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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음
2021-12-06

통통 튀는 상상을 엮다, 아티스트 서수현

서수현 작가가 뽑은 취향의 브랜드, 옷, 물건 5

작가 서수현의 시선은 어린 시절로 향한다. 작업의 시작은 과거의 기록을 꺼내 소중히 간직했던 무언가를 톺아보는 것이다. “옛날에 제멋대로 그린 그림은 논리도 없고 비약뿐인데, 어쩐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어린 시절은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없는 풍부한 감정과 경험이 존재하는 듯해요.” 어릴 적 상상과 환상을 실현한 것이 그의 졸업 작품, ‘warm worm wriggle’이다.

서수현 작가의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졸업 작품 'warm worm wriggle' ©서수현

 

“만져 보고, 체험해 보세요” 서수현 작가가 권하는 작품 감상법이다. 레고를 쌓아 올린 듯한 소파에 걸터앉고, 복슬복슬한 털 인형을 꼭 끌어안아 포근한 감촉을 느끼는 것. 자성이 있는 거울에 이리저리 인형을 옮기며 붙여보는 것. 그의 작품은 관람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다. 어린 시절 작가가 꿈꾸던 공간을 재현한 작품이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보통은 창고행을 면치 못할 졸업 작품이 이름난 갤러리와 상업 공간을 오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서수현 작가는 어떤 마음과 이야기를 지닌 채 작업에 임하고 있을까.

 

자석 칠판을 모티프로 한 작품인 'fun fur'. 자석이 부착된 털인형을 거울에 자유롭게 부착해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서수현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이하 목조과) 졸업 작품 ‘warm wrom wriggle’을 구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즐길 수 있는 놀이 요소가 있는 데다, 러그, 소파, 거울을 하나의 방처럼 구성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어릴 때 옷 입는 것부터 특별한 날 받는 선물까지 늘 부모님의 취향으로 가득했어요. 무엇보다 원목 가구, 민무늬 벽지와 침구로 꾸며진 제 방을 보다가 친구네 놀러 갈 때면 레이스 달린 분홍 이불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언젠가 어른이 돼서 독립하면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채운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억눌려 있던 색과 패턴에 대한 한풀이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복슬복슬한 털이 특징인 인형과 러그, 자석칠판을 모티프로 한 거울, 화려한 패턴의 프린팅 소파로 하나의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죠. 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시작한 작업이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분들 역시 동심으로 돌아가 각자의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랐어요.

 

서수현 작가의 유치원 앨범 속 드로잉 ©서수현
김리아 갤러리 ‘마중물아트마켓’ 전시. 서수현 작가가 제안한 아이디어로 클래스와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서수현

 

올해 타임라인만 살펴봐도 빼곡할 것 같아요. 작품이 김리아 갤러리를 시작으로, 더현대서울, 데이즈드의 퓨처 소사이어티, 무신사 테라스 등 다양한 곳에서 소개됐네요.

작년 한 해 동안 준비한 졸업 전시를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만 진행할 수 있었어요. 가구의 질감은 오프라인에서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무척 아쉬웠죠. 특히 제 작품은 만지고 움직이는 놀이 요소가 있는 것이 특징이니까요. 그러던 참에 우연히 SNS에서 김리아갤러리의 ‘마중물아트마켓’ 작품 공모에 관한 정보를 접했어요. ‘이거다!’ 싶어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갤러리 측에서도 좋게 봐주셔서 오프라인 전시를 열 수 있었죠. 타이틀의 ‘마중물’이라는 의미처럼 그 전시가 다음 기회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어요. 졸업 후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에 비중을 두게 된 계기였고요.

 

무신사테라스 전시
데이즈드아트페어

 

텍스타일을 활용한 가구 작품이 가장 주목받았습니다. 데이즈드 아트페어에서는 GD가, 최근에 마친 무신사 테라스 <일상의 사물들> 전시에서는 아이키가 앉아 인증샷을 올렸네요. SNS에 해당 사진이 업로드된 이후 영향력을 실감하셨나요?

