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함께 걸을 첫 번째 인물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도하다. 성실한 직장인이자 창작자인 그가 꾸준히 일하고 작업하기 위해서 찾는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낯선 공간보다는 익숙한 공간을 좋아한다는 그는 어떤 곳에 머무를 때 편안할까? 김도하에게 공간에 대한 관점과 추억을 물었다.
Walk with 김도하 일러스트레이터·디자이너
@doha_doha_one
— 안녕하세요 도하 님. 헤이팝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김도하입니다. 오롤리데이(OH, LOLLY DAY!)라는 브랜드에서 캐릭터 콘텐츠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그림일기로 일상을 남기는 작업도 진행 중이고요.
— 오롤리데이의 캐릭터는 왠지 정다워요. 캐릭터 콘텐츠를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리는 도하 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요?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에는 운동을 하거나 취미 활동을 합니다. 사실상 평일에는 별다른 뭔가를 할 수 없어요. 지인과 가벼운 저녁 약속을 하는 정도랄까요? 그 외에는 퇴근하면 집으로 돌아와 개인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주말은 개인적으로 약속을 한 ‘그림일기 쓰기 릴스 제작’을 하면서 시작해요. 릴스를 제작한 후 평일에 계획한 일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요. 청소를 하거나 가고 싶었던 음식점과 카페를 찾아가거나 하죠. 날씨가 맑다면 야외 활동을 하기도 하고요.
— 가끔 재택근무를 한다고 들었어요. 그림 그리는 작업 역시 집에서 하고 있고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떤 공간을 찾는지 궁금해요.
집에서도 일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설 때는 ‘일’과 멀어질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요. 사람들이 보통 노트북이나 패드를 들고 가지는 않는 공간이 대부분이죠. 집 뒤에 있는 낮은 산이나 주변에 있는 산을 찾기도 하고, 공원에도 가요. 깊이 생각할 것이 있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산이나 공원을 찾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머리와 마음, 생각을 온전히 멈추기 위해서 그곳을 찾아요. 일을 하는 동안엔 머리와 마음이 늘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산책하면서 주변 마트에도 들러요. 회사에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니거든요. 다가올 한 주의 도시락을 위한 재료들을 둘러봐요. 산을 탈 때는 온전히 산을 타는 데만 집중하고, 장을 볼 때는 도시락 준비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요. 그러면 가열되어 있던 머리가 식는 느낌이 들어요.
— 평소에 새로운 공간에 가는 걸 즐기는 편인가요. 혹은 익숙한 공간을 계속 찾곤 하나요?
저는 이미 방문해 본 공간에 계속 찾아가는 편이에요. 성격이 그래요. 봤던 영화를 다시 보거나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좋아하죠. 좋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상을 살다가 지치거나 생각이 복잡해지면, 좋았던 기억을 다시 경험하려고 이미 아는 공간을 다시 찾습니다.
— 익숙한 공간을 선호하는 도하 님이지만, 새로운 공간도 종종 찾게 될 거예요. 새로운 공간에 가야 할 때는 어떤 곳으로 향하나요?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새로운 공간을 찾게 돼요.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다양한 캐릭터 팝업을 눈여겨봐요.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팝업은 찾아가서 경험해 보기도 하고요. 팝업 스토어를 취향이 가득한 공간이라 말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팝업 스토어를 통해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아요. 막상 가면 늘 눈을 반짝이며 즐기곤 해요. 다녀와서는 진이 빠져 골골거리긴 하지만요. (웃음)
— 만일 특히 아껴서 계속 찾게 되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예요?
집과 가까운 ‘백남준아트센터’에 자주 가요. 특히 요란한 일상에서 가볍게 벗어나고 싶을 때 가곤 하죠. 전시장의 분위기도 좋고 주변 작은 공원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모든 곳이 고요하면서도 편안해요. 미디어 아트가 가득한 전시장이라고 하면 왠지 소음이 가득할 것 같지만, 백남준아트센터에는 특유의 고요함과 차분함이 흘러요.
— 백남준아트센터 건물은 제17회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받기도 했죠. 공간을 둘러싼 분위기뿐 아니라 건축물로만 보아도 근사할 것 같아요.
풍경과 어우러진 건물 자체도 아름다워요. 백남준아트센터 건물은 꽤 독특한 형태인데요. 밖에서 볼 때도 아름답지만, 안에서 전시를 관람하던 도중 문득 고개를 들어도 예쁜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어요.
—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을 자주 찾곤 하네요. 일상을 잔잔하게 꾸려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가끔 일상이 너무 잔잔하다고 느껴질 때는 놀이동산에 가요. 일 년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놀이동산을 찾아요. ‘자칭’ 테마파크 덕후입니다. (웃음)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숙소를 정한 후 제일 먼저 찾아보는 곳이 주변 놀이동산일 정도예요.
— 놀이동산은 도하 님에게 어떤 의미예요? 그 공간이 좋은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놀이동산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찾는 편은 아니에요. 놀이기구를 정말 좋아해서 갑니다. 특히 롤러코스터를 좋아해요. 빠르게 레일을 탐험하며 평소 느끼기 어려운 에너지를 느끼는 게 좋아요. 두근거리는 긴장감과 울렁거리는 무중력을 경험하고 나면 잔잔하고 지루했던 일상에 다시 활기가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뭔가 또 다른 도파민 중독 같기도 하군요. (웃음)
— 여러 놀이동산에 가봤다면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을 소개해 주세요.
