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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영은
2021-09-17

세대를 연결하는 패션, 더 뉴 그레이

더 뉴 그레이 권정현 대표가 애정하는 패션 아이템 3.

아버지의 스타일을 메이크오버해 주는 더 뉴 그레이(The New Gray)는 지금까지 600명이 넘는 아버지들을 변신시켜줬다. 평일에는 출근복, 휴일에는 등산복만을 입는 아버지들이 더 뉴 그레이를 만나는 순간 스트리트 패션 사진 속에 등장하는 멋진 중년 남성이 된다. 이 놀라운 변화에 당사자인 아버지는 물론, 가족들도 놀라고 기뻐하며 행복해한다. 누구보다 패션의 힘을 몸소 경험하고 있는 더 뉴 그레이 권정현 대표를 만나 더 뉴 그레이의 시작과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앞으로 시니어가 될 우리가 준비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더 뉴 그레이 x 뉴발란스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Interview with 권정현

더 뉴 그레이 대표

 

 

더 뉴 그레이는 패션의 문외한인 아버지의 패션을 메이크오버해 주는 프로젝트로 시작했어요. 등장 당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주목을 받았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가요?

패션을 좋아해서 관련 사진을 자주 찾아봤는데, 패션 디렉터 닉 우스터의 사진을 보고 놀랐어요. 닉 우스터 주변에는 항상 젊은 사람들이 있었고, 허물없이 어울리고 있었거든요. 이런 풍경을 한국에서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더 뉴 그레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패션 사업도 같이 운영했는데 잘 안됐어요. 돌이켜 보면 좋은 아이템을 가졌지만 다른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한 번 주춤했는데 다시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업을 접고 취직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아이템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모아서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를 기획하는 걸로 방향을 다듬었어요. 당시 은퇴하고 카페를 운영하던 시니어 한 분을 섭외해서 스타일링하고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렸죠.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저에게 “동화나라에 온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은퇴 후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사람이 갑자기 멋있게 옷을 입고 가로수길에서 사진을 찍고, 또 그를 보고 사람들이 다가와서 사진을 찍고… 이런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거죠. 동화나라에 온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더 많은 사람을 메이크오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뉴 그레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아버지들을 메이크오버하는 콘텐츠를 기획했죠.

 

더 뉴 그레이 x 롯데백화점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처음엔 클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반응도 볼 겸 아버지 30명을 메이크오버한다고 펀딩을 올렸는데 10분 만에 마감되었어요. 대부분 딸들이 신청했더라고요. 하하. 이 프로젝트를 본 브랜드에게 협업 제안이 들어왔고요. 지금은 자체적인 메이크오버 프로젝트를 하지 않지만 BMW, 뉴발란스, 기아, 캐논, 신한라이프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여 메이크오버를 하고 있어요.

 

 

더 뉴 그레이가 메이크오버한 분들은 아버지, 할아버지 등 패션과 동떨어진 분들이에요. 패션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을 스타일링 할 때 무엇부터 시작하나요?

워낙 패션에 관심이 없던 분들이라 기본 스타일링만 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점퍼 대신 재킷을 입히고, 셔츠를 바지 안에 넣고, 바지 밑단을 짧게 조절하는, 교과서적인 규칙을 따라 스타일링 해드려요. 그래야 보통의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패션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메이크오버가 끝난 후에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더 뉴 그레이가 메이크오버를 하는 이유에는 이를 계기로 아버지들이 더 멋있게 옷을 입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니까요.

메이크오버가 끝난 후에도 패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는 아버지들은 극히 적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계기를 만들어주면 자발적으로 옷을 사서 입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한 번의 경험으로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갑자기 바꾼다는 건 힘든 일이죠. 그렇지만 아버지들도 멋지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주변에 옷 잘 입는 친구를 부러워하고 질투도 하세요. 그래서 지금은 그 욕구를 자극해요. 아버지를 푸시할 수 있는 어머니와 딸을 공략하고 동시에 아버지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같은 세대의 남성을 패션 인플루언서로 만들어서 자극받을 수 있게 전략을 짜고 있죠.

