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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블루보틀 카페에 가면 ‘공간’이 보인다

로컬 디자이너와 브랜드 철학을 쌓는 법

낯선 도시에서 블루보틀 카페를 찾는 건 몇 년 전부터 이어온 해묵은 습관이다. 커피 취향이 까다로운 일행마저 수긍하는 맛도 명분이지만, 더 자주 남는 건 분위기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듯한 편안한 공기, 바깥 풍경과의 연결감, 바리스타와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는 커피 바. 블루보틀 커피(이하 블루보틀)는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만큼이나, 그 커피가 소비되는 장면도 섬세하게 설계하는 브랜드다.

 

그 설계는 언제나 ‘지역’에서 시작된다. 블루보틀은 지역 커뮤니티의 성격과 그들이 공유하는 일상을 면밀하게 살핀 뒤, 이를 공간으로 옮긴다. 로컬 디자이너와 협업해 지역성을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동선과 재료, 시선의 흐름 등의 디테일한 구조로 녹인다. 블루보틀이 강조하는 ‘사려 깊은 환대’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몸소 체감되는 것도 그래서다.

블루보틀의 공간 철학 한가운데에는 ‘본질적인 디자인’이 있다. 목적이 분명하고, 완성도가 높아야 하며, 동시에 아름다움까지 갖춘 공간을 말한다. 블루보틀이 카페를 단순히 커피를 제공하는 장소로 정의하지 않는 이유도 그 믿음에서 출발한다. 한 잔의 커피로 공동체의 온기를 전하고, 게스트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까지 함께 설계한다.

 

블루보틀 연남과 제주 카페는 블루보틀이 공간을 다루는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디자인을 맡은 팀바이럴스는 블루보틀이 공유하는 브랜드 철학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지역의 고유성을 세밀하게 녹였다. 같은 이름의 공간이지만, 같은 얼굴로 남진 않는다. 그 차이가 어떤 지역에 가든 블루보틀을 찾게 하는 이유 아닐까.

블루보틀 연남 카페

골목의 문화가 카페로 이어지는 방식

연남동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상권 중 하나가 됐다. 주말이 되면 숲길을 걷는 인파로 넘치고, 새로 생긴 가게들은 빠르게 교체된다. 그 풍경이 익숙해질수록 이 동네가 ‘골목’이었다는 사실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래서일까, 블루보틀 연남 카페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았다. 잊고 지내던 골목의 풍경을 조용히 소환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 덕이다.

블루보틀 연남 카페는 연남동 옛 골목의 정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쉼터가 되어주던 골목길의 문화가 이 공간에서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연남 골목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스며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기보다는 블루보틀 특유의 미니멀한 결로 한 번 더 정돈한 모습이다.

특히 동네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던 ‘평상’을 끌어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평상에는 목적이 없다. 길을 오가다 잠시 머물고, 기대앉아 쉬며, 지나가던 이와도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블루보틀은 그 느슨한 관계성과 머묾의 풍경을 공간 안으로 가져왔다. 덕분에 혼자여도, 누군가와 함께여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골목길에 있는 파이프 라인을 모티프로 조명을 만들었다

그 태도는 가구 디자인으로도 이어진다. 블루보틀 연남 카페에서 탄생한 ‘YN 체어’와 ‘YN 스툴’ 역시 앉는 이의 자세를 규정하지 않는 평상의 요소를 녹인 결과물이다. 오래 앉아 있어도 힘이 과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등받이와 좌판의 각도를 섬세하게 조율했고, 덕분에 가장 편안한 상태로 머무를 수 있다. 블루보틀이 말하는 ‘사려 깊은 환대’가 과한 친절이나 연출이 아니라, 결국 게스트의 몸과 시간을 편하게 만드는 설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YN 체어’와 ‘YN 스툴’은 팀바이럴스가 만든 가구 브랜드 하바구든의 시그니처 체어가 됐다

드립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넓은 창 너머로 연남동 골목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전거를 세우고 텀블러를 꺼내는 사람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익숙한 듯 인사를 나누는 주민들, 캐리어를 들고 여독을 푸는 여행자들까지. 카페 안의 분위기와 골목의 장면이 분리되지 않은 채 이어진다. 야외 중정에 심어진 대나무와 경의선숲길의 계절감이 더해지면, 블루보틀 연남 카페는 일상 한가운데 자연스럽게 놓이는 풍경이 된다.

블루보틀 제주 카페

열려 있는 경계, 머물 수 있는 그늘

제주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육지를 벗어났다는 묘한 해방감과 적당히 낯선 풍경이 주는 설렘. 블루보틀 제주 카페는 찾아가는 길부터 커피 한 잔을 비우는 시간까지, 그 여운을 해치지 않는 공간이다. 블루보틀 제주 카페를 디자인한 팀바이럴스는 이곳을 ‘제주에 있는 블루보틀’이 아니라, 제주라는 언어로 블루보틀의 환대를 풀어낸 곳이라 말한다.

공간 디자인은 제주 고유의 문화인 ‘정낭’과 ‘퐁낭’에서 출발했다. 정낭은 제주에서 대문 역할을 해온 구조물로, 닫힌 경계가 아니라 열려 있음을 알리는 장치다. 집에 사람이 있는지를 알리고, 누구나 환영한다는 태도를 함축해 왔다. 퐁낭은 팽나무를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쉬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늘 같은 장소를 의미한다. 블루보틀 제주 카페는 이 두 개념을 모티프로 삼아 손님을 맞는 입구부터 가구 디자인과 동선 설계까지 공간 전체로 이어 나갔다.

카페 내부를 걷다 보면 곳곳에 작은 ‘퐁낭’ 같은 지점이 생긴다. 사람들이 한곳에 몰리지 않도록 흐름을 나누고,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둔 덕분이다. ‘여유와 느린 호흡을 담아냈다’는 설명이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겨냥한 설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주 출신의 문승지 디자이너가 제주의 풍광을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고, 생활의 구조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이 공간은 더욱 단단하게 느껴진다.

바닥재도 인상적이다. 블루보틀은 제주 해변에 떠도는 마모된 유리 조각을 수거해 화산송이의 색감을 섞고, 이를 바닥재로 활용했다. 자연광이 레진 위로 반사되며 만들어내는 은근한 빛은 공간의 분위기를 과하게 꾸미지 않으면서도, 발끝에서부터 제주의 결을 체감하게 만든다.

창밖으로는 삼나무 군락이 펼쳐져 있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잘리지 않도록 테이블 높이를 낮췄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곳의 설계는 결국 ‘무엇을 더할까’보다 ‘무엇을 방해하지 않을까’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지막한 돌담과 털수염풀이 만들어내는 여백도 마찬가지다. 머무는 사람이 자연과 건축 사이를 매끈하게 오가도록, 경계가 부드럽게 정리돼 있다. 블루보틀이 말하는 환대는 결국 이런 순간에 있는 게 아닐까.

김기수 기자

사진 박은비 

자료 및 사진 제공 블루보틀 커피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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