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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7

파도가 칠 때 밖으로 나가자, 배러댄서프

서핑이 선사하는 더 나은 삶
최근 몇 년 사이 서핑이 유행처럼 번졌다. 양양과 속초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밤마다 클럽이 열린다고 했다. 코로나19로 그 열기가 잠시 소강된 사이, 제대로 된 서핑 문화를 이야기하는 브랜드가 나타났다. 제주를 기반으로 탄생한 ‘배러댄서프’다. 서핑은 자연이 곁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인 스포츠다. 파도를 기다리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우친다. 도시의 속도에 맞춰 살지 않아도 된다고, 휴일의 만취한 젊음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말하는 브랜드. 배러댄서프가 이야기하는 삶은 느슨하고 자유롭다.
© heyPOP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할 것.’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서퍼 그리고 환경운동가인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파타고니아를 설립한 1973년부터 지금까지 이 원칙을 고수한다. 직원들은 2미터 넘는 파도가 오면 작업장 문을 닫고 서핑하러 나간다. 회사 곳곳에는 젖은 서핑슈트가 자연스레 널려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유연하게 대처하는 근무 방식이 닿아 있는 것. 하지만 모든 서퍼가 그런 회사에 다닐 수는 없다. 대부분은 주말이나 휴가 기간에 바다를 찾아 나선다. 15년간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김준용 대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그는 숨 막히는 도쿄 지하철 안에서 퇴사를 결심했고, 몇 달 뒤 홀연히 제주에 정착했다. 지금은 날만 좋으면 해변에 자리를 깔고, 파도가 좋으면 서핑하러 나간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서핑으로 친구가 된 이들과 어울리며 제주의 품에 안겨 뒹구는 일상이다. 배러댄서프는 제주를 기반으로 탄생한 브랜드로 서프보드, 웨트슈트, 왁스 등 전문용품부터 티셔츠, 모자, 비치타월, 캠핑용품, 홈웨어까지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폭넓은 제품군을 선보인다. 브랜딩과 디자인, 콘텐츠, 마케팅, 영업은 김준용 대표가, 운영, 배송, 재고 관리는 엔지니어 출신이자 서프숍을 운영하는 이상엽 공동대표가 맡고 있다. 제품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 체험, 플랫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배러댄서프의 종착지는 뚜렷하다. ‘서핑으로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

© hey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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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배러댄서프

김준용 대표
서퍼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국과 영국에서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윤디자인, 현대카드, 라인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배러댄서프의 모든 디자인과 일러스트는 그의 손에서 탄생한다.

재작년 7월, 제주에 정착하셨다고요. 그때부터 배러댄서프를 구상한 건가요?

제주에 와서 세 달은 서핑만 했어요. 오랜 시간 회사를 다니면서 쌓인 갈증이 있었나 봐요. 커리어를 쌓다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한계가 오더군요. 리더가 되면 좀 달라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일이 늘어나고 번아웃이 찾아왔죠. 몇 달을 바다에서 보내고 나니 충전이 되었고 그때부터 ‘내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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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와서 몇몇 서퍼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서핑이 레저 활동 이상의 존재더군요. 서핑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서핑의 가장 큰 매력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는 게 아닐까요. 파도를 타는 순간, 나를 둘러싼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거든요. 밖에서 보면 몇 초 안 되는 시간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래요. 일상과 전혀 다른 체험이지요. 바다에서 육지를 보는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배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달라요. 바다에는 핸드폰도 없죠. 음악도 없어요. 그냥 물과 나뿐이에요. 그게 한 시간이면 오롯이 그때만큼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인 거예요.

 

서핑은 언제부터 했나요?

