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디자인
과시적인 패션 트렌드인 ‘조용한 럭셔리’는 인테리어로 옮겨오면서 그 성격이 약간 변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시간보다 자신이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까닭에, 고급스러움을 누리면서도 좀 더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조용한 럭셔리’ 인테리어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절제’다. 화려한 실루엣은 배제한다. 럭셔리라고 해서 집 안에 비싼 물건을 채워넣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아늑한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물리적인 공간은 비어있지만, 질감이 표현하는 분위기가 공간을 채우는 또다른 종류의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좋은 물건을 구입해서 오래 쓰자”는 기조와도 맞물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절제된 패션을 연출하는 것보다 절제된 거실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톤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는 신중하게 선택한다. 무언가를 많이 갖추는 대신 몇 가지 질 좋은 가구나 장식품에 투자하는 이유다. 인테리어 포인트가 여러 가지 있으면 시선이 분산되고 균형이 깨진다. 가구나 장식품은 트렌드에 부합하는 디자인보다 시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 ‘조용한 럭셔리’ 인테리어에 어울린다. 지금은 고급스러워보이는 가구라도 몇 년 후에는 아닐 수도 있다. 심플한 미학을 추구하는 만큼, 가구와 소품의 마감과 같이 디테일적인 부분의 완성도와 전체적인 조화가 더 중요해진다.
클래식한 소재와 뉴트럴한 컬러
유리, 대리석, 황동은 쓰는 방식에 따라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면서도 가격이나 활용도 면에서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소재다. 실내 장식, 소파, 쿠션, 러그 등에 사용하는 패브릭의 경우 실크, 울, 캐시미어, 린넨, 벨벳, 가죽 등이 선호된다. 이 중에서도 황동과 가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과정이 멋스럽게 아늑한 분위기를 내기도 하는 소재들이다. 고급스럽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꾸미는 것이 ‘조용한 럭셔리’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질이 좋지만 가벼운 소재를 고르고, 부드럽고 따뜻한 조명으로 아늑함을 연출하면 좋다.
‘조용한 럭셔리’ 인테리어는 선명하고 대담한 컬러보다는 뉴트럴한 컬러들, 그 중에서도 화이트, 그레이, 아이보리, 베이지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캐러멜, 브라운, 네이비, 그레이, 블랙 같은 차분하고 어두운 톤이 섞여 들면서 공간에 깊이감과 중후함을 준다. 질감과 색감으로 분위기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벽을 텅 비워놓는 대신 대담한 형태의 예술 작품을 걸어두기도 한다. 컬러에 최종적인 색을 입히는 건 조명이다. 뉴트럴한 컬러들은 낮에는 자연광을 받아들이면서 따뜻한 느낌을 발산한다. 마찬가지로 밤에도 자연광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빛을 내는 심플한 디자인의 조명 기구를 매치시킨다.
집을 고급스럽고 아늑한 안식처로 만드는 법
올드 머니 룩과 같은 클래식함을 추구하지만, ‘조용한 럭셔리’ 인테리어 트렌드는 사치보다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온 이들을 위한 안식처를 대변한다. 적당한 투자를 통해 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팁이 있다. 욕실 타일을 모두 대리석으로 교체하지 않고도, 가구를 전부 바꾸지 않고도 우아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가구나 아이템으로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갖고 싶었던 것들을 한 두 점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말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공간을 채우는 물건들의 수를 줄이고, 밖에 나와있는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무거운 소재들이 자칫 올드한 느낌을 낼까 부담된다면 커튼, 러그, 쿠션이나 담요와 같은 패브릭 제품들만 시각적인 편안함을 주는 소재로 교체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대안이다. 호텔처럼 흰 침구로 통일하거나, 의자나 쿠션 몇 개만 벨벳 커버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특히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인 침실은 편안한 사치를 추구하는 ‘조용한 럭셔리’의 특징이 가장 장점으로 살아날 수 있는 공간이다. 잠이 잘 오는 침구에 투자하고, 발에 닿는 러그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바꿔보자. 시각적으로뿐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따뜻한 온도의 조명이 필수다.
‘조용한 럭셔리’ 패션이란?
‘조용한 럭셔리’ 패션은 로고가 없는 고급의 브랜드 기성복을 중심으로 한다. 이른바 ‘물려받은 돈’으로 부유한 생활을 향유하는 전통적인 부유층 스타일이라고도 부른다. 로고나 패턴으로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은 실제로 너무나 부유하기 때문에 부를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보그는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을 두고 “엣지 없는 미니멀리즘”으로 표현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과 달리 가장 시끌시끌한’ 트렌드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경기가 침체됐던 2010년대 중반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놈코어 스타일이 부상했듯이, 지금의 ‘조용한 럭셔리’도 불경기의 영향이 크다고도 설명한다. 모노톤, 화이트 셔츠 등 가장 단순하고 일상적인, ‘기본템’에 가까운 디자인의 옷들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트렌드가 아닌 트렌드’라고도 불린다.
글 박수진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