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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2022-12-27

라틴아메리카 디자인을 수면 위로,〈Submarine〉

칠레의 디자인 잡지 〈Submarine〉에 대하여

온라인으로 실시간 뉴스를 보고 잡지를 구독하며 즉각적인 피드백을 올리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2021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인터넷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는 72%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물론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온라인 신문이나 잡지 기사 소비가 10년전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점은 그리 놀랍지 않다. 기존에 종이잡지를 발행하던 디자인 언론사들도 디지털 플랫폼으로 활동을 확장 시키고 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도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국경을 넘어 국내 소식 해외에서 그리고 해외 디자인 소식을 국내에서 구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섭마린> 1, 2호 표지 디자인 ©awayo.studio

시대적 흐름의 일환으로, 칠레 안드레스 베요 대학(Universidad Andrés Bello) 디자인과 학장인 마누엘 피게로아(Manuel Figueroa)는 디자인 온라인 잡지인 <섭마린(Submarine)>을 2021년에 창간했다. 이 디자인잡지는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여타 잡지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섭마린>은 교육적인 특색이 강한 다학재간 모던 디자인 잡지이기도하고, 기사 하나 하나에 철학적인 면모가 드러나게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페인어와 영문으로 발행되는 연간지(年刊誌)라는 점에서 개성이 도드라진다. 편집장인 마누엘 피게로아와 <섭마린>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Interview with 마누엘 피게로아

마누엘 피게로아

— 편집장님께서는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칠레에서 디자인 교육, 국가 홍보 프로젝트, 칠레 디자인 정책 구상 및 실행 등 다양한 디자인 진흥 활동을 하셨어요. 현시점에서 <섭마린> 디자인 잡지를 창간하셨는데, 이는 칠레 디자인 문화 홍보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지요. 자화자찬 하고싶지는 않지만 칠레 디자인계에서 스스로 지정하고 성취한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섭마린> 1호, 볼드리니 피카르디(Boldrini Ficcardi) 디자이너 인터뷰, 2021|사진: Boldrini Ficcardi ©awayo.studio

— 디자인이 아니라 법을 전공 하셨어요. 그럼에도 어지간한 디자인 전공자 보다도 더 많은 업적을 이룬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역사를 살펴보면, 법을 전공했지만 바우하우스의 명예교수를 역임하고, 디자인을 연구했던 라슬로 모호이너지(Lazlo Moholy-Nagy)가 떠오릅니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0년대에 저는 19살이었고, 법을 공부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디자인’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기껏 해봐야 사물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철학, 미학이구나 정도였지 아는 바가 없었어요. 이런저런 책과 잡지를 가리지 않고 읽다가 우연치 않게 <디자인(diseño)>이라는 잡지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그때 디자인이 사물의 외관 형태뿐만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사물의 실용성과 편리성, 심미성을 연구하는 분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상표부터 자동차까지 아우르는 전문분야가 디자인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된 것이죠. 

잡지의 글은 저에게 감동을 줬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사랑에 빠지게 해준 매개가 되었어요. 그 잡지를 본 이후 음료수 병, TV, 버스, 화장실 등 제 주변 어디를 돌아보아도 모두 디자인된 사물이었으니까요. 이런 경험을 한 저는 다양한 출판물 중에서도 디자인 잡지가 대중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매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디자인 잡지가 제 진로를 바꾼 계기가 된 것이었으니까요. 이런 까닭으로 언젠가 디자인 잡지를 창간해야 겠다는 바람이 생겼고, 이는 제 머리속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지요. 비록 라틴아메리카에서 디자인 잡지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비로소 잡지를 내고야 말겠다는 꿈을 가지고 <섭마린>을 창간했어요. 디자이너는 이런 반항심이 좀 있어야 세상이 창의적일 수 있으니까요.

<섭마린> 1호, 알데레테 박사(Dr.Alderete), 2022|사진: Christian Weber ©awayo.studio

—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가진 계기가 디자인 잡지를 통한 것이라니 놀랍습니다. <섭마린> 잡지의 설립은 심상사성(心想事成)이었겠네요. 교육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셨는데, 왜 디자인 학술지가 아니라 잡지를 선택하셨는지요?

이런 말씀을 드리면 디자인학술지 편집장들이 저를 비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솔직히 말씀 드리면, 대학교 학술 체제에서 발행된 전문 학술지는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속간행물일 뿐입니다. 디자인이라는 학문이 디자인과 무관한 일반 대중에게 공유되고 교육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엔진은 바로 디자인 잡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각 디자인 잡지는 편집장의 취지에 맞는 담론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구글(Google)이나 핀터레스트(Pinterest)처럼 자료(data)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잡지의 성격과 목적에 맞게 자료를 정리하고 편집해서, 정보(information)를 대중들에게 제공합니다.

<섭마린> 2호, 디자인 아카이브 재단 IDA(Fundación IDA), 2022|사진: Fundación IDA ©awayo.studio

— 잡지의 이름이 잠수함을 뜻하는 ‘섭마린’이에요. 이름을 짓기까지의 계기와 잡지의 특징이 궁금합니다.

