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BY 허영은
2021-10-19

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 스튜디오 0.1

0.1의 하루 루틴을 채워주는 사물 6.

자매가 한 팀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스튜디오 0.1은 작업 방식이 독특하다.

 

하나. 두 사람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언니가 몸과 포즈를 그리면, 동생이 표정이나 머리 스타일을 그린다.

둘. 그림부터 실크스크린, 재봉까지 모두 두 사람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디지털 작업이 일반적인 일러스트레이션계에서 0.1는 손으로 작업하는 걸 즐긴다.

셋. 이야기를 한 장의 이미지로 압축한다. 0.1은 한 장의 이미지로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완성된 0.1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그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림 속 무표정한 아이들은 어느새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두 자매의 손끝에서 완성된 종이와 패브릭 작품에서는 따뜻함까지 느껴진다.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9년이라는 시간을 걸어온 0.1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with 지영 & 지원

0.1

 

 

0.1이라는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 벌써 9년 차가 되었어요. 처음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나요?

지영 작업 방식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어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외부 프로젝트나 협업처럼 다른 팀과 호흡을 맞춰서 하는 일을 많이 경험했다는 점이에요.

지원 우리 둘이서만 작업을 했던 터라, 다른 팀과 협업하면서 서로의 의견과 속도를 맞춰가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었어요. 그러나 각자의 장점이 다르니까 우리 둘이서만 했을 때보다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어요.

 

 

책 <아몬드> 표지 작업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어요. 이후 일상비일상의틈, 오브젝트 성수에서 팝업 전시 겸 스토어를 연달아 열면서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지영 책 표지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어느 정도의 반응이 있어야 잘 된 건지를 몰랐어요. 그리고 워낙 유명한 작가님의 소설이니까 표지도 후광효과를 입었나 싶었죠.

지원 반응을 실감한 건 출판사에서 표지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오면서부터예요. 덕분에 책 표지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고요.

지영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이 우리가 그림으로 일을 하고 있구나를 인지했을 때도 반응이 좋다는 걸 알았어요. 출판업이나 디자인계 종사가가 아닌 사람들조차 알 정도면 정말 반응이 좋은가 보다 싶었죠.

 

 

외부 프로젝트와 콜라보레이션, 팝업을 통해서 새롭게 얻은 점이 있나요?

지원 의사소통 능력이 늘어났어요. 작업이 잘 진행되려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죠.

지영 시안과 제안서 작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지, 또 이를 데이터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죠. 정해진 기간 안에 시안이 통과되고, 그를 바탕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잖아요. 덕분에 외부 프로젝트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상대방의 솔직한 피드백도 들을 수 있었고요.

지원 페어에서는 0.1의 작업에 흥미를 느끼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와 달리 외부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제3자의 시선을 알 수 있었어요.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최근 0.1의 작업을 보면 그림 속 아이들이 성장한 느낌이 들어요.

지원 어느 날, 예전 작업을 보니까 아이들이 어리게 느껴지더라고요. 저 역시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영 작업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이들의 키가 커야 디테일을 그릴 수 있거든요. 또, 외부 프로젝트나 협업을 할 때, 조금 더 큰 아이로 그려 달라거나, 성인의 느낌도 살짝 풍기게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어요. 이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지원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 작업과 비교했을 때, 시간이 흐른 느낌도 나고요.

 

스파인서울에서 열린 "Edited Days" 팝업 전시

 

쪽프레스와 출간한 책 “Edited Days”는 누군가의 하루를 엮은 일러스트 북이에요. 책을 보니까 0.1의 하루 일과와 작업 과정이더라고요.

지원 그동안 한 컷에 이야기를 압축하는 방법으로 작업했는데, “Edited Days”는 여러 페이지로 풀어내야 했죠. 그래서 구조에 맞는 이야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처음 시도해 보는 방식이니까 최대한 우리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 또는 우리가 경험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죠.

지영 책을 기획했을 때, 코로나가 터지면서 집과 작업실만 오고 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답답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유튜브를 찾아봤죠. 그러던 중 모닝 루틴을 촬영해서 공유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다들 비슷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부분이 있어서 계속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이런 모닝 루틴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우리가 작업하는 일상을 다루면 자료도 빠르게 수집할 수 있고, 이야기를 편집하는 데 어려움도 없고요.

 

 

“Edited Days”에는 0.1의 작업 과정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지영 원래는 손의 동작과 도구를 더 많이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욕심을 내면 마감이 점점 늦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장면만을 골랐어요.

지원 동시에 종이를 자르거나 접고, 그림을 그리는 등… 부연 설명이 없어도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과정을 선택하고자 했죠. 글이 없는 책이기 때문에 독자가 보고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은 배제했어요.

 

 

책에서는 손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해요.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하고, 봉재까지 하는 0.1의 작업 과정은 확실히 손이 많이 사용되죠. 그리고 이 작업 방식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고요.

지영 초반에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과연 이 방식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계속 하고 싶은데 나중에 지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다행히 그동안 숙련이 되어서 나름 스킬이 생겼어요.

지원 우리는 그리는 것만큼 만드는 것도 엄청 좋아해요. 사실, 그림을 그릴 때 은근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럴 때는 만들기 작업을 해서 머리와 몸을 한 템포 쉬어 가요. 그림과 실크스크린, 재봉을 번갈아 가며 작업하는 방법이 우리만의 방식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지영 그림 외에 다른 작업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고 협업을 제안하는 분들도 많아요. 또, 협업을 하면서 우리가 먼저 실크스크린이나 재봉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요.

 

 

디자인 스튜디오 ‘디오브젝트’와 함께 ‘애드 투 카트(Add To Cart)’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는데, 두 팀은 어떻게 만난 건가요?

