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4

[Walk with] 9. 굳건한 취향이 담긴 시선으로 교토를 산책하며, 사진작가 봄별을 따라 걷기

그가 자주 찾는 교토의 매력적인 공간은?
새로운 공간도 공간에 관한 이야기도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선택지가 무수하다면, 미더운 이를 동행으로 삼아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요? 그를 따라 걷다가 매력적인 샛길을 발견할 수도, 혹은 과감하게 들어서고 싶은 공간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헤이팝은 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패션과 미술, 문학과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를 만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좋은 공간’을 한층 다채롭게 정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봄별
프랑스 콜마르(Colmar)에서 ⓒ봄별

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함께 걸을 아홉 번째 인물은 사진작가 봄별이다. 누군가의 순간보다는 나의 순간을 남기고 싶어 풍경을 찍기 시작한 봄별 작가는 그냥 흘러갈 수 있는 장면도 유유히 걸으며 담아낸다. 사진작가로 살기 이전 회사원 신분으로 떠났던 일본 교토 여행은 봄별 작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일상적인 경험을 하는 게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봄별 작가. 견고하게 갖춰진 취향을 따라 움직이는 그의 시선에는 어떤 공간과 풍경이 가득 담겨있을까? 봄별 작가를 인터뷰했다. 

Walk with 사진작가 봄별(현봄이)

@bombyul

— 안녕하세요, 봄별 작가님. 헤이팝과는 처음이죠.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려요.

여행 사진작가 봄별입니다. 다양한 여행지에서 포착한 사진과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어요. 

 

— 인스타그램을 통해 봄별 작가님을 알게 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일상에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꾸준히 업로드 하셨죠. 

이 일을 주업으로 삼기 전부터 꽤 오랜 시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진으로 남겨왔어요. 대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할 때부터 사진에 흥미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찍는 걸 즐기기 시작했죠. 

 

— 프리랜서 사진가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별다른 일이 없는 날은 종일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제가 먹을 밥을 성의껏 차려 먹고 틈틈이 외국어 공부나 밀린 사진 작업을 해요. 종종 낮잠도 자고요. 저녁에는 짧게 일기를 쓰거나 영화를 보며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요. 가만히 있는 걸 무척이나 좋아해서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와 침대에 등을 붙이고 지내기도 합니다. 일이 있는 날은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땀 흘리고 돌아와요. 매일 비슷한 듯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는 게 프리랜서가 누릴 수 있는 재미이자 장점인 것 같아요.

봄별 작가의 일상 ⓒ봄별
교토에서 ⓒ봄별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오롯이 여행하기 위해 떠난 여행자의 시선과 일로 떠난 사진작가의 시선이 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확실히 다르다고 느껴요. 사비로 여행을 떠날 때는 온전히 제 취향대로 움직여요.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말이죠. 공원이나 나무가 우거진 숲 주변 산책하는 걸 좋아해서 주로 그런 동네를 찾아다닙니다. 사람이 많은 곳은 잘 가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의뢰를 받아 일로서 여행을 가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곳에 가거나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이미지를 잘 담아내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특히 특정 장소를 찍어야 한다면 너무 뻔하지 않으면서 제 취향이 녹아든 컷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작가님의 작업물을 살펴보면 풍경 사진이 주를 이루지만 공간 속 놓치기 쉬운 순간을 포착한 사진도 많아요. 풍경과 공간을 촬영할 때 차이가 있나요?

풍경 촬영을 좋아해서인지 공간을 찍더라도 풍경과 어우러지는 스폿을 담아내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성도 좋지만 제가 촬영하는 공간은 주로 주변 자연과 빛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풍경을 찍을 때면 너무 넓지 않은 화각에 집중되는 컷을 지금껏 오랫동안 선호했죠. 그런데 이런 저만의 기준과 취향도 변한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제 시선의 변화가 사진에 담겨 기록된다는 점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자주 쓰는 카메라, 소니 a7c2 ⓒ봄별

작업 스타일에 따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카메라가 다른 것 같아요. 자주 손이 가는 카메라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려요. 

처음 사용했던 카메라는 아버지가 사 오셨던 소니(SONY)의 콤팩트 카메라예요.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그 카메라 이후에도 쭉 소니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요. 요즘 자주 쓰는 카메라는 소니의 a7c2 모델입니다. 가볍게 쓰기 좋은데 결과물도 만족스러워서 애용하고 있어요.

