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 탐방을 위한 여행지로 잘 알려진 이곳은 비엔날레가 처음 열린 곳이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수백 년 전 그러했듯 현재에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이다. 이 비엔날레에는 예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종합 국제 미술전,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건축전,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국제 영화제가 포함되어 있어 매번 화제가 된다. 다만 미술전과 건축전은 이름 그대로 격년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영화제는 매년 진행되고 있다.
올해는 5월 20일부터 18번 째로 국제 건축전이 진행되고 있다. 11월 26일까지 6개월 동안 진행되는 이 건축전에 자연스럽게 전 세계 건축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중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총감독인 스코틀랜드계 가나 건축가 레슬리 로코(Lesley Lokko)의 큐레이션 하에 ‘미래 연구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라는 주제로 각 나라와 건축 회사, 브랜드들이 건축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선보이고 있다. 덕분에 베네치아 곳곳에서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건축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관에서는 세계 인구가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2086년의 미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모색한 <2086: 우리는 어떻게?>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지금의 편리한 현실과 함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환경 위기가 지금까지 인류가 내린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만날 수 있다. 동인천, 군산, 경기도 마을 세 군데에 대한 사례 연구가 담긴 프로젝트와 함께 TV 퀴즈쇼 형식의 참여형 게임, ‘투게더 하우(Together How)‘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밖에도 각 국의 전시관과 건축 회사 및 브랜드들의 전시관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된 곳이 있다. 바로 노먼 포스터 재단(Norman Foster Foundation)과 건축 자재 제조 회사 홀침(Holcim)이 함께 손을 잡고 만든 ‘본질적인 집(Essential Homes)‘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발생되는 난민 문제와 함께 이를 해결할 지속 가능한 방법에 대해 논의한 결과, 현재의 모습을 가진 집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는 이들의 연구과정이 반영된 프로토타입을 만나볼 수 있다.
의외로 난민을 위한 거주지의 모습이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텐트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텐트는 가벼운 무게로 이동이 가능하고, 어디서든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동식 거주지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텐트가 가진 단점들을 생각한다면, 오랫동안 지낼 공간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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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도시화로 인한 도시 문제와 지속 가능성이었지만
주로 난민 위기와 이를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초기 워크숍에서 우리는 난민 위기에 대한 현재의 대응책인 텐트를 세웠습니다.
텐트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중요한 물건들을 떨어뜨리고 이를 뒤섞어 놓는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결국 텐트가 최선의 해결책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노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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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포스터는 “자연재해와 인재로 인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사는 곳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라며 “난민들이 소위 임시 쉼터에서 최대 20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인 성공의 척도는 난민 캠프에서 지역 사회로, 쉼터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라며 보다 안정적인 집을 설계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와 더불어 홀침의 회장 겸 CEO인 얀 예니쉬(Jan Jenisch)는 “본질적인 집은 우리의 저탄소, 에너지 효율 및 순환 건축 해결책의 일환으로 지어졌으며 이를 통해 모두를 위해 지속 가능한 건축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줍니다.”라고 설명했다.
노먼 포스터 재단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거주지를 벗어난 사람들이 오래 피난처에 머무르는 것을 고려하여, 임시 거주 공간을 보다 편안하고 품위 있는 생활 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했다. 그와 더불어 홀침은 이러한 임시 주거지가 가질 수 있는 지속 가능성 특성을 고려하여 소재를 선택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프로토타입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피난처라기 보다, 일반적인 집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 건물은 일상을 보내는데 불편함이 없는 높이와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독특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 문과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창문, 천장의 원형 창문은 공간에 자연스럽게 자연광을 들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급하게 거처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 빠르고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숙련된 노동력이 없어도 현장에서 3-4일 만에 지어질 수 있는 이 집은 저탄소 콘크리트 캔버스를 건설 폐기물 골재로 만든 격자 프레임 구조 위에 아치형 모양으로 배치하여 누수를 막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집을 지을 때 필요한 굴착이 필요 없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후 콘크리트 캔버스에 물을 뿌리고 이를 말리면, 이 과정에서 단단해져 내구성이 높아진다.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친환경 콘크리트 에코팩트(ECOPact) 소재의 타일과 친환경 소재 단열재를 붙여 집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집은 기존 방식에 비해 탄소 배출을 70%나 감소시킬 수 있다. 여기에 20년의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튼튼함은 놀라움 그 자체다. 집을 짓기 위해 드는 비용은 2만 유로(약 2,821만 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 다양한 기후와 환경, 문화에 걸맞은 버전을 추가로 제작할 예정이다. 그와 더불어 보다 현실성 있게 모양을 변경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건물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현실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면을 고루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친다면, 앞으로 이 집은 난민 및 이재민을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도시 속에서 지을 수 있는 저렴한 주택 중 하나의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노먼 포스터 재단이 공개한 미래의 계획과 비전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미래의 환경과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려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빠르게 사람들에게 살 곳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그동안 임시 거주지는 미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설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고심하여 설계한 이 집을 보면, 이런 거주지 또한 충분히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더불어 환경에 덜 영향을 미치면서도 빠르게 주택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주거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도 주택 공급을 돕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난민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이지만 결국 도시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탄생하게 되면서, 전 세계 건축계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