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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2

온천에서 누리는 지극한 호사, 유원재 ②

한국의 온천 문화를 골몰하다

양진석 건축가는 공간을 짓기 전에 질문의 골조부터 쌓는다. 무엇을 위한 건축인지. 그 질문은 단순한 절차가 아닌, 프로젝트가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기 위한 나침반이다. 덕분에 그의 건축은 형태보다 태도에 가깝고, 결과보다 과정에 무게가 실린다. 유원재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원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유원재에 와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유원재에 우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충분한 고민을 거친 후에 연필을 들었기에 옳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그가 인터뷰 내내 자주 사용한 단어는 ‘본질’이다. 결국 건축의 본질은 목적과 기능 아닐까. 유원재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휴식을 전달하기 위해 공간 경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과 깊은 대화를 나눈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TV 프로그램〈러브하우스〉에서 참여자들의 불편함을 헤아리던 양진석은 오랜 시간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는 건축가가 됐다.

Interview with

양진석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ㅡ 유원재는 ‘수안보’라는 지역에 있어요. 7, 80년대에는 관광객이 많은 온천 도시였다고 하던데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라고 아세요? 임순례 감독 영화인데, 극 중에서 밴드가 활동하는 배경지가 수안보였어요. 90년대만 해도 밴드가 공연을 할 정도로 발달한 유흥가였죠.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감이 가기도 하고, 되레 힙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마을 분위기는 과거에 머문 듯 적막했죠. 어딜 가나 꿩 요리를 팔고 있고요(웃음). 평일만이 아니라 주말에도 유동 인구가 적었어요. 요즘은 겨울 동계 훈련지로 많이 찾는다고 해요.

ㅡ ‘온천’하면 일본의 ‘료칸’이 먼저 떠오르기도 해요. 우리나라 온천 문화는 어땠나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신혼여행이나 수학여행 장소로 인기를 끌었어요. 대표적으로 수안보나 부곡하와이 등이 있었죠. 다만, ‘온천 호텔’이 어떤 경험을 줄 것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어요. 주변으로 유흥가가 형성되는 등 다소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달하기도 했고요. 일본의 ‘료칸’이 휴식 문화로 자리 잡은 것과는 상반되죠. 그렇다면 우리나라 온천수가 일본보다 퀄리티가 좋지 않냐, 그건 아니거든요. 예부터 서민들뿐 아니라 임금도 휴양과 치료를 목적으로 온천을 찾곤 했어요. 수안보도 고려 시대부터 임금이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찾던 곳이고요.

 

ㅡ 하지만 수안보는 과거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그곳에 숙소를 만드는 게 걱정스럽진 않았나요?

자신 있었어요. 없는 걸 만들면 되니까요. ‘카테고리 라벨’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있는데요. 대일밴드나 박카스처럼 브랜드명 자체가 하나의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는 것을 말해요. 그 분야의 압도적인 1등이 되는 거죠. 저희가 지향하는 방향도 마찬가지예요. 유일한 건축물을 만드는 건 익숙했어요. 오히려 도전 의식이 생겼죠.

ㅡ 첫 단계가 ‘유원재’라는 이름을 짓는 것이었나요?

맞아요. 온천 지역에 있는 숙소를 으레 ‘온천 호텔’이라고 해요. 복고풍 디자인이라면 모를까, 제가 그리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겠더라고요. ‘유원재’라고 이름부터 지었어요. 아파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하루 동안 정원을 바라보며 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계한 공간이죠. 머무를 유(留), 뜰 원(園), 집 재(斎)를 써서 유원재. 이름을 정할 때부터 넓은 마당이 전제로 깔려있었어요.

ㅡ 한 인터뷰에서 ‘건축이 지역을 바꿀 수 있다’고 언급하신 걸 봤어요. 유원재도 ‘지역 재생’이라는 부가적인 목표가 있었다고요.