2013년부터니까 이제 10년이 됐네요. 처음에는 그냥 서퍼들이 멋있어 보여서 했어요. 당시 양양에는 숍이 두어 개뿐이었는데 분위기는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여유와 휴식이 서핑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변가에서 텐트를 쳐놓고 파도를 기다리다 타러 가고, 또 쉬다가 타러 가고. 서핑 브랜드가 인생의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새터데이즈 엔와이씨​(Saturdays NYC​)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같은 브랜드예요. 디자인 자체보다는 철학이나 태도가 좋아요. 뉴욕 태생인 새터데이서프는 말 그대로 주중에는 도시에서 일하고 토요일에는 서핑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거든요. 호주 브랜드인 데우스는 모터스포츠와 서핑 마니아에게 하나의 문화로 다가오는 존재예요. 전 세계 여러 곳에 바이크, 서핑, 스케이트보드, 바버숍, 레스토랑까지 아우르는 ‘데우스 템플’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는데요. 발리 여행을 갔다가 이곳의 힙한 분위기에 반해 이런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진짜 하게 될 줄은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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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러댄서프 역시 서핑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어요. 어떻게 전개하고 있나요?

제주에 온 뒤로 서핑은 저에게 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일하다 파도가 좋으면 서핑보드를 챙겨 나가고, 날씨가 좋으면 비치타월을 챙겨 들고 해변에서 태닝하며 책을 읽어요. 그럴 때 필요한 물건들이 배러댄서프에 모두 있어요. 제품 이후 스텝은 ‘공간’이에요. 서핑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려면 오프라인 형태의 쇼룸이 필요할 거고 스테이까지 확장하려고 해요. 제주의 다양한 해양 레저를 연계한 플랫폼도 생각하고 있고요.

 

궁극적으로는 브랜드를 통해 경험을 확장하고 싶은 건데요. 작년에 용산 보마켓에서 론칭 팝업스토어를 여는 동시에 한남동에서 전시를 열었어요. 우리는 물건만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배러댄서프가 고른 음악, 영상, 향, 사진 그리고 직접 만든 책까지 보여주며 우리가 이런 것을 지향한다는 것을 선언한 거죠.

제주 바다에서 서핑을 하며 ‘진짜 내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러댄서프는 제주의 로컬을 기반 삼아 서핑 문화를 이야기하는 브랜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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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서핑과 캠핑을 결합한 트립도 제안하고 있어요.

서퍼 중에는 캠핑하는 사람이 많아요. 미국에서는 서핑과 캠핑을 동시에 하는 게 흔한 일이에요. 하와이에 갔을 때 2주간 캠핑카를 타고 서핑트립을 해봤는데요. 진짜 서퍼들을 자연스레 만나면서 ‘이런 삶도 있구나’ 싶었죠. 올해 배러댄서프는 개조한 캠핑카를 타고 서핑과 캠핑을 결합한 여행을 더 많이 소개할 계획이에요.

 

제주에서 서핑트립을 하려면 어디가 좋을까요?

중문이요. 국내에서 유명한 서핑 스폿들을 꼽자면 양양, 만리포, 부산 등이 있겠지만 중문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파도가 있는 곳이죠. 협재, 월정, 함덕에서는 서핑과 캠핑을 함께 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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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운영하는 로컬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슬’과 ‘다랑쉬’라는 에디션을 만들기도 했고요.

제주에는 아름다운 방언이 많아요. 우리가 흔히 아는 모슬포는 ‘모래’의 제주 방언인 ‘모슬’이 붙어 모래가 많은 포구라는 뜻이죠. 다랑쉬는 ‘다리의 소’라는 뜻이에요. 그런 말들을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해봤습니다. 앞으로는 모슬포나 다랑쉬 오름처럼 그 지역을 떠올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협업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한 ‘오션 플라스틱 마우스’를 출시했는데, 여기에 배러댄서프가 일과 레저를 함께 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을 기획해 ‘워크 ×트래블 ×클린’ 세트를 만들었어요.

 

앞으로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나요?

시애틀에서 스타벅스가 탄생했고 일본 로컬 전역을 디앤디파트먼트가 다루는 것처럼 제주에는 배러댄서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내 취향을 보여준다는 것이 겁이 났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래도 될까, 내가 맞을까 하면서요. 지금은 내 이야기가 브랜드를 만드는 축이라는 것을 알았죠. 꾸준히 깊이 있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사진 박성욱

모델 한민혜

이소진
헤이팝 콘텐츠&브랜딩팀 리드.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라이프스타일, 미술, 디자인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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