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요리라면 전자책 뷰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요리가 눈에 띄어야지 그릇이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종이책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전자책에 대한 수요와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의 종언은 어쩌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의 뇌리를 스친다. 어쩌면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는 책이지만 대립구도로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들 모두는 사용자의 보는 방식과 보는 행위의 폭을 넓혀 놓으며 각자의 반열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이책과 다른 전자책의 보기와 읽기는 무엇일까? 전자책의 입지가 굳혀지기까지 어떠한 노력들이 개입되고 있을까? 전자책 디자인은 종이책 디자인과 어떻게 다를까?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 뷰어 프로덕트 디자인을 맡고 있는 이영주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눠 봤다.
Interview with
이영주 디자이너
‘전자책 뷰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하면, 어떤 영역까지 아우르는 것인지 궁금해요.
프로덕트 디자인은 회사마다 그 범위가 조금씩 다른데, 밀리의 서재의 경우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업무 영역이 굉장히 넓은 편인 것 같아요. 밀리의 서재는 적은 인원이 각자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운영성 콘텐츠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서비스 기능의 UI/UX 디자인을 맡고 있고, 동시에 함께 브랜드 가치를 가꾸면서 밀리의 서재 디자인 자산을 만들고 있습니다. 함께 브랜드 가치를 가꿔 나가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브랜딩 영역에도 걸쳐집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전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밀리의 서재라는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의 시각, 언어, 단계적 경험이 ‘불편’하지 않은지 생각하며 기획자, 개발자와 함께 조율을 합니다. 전반적인 UX 흐름은 기획자가 결정하거나 함께 결정하지만 그것을 실제 화면에 1차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프로덕트 디자이너입니다. 그래서 초기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것이 있다면 함께 논의하고 개선합니다. 또한 2차적으로 실제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자원 낭비가 발생한다면 조정하면서 개발 구현에 있어 효율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 최적의 방안을 함께 도출하려고 합니다. 발행하는 제품의 시각·언어적인 상호작용이 비즈니스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밀리의 서재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잘 전달하고 있는지 늘 검토하는 것도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업무 영역입니다. 실제로 하는 일이 많긴 한데 말로 하니까 더 많아 보이네요(웃음). 지금은 함께 일하시는 분들 모두가 손발이 잘 맞는 분들이라 업무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편입니다.
자간과 행간, 글씨체 등 종이책과 전자책의 레이아웃과 형식은 어떻게 다른지.
종이책은 제작자들이 의도한 대로 출판하면 고정돼 변하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워한다고 종이책에 있는 글자 크기를 키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전자책은 그 책을 읽기 위한 기기(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데스크톱)의 모니터 크기가 곧 책의 크기가 되고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됩니다. 스크린 크기에 따라 여백, 글자 크기 등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이지요. 특히 여백이 많은 시집의 경우에는 초기 의도한 여백, 레이아웃 등이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를 고려하고 전자책이 출판되겠지만, 사용자의 편의와 취향에 따라 의도한 레이아웃들과 서체 등이 자유롭게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요소들이 자유롭게 조정되는 것이 전자책 형식의 특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을 특히 염두에 두는지 궁금해요.
밀리 오리지널처럼 전자책으로 먼저 만들어지는 책들도 있지만, 출판사에서 만든 전자책을 밀리의 서재에서 잘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뷰어에 전자책이 잘 보이도록 세부적인 디테일을 조정하고, 책이 더 잘 발견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보통 전자책은 Epub*의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출판사나 편집자의 의도와 상이하게 나오지 않도록 개발과 기획 담당자들이 최대한으로 신경 쓰고 있습니다.
*국제 디지털 출판 포럼(IDPF)에서 제정한 전자 출판물 표준.
전자책 디자인에 있어 스크린 규격을 고려하나요?
전자책 자체의 레이아웃을 고려하지는 않고 각종 스크린마다 적합한 UX를 통해 책을 볼 수 있도록 고려합니다. 또한 사용자마다 모두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전자책의 글자 크기, 여백, 줄 간격, 문단 간 간격 등을 되도록 섬세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기능을 제공합니다. 실제 종이책을 펼쳤을 때와 유사한 비율의 스크린에서는 종이 두 쪽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전통적인 것이기도 해서 만약 그 기능이 없다면 사용자분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하십니다. 모니터의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과 다르게 전자 잉크 방식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는 북 리더기의 경우, UI 요소가 불필요한 잔상을 남기지 않도록 고려해서 디자인합니다.
북 리더기를 염두에 둘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저와 함께 뷰어를 만들고 있는 기획자가 북 리더기로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분이어서 초기 UI 디자인을 개선할 때 많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잔상이 많이 남는 UI를 설계하면 뷰어의 속도 자체가 느려졌는데 요새는 북 리더기의 성능도 안드로이드 태블릿만큼 좋아진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북 리더기는 북 리더기라 여전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밀리 뷰어를 다시 디자인할 때 특별히 신경 썼던 것은 UI가 특별하게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책이 요리라면 뷰어는 그릇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요리가 눈에 띄어야지 그릇이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드 컬러 등이 잔뜩 가미된 UI 디자인이 보일 때마다 책을 읽는 사용자의 몰입을 깨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UI 디자인을 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내용의 책이 담겨도, 그 책의 분위기만 온전히 보이고 전달되어 사용자를 방해하지 않길 바라면서요.