확실히 팬덤이 크니까 사진이 한 번 업로드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퍼지더라고요. 인스타그램 리그램 수가 상당했고요. 덕분에 지인이나 잘 모르는 후배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솔직히 판매와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제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과분한 관심을 받았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신사 테라스 전시 ©서수현

 

본 전공은 ‘섬유패션디자인학과(이하 패션과)’라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작가님의 가구 작업 시리즈가 중점적으로 소개돼서 다소 의외였어요.

이야기할 때마다 다들 놀라셔요. (웃음) 한 번은 목조과 후배에게 강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어요. 사전 질문을 받아보니, 복수 전공에 관해 질문 주신 분이 많더라고요. 강연 첫마디를 “저는 본 전공이 패션이고 가구도 다룬다. 모르셨을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며 시작했죠.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조금 더 알려지지 않을까 싶어요.

 

서수현 작가의 홍익대학교 섬유패션디자인학과 졸업 작품 'amoeba house' ©서수현

 

패션과 가구는 각각 성격이 뚜렷한 분야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루는 중심 소재와 작업 프로세스가 다른 두 영역을 함께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앞날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면 스스로 패션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어요. 제가 그만큼 출중한 실력자도 아닌 데다, 요즘은 워낙 패션 마켓이나 플랫폼이 다양하니 진입 장벽도 높지 않은 것 같았고요. 그러다 원래 리빙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서 가구 쪽으로도 눈길을 돌리게 된 거예요. 패션과에서 배운 요소와 기술을 가구에 활용하면 저만의 개성을 뚜렷이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 가구와 패션을 동시에 복수 전공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으니 이 필드의 블루칩이 되겠다는 각오로 도전하게 된 거예요.

 

선견지명이었네요(웃음).

큰 그림 그렸죠.(웃음) 사실 실습 때문에 고단한 날도 많았는데 함께 복수 전공을 택한 친구가 있어서 서로 의지하며 졸업 작품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타피스트리를 목가구에 접목한 학부 시절 작품 ‘badeulsuzak itself’ ©서수현

 

학부 시절 작업에서 두 분야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돋보여요. 목가구에 실을 엮어 만든 작품도 있더라고요.

한 분야만 파고들기에는 재미도 없고 심심하게 느껴졌어요. 여러 분야에서 배운 요소를 한데 모아 새로운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죠. 당시 패션과에서 ‘타피스트리’라는 기술을 배웠는데 실을 제 마음대로 섞어서 하나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더라고요. 목조과 수업에 ‘자신을 표현하는 가구’를 제작할 일이 생겨서 나무 의자를 수틀 삼아 실을 엮어 작품을 완성했어요.

 

village series ©서수현

 

작가님의 작품 중 터프팅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 가장 반응이 좋다고요. 카바 라이프와의 협업으로 이벤트와 기획전도 열었습니다.

터프팅을 활용한 ‘빌리지 시리즈’는 만들 때마다 전부 판매돼요.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사람들의 어릴 적 그림을 받아 몇 분을 선정해 터프팅 작품을 만들어 드리는 이벤트도 진행했고요. 요즘 손으로 하는 DIY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터프팅의 인지도가 높아진 걸 체감해요. 작년 여름 무렵, 터프팅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유행까지는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이 많지만, 그땐 국내에 마땅한 공방도 찾기 어려워서 기술을 익히느라 꽤 고생했어요. 유튜브에 ‘터프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한글 영상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카바 라이프와의 인연은 2018년에 시작됐어요. 그땐 공예 작품을 모아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이 흔하지 않았는데, 정보력 좋은 친구가 카바 라이프에 제 작품을 판매해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반신반의하며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관계자분이 무척 좋아해 주셔서, 플랫폼에 제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다시 연이 닿아서 아예 주문제작상품 기획전까지 열게 된 거예요. 저마다의 일화가 얽힌 그림이나 사진을 도안 삼아 터프팅 작품을 제작해 주는 방식이었죠.

