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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4

가상과 현실세계를 천천히, 느리게 산책하기

비더비 X 이예승 작가 기획전 와유소요 : SINGULARITY
혹시 이런 적 없으셨는지. 작품을 감상하며 전시장을 천천히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이 마치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동양화와 미디어아트를 결합하는 이예승 작가도 이런 생각을 했나 보다. 전시명을 와유소요(臥遊逍遙)라고 지은 걸 보니.

와유(臥遊)란 누워서 명승고적의 그림을 즐기는 태도를, 소요(逍遙)는 어슬렁 거닐며 걷는 모습을 뜻한다. 이 두 단어를 결합한 ‘와유소요’는 작가가 마련한 공간 안에서 천천히 느리게 감상하는 관람객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시적 제목을 가진 전시는 DDP의 비더비(B the B)의 커뮤니케이션 라운지에서 2024년 2월 25일까지 열린다.

비더비는 서울에서 탄생한 브랜드와 문화예술을 결합한 전시가 열리는 전시 공간이다. 2022년 9월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약 92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이젠 DDP의 필수 관람코스가 되었다. 비더비의 세 개의 공간 중, 커뮤니케이션 라운지에서는 작가의 눈으로 서울의 브랜드를 재해석한 전시를 선보여왔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던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과 수수께끼처럼 엉뚱했던 박길종 작가의 가구에 이어 세 번째 전시는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이예승 작가의 체험형 작품들로 채워졌다.

〈와유소요〉는 QR코드와 증강현실을 이용한 전시다. QR코드가 보이면 반드시 찍어야 한다.

동양화와 미디어 아트의 결합

 

전시 <와유소요 : SINGULARITY>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이예승 작가에 대해 알아야 한다. 동양화와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이 작가는 동양화의 요소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재현한다. 최근에는 금속, 천, 미디어 등 다양한 소재로 구성된 설치작품으로 생경한 공간을 만들고, 작품 위에 QR코드를 두어 관객이 가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와유소요 : SINGULARITY>에서도 이어진다. 따라서 잊지 말고 각 작품에 새겨진 QR코드를 찍어 이예승 작가가 하나, 하나 손으로 그려서 완성한 가상 세계를 꼭 경험해 봐야 한다.

 

한편, 이예승 작가는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전시 제목에 붙은 ‘SINGULARITY(특이점)’라는 단어는 그 사실을 알려준다. Singularity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에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 브랜드와 그 제품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여러 소재를 활용한 설치 작품과 AR 기술로 보여준다.

 

이예승 작가의 세계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귀여운 토끼로 변한다.

증강현실로 만든 초현실 세계

 

이예승 작가가 재해석한 서울의 브랜드는 총 10개다. 지난 두 번의 전시처럼 이번에도 안경, 패션, 프레그런스, 리빙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선정되었다. 그만큼 제품도 다양하다. 친환경소재로 만든 도시락 케이스, 고전이라 불리는 책의 제목이 수 놓인 수건, 시들지 않는 패브릭 플라워 등. 이예승 작가는 제품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해석하여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의자의 프레임에서 영감 받은 테이블. 두 가구의 구조가 비슷해 보인다.

가구브랜드 ‘텍스처’의 유려한 프레임을 가진 의자에서 영감받은 <미디어 테이블(2023)>은 의자처럼 독특한 프레임을 가진 설치 작품이다. 기다란 테이블처럼 생긴 작품 위에는 가구의 프레임에서 영감받은 미디어 영상이 재생된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장식품에 숨어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증강현실로 넘어와 관객은 자기만의 선을 그어볼 수 있다.

수건 천을 활용한 기다란 족자, 거울로 무한하게 펼쳐지는 옷장 등.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강아지 캐릭터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 ‘비욘드 클로젯’과 함께 만든 <무한 클로젯(2023)>은 거울을 활용하여 무한하게 연결되는 옷장이다. 옷장 사이, 사이에서 비욘드 클로젯의 와펜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와펜들은 QR코드를 찍었을 때도 등장한다. 카메라를 셀카모드로 돌리면 와펜들이 얼굴에 붙어서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예승 작가는 욕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리빙 브랜드 ‘플로피’와의 작업에서는 유명한 소설 제목이 적힌 수건을 모티프로 작업했다. 수건에 사용된 천 소재를 사용하여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족자를 만들어 제품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족자라는 구조와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은 작가의 동양화적 특징을 잘 전달해 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화려한 공중정원이 펼쳐진다.