 

더 뉴 그레이 x 국가보훈처, 6·25 참전용사 메이크오버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지금까지 600명이 넘는 분들을 메이크오버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뭔가요?

올 6월에 했던 국가보훈처와의 프로젝트요. 6·25 참전용사 분들을 메이크오버 해드리는 거였는데, 우리나라 여군 1기 분들도 계셨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인상적인 경험도 있어서 더 기억에 남아요.

 

 

어떤 경험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참전용사 분들은 당시의 기억이 자랑스러우니까 자식과 손자, 손녀들에게 전쟁 때의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그런데 가족들은 너무 많이 들었으니까 이젠 듣기가 힘들었던 거죠. 싫은 티도 내고요. 그런데 메이크오버를 한 모습을 보고 손녀가 먼저 전쟁 이야기를 해달라고 다가왔대요. 참전용사 가족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받았고요. 심지어 메이크오버를 받은 참전용사 분들이 직접 감사패를 제작해서 저희와 제작진에게 주셨어요. 하하.

 

부부의 메이크오버를 진행한 더 뉴 그레이 x 신한라이프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이번 경우도 그렇지만, 더 뉴 그레이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뭐 하냐고 물어보면, 패션과 콘텐츠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세대가 만나는 기회를 만든다고 대답해요. 옷만 세련되게 입어도 인상이 달라 보이면서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어요. 그런데 딱 여기까지가 제 역할이에요. 패션을 통해서 삶이 바뀐다는 건 과한 표현이고요. 서로 다른 두 세대가 편견 없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만 만들어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더 뉴 그레이를 하면서 시니어 세대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진짜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를 보여준 분들이 계세요. 생각이 열려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분들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런 분들이 옷도 잘 입으세요.

 

 

오픈 마인드가 패션으로 나타나는 거군요.

강의를 하면 항상 ‘옷은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해요. 누군가의 패션 스타일을 이해하는 건 그 사람의 취향과 취미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젊었을 때부터 폭넓은 경험을 하신 분들은 새로운 걸 해봐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아서 패션에서도 다양한 걸 시도하시고 새로운 걸 공부하시려고 해요. 그런 마음가짐이 패션 스타일과 태도로 나타나는 거죠.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더 뉴 그레이 외에 ‘아저씨즈’라는 시니어 모델 8분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있죠. 아저씨즈는 어떻게 구성된 건가요?

한 백화점에서 중년 남성들이 들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자는 제안이 왔어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다가 시니어 모델에 대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죠. 처음에는 20분 정도 들으셨는데, 1년 반 동안 진행하면서 도중에 많이 나가셨어요. 기대한 바가 크셨던 분도 계시고, 방향성이 맞지 않은 분도 계셨죠. 결국 8분만 남았는데, 그분들이 아저씨즈예요. 아저씨즈는 처음에 제가 기획했던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죠. 주변의 50~60대 아저씨들에게 이렇게 멋지게 입고 재미있게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싶어요.

 

 

아저씨즈의 틱톡 콘텐츠는 17만 명 뷰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특히 젊은 세대에게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시니어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억지로 잘 하려 하지 않고 즐거운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고 해요. 엄청난 기획을 하지 않아요. 그저 제가 당시 유행하는 밈이나 춤을 빠르게 습득한 뒤 아저씨즈에게 알려드리면 5~10분 정도 연습을 한 뒤에 영상을 찍어요.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내보내요. 그리고 영상 위에 “00가 추면 춤 같은데 우리는 왜 이렇게 율동 같죠”와 같은 솔직한 멘트를 덧붙여요. 아저씨즈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걸 엄청 재미있어하세요.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뭐랄까, 아저씨즈는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모델 매니지먼트 같은 느낌이 나요.

아저씨즈는 원래 시니어 모델을 준비하고 활동하던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함께 일하면서 국내 시니어 모델 시장의 명암을 봤어요. 이를 비즈니스화해서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시니어 모델 분들은 처음부터 모델에 꿈이 있던 분들이 아니시니까 사기도 많이 당하시고, 현재 패션 시장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세요. 안타까운 현실을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시니어 모델 씬을 정화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아저씨즈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앞으로 시니어 모델 에이전시로 만날 수 있겠네요.