정치인도 아니고 지역을 바꾼다는 목표는 거창하죠. 그렇지만 변할 것 같았어요. 일례로 제가 양양에 있던 골든비치 골프장을 설해원으로 리뉴얼하면서 손님의 90%가 서울 사람으로 바뀌었거든요. 저는 관광 인구를 늘리는 것도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서울만큼 경쟁력이 있어야 해요. 가성비가 좋든, 서울에 없는 풍광이나 건축을 보여주든 방문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죠.

 

ㅡ유원재에서는 어떤 점이었나요?

일단 온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물이 좋아야 해요. 멋진 건축만 존재한다면 온천으로서 본질을 잃은 거잖아요. 수안보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가 온천수를 관리하는 곳이에요. 심지어 왕이 즐기던 온천이라고 하니, 스토리텔링 하기도 좋죠. 물에 대한 고민이 해결됐다면, 이제 그동안 온천 호텔에서 보지 못한 색다른 공간을 준비하면 돼요. 건축을 포함해서 시각, 후각, 촉각, 미각까지 만족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그렇게 숙박과 온천, 식사를 아우르는 휴식 공간이 됐죠.

ㅡ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고요. ‘왜 이 건축이 필요할까, 왜 사람들이 여기에 와야할까, 왜 이 프로젝트에 와이그룹이 필요한가’. 프로젝트마다 와이그룹의 필요성을 찾는다면, 강점도 분명할 것 같아요.

확고부동한 게 있죠. ‘설계만 하지 않는다’. 어떤 프로젝트든 의뢰인과 사업 파트너처럼 고민하고 있어요. 간혹 결과물을 건축가의 작품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순간 건축주의 의견은 방해 요소가 되고,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건축을 하기 쉬운 것 같아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의뢰인의 입장에서 고민해요. 그게 꼭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만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설득도, 타협도, 정보 공유도 필요하죠. 많은 대화가 오가야 알맞은 시너지가 발생해요. 

 

ㅡ 유원재를 설계할 때도 건축주와 의견이 달랐던 부분이 있었나요?

단층을 고집했어요. 2층 한옥이 없던 건 아니지만 자칫 중국이나 일본 느낌이 나기 쉬워요. 온돌이 보편화된 이후, 한옥은 단층 구조로 짓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건축주를 설득했어요. 부모님들도 휠체어 타고 오실 텐데, 계단이 있으면 어떡하냐고요. 덕분에 복도만 돌면 모든 길이 통해요. 단층이 주는 안정감도 경험할 수 있고요.

ㅡ 실은 인터뷰 전 고민했어요. 온천 호텔이라는 특성상 일본 분위기가 짙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실제로 와보니 전혀 아니더군요.

한국 고유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일단 전체적으로 한옥과 서원의 배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호텔이지만 객실 하나하나를 마당이 딸린 단층 한옥으로 해석했죠. 집과 집 사이는 담장으로 구분하고, 지붕을 비정형으로 설계해 물결처럼 배치했어요.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 지붕의 모습부터 층고 차로 생기는 내부 공간감까지 신경 썼어요. 침실 벽면에는 전통 문양을 모티브로 한 장응복 디자이너의 한지로 포인트를 줬고요.

 

ㅡ 한국과 일본은 오랜 시간 영향을 주고받았어요. 어쩌면 한 끗 차이가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과 일본의 건축을 구분하는 특징이 뭘까요?

정원을 조성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일본이었다면 마당을 유원재처럼 두진 않았을 거예요. 일본은 정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인공적인 정원을 만드는 편이에요. 반면, 우리나라는 거칠고 삐뚤빼뚤해 보이지만 그 안에 나름의 질서와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가 담겨 있어요. 차경이라고 하죠. 경치를 만들기보다 잠시 빌리는 거예요. 유원재를 조경할 때도 이런 대화가 오갔어요.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더하려고 하지 말자, 먼 풍경과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하자. 덕분에 담백하고 한국적인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유원재는 열여섯 개의 객실이 조경부터 실내 구성까지 모두 달라요.

ㅡ 어떻게 다른가요?

