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물, 바람, 햇살을 머금고 자란 찻잎을 공예가가 정성껏 만든 다기에 담은 후,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린다. 짧게는 3분, 길게는 5분 정도 되는 이 짧은 시간에 왠지 모를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대체 차에는 어떠한 힘이 있길래 우리를 이런 사색의 시간으로 이끄는 것일까.
동아시아의 차와 다기를 소개하는 브랜드 ‘맥파이앤타이거’의 김세미 대표는 어렴풋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우연히 선물 받은 다기는 김세미 대표의 일상에 차라는 소중한 인연을 이끌어 왔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했다. 이제 김세미 대표는 자신이 경험한 차의 위력을 알리고 전파하기 위해서 찻잎과 다기를 고르며, 차를 우려낸다.
맥파이앤타이거 브런치를 읽어봤어요. 2017년부터 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요.
당시 직장이 IT 관련 스타트업이었는데 빡빡한 업무량에 압박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 간의 괴리감이었어요. 이런 괴리감이 클수록 병이 나길 마련인데, 실제로 몸이 너무 아팠어요. 정신적으로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고요. 이때, 우연히 다기를 선물 받았어요. 차를 아는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차를 우리고 있더라고요.
차의 어떤 매력에 이끌린 걸까요?
차를 우리는 과정은 명상과 비슷해요. 손끝에 집중하고, 과정 하나, 하나를 계속 지켜봐야 하죠.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물을 한 방울씩 흘려요. 한 눈 팔았다는 사실을 물방울이라는 실체로 보는 거죠. 이렇게 차를 우리는 과정은 현재 저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돼요.
자신을 찾다가 차의 매력에 빠지고, 차 전문 브랜드까지 론칭하게 된 거군요.
한 찻집 사장님이 저에게 20대에 차를 알게 되었다는 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그래도 차에 뭔가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죠. 그 생각을 가지고 매일 차를 마시다 보니 이제 일상이 되고 삶이 되었어요.
일상이 된 차라… 왠지 멋있네요.
맥파이앤타이거의 브랜드 철학이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거예요. 차를 너무 귀하게 여기는 건 저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에요. 맥파이앤타이거는 차와 다기를 나 자신을 바라보는 도구이자 타인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로 여기기 때문에 가장 일상적인 것에 주목하고 있어요.
차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체라면, 그를 우려내고 담는 다기도 소중한 존재이겠네요.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손님에게도 어떤 도구를 선택하고 사용한다는 건, 현재 마음의 투영일 수도 있다고 설명해요. 이런 생각과 태도는 제가 공예품을 좋아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어요.
맥파이앤타이거가 공예가가 만든 다기를 판매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나요?
공예가의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으면 절대로 공예품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지금 내가 쓰는 이 물건에 한 사람의 모든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게 잊히지 않고,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라는 생각까지 들죠. 사용자의 마음과 태도까지 디자인한다는 점이 공예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하지만 무조건 공예품이 최고라는 건 아니에요. 맥락과 상황에 따라 물건의 의미는 달라지니까요.
차 잎에도 사람의 정성 어린 손길이 들어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찻잎과 다기는 닮아 있네요.
맥파이앤타이거의 차 역시 하동에서 찻잎 하나, 하나를 따서 골라낸 후, 말리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요.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떨어진 찻잎 하나도 버릴 수가 없어요.
토림도예와 협업해서 만든 다기에서도 손길과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맥파이앤타이거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어요. 다기에 찻물이 베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표현했죠.
찻물이 베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건 지극히 취향의 문제이기에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는 게 정말 나쁜 건 아니니까 이를 매력적으로 소개하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때 생각한 것이 ‘시간의 자국이 남는 다기’였어요. 다기에 베인 찻물은 제대로 치우지 않아서 생긴 거니까 ‘게으름이 남았다’고 표현했고요. 다기에 남은 자국은 게으름이라는 태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인 거죠. 게다가 차를 마시는 시간이 쌓이면 흔적이 더 진해질 테니까 시간의 자국이 남는다는 표현이 떠올랐어요.
취향에 기반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어려운 일이죠. 취향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니까요.
저희도 처음에는 모호했어요. 맥파이앤타이거는 남에게서 기준을 찾지 말고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브랜드이거든요. 그래서 기준이 없다면 우리가 기준이 되자는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어요. 취향에는 100% 만족이란 없으니까 ‘우리는 이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돼요.
꼭 맞는 모자를 쓴 것 같은 형상, 열을 품어주는 형태, 새침하게 앉아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는 백자다관이에요. 백자 특유의 담백함 덕분에 어떤 도구와 있어도 잘 어울리죠. 구겨진 몸통 부분은 작가가 손으로 하나, 하나 눌러서 모양을 잡은 거예요. 손길이 느껴지는 도구에는 제 마음도 담기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