지원 우리가 지금까지 모았던 우표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책을 만든 경험이 없어서 이를 함께해 줄 협업자를 찾고 있었어요.

지영 디오브젝트의 작업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 제가 디오브젝트의 워크숍을 들은 적이 있어서 책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먼저 했어요.

지원 디오브젝트는 독특한 형태의 책을 만드는데, 이런 실험적인 측면이 우리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서로 관심사가 비슷해서 책을 만드는 동안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이를 단기 프로젝트로 끝내지 말고, 두 팀의 취향을 아우르는 브랜드를 내서 꾸준히 작업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지영 디오브젝트와 0.1 모두 취향과 수집에 관심이 많으니까, 우리들의 취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름을 지으려고 했죠. ‘애드 투 카트’라는 이름은 디오브젝트의 아이디어예요. 사람들이 애드 투 카트 버튼을 눌러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물건을 저장하듯이, 우리들도 여러 가지 사물을 사서 모으니까요. 이를 바탕으로 카트 형태의 로고를 디자인했어요. 그리고 책이나 제품이 하나씩 출시될 때마다 장바구니 숫자가 올라가는 것처럼 로고 옆 번호가 하나씩 올라가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애드 투 카트를 통해서 책 “Postage Stamp”, “공기”, “Moving Numbers”가 출간되었죠.

지원 “Postage Stamp”와 “Moving Numbers”가 수집 시리즈라면, “공기”는 플레이 시리즈예요. “공기”는 디오브젝트가 이전부터 공기에 대한 책을 내고 싶었는데, 애드 투 카트를 통해서 출간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제작했어요. 공기라는 놀이도 취향 중 하나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영 게다가 다들 어렸을 때 공기놀이를 했던 추억이 있으니까 쉽게 공감을 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수집 시리즈와 또 다른, 놀이와 관련된 책을 시리즈로 낼 가능성도 있고요.

 

책 Moving Numbers

 

애드 투 카트에서 출간한 책들의 키워드를 요약하면 ‘놀이’와 ‘수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는 디오브젝트와 0.1의 취향이 담긴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영 지금도 여러 가지 사물을 모으고 있어요. 쓸모가 없더라도 형태나 재질이 독특한 걸 발견하면 사서 지니고 있죠. 요즘 생산되지 않은 물건도 많아요. 유행이 다시 돌아왔을 때, 과거 자료들을 찾는 것보다 수집한 물건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이 더 빠르거든요. 코로나 기간 동안 수집한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지원 수집한 물건들을 정리하면 어떤 공통점이 보여요. 그러면 이 공통점을 가진 사물을 더 모으기 시작하죠. 그 결과로 “Moving Numbers”라는 책이 나왔어요.

지영 수집한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숫자와 관련된 사물이 꽤 많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 안에서 숫자가 움직이는 사물을 한 번 더 골라내서 책을 만들었죠.

수집이 창의적인 결과물로 이어진 경우라니… 일명 ‘생산적인 수집 생활’이군요.

지영 수집한 물건의 일부를 추려서 책을 만들고, 그림의 자료로도 사용하죠. 이런 걸 경험하면서 ‘소비와 수집이 쓸모없는 건 아니다’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지원 코로나를 겪으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외부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대부분의 일이 마무리되어서 지금은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쉬고 나면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어쩌면 휴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돌아다니기 힘든 상황을 반영해서 집 안을 살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요.

지영 요즘 가장 체감하고 있는 주제인 템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일단은 조금 쉬고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의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해요. 좋았던 작업은 왜 좋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작업을 했는지 등을 기록해서 나중에 필요할 때, 연결해서 작업을 할 수 있게요.

 

 

0.1의 원스리스트!

하루의 루틴을 채워주는 사물 6.

이베이를 통해 구매한 빈티지 머그컵이에요. 컵에 써진 ‘제때 일하면 하루가 길어진다(It sure makes the day long When you get to work on time!)’라는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 잡아요.

일본에서 구매한 대나무 젓가락 통을 향함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접이식 젓가락을 넣는 통이라 길이가 짧은데, 향의 길이와 딱 맞더라고요. 향 패키지 상자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 이렇게 함에 넣어서 한 개씩 꺼내 쓰는 걸 좋아해요.

레더 크래프트 숍 ‘잭크래프트’에서 구매한 커팅 매트예요. 밀도와 탄력성이 높아서 칼자국이 생기면 양옆에서 미는 힘에 의해서 흠집이 채워져요.

눈금이 미세하면서도 정밀하고, 수평과 수직이 딱 맞아요. 옆면에는 쇠로 된 칼판이 부착되어 있어서 자를 대고 칼질을 할 때, 칼이 자를 타고 올라오지 않아요. 그동안 많은 자를 사용했는데 정밀한 눈금, 정확한 수평과 수직, 깔끔한 사용감. 세 가지 요소가 딱 맞는 자는 이 제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주변의 작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항상 추천하는 제품이에요.

손으로 종이를 접으면 종이의 결이 일어나요. 때문에 접지 작업을 할 때는 폴더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테플론이라는 특수 소재로 만든 걸 사용해요. 종이와 마찰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서 손상이 적거든요. 길이가 짧은 폴더는 그립감이 좋아서 손에 무리도 오지 않아요.

일본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포스탈코(Postalco)’의 스냅 패드는 패드를 열고 닫는 법이 간단해서 속지를 교체하기 매우 편리해요. 우리는 A5 사이즈를 사용하는데, 책상에 두고 메모하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예요. 속지가 떨어지면 주변에 돌아다니는 A5 사이즈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사용해도 괜찮아요.

 

 

자료 협조 0.1 (지영, 지원)

에디터
CURATED BY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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