한국 놀이동산만을 경험하다가 처음 해외의 놀이동산에 갔을 때가 떠올라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식스플래그 매직마운틴(Six Flags Magic Mountain)’이라는 곳이었어요. 이곳은 많은 사람이 아는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스튜디오처럼 콘셉트가 확실한 테마파크라기보다는, 정말 놀이기구에 초점을 맞춘 테마파크라고 느껴졌어요. 롤러코스터만 해도 18종 정도였죠. 저에겐 정말 커다란 충격과 행복을 안겨준 장소였어요. 다만 식스플래그 매직마운틴은 사막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더위를 먹어서 고생하기는 했죠. (웃음)
— 다소 추상적인 질문입니다만, 도하 님은 어떤 공간을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일상과는 전혀 다른 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요. 저는 집을 좋아해서 집에서도 충분히 쉼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는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쉼이 있다고 생각해요. 쉰다는 것의 모양은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형태의 쉼을 경험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만이 쉼은 아니잖아요? 걷기도 하고, 생각을 멈추기도 하고,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크게 웃을 수 있는 것 모두 쉼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 같아요.
— 새로운 공간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어요. 공간에 대한 취향 이야기도 범람하고요. 이런 분위기를 도하 님은 어떻게 느끼는지 듣고 싶어요.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건 좋다고 느껴요. 새로운 공간 중에는 무조건 유행을 따르며 생기는 공간도 있겠지만, 다양한 취향을 반영한 공간들도 있잖아요. 취향에 맞게 공간을 고르거나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는 긍정적이에요. 새로 생겼기 때문에 그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찾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죠.
— 또 이런 시절, 한 개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지려고 하나요.
이전에는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안목을 키우기 위해 여러 공간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가끔 오히려 ‘내 취향’을 잃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렇게 여러 곳을 다녀봤기에 제 취향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내 상태와 취향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공간에 찾아다니면서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어떤 공간이든 온전히 누릴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 갈 공간도 이러한 생각으로 찾으려 해요.
— 도하 님은 앞으로 어떤 일에 조금 더 힘써 보려고 해요?
얼마 전에 글을 썼는데, 그 글에 제가 해보려고 하는 일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옮겨 볼게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늘 ‘꾸준함’이 길을 막던 여러 날들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꾸준하지 못했던 것들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맞았을까?
하고 싶고, 이루고 싶었다면 꾸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정말 하고 싶고, 이루고 싶다면 꾸준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그림일기를 꾸준하게 쓸 수 있던 것은 어느 정도 나를 잘 알기에 세울 수 있던 목표였다.
나는 거창하게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번에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느려도 가볍게 목표를 이루고 싶었다.”
꾸준함이 부족해서 늘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어요.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은, 이 삶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겠죠. 나를 잘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 요즘 도하 님의 일상에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요.
작년 가을에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독립을 했던 스무 살부터 정말 다양한 집을 경험했지만, 매번 경제 사정에 맞추다 보니 억지로 이사를 하곤 했죠. 하지만 이번 집은 온전히 저의 취향과 사심을 담은 집이에요. 그래서 더 애정을 갖고 생활하게 되었고, 집에서 다양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물론 온전히 저의 집은 아니지만… (웃음)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마음껏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about heyMAP Curation
김도하 오롤리데이 디자이너가
영감을 얻기 위해 찾는 공간 리스트
— 도하 님의 헤이맵 큐레이션에는 여러 장르의 전시와 팝업이 섞여 있어요. 언뜻 공통점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어떤 기준으로 큐레이션 했나요?
공간 자체가 좋아서 나들이 가듯 방문하는 미술관들이 있어요. 백남준아트센터, 수원시립미술관 등이 그렇죠. 피크닉도 그런 공간이고요. 공간이 좋아서 자주 가다 보니, 그곳에선 늘 좋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직업 때문에 아이디어가 두드러지는 팝업이나 행사가 있으면 가보려고 노력하거든요. 제 큐레이션을 관통하는 기준은 제게 영감을 준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감을 주는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가 담긴 팝업을 담았으니까요.
▼ 김도하 작가가 직접 남긴 추천 코멘트를 살펴보고, 영감을 주는 팝업&전시 현장에 방문해 보세요!
시리즈 [Walk with]
▶ 1. 백남준아트센터부터 놀이동산까지, 일러스트레이터 김도하를 따라 걷기
2. 뉴욕의 카페와 상점 사이로, 작가 유지혜를 따라 걷기
3. 화려한 행사장과 친구들의 작업실을 오가며, 패션 크리에이터 박민주를 따라 걷기
4. 익숙한 스튜디오에서 파리의 미술관까지, 작가 박연경을 따라 걷기
5. 나무가 무성한 나만의 공간을 꿈꾸며, 크리에이터 김규린을 따라 걷기
6. 서울 서촌에 네 개의 공간을 운영하기까지, 박지수 미라벨 대표를 따라 걷기
글 김유영 기자
사진 제공 김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