시니어 모델의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있어요. 다행히 아저씨즈를 호의적으로 봐주는 브랜드와 기업들이 많아요. 최근 광고와 패션 업계에서 중요해진 SNS 팔로우 수가 높거든요. 이외에도 무신사 화보를 촬영하기도 하고요. 이런 프로젝트를 하나씩 쌓아서 ‘시니어 모델과 작업을 하면 이런 아우라가 나온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이것이 성공한다면 시니어 패션 혹은 라이프스타일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거예요.

 

더 뉴 그레이 x tvN , 더 뉴 그레이 x WHO.A.U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더 뉴 그레이와 아저씨즈를 하면서 혹시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이랑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전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면 공부부터 하거든요. 그래서 50~60대가 되어도 그 당시 10~20대들은 뭘 좋아하는지 주시하면서 공부할 것 같아요. 대신 나이가 들어서 콘텐츠에 대한 감각이 떨어질까 걱정은 돼요. 아저씨즈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시니어 모델들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젊은 세대가 공감하지 못할 콘텐츠를 만든다면 매력이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어요. 혹시 자신만의 비법이 있나요?

워낙 여기저기에 관심이 많고 한 번 꽂힌 건 깊게 공부해요. 이런 장점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해보려고 하죠.

 

더 뉴 그레이 x per meal, 먹거리 산지 생산자들을 메이크오버한 프로젝트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메이크오버의 스타일링을 직접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패션 스타일을 좋아하나요?

아메리카 클래식과 이탈리아 클래식의 사이. 그 두 스타일의 접점을 좋아해요.

 

 

더 뉴 그레이를 통해 패션의 힘을 직접 보고 경험하셨죠. 패션의 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편견 없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요. 국가보훈처 프로젝트처럼 항상 어려워만 하던 손녀가 먼저 할아버지에게 다가오게 만들고, 뉴발란스 프로젝트처럼 자식들이 부모님(특히 아버지)을 변신시켜 드리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해요. 예전에는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을 ‘겉만 번지르르하다’면서 안 좋게 봤는데, 요즘은 다들 메이크오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더 뉴 그레이 x 질레트 랩, 아빠의 리즈 시절 발굴단 | 이미지 출처 : 더 뉴 그레이 인스타그램

 

더 뉴 그레이로서 브랜드와 협업도 해야 하고, 아저씨즈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동시에 매니지먼트도 해야 하고… 점점 더 바빠지겠어요.

국가보훈처와 협업한 프로젝트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 국가보훈처와 함께 매달 참전용사, 독립유공자 분들을 찾아가서 메이크오버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시니어 문화에 대한 책도 준비하고 있고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시니어 문화를 다룬 책이 없더라고요. 더 뉴 그레이와 아저씨즈를 하면서 느낀 점을 써보려고 해요.

 

 

권정현 대표가 애정하는 패션 아이템 3

반스 어센틱은 클래식, 캐주얼 등 어떤 스타일에도 잘 어울려요. 그래서 색상별, 리미티드 별로 수집하고 있어요

동대문, 브랜드, 맞춤 제작 등… 브랜드에 상관없이 워크 재킷만 20벌 정도 있어요. 어떤 스타일에도 다 입을 수 있는 범용적인 아이템을 좋아하는데 워크 재킷이 그래요. 반스 어센틱처럼 캐주얼 스타일과 클래식 스타일 모두 연출할 수 있어요.

원래 화려한 패턴이나 로고가 그려진 옷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유행을 쉽게 타기 때문에 오래 입을 수 없거든요. 그런데 책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담긴 문자와 패턴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제 가치관과 맞는다면 괜찮다고요. 그래서 올여름에 캠프 셔츠를 많이 구매했어요. 간혹 재미있는 패턴을 발견하면 제작해서 저만의 캠프 셔츠를 만들기도 해요.

 

 

이미지 제공 더 뉴 그레이

에디터
CURATED BY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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