 

©cava life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와 취향이 배어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시각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귀여운 터프팅 작품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첫 시도는 제 경험을 스토리텔링해서 작품에 녹여내는 식이었죠.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를 소재로 삼다 보니 나중에는 이야깃거리가 한정적이더라고요. 주체를 타인으로 넓히면 무수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어요. 의뢰받은 사연과 그림을 통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는 시간도 즐겁더라고요.

 

의뢰받았던 도안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도 있나요?

동생과 그림일기를 주고받는 언니가 일기 속 애벌레 그림을 의뢰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관련 설명이 한두 줄뿐인데, 그 문장에서 자매가 얼마나 끈끈하고 애틋한지 전해지는 거예요. 언니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도 오롯이 느껴지고요. 타인과 경험을 나누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이 저를 풍부하게 만들어서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 방식을 확장해 나가고 싶어요.

 

 

작품 활동 외에도 아트디렉팅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작업하는 팀도 결성했다고요.

제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수입이 안정적이지는 않아서 작은 일부터 맡으며 용돈을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아트디렉팅에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마침 친한 친구도 퇴사한 터라 마음이 맞아서 아트디렉팅 팀인 ‘수우’를 만들었어요. 제 이름인 ‘수현’과 친구의 ‘우선’이라는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팀명이죠. 지금은 스튜디오에서 오브제 세팅이나 스타일링 위주로 맡고 있는데 앞으로는 광고를 위한 큰 세트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대기업 패션 브랜드의 아트 디렉팅도 맡았어요. 지난 11월 8일, 위키미키 김도연씨와 함께 촬영한 영상이 릴리즈됐다고 들었는데, 어떤 작업이었나요?

이번에 신세계로부터 아트디렉팅 작업을 의뢰받았어요. 네 브랜드의 패션 기획과 아트 디렉팅 총괄을 담당하게 됐죠. 기획안 구성할 때부터 MD님, PD님과 함께했고 전문 아트팀이 지원해 주셔서 수월했어요. 그동안 맡았던 아트 디렉팅 중 가장 큰 규모였고, 영상에 제 작품도 함께 노출돼서 의미가 깊었던 작업이에요.

©서수현

 

최근에 퍼스널 브랜딩도 마쳤어요. 새롭게 디자인한 로고도 공개했네요.

제 SNS의 작품 사진을 보고 어떤 BX 디자이너님이 브랜딩을 해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스팸인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열정적으로 다양한 제안을 해 주시더라고요. 디자이너님이 보시기에 제 작업을 아우르는 키 스토리와 텍스트가 정리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저도 마침 필요성을 느끼던 참이라 흔쾌히 수락했죠. 로고나 전체적인 브랜딩을 진행하며 제 작품의 이미지를 본떠 캔들과 쿠션과 같은 굿즈 디자인도 했는데요. 조만간 하나씩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킷 서울 전시에서의 서수현 작가 ©서수현

 

작가님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요. 예정된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연말이나 내년 초에 ‘유영공간’이라는 곳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어요. 올해는 계속 단체전에 참여했는데, 첫 개인전이라 무척 기대돼요. 그 공간이 방처럼 구획 별로 나누어져 있고, 바닥에 카페트가 있어서 제 작품과도 합이 잘 맞을 것 같거든요. 가구, 집기, 케이터링 등 크고 작은 디테일까지 모두 제 손길이 닿도록 꾸릴 예정입니다. 벌써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렸는지 몰라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서수현의 POP한 취향리스트

 

Q1. 최근 눈길 가는 브랜드는?

A. 미우미우, 크로쉐안트.

 

미우미우 (좌) 홈페이지 메인화면 (우) 인스타그램 최신 피드
크로쉐안트 (좌) 홈페이지 메인화면 (우) 인스타그램 최신 피드

 

 

Q2. 최근 구매한 물건 자랑하고 싶은 물건은?

A. 어그와 가디건.

 

 

 

Q3. 작업할 주로 애용하는 물건은?

A. 문진.

 

에디터
CURATED BY 김세음
글쓰기를 즐기는 디자인 전공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아름다움과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면면이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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