ⓒ봄별
교토의 단골 카페 니조코야(nijokoya cafe) 외관 ⓒ봄별
니조코야(nijokoya cafe) 내부 ⓒ봄별

일본에 자주 간다고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교토를 좋아한다고요. 

교토는 역사가 보존된 도시예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오랫동안 지켜져 왔죠. 그렇게 보호된 것들이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답고 이색적이었어요. 일본에 여러 번 갔지만 교토를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감정은 완전히 새로웠어요. 일 년 내내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시이지만 어느 한구석에 분명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가 남아있는 곳이에요. 계절의 특색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죠. 분명 누구든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교토에 갈 때면 자주 들르는 봄별 작가님만의 공간이 있나요? 

아주 오래된 단골 카페인 니조코야(nijokoya cafe)를 여전히 좋아해요. 제가 쓴 「교토의 햇살을 간직해」라는 책에서 니조코야 카페를 ‘첫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다섯 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에요. 좌석 없이 서서 커피를 즐기는 스탠딩 카페죠. 이곳에 서 있으면 오롯이 공간 속 모든 소리에 집중하게 돼요. 커피 내리는 소리, 공간을 채우는 음악 소리. 누군가의 작은 말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편안해집니다. 

ⓒ봄별
ⓒ봄별
ⓒ봄별

스냅사진을 찍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걷기를 즐길 것 같아요. 이전에 ‘천천히 호흡하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걷는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된 건 오래전 차 없이 제주도로 떠났을 때였어요. 잘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산 위에 있는 뮤지엄에 갔다 막차를 놓쳐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기도 하며 평소 모험을 즐기지 않는 제가 이제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일들을 경험했죠.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는 게 걷기의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거리를 지나가더라도 차를 타고 갈 때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천천히 관찰하며 지나갈 수 있는 게 큰 매력이죠.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도 해요.

 

작가님의 여행 스타일이 궁금해지네요. 여행지에 도착해 무작정 걷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카메라를 드는 편인가요? 

저는 계획형 60과 즉흥형 40으로 채워진 사람인 것 같아요. 스스로 불안하지 않도록 일과와 동선을 어느 정도 짜놓고 시작해요. 하지만 걸으면서 구경하다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아서 계획에서 어긋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계획이 망가진 시점부터 다시 새로운 계획을 짜는 경우도 자주 있죠. 요즘은 걸으면서 충분히 느끼고 찍을 수 있도록 시간을 여유있게 잡아서 생활하고 있어요. 

교토 골목에서 우연히 들어간 상점, 하야카와 하모노텐(Hayakawa Hamonoten) ⓒ봄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공간 중 마음에 들었던 곳이 있을지 궁금해요.

일본에서 골목을 산책하다 보면 처음 보는 가게에 사람이 가득한 걸 마주할 때가 있어요. 교토의 상점가 골목에서 가게를 구경하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칼 가게에 외국인이 많이 모여있는 걸 봤어요. 하야카와 하모노텐(Hayakawa Hamonoten)이라는 곳이었는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 저도 결국 구매까지 하고 나왔죠. 나이가 지긋한 칼 장인 분이 편하게 말을 건네주셔서 머무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우연히 방문한 곳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어요. 

 

마음에 드는 공간이면 여러 번 찾기 마련이에요. 봄별 작가님이 교토에 자주 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교토에서 최근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면요? 

어디라도 마음에 들면 다음에 다시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워요. 교토는 특히 여러 번 방문한 도시이다 보니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곳을 찾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교토 부립 식물원(Kyoto Botanical Garden)에 자주 갔어요.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식물원에는 꼭 가곤 합니다. 나라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공간이지만 교토의 식물원은 사소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요. 식물원에는 관찰자가 많아요. 나무를 보러 오는 사람, 새를 찾으러 오는 사람 등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많죠. 이들이 모두 자기만의 관심사에 집중하는 모습은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아요. 

교토 부립 식물원(Kyoto Botanical Garden) ⓒ봄별
식물원에서 사색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봄별

스냅사진을 찍다 보니 자주 떠날 테죠. 떠난 만큼 자주 머물기도 했을 거고요. 여행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가 있나요? 

오로지 가성비를 따져 호텔을 선택해 왔는데 최근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 호텔을 다녀오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교토의 가장 유명한 거리인 청수사 주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숲에 숨어있는 은신처 같은 느낌을 주는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한 번쯤 고급 호텔에 묵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고요하고 평온한 쉼을 원한다면 꼭 가보길 추천하고 싶은 곳이에요.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 호텔 입구 ⓒ봄별
호텔 내부 모습 ⓒ봄별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에게 집은 어떤 공간이에요? 

