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팜이라는 이름에는 “그래도 해봐야지” 입버릇처럼 말하며 유기농 농사를 고집한 부모님에 대한 존경이 담겼다. 원농원이 정직하고 탄탄하게 유기농 농사의 기본을 다졌다면, 그래도팜은 창의적인 기획과 디자인으로 시너지를 더하며 농장의 내일을 만든다. 토마토를 중심으로 체험 프로그램, 가공품 및 굿즈 등 6차 산업을 실험 중인 토마로우가 그 연구소인 셈이다. 이번 편은 어느덧 10주년 차를 눈앞에 둔 그래도팜 의 이야기다.
interview with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홍익대학교 프로덕트 디자인과 졸업 후 퍼셉션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안식 휴가 중 부모님의 토마토 농장을 브랜딩해 드리려고 며칠 인터뷰했는데 예전엔 몰랐던 농사에 대한 진심과 매력을 느껴 귀농, 그래도팜을 만들었다. 저서로는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틈새책방, 2019) <내일의 토마토>(그래도팜, 2023)이 있다.
─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력이 그래도팜을 운영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디자이너는 사고력 자체가 사용자 중심적이에요. 그런 ‘디자인 씽킹’이 사업 대부분에 반영되어 있어요. 토마로우 같은 서비스 공간도 단순히 작물을 따고 가져가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으면 했어요.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나만의 토마토 취향을 찾는 농장 투어, 프라이빗 미식 투어도 그렇게 고안해 낸 것들이에요.
─ 공간 디자인부터 자체 제작 콘텐츠, 협업 굿즈, 브랜드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왔어요. 베리띵즈, 저스트프로젝트, AURG, DSLSM 등 꽤 여러 스튜디오와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한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래서 한 공간에 여러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긴 한데 또 그런 모습이 나름 재미있어요. 10년 차가 되면 그래도팜 2.0 버전이라 생각하고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어요.
─ 체험 공간을 만든 계기가 있다면?
“오프라인이 답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어요. 모든 것이 온라인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어딘가에 쏠리는 만큼 반대편에는 희귀성이 생겨요. 처음 귀농했을 때부터 토마토를 특별하게 다루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그러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면으로 알리는 것이더라고요.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이유는 개인적인 건데. 사람 만나서 대화하거나 어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손님들이 이곳을 방문해 주시니까 활기도 생기고, 여러 사람과의 접점이 생겨서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 농장이자 체험 공간이니까 만들 때 신경 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농촌이지만 도시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어요. 또 영월에서 이런 공간을 운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단순히 ‘예쁘게’가 아니라 브랜드의 스토리를 담고자 했습니다. 조경과 작은 텃밭이 혼합된 가든, 모종을 살필 수 있는 씨들링 하우스, 우리 농장의 가장 큰 원천인 흙을 소개하는 토양 전시관, 토마토를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키친, 전문 서적을 모아둔 라이브러리 등 그래도팜의 모든 정신을 표현하는 곳들이에요. 그 어느 곳도 이유 없이 만든 공간은 없어요. 대기업도 아니고 개인이 이런 공간을 운영하는 게 과하지 않냐,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도 계셔요. 하지만 저는 다음 단계의 발판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농산물을 팔아 투자하는 정도죠.
─ 규모의 경제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사업을 하려면 공격적으로 농장을 키우는 방법을 선택하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이런 공간이 작은 집결지가 되어 전국 규모의 모임체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 에어룸 토마토는 어떻게 들여오는 건가요?
유럽에서 먹어보고 정말 맛있는 품종을 선별해 정식 신고 후 검역을 거쳐 들여옵니다. 에어룸 토마토는 어느 지역 특산물이기도 하지만 씨앗을 유지하면서 그 나라 토양에 토착화 되어 있는 작물이기도 해요. 에어룸 자체가 가보거든요. 토종이라는 말은 토착 종자를 뜻해요. 감자, 양파 모두 토마토처럼 안데스산맥 근처에서 처음 난 작물들이 우리나라 토양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에요. 가끔 문익점처럼 몰래 들여오시는 분도 있는데 그럼 안 됩니다.(웃음)
─ 아까 표를 보니 우리나라가 비료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더라고요. 토양 오염과도 연관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따로 제재할 수는 없나요?
수확량과 직결되어서 쉽지만은 않은 문제예요. 물론 지속해 모니터링을 해야겠지요. 토마토 향을 분석해보면 4~5가지로 발향 돼요. 물론 품종마다 다르겠지만 대표하는 ‘중심향’이란게 있는데요. 우리가 토마토라고 느끼는 향을 중심으로 각자 독특한 향을 내뿜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향을 느끼게 됩니다. 비료 재배나 양액재배의 가장 큰 단점은 향 자체가 단조로워진다는 거예요. 땅은 거짓말할 수 없거든요. 토마토는 감칠맛과 향이 풍부한 작물이거든요. 모든 품종을 당도로만 맞춰 개량하는 건 맛의 선택지를 계속 좁히는 일이겠지요.
─ 미쉐린에 선정되거나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와인바 등에서 그래도팜의 에어룸 토마토를 많이 다룬다고요. 주요 공간은 어디고 몇 곳이나 되나요?
효자동의 두오모, 신사동 보타르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인 정식장, 남영동에 있는 남영탉, 와인바 어라우즈, 르블랑… 여러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300여 곳 정도예요.
─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올해 발행한 책이요. 몇 년 동안 공들여 준비했거든요.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토마토를 요리에 많이 쓰지 않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또 지금은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애착이 정말 커요. 어디에도 없는 서비스를 하고 싶거든요. 평소 농장, 와이너리를 투어하거나 식음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럽의 큰 농장들을 가보면 각자 농장에서 난 작물들로 소스를 만들어 팔곤 해요. 우리나라는 식품위생법상 불가능해서 대신 협업을 통해 토마토 버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혹은 바로 빵에 발라 먹거나 파스타에 넣어 먹는 페이스트를 개발해 보려고 해요.
그리고 고객 경험을 위한 작은 리뉴얼을 진행 중인데요. 자율 투어를 하는 손님들이 가이드 없이도 수월하고 유익한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 DSLSM과 콘텐츠, 사이니지를 다듬고 있는 중이에요. 토마로우는 올해 정식 오픈한 뒤 주말에만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앞으로 점점 방문객이 많아지더라도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더 나아가 그래도팜의 철학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것도요. 그래야 언젠가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TPO
농업 브랜딩의 최전선을 걷는 원승현 대표가 영감을 얻는 장소
본관에 위치한 사무실입니다. 농부는 외부 일이 많아서 사무실 분위기가 가진 중요성을 크게 생각지 않는 분이 많은데요. 저에게는 일을 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가장 오래 거주하는 중요한 공간이에요. 여러 분야별 책들과 좋아하는 오브제들로 가득 채워 두었죠. 덕분에 가장 편안한 쉼의 장소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사무실 한편에 세바스티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 작가의 브라이스 캐년 사진을 걸어두었는데요. 수천년간 자연이 새긴 조각을 보며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얼마나 작고 찰나일지 생각하며 위안을 받습니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토마토의 내일, 토마로우
: file no.1 : 정직한 맛을 전하는 그래도팜의 복합문화공간
: file no.2 : 디자이너 출신 로컬 크리에이터의 연구소
글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사진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