전자책이 개인의 읽는 태도와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전자책의 여백, 촉감, 무게 등을 통해서는 책의 느낌이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해서 내용을 움직이고, 그때마다 전자 기기 스크린의 유리 촉감이 전달될 것입니다. 때때로 메신저 알림이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고, 잘못 눌러서 페이지가 넘어가거나 이전으로 움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은 종이책을 읽는 경험보다는 SNS를 보거나 포털 메인 뉴스를 보거나 검색한 후 웹페이지를 보는 경험과 훨씬 유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자책을 통해 깊고 서정적인 몰입을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내용 위주로 정보를 전달하는 비문학 책들, 자기 계발서 등이 전자책을 소비할 때 더 접근하기 쉬운 분야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전자책만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나요?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전자책을 읽는 것에 익숙해진 분들은 소설 같은 장르도 몰입을 쉽게 하십니다. 밀리의 서재 서비스 초기에는 전자책은 못 읽겠다는 분들이 많으셨지만 지금은 전자책이 더 좋다,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독서량이 늘었다는 반응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전자책은 확실히 종이책과는 다른 경험이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읽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지고, 독서량이 늘어나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르에 따라 전자책 이용량이 상이한가요?
네, 실제로도 장르에 따른 이용량이 상이합니다. 그래도 오프라인에서 인기 있는 책은 온라인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다만 단편소설과 시는 약간 다른데요. 전자책에 익숙해지면 소설처럼 스토리텔링이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콘텐츠는 전자책으로도 소비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서재에 담기는 도서 수를 보았을 때 단편 소설이라고 해서 이용량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아서요. 단, 시는 시집 특유의 여백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뷰어가 종이책만큼의 서정적인 레이아웃을 그대로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해서 담당자들도 고민을 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래도 시집을 자주 읽으시는 마니아 분들은 디지털로도 꾸준히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 중 어떤 것을 더 선호하나요?
세상에 너무 멋진 북디자이너들이 많아서 디자인을 즐기기에는 종이책이 좋고, 읽는 데에 집중하면 될 때에는 전자책도 좋아합니다. 딱히 뭘 선호한다고는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게 저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도 서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자책은 종이책의 대체품이 아니라 전자책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자책이 적고 다양하게 보급되지 않을 때에는 마치 언젠가는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만 남는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자책 접근이 쉬운 요즘은 전자책으로 즐기기 좋은 것들이 있고, 종이책으로 즐기기 좋은 것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종이 책이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이지만 전자책으로 책을 읽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지면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는 책의 종류도 다양해지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전자책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자책에 익숙해진 지금, 단점은 크게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전자기기 스크린을 통해 눈에 전달되는 콘텐츠이다 보니 오래 응시하다 보면 눈이 쉽게 피곤해져요. 또한, 분위기와 느낌을 만들어내는 서정적인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에는 아직 멋진 방법론이 나오지는 않은 점도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 종이책과는 다른 해결 방안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장점은 그 외의 모든 것이 장점이라 생각해요. 종이책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내용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음성 합성을 통해 책 내용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음이라 맥락을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음성 합성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사람처럼 기계가 책을 읽어주는 날이 올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글씨가 작아 책을 읽기 어려운 분들께 큰 글씨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점도 전자책의 장점입니다. 무거운 책들을 이동 중이나 여행 중에 읽기 간편하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특히 밀리의 서재같이 구독 독서 서비스일 경우에는 동시에 무제한의 책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병렬 독서가 쉬워지는 점도 좋은 점 중에 하나예요. 저처럼 책장이 꽉 차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은 전자책에게 큰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주로 무엇을 통해 영감을 얻는지 궁금해요.
앱 UX를 디자인할 때는 분야 제한 없이 사용성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킨 사례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그냥 넘어가기 쉬운 일이지만 직접 부딪쳐서 사용자에게 떠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한 사례들을 볼 때 많은 영감을 얻고 배웁니다. 질문하고 의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를 배우고 어떤 일을 해결할 때 “진짜 그럴까? 진짜 이 방법밖에 없을까?” 의심하는 자세를 요즘은 배운 것 같아요.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데, 생각하던 대로만 생각하는 게 쉬운 사람이라서 참 어렵습니다.
앞으로 전자책 이용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요. 전자책 뷰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희망하는 꿈나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전자책 프로덕트 디자이너이든 아니든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조건에 맞도록 끊임없이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실무에서 일을 하다 보니 느끼는 건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동료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설득을 잘해야 할 때가 많다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일들이 주어져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디자인을 잘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이게 끝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계속 의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영주 디자이너의 PICK!
최근에 읽었던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
1. 보도 섀퍼,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박성원 옮김, 토네이도, 2022. 타인에게 자꾸만 의존하고 싶고 잃을게 많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생겼을 때,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뛰어들 수 있는 힘을 줬어요.
2. 조용민, 언바운드, 인플루엔셜, 2021. 정보 홍수의 시대에 제대로 ‘데이터’를 읽는 자세를 쉽게 알려주는 책이에요.
물론 진짜 이 책에서 말하는 데이터 리터러시가 제대로 갖춰진 사람이 되려면 많은 내공이 쌓여야겠지만,
적어도 더 잘 보기 위해서 이 분야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향을 보는 방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3. 이승희, 기록의 쓸모, 북스톤, 2020. 평범한 기록도 특별하게 만드는 저자의 기록 방식에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 가짐에도 영향을 받게 되었어요.
4. 박경리, 만화 토지, 오세영, 박명운 그림, 마로니에북스, 2015. 예전에 원작 토지를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인물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는데 최근 만화 버전으로 완독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