어느 공간보다 집이라는 공간을 가장 소중히 여겨요. 거실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와 그릇으로 가득 찬 장이 있고 부엌 선반에는 빼곡히 식재료와 주방 도구들이 담겨 있어요. 안방은 침대와 소파를 둔 휴식 공간으로 사용 중이에요. 최근에는 책상을 안방으로 옮겨왔죠. 아늑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집중이 잘 돼서 좋더라고요. 작은 집이지만 이리저리 가구를 옮기며 생활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을 보내는 만큼 아끼고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아끼는 곳은 다름 아닌 집이다. ⓒ봄별
ⓒ봄별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 중에 특별히 아끼는 사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긴 일정 동안 여행을 하다보면 매일 날이 맑을 수는 없어요. 여행 중 마주치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이러니하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비가 내리던 날에 찍은 한 컷이에요. 번화가의 한 지붕 아래서 비가 지나가길 잠시 기다리다가 문득 눈앞의 풍경이 좋아서 카메라를 들었어요. 찍자마자 이 한 장을 위해 오늘을 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죠.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순간일 수도 있지만 사진 속에 담긴 빗방울이 흔할 수 있는 한 컷을 새롭게 채워준 것 같아요. 

 

사진 찍을 때 특별히 선호하는 계절도 있어요?

계절마다 특색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특색이 드러나는 시기에 하는 촬영은 모두 재밌어요. 그래도 그중 고르라고 한다면 날씨의 영향이 적은 초여름과 초가을을 좋아합니다. 어딜 둘러봐도 푸르게 물든 풍경이 힘 있게 펼쳐진 시기라고 생각해요.

봄별 작가가 특별히 아끼는 사진. 비가 오는 날 어느 지붕 아래서 카메라를 들었다. ⓒ봄별
프랑스 뱅센느 숲(Bois de Vincennes) ⓒ봄별

야외에서 촬영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도 마주할 거예요. 잊히지 않는 촬영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작년, 일본 후쿠오카 근교 소도시 사가에서 열린 국제 열기구 대회 촬영을 다녀왔어요. 일 년에 단 한 번 열기구로 가득 찬 하늘을 촬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죠. 좋은 스폿에서 찍으려고 새벽 6시부터 움직였는데 저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은 탓에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어요. A컷 촬영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는데 대회 시작 직전, 제 앞에 앉아 있던 분이 본인과 함께 앉자고 옆자리를 권하셨어요. 흔치 않은 상황이라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에요. 덕분에 원하던 앵글에서 무사히 촬영을 끝냈어요. 당시 카메라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사례도 못 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만큼 고마운 분이에요. 

일본 시가에서 열린 국제 열기구 대회에서 ⓒ봄별
ⓒ봄별

글을 통해 사진이 더 선명하게 기록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사진집을 출간하는 게 아니라 글과 사진이 함께 있는 에세이를 낸 것도 이와 같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요. 

사진은 누구나 같은 곳에서 비슷한 컷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처럼 SNS가 발달하고 좋은 카메라를 쉽게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이 그렇죠. 이런 상황에서 사진이 글과 함께 기록되는 형태는 고유성을 띠는 것 같아요. 개인의 경험과 감상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겪은 일들을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싶고 사진을 통해 저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적을 거예요.

 

한 해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남은 기간 이루고 싶은 목표나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요? 

교토에 관한 책을 출판하는 게 저의 오랜 꿈이었어요. 그 꿈을 실현하고 나니 얼른 다음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른 시일 내에 그 목표를 이뤄낼 수 있도록 제가 잘 펼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꼭 책을 내지 않더라도 사진과 저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가고 싶어요. 

ⓒ봄별
ⓒ봄별
about heyMAP Curation

사진작가 봄별이 타인의 취향을 경험하는 방식

다양한 전시를 추천해줬어요. 특히 도시와 관련 있는 전시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큐레이션했나요? 

누군가 살고 있는 도시와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를 선택했어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나 혹은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생활을 전시를 통해 엿보면서 타인의 취향을 이해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봄별 작가가 직접 남긴 추천 코멘트를 살펴보고 그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경험해 보세요!

봄별 큐레이션 전시와 그의 추천사를 위 카드를 눌러 확인해 보세요.
김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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