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진은 자신을 ‘조경건축가’라 명명한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이유를 듣고 나니 간명하다. 건축이 구축이라면 조경은 조직이다. 그는 도시와 건축과 자연과 사람이 관계망을 맺도록 직조하는 사람이다.
조경은 인문학, 철학, 미학, 생태학을 응집한 종합 예술이에요.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는 어디에 방점을 두는 편인가요?
자연과 사회에요. 조경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가.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가. 저희 작업은 이 두 가지 물음에서 출발해요.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위장 개발도 많거든요. 로사이는 조경 공간에서 자연적인 소재를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해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자연의 섭리거든요.
식물보다는 오브제 위주로 조형적인 설계를 하는 조경가들도 있잖아요.
젊었을 때는 저도 그런 디자인에 꽂혔어요. 평면적으로 식물 패턴을 멋스럽게 디자인해 ‘선’을 강조하기도 했고요. 이러한 욕심의 결과물은 처음에는 ‘우와!’ 할지라도 그 감동이 지속되지는 않더라고요. 조형에만 방점을 두고 디자인하면 꼭 잃는 게 생겨요. 저희 어머니는 그러시더군요. “너 하는 거 보니까 조경가가 땅 디자이너네?” 정확하게 보신 거예요(웃음). 조경 설계는 결국 땅에서 시작합니다.
건축조경가의 관점에서 ‘땅’이란 무엇입니까?
세 가지 관점이 있어요. 흙, 지형, 그리고 부동산. 흙이 과학이라면 지형은 조형이에요. 그래서 같은 땅이더라도 지형을 어떻게 다듬고 만지는지에 따라 그 미감이 달라져요. 부동산은 결국 사회적인 이야기가 되겠지요. 지구는 한정되어 있고 유한한 자원은 그 가치가 공적이기 마련이니까요. 결국 이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질 때 좋은 조경 설계가 되겠지요.
지향하는 디자인 원칙이 있다면요?
과유불급. 지나침이 모자람보다 못하다. 물론 장식도 중요해요. 공간의 활기를 돋우고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미적 쾌감은 분명히 존재하지요. 하지만 넘치면 조악해지기 마련이에요. 설계할 때마다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에 대한 고민을 꼭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심플한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다양함에서 좋은 것을 찾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저의 설계 과정은 빼기 작업에 가까워요. 처음에 150% 정도로 디자인을 해놓고 80%까지 덜어내며 정리를 하죠.
심플함을 위해 식물 군락을 줄이기도 하나요?
식물뿐 아니라 모든 재료를 단순화하고자 해요. 원재료들이 지닌 성질이 있잖아요. 가급적이면 그것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죠. 콘크리트면 콘크리트, 철이면 철, 나무면 나무인 상태 그대로요. 톱밥을 갈아 만든 가짜 나무, 돌가루를 성형해서 만든 타일 같은 것들은 배제하는 편입니다. 일종의 페이크니까. 눈으로 보면 전부 티가 나요. 그리고 가공하지 않은 솔직한 재료를 쓰는 게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좋잖아요?
조경가, 정원사, 식물 디자이너를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가끔은 뒤섞어서 부르는데요. 조경건축가라는 명칭은 더욱 헷갈립니다.
조경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해석 논란이 많아요. 하지만 Landscape Architect라는 말이 어디에서 탄생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당시 설계자였던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가 이 말을 처음 사용했어요. 개인 정원을 도시공원으로 확장한 것이죠. 단순히 꽃 심고 나무 심는 가드닝이 아니라 복지 차원에서 녹지 공간을 만드는 일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고 부른 거예요. 저희 스튜디오도 도시 스케일의 정원과 광장과 가로를 다루는 걸 보면 조경건축가라는 이름이 보다 명쾌하게 정체성을 설명해주더라고요.
결국 도시를 조직하는 사람이네요.
그렇죠. 조경의 태동은 도시, 공공, 공원에 있어요. 도시 계획 차원에서 ‘그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시작점이었죠. 시민 계급이 생기기 이전의 봉건사회에서는 궁전과 정원만 있었지 공원은 없었거든요.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그 부작용으로 환경이 오염되니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 ‘퍼블릭 파크’가 런던에 처음 생긴 거예요. 조경이 꽃을 피운 곳이 뉴욕이라면 씨를 뿌린 곳은 영국인 셈이죠. 공원은 근대 발명품이에요.
아는 형님 조병준은 글 쓰고, 사진 찍고, 여행하는 동네 아저씨다. 혜화동 어느 골목길에 산다는데, 아직 가보질 못했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꽃과 풀과 나무가 등장한다. 가슴을 절절히 녹이는 글 속에 자연의 향이 깊게 배 있다. 사람과 자연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 함께 어울려 사는 우리 시대의 모습들을 이 책 속에서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표지의 선언처럼, 곧 그의 정원으로 기쁨의 씨앗을 훔치러 가야겠다.
좀 유식해지고 싶거나 어디 가서 폼 좀 잡을 생각이 있다면, 이 책을 소장하고 틈틈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조경학 연구자 고정희의 책이다. 조경 분야 전문잡지 ‘환경과 조경’에 연재한 글들을 모았다. 이 책의 매력은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 쪽이나 펼치고 읽어도 좋다는 점. 첫 페이지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게 한다. ‘정원과 공원, 건축과 도시, 미술과 문학, 생태와 미학, 자연과 신화를 넘나드는 종횡무진 역사탐험’이라는 표지의 해설이 딱 들어맞는다.
1906년 1월부터 12월까지, 자연의 변화를 세밀화와 함께 간결한 글로 기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백 년이 훌쩍 지났지만 식물을 만나는 경험은 익숙하고도 새롭다. 책장을 열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식물과 타이포그래픽, 시간여행 하듯 만나는 20세기 초 영국의 자연… 과도한 텍스트가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멋진 그림으로 가득한 이 책을 반드시 소장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