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의 유연한 경계

건축이라는 방대한 테두리
앤더슨벨, 파인드카푸어 등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개성 있는 공간을 다수 선보인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와 오브제 등 영역의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ATELIER KHJ

3년 전 오픈한 비건 다이닝 ‘점점점점점점’ 공간을 통해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ATELIER KJH)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버려진 알루미늄을 압축해 쌓아 올린 큐브를 자재로 사용한 공간은 해당 식당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공간 디자인으로 확장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의 공간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그들의 행보가 궁금하던 찰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내년 5월부터 시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참여하게 된 것. 전시부터 가구, 건축 등 다방면으로 활약을 펼치는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 그들의 지난 발자취를 거슬러 보며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Interview with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 김현종 대표

—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는 건축 및 인테리어, 가구와 오브제 등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다방면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저에게는 인테리어도, 가구도, 전부 건축의 일부입니다. 디자인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건축 설계를 할 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프랑스에서 배우고 경험한 건축 또한 한 분야에 치우쳐 있지 않았어요. 건물의 내∙외부와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들까지 모두 디자인했던 과거 유럽 건축가들처럼 일할 뿐이에요.

 

— 최근 참여 소식을 알린 2025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나요?

10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당시 내로라하는 저명한 건축가들의 작업을 머릿속에 담기 위해 자세히 살펴보았죠.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지켜 온 대규모 비엔날레에 제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ATELIER KHJ
ⓒATELIER KHJ

— 2025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은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조명하며 ‘나무의 집’을 주제로 선보인다고요. 관련하여 최근 몰두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설계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내기에 조심스럽지만, 기존에 선보였던 한국관의 주제와는 다른 흐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라스트 파빌리온인 한국관은 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더 나아가 다른 국가관과의 연대, 탈영토에 대해 생각하며 담론을 나누는 중입니다.

 

—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는 새로운 재료를 적극적으로 공간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폐알루미늄을 압축해 벽면에 사용한 비건 다이닝 ‘점점점점점점’이 대표적이죠. 요즘은 어떤 재료에 매료되었나요?

은박에 대해 알아보는 중입니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병풍에 많이 사용했고, 최근에는 스위스의 듀오 건축가인 헤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한국 프로젝트에 은박 재료를 적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금박을 사용한 적이 있기에 더욱 궁금한 재료예요. 이외에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어요. 같은 재료이더라도 빛이나 형태, 용도에 따라 새롭게 느껴지는데, 익숙한 재료를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한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의 철학과 시도하고 있는 노력이 궁금합니다.

공공 영역을 포함해 어떻게 하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의 2021년 목표였던 친환경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점점점점점점’이라는 비건 레스토랑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초기부터 폐알루미늄, 코르크, 금속 등 공간에 사용된 재료들의 70~80%는 다시 재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고 가공을 최소화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의도했어요. 결국에는 오래 사용하거나 이미 있는 건물을 재활용, 재사용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ATELIER KHJ
ⓒATELIER KHJ

— 최근 리뉴얼한 ‘앤더슨벨 경복궁점’은 강렬한 핫핑크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어떤 콘셉트로 이뤄진 공간인가요?

‘한국 병풍의 변형’이 전체적인 콘셉트였는데요. 한국의 전통적인 병풍을 앤더슨벨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하여 새로운 병풍으로 탄생시켜 보고자 했습니다.

 

— ‘앤더슨벨 경복궁점’ 진열대의 형태 또한 형이상학적으로 설계되어 인상적이었는데요. 마치 암벽을 연상시키는 진열대의 질감과 경쾌한 컬러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앤더슨벨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저희가 생각하는 집기의 컬러를 보여드리고 난 후, 앤더슨벨에서 조금 더 정확한 컬러를 지정해 주는 편입니다. 경복궁점 프로젝트를 예로 들자면, 우리가 핑크빛이 점진적으로 변하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제안했고, 디벨롭 과정에서 앤더슨벨 측이 핑크빛의 컬러 넘버를 지정해 주었습니다. 정확하게 지정된 컬러에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며 페인팅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제작 과정에 난관이 있었고, 결국 그래피티 작업을 하시는 분께서 페인팅 작업을 진행해 주셨어요. 집기 끝부분의 암벽을 연상시키는 질감 표현은 디벨롭 과정에서 앤더슨벨 측의 아이디어가 추가된 부분입니다. 저희와 브랜드의 협업이 돋보인 프로젝트였죠.

 

— ‘앤더슨벨 경복궁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반영한 디테일이 있다면요?

제품이 놓이는 부분마다 마치 작품 하나하나를 비추듯 조명을 삽입하여 제품이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ATELIER KHJ
ⓒATELIER KHJ

— 성수동의 ‘파인드카푸어 플래그십 스토어’는 굴곡진 외관 형태가 돋보이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전에는 어떤 공간이었나요?

파인드카푸어의 리브랜딩에 발맞춰 공간을 새롭게 탈바꿈한 프로젝트이죠. 같은 장소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었지만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1층과 2층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방문객이 공간을 즐기기에 불편함이 있었죠. 이런 현실적인 부분들을 먼저 해결하고자 큰 길가에서도 눈에 띌 수 있는 파사드를 디자인했고,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내부 계단을 설치했어요. 우리가 만들어낸 신조어 ‘파인드카푸어러스(Findkapoorous)’에 맞춰 브랜드 파인드카푸어가 지닌 ‘단순하고 정돈된 디자인과 인상적인 포인트, 섬세한 터치’를 공간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 파인드카푸어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의 벽면은 1층과 2층이 다른 형태를 띠고 있어요. 내부는 어떻게 구성하고자 했나요?

기존 파인드카푸어 플래그십 스토어는 구조를 보강하는 자재인 ‘H빔’이 노출된 형태였어요. 리브랜딩한 파인드카푸어의 이미지와 더욱 어울리도록 구조를 새롭게 감싸는 형태를 구상했습니다. 새로운 벽면은 구조를 감추기 위한 용도인 동시에 디자인적 요소로 기능하도록 했죠. 1층과 2층을 각기 다른 분위기로 연출하고 싶어 층마다 다른 컬러의 콘셉트로 디자인했습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벽면을 최대한 사용하기로 했어요. 각 공간의 중앙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오브제를 두어 재미를 줬죠. 내부 계단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오브제로, 모듈 형식으로 제작해 배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연출할 수 있어요.

ⓒATELIER KHJ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할 텐데요. 이러한 프로젝트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라면 당연히 브랜드가 뚜렷하게 보여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합니다. 사소하더라도 브랜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최선의 디자인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죠. 때로는 브랜드와 함께 이야기해 나가면서 조율을 하면 좋은 시너지가 나기도 해요.

 

—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의 정체성이 가장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전시에서 또렷하게 정체성을 드러낸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대상지가 지닌 주변 환경과 성격, 그리고 해석을 통해 직관적이면서 관념적인 작업을 해냈죠.

ⓒ김경태

2018년에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철학이 있나요?

‘호기심을 갖고 실험하며 나아가자’. 저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시도하고, 도전하면서 쌓이는 데이터가 상당합니다. 이 점이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다면?

의도치 않았지만 그동안 패션 브랜드 관련 프로젝트 비율이 높았습니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펼쳐보고자 해요. 회사가 6년 차로 접어들면서 경영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실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회사를 오래 운영하며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성채은 기자

자료 제공 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ATELIER KHJ)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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