공간 기획부터 조경, 규모, 마감 등 모두 차이가 있어요. 동반인이 누구인지 혹은 어떤 분위기에 머물고 싶은지에 따라 객실을 선택할 수 있는 거죠. 호텔은 재방문율이 중요한데요. 아무리 좋은 경험을 해도 똑같은 공간에 여러 번 머무는 건 지루할 수 있거든요. ‘이 객실은 이런 느낌이네, 다른 곳은 어떨까?’ 궁금해서 다시 찾게 만드는 거예요.

 

ㅡ 유원재는 높은 가격으로도 화제가 됐어요. 차라리 일본에 가겠다는 이들과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유원재가 낫다는 사람들이 갑론을박 벌이고 있죠(웃음). 예상하셨나요?

아니요.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실 일본 료칸 가격을 기준으로 본다면 유원재는 중상 정도일 거예요. 파인 다이닝 식사가 제공되고, 온천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마음으로 하는 말씀인지 이해돼요. 프리미엄 공간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마찰이 생길 수도 있고요. 저는 유원재를 방문하는 분들에게 금액에 상응하는 특별한 경험을 드리는 데 집중했어요. 

ㅡ 어떤 경험을 하길 바랐나요?

저는 유원재가 ‘기념일 호텔’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생신이든, 결혼기념일이든 무언가를 기념하고 싶은 날에 찾을 만한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유원재는 매주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에요. 금액도 그렇지만 예약도 어렵거든요(웃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을 때 유원재를 찾고, 그날을 추억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하는 자부심까지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ㅡ 그럼에도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유원재의 모델을 벤치마킹한 또 다른 프리미엄 온천 호텔이 나오진 않을까요? 

아마 쉽지 않을 거예요. 진입 장벽도 높고, 사업성을 내기도 어렵거든요. 유원재는 공사비만 평당 약 3천만 원이 들었고, 열여섯 객실 운영을 위해 7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요. 사업적으로 여러 아이템이 있을 텐데, 굳이 이걸 선택하지는 않을 거예요.

 

ㅡ 사업성을 내기엔 어려운 분야이군요.

큰돈을 벌기엔 어려워요. 하지만 ‘유원재’라는 브랜드가 생겼잖아요. 실은 지금 두 번째 유원재를 설계하고 있어요. 규모, 서비스 등을 축소한 캐주얼 버전의 유원재인데요. 기존의 유원재로 쌓은 신뢰가 있기 때문에 아마 더 좋은 반응을 얻을 거예요. 가을 정도면 착공할 것 같습니다.

TPO

양진석 건축가가 휴식을 위해 찾는 공간

설해원과 유원재예요. 본인이 설계한 공간에서 쉬는 건축가라니 약간 겸연쩍기도 한데요. 두 공간이 저에게 줄 수 있는 양질의 휴식이에요. 설계할 때부터 나라면 이 공간에서 쉬고 싶을까, 엄중한 검증 과정을 거쳤거든요. 스스로 만든 음식을 믿고 먹을 수 있는 거랑 비슷한 거죠. 근황을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하와이, 베트남, 일본에서도 리조트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아마 가장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저일 거예요(웃음).

유원재

장소 유원재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305

건축면적 4,336.55㎡

연면적 4,943.16㎡

건축 설계 및 감리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양진석, 신현준, 현주학)

객실 인테리어 설계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양진석, 문진경)

인테리어 시공 서울실내건축

네이밍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양진석)

조명 설계 비츠로앤파트너스(고기영, 안상미)

공용부 인테리어 설계 씨씨피(고기영, 이지수)

로고 및 그래픽 디자인 씨씨피(고기영, 김선영)

조경 설계 및 시공 비오이엔씨(최재혁, 장혁준)

건축 시공 희상건설

*3편에서 계속됩니다.

 김기수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유원재,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 박영채 건축사진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온천에서 누리는 지극한 호사, 유원재

       : file no.1 : 온전한 휴식을 위해 설계된 온천 호텔

▶  : file no.2 : 한국의 온천 문화를 골몰하다

       : file no.3 : 유원재 머무르기

 
프로젝트
[Post-It] 유원재
장소
유원재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305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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