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팹을 소개해주세요.
— 형준 잭슨 팹은 디자이너 4명이 가구도 만들고 교육도 하며 아트퍼니처와 풍경을 즐기면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잭슨은 미국에서 가장 흔하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름이에요. 우리나라의 철수, 영희처럼요. 어렵지 않게 네이밍을 하고 싶어 선택했죠. 여기에 저희가 목가구 디자이너인만큼 제작을 의미하는 fabrication과 기막히게 멋진을 뜻하는 fabulous의 앞 글자를 따와 잭슨 팹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사실 잭슨 팹은 목공 작업실로 사용하려 만든 공간인데요. 막상 만들고 보니 작업실로만 사용하기에는 뷰가 너무 좋더라고요. 저희만 보기엔 너무 아까웠죠. 이 멋진 풍경을 함께 누리고자 부랴부랴 공간을 분리해 카페도 같이 만들었어요.
공간을 운영하는 네 분 중 무려 세 분이 서울에서 오셨죠. 부산에 연고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다 이곳까지 내려와 공간을 만드셨나요?
— 형준 우선 저희는 모두 목공과 전혀 관련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목공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죠. 각자 취미 삼아 다니게 된 목공학교에서 서로를 알게 됐습니다. 같이 작업도 하고, 작품 전시도 하면서 목가구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 것 같아요. 다행히도 서로 생각이 잘 맞아 기존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의기투합해 부산에 공방을 차렸어요. 부산의 가능성을 본 거죠. 시장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서울에는 공방을 겸한 문화 공간이 정말 많죠. 잭슨 팹이 시장에서 좀 더 경쟁력을 가지려면 서울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거예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목공예 기술을 익힌 후 잭슨 팹을 오픈하기까지 3년이 걸렸네요.
부산의 영도에 잭슨 팹이 있습니다. 영도에서도 특히 높은 지대에 공간이 있어요.
— 형준 우선 부산역과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도부터 작업실을 알아봤어요. 그리고 저희가 고수했던 몇 가지 공간 조건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하는 후보에서 제외했고, 1층을 원했어요. 다른 분과 함께 사용하는 건물보다는 저희만 있는 독립 건물을 찾았고요. 마지막으로 부산인만큼 바다가 막힘 없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발품을 팔다 발견한 이곳은 저희가 추구한 모든 조건에 완벽히 부합했어요. 여기에 잭슨 팹을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겨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왔네요. 선박의 엔진 부품 수리 공장이었던 이곳을 잭슨 팹 감성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손 봤습니다.
목가구 디자이너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형준 저는 건설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해외 파견이 많은 직무였죠. 회사 생활 4, 5년 차에 취미로 목공을 시작했어요. 쭉 배워보니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목공에 푹 빠져서 사표 내고 지금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 만호 제 경우에는 작은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하루하루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을 맞닥뜨리잖아요. 그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게 목공이었어요. 취미로 시작한 목공이었는데 어느 순간 전문가 과정을 밟고 전시까지 하며 작가가 되었네요.
— 진석 저는 영상을 공부했어요. 영상으로 대학도 졸업했고요. 목공예는 대학을 다닐 때도 관심이 있어서 취미로 공방을 다니긴 했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만든 공간에 사람들이 와서 즐겼으면 하는 작은 목표가 있어요. 지금처럼 공방과 카페과 함께 나중에는 제가 만든 펜션을 운영하고 싶은 바람이 있죠. 이런 의미에서 잭슨 팹은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공간이에요. 우리 작업실에 찾아온 사람들이 커피 한 잔 마시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으면 정말 좋죠.
— 상현 잭슨 팹 팀원 중 저만 유일한 부산 토박이입니다. 10년 넘게 의류 판매업에 종사했어요. 정말 바쁜 시간이었죠. 잠시 여유가 나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편하게 쉴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의류업계에 몸담고 있는 와중에도 늘 저만의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미국의 개러지(garage) 문화처럼 내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이를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죠. 그 기술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발견한 게 목공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기술을 익혔어요. 그런데 꿈만 꾸던 공간을 이렇게 빨리 만들게 될 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웃음) 게다가 제 고향 부산에서요. 오랜 시간 패션 쪽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음악, 아트 신에 있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 친구들도 무언가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잭슨 팹과 교류할 기회도 조금씩 생기고 있죠. 저는 이렇게 우리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주위의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며 더 큰 시너지를 만드는 것도 잭슨팹을 운영하며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요소가 잭슨 팹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까요?
— 형준 도마 같은 작은 목공예 소품을 만들 수 있는 카페 중심의 목공방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기고 있어요. 간단한 목공 장비와 기술만 있으면 운영할 수 있죠. 반면 잭슨 팹은 휴먼 스케일의 완벽한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장비를 빈틈없이 갖추고 있어요. 작은 소품은 물론, 큰 침대도 만들 수 있죠. 진짜 목공방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잭슨 팹의 모든 목가구와 소품 모두 저희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어요. 손님들은 저희가 제작한 가구를 이용하며 공간을 즐기죠. 이런 부분에서 잭슨 팹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 상현 목공실과 카페는 통창으로 구분돼요. 물리적으로는 막혀 있지만 작업실에서 목공 작업을 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이죠. 아직은 많은 분이 잭슨 팹을 단순히 뷰 좋은 카페로 알고 오세요. 하지만 막상 방문했을 때 뷰도 근사하지만, 섬 꼭대기에 작업 스튜디오가 있는 독특한 풍경에 더욱 놀라워하시죠. 바다 풍경을 보러왔다가 되려 목공 체험과 스튜디오 구경도 하며 감동하죠.
목공을 처음 접하는 분이 보기에 작업실 풍경은 정말 인상적일 것 같습니다. 작업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 건가요?