신기하고 신기한 경험

 

한편, 전시는 설치 작품과 증강현실의 결합으로 관객에게 신기한 경험을 선사한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패브릭 플라워라는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 ‘이케바나 하우스’와의 작업은 천장에 매달린 공중정원이라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동그란 정원 아래에 서서 위를 바라보면 이케바나 하우스의 꽃이 보인다. 정원 바닥에 새겨진 QR코드를 찍으면 더 많은 꽃이 피어나 점점 풍성해지는 가상의 정원을 만나게 된다.

 

보들보들한 천을 활용한 리빙 제품으로 유명한 ‘파르베샵’와의 작품은 기둥에 설치되어 있다. 이예승 작가는 제품과 똑같은 소재로 기둥 전체를 감싸고, 그 사이에 작가가 재해석한 동양화풍 그림과 QR코드를 숨겨 두었다. 보기만 해도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지는 기둥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진다.

보들거리는 천으로 감싼 기둥, 향이 피어나는 가구 등. 익숙하면서 낯선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또, 프레그런스 제품은 직접 향을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천연 성분으로 만든 향 제품을 선보이는 ‘에이디스’와의 작업은 아예 디퓨저를 작품에 설치하여 관람객이 지나가면서 향을 맡아볼 수 있도록 했다. <퍼품 키오스크(2023)>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품은 시향하는 손짓처럼 키네틱 오브제가 천천히 구조물 위를 돌며 관람객의 관심을 끈다. 이 작품에서도 QR코드를 찍으면 가상세계에 구름이 등장하여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구름이 형성되고 사라진다.

VR기기를 통해 확장된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이예승 작가가 만든 세계는 초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둘러보며 10개의 증강현실을 경험한 관람객은 마침내 더 심화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예승 작가는 아이웨어 브랜드 ‘베디베로’와의 작업에서 온몸을 둘러싼 가상 세계를 제작했다. 관람객은 안내에 따라 VR기기를 착용하면 작가가 만들어낸 거대한 가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 떠오르는 신기한 세계에서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는 무한한 공간에 거대한 안경과 동양화풍의 오브제들이 떠다닌다.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술이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건, 현실이 과거에 꿈꿨던 세계로 점점 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전시장에 그림이 둥둥 떠다니고(비록 스마트폰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기기 하나로 컴퓨터 속 세계에 들어간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꿈꾼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가치와 꿈을 생각하며 공에 그림을 그리고, 소원을 빌며 공을 볼풀에 던져보자.

과거 누군가의 꿈이 기술 발달로 이뤄진 것처럼, 우리 각자의 꿈도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이예승 작가는 관람객의 소원을 적고 비는 작품을 준비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프다이어리’의 프레그런스 제품을 버블이라는 형태로 해석한 이 작가는 관람객이 버블을 나타내는 작은 공에 소망을 그려서 볼풀에 던지는 참여형 작품을 만들었다. 공에 그려진 그림은 전시 기간에 주기적으로 AR 콘텐츠에 업데이트가 되어 함께 전시를 꾸미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증강현실에 뜬 그림들을 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망을 함께 보고 나누는 것도 좋겠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 QR코드가 있으니 작품을 자세히 보고, 혹시? 하는 마음이 든다면 무조건 찍어보자.

QR 코드를 잊지 마세요.

 

비더비 커뮤니케이션 라운지의 전시들은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브랜드와 그 제품에 대해서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브랜드와 제품이 넘쳐나는 물질의 시대, 이러한 시도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물론 예술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예승 작가와 함께한 <와유소요 : SINGULARITY>는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예술 혹은 브랜드와 접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덕분에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흥미가 사라진 QR코드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잊지 말고 꼭 QR코드를 찍어서 작가가 가상 세계에 숨겨둔 작품들을 만나보고, 그 세계 안을 천천히 느리게 걸어 다니며 마음껏 즐겼으면 한다. 그리고 이 재미있는 경험을 동영상과 셀카를 찍어 추억을 남겨도 좋을 것 같다.

허영은 객원 필자

진행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어반플레이

프로젝트
<와유소요 : SINGULARITY>
장소
B the B 커뮤니케이션 라운지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 281 DDP 마켓
일자
2023.12.22 - 2024.02.25
시간
12:00 - 20:00 (월요일 휴무)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경제진흥원
참여작가
이예승(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
Art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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