 그날그날 만들어 사용한다.
—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이라는 매개를 수십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검프린트 기법으로 창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검프린트는 오랜 시간 피그먼트별 용액을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을 수십 번 거쳐야 완성되는 공예적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기법으로 알고 있다. 이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 중 가장 젊은 한국 작가라고 들었었는데 어떤 이유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예전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 사진 박람회인 파리포토(Paris Photo)에서 검프린트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그 뒤로 한국에 돌아 오자마자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서 배우게 되었다.
— 작가가 오랜 시간 연습해 온 사람의 몸이라는 대상에 대한 관찰과 이해, 해석이 작품을 통해 커다란 매력으로 표출된다고 느꼈다. 몸이라는 대상, 특히 뒷모습에 대한 연민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대 초반, 굉장히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당시 같은 심정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인스타그램에 이런 심정을 느끼는 혹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찾는다는 포스팅을 올렸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이후 뒷모습 시리즈가 나만의 시그니처로 알려졌다.
— 얼마 전 프랑스 패션 잡지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한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해 특별한 점, 혹은 달랐던 점이 있었나?
특별한 점이라면 모델들이 누드 촬영에 대해서 관대하다는 것, 그리고 로케이션 장소가 1800년대 네오클래식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이 장소에서 촬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촬영 자체는 워낙 급하게 진행되어 한국과 진행 방식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수상 발표가 10월 16일 오후 4시경이었고, 17일 오후 6시경 촬영에 대한 소식을 전달받을 후, 18일 오전 9시에 작업이 시작됐다. 콘셉트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바로 촬영하게 된 셈인데 다행히 팀들과의 협업이 좋아 잘 마칠 수 있었다.
— 대회 수상 이후 프랑스 및 유럽에서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빨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전시가 열린다. 파리의 유명한 미술관인 빨레 드 도쿄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사실 만으로도 정말 기쁘다. 그리고, 12월 22일부터 스페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 알주에타(Alzueta)에서 전시와 판매가 시작된다. 2023년 1월 13일부터 2월 25일까지는 파리의 셰리프(Sheriff) 갤러리에서 개인전 <블루(Blue)>가 열리며 보테가 베네타의 캠페인 작업도 예정되어 있다.
글 양윤정 해외 통신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최랄라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