—형준 작업실은 크게 기계실, 조립실, 그리고 사무실까지 세 공간으로 다시 나뉩니다. 사무실은 저희가 클라이언트와 미팅하거나 목공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을 위한 시청각 교육 등을 진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죠. 기계실은 모든 나무를 가공하는 공간이에요. 큰 작업이 늘 진행되는 공간이라 먼지도 많고요. 아무래도 기계실은 위험하기도 해서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어요. 조립실은 이름 그대로 가구를 조립하고 마감하기 위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공간이죠. 손님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는 공간이고요. 조립실 한 쪽 벽면에 사용하는 공구들을 가지런히 진열해두었어요. 20, 30대 남자 손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죠. 오시는 분마다 저희에게 ‘남자의 로망’이라고 말씀해주세요.(웃음)
그렇다면 디자이너이자 작가로서 대표적인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 형준 지난 2월,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HUMANS & NATURE〉 전시에 출품했던 작업을 소개할게요. 가구 작가 10인의 작업을 선보인 전시였고, 잭슨 팹의 4명 모두 참여했습니다. 기능에 충실한 가구보다는 오브제와 가구의 경계가 없는 아트퍼니처를 만들었죠. 어쨌든 저희는 작가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만큼, 카페 운영과 목공 워크숍 진행도 좋지만, 궁극적으로 최소 2년에 한 번은 비엔날레 출품 등 전시 활동을 이어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제 작업을 간단히 소개하면 작품 제목은 〈WEB, 뭐 하나는 걸리겠지?〉 입니다. 거미줄, 그물 같은 유기적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하나씩 하나씩 원을 따서 완벽한 형태의 큰 구를 만들었죠. 특별한 용도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조형성을 실험한 작업입니다.
— 상현 제가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은 <홍채>입니다.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사람이 태어난 후 후천적인 노력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에 주목했어요. 지문, DNA처럼 타고난 것이요. 그러다 홍채를 알게 됐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나만의 것’을 주제로 작품을 풀어갔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가구의 형태보다 패턴에 주목해요. 그래서 네 종류의 나무를 불규칙적으로 붙여 홍채 모양을 표현했습니다. 의자로 쓰일 수 있도록 만든 작업이지만, 꼭 앉지 않고 보기만 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죠.
— 만호 저는 작업에서 제가 좋아하는 자연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큰 파도가 만들어주는 터널을 배럴이라고 해요. 나무를 휘는 밴딩 기술을 이용해서 그 모습을 표현했어요. 작품 제목도 <파도>입니다. 나무 10겹을 켜서 한 땀 한 땀 붙이며 작업했죠.
— 진석 제 작품명은 <이 마이너스 일은 삼>입니다. 제 자화상을 표현했어요. 그래서 정형화된 정육면체에 잘려 나간 모양, 그리고 내가 쌓아오고, 자라 온 것들을 뿔로 형상화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오브제로 표현했죠. 전시를 준비할 당시 저는 혼자라는 것에 꽂혀 있었는데요. 막상 되돌아보니 제 주위에는 가족, 친구가 있어 제가 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잭슨 팹을 잭슨 팹&컵이라고도 부르시던데요. 아무래도 카페를 염두에 둔 네이밍이겠죠? 어떤 방식으로 카페를 운영하세요?
— 진석 개인적으로는 학생 때부터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도 많고, 잭슨 팹에서 카페를 운영하기로 한 이후에는 전문적인 교육도 받았어요. 그리고 목공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손으로 만지고 측정하는 걸 좋아해요. 되게 섬세하죠. 우리의 섬세함을 커피 맛에 녹여내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목공예 작가가 내려주는 커피도 잭슨 팹만의 아이덴티티인 만큼 열심히 하고 있어요.
— 형준 솔직히 다 처음이었어요.(웃음) 사업자 등록은 어떻게 하고, 영업 신고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죠. 이 작은 카드 단말기 설치 때문에도 고생했고요. 살면서 이렇게 숫자를 많이 보게 될지 몰랐네요. 그래도 재밌어요.
— 상현 저희 모두 목공 하려고 모인 건데 목공 이외에 다른 것들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해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목공 작업을 하는 것은 다들 처음이니까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잭슨 팹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 형준 힙하고 트렌디한 공간도 좋지만,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라요. 원목 가구나 DIY(Do It Yourself) 문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그만큼 크죠. 그래서 좀 더 큰 목표라면 잭슨 팹이 건강하고 친근한 목공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도 이바지하길 바랍니다.
— 만호 저는 원대한 목표가 있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잭슨 팹을 찾아 즐겁게 목공을 경험하고 ‘그 공간 재밌던데 또 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해주셔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 진석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 때 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소개가 나무라고 생각해요. 작은 소품은 사실 기계도 필요 없죠. 손으로 깎으면서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여전히 목공은 거칠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저는 잭슨 팹을 사람들이 정말 편하고 쉽게 나무를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소품부터 가구까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요.
— 상현 부산에 잭슨파마라는 바버샵이 있어요. 부산에서 바버샵 하면 잭슨파마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고 하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공간이죠. 제 친구들인데도 저는 이들을 정말 존경해요. 잭슨파마는 단순히 머리를 잘 잘라서 유명한 게 아니에요. 그건 기본이고, 바버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바이크, 타투 등 다채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에 큰 열정과 실력을 갖추고 있죠. 그들의 활동에 많은 영감을 받아요. 저 역시 잭슨 팹이 부산에서 늘 새로운 이벤트가 일어나는 플랫폼으로서 ‘이색적이고 늘 새로움이 있는 부산의 공간’으로 기억되는 게 꿈이에요. 우리의 기본, 목공 작업을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잭슨 팹을 좋아하는 다양한 신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계속해서 실험하고 도전하려 합니다.
글 이건희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