잠수함은 프랑스 해양탐험가 자크 쿠스토(Jacques Cousteau)가 깊은 바다에서 과학 탐험을 하기 위해 이용한 기기였습니다. 디자인 세계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콘텐츠를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자 하는 제 취지와 맞닿아 있는 기기이지요. 그래서 잡지의 이름을 잠수함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저희 잡지는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자인 문화의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기사를 싣고자 합니다. <섭마린>은 일년에 한 번 영문과 스페인어로 발행되는 유니버설한 디지털 디자인 잡지입니다. 이는 디자인 관련 콘텐츠를 담고 있지만, 예술과 건축, 기술과 도시계획과 같은 다학제적 관점에서 디자인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섭마린> 2호, 웨이치 히의 포토닉 프로젝트(Weichi He, proyecto Photonic)|이미지: Weichi He 제공. 2022 ©awayo.studio

— <섭마린>은 안드레스 베요(Universidad Andrés Bello) 대학교에서 탄생해서 그런지 트렌드를 좇는 패션잡지와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패션 잡지의 화려함과 학술지의 엄격하면서도 질서 있는 디자인, 난이도가 높은 글이 부각되어 보입니다. 마냥 읽기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주 예리한 지적을 해 주셨네요. 느낀 바가 정확합니다. 저는 그런 성격의 잡지를 오래 전부터 원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대학교 출판 팀과 함께 철저히 계획했거든요.(웃음) 그리고 다른 디자인 잡지와 다르다고 느끼신 점에 있어서 추가적인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는 철학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일 수 있겠네요. 철학에서는 ‘교육자(educator)’, ‘연구자(researcher)’ 그리고 ‘유포자(disseminator)’의 역할이 분명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교육자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자는 어떤 학문의 지평을 넓이고자 연구를 담당하며, 유포자는 특정한 학문, 지식, 주제에 대해 관심이 갖고 그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저희는 연구자는 아니지만, 교육자와 유포자 사이를 오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디자인 문화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특히, 교육자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잡지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교육자는 어떠한 학문의 정답을 전달하는 매개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그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섭마린>의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기사를 읽고나서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될 겁니다.

 

 

— ‘교육자’와 ‘유포자’ 사이 관점에서 잡지 콘텐츠를 기획한다는 말씀이 흥미롭네요. 1년에 한번 발행되는 잡지라서 디자인 트렌드를 좇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각 호의 주제는 어떻게 선정되나요? 

제가 하기 싫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테마별로 잡지를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학술지들이 주제별로 논문을 모아서 논문집을 발행하곤 하지요. 물론 주제 선정은 콘텐츠를 정리하는 데에 있어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만, 저희는 보다 자유로운 틀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콘텐츠를 선정하는 기준이 뭐냐고요? 콘텐츠는 저희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 찾아오지요. 예를 들어 이듬 호에서 브라질 가구디자이너 깜빠나 브라더스 중 최근에 운명한 페르난도 깜빠나(Fernando Campana)의 기사를 통해 깜빠나 브라더스의 디자인철학을 살펴볼 것이고 <섭마린> 제1호에서는 엔조 마리(Enzo Mari)에 관한 주제를 다뤘었지요. 이처럼 저희는 디자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관찰하면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새롭고 신선한 주제들을 모아서 질서 있게 다루는 편입니다.

안드레스 베요 디자인 대학 디자인 연구실 모습. 2022 ©AryehKornfeld

—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부분은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섭마린>은 참 매혹적인 디자인 잡지 같아요. 이외에도 다른 잡지와 다른 <섭마린>의 차별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는 디자인 잡지인만큼 콘텐츠는 물론 편집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어글리 디자인(Ugly Design)’이 트렌드가 되어 추악하고 못나고 파격적일수록 좋다는 관점이 돌고 있습니다. 마치 스위스 국제 스타일을 반대하는 운동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저희는 이런 추세와 반대되는 길로 걷기로 했습니다. 디자인 트렌드에 맞게 쿨cool한 디자인 잡지는 못되겠지만 전통적으로 디자인 잡지의 잣대로 가독성 높고 시각성이 뛰어난 타이포그래피를 선정하고, 제목과 텍스트와 이미지가 페이지 양면이 밸런스 있게 정돈된 철저하게 계획되고 준수한 디자인을 원했습니다. 디자인 잡지는 디자인 잡지 같아야 하잖아요. 

안드레스 베요 <섭마린>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모습. 2022 ©awayo.studio

그리고 또 다른 차별점은 요란하게 ‘디자인’을 광고하거나 디자인이 세상의 모두인 것처럼 중요성을 외치는 잡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간혹 디자인을 다루는 미디어들이 과도하게 디자인을 숭배하고 아낌없는 칭찬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경제, 정치, 고고학과 같은 학문이자 전문 분야 중 하나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검소하게 절제된 태도로 그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거기에 맞는 디자인을 다루려고 합니다.

안드레스 베요가 <섭마린>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모습. 2022 ©awayo.studio

— 최근 들어 디자인 잡지사들이 디자인 전시와 공모전을 기획하는 추세를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섭마린>도 큐레이팅이나 팟케스트 같이 지평을 넓혀갈 생각은 없는지요?

디자인잡지들이 다채로운 활동을 진행한다는 추세는 좋으나, 저희는 겸손한 자세로 한걸음씩 발전해 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저희도 팟케스트와 유튜브 채널같이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운영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멀티 플랫폼으로 잡지 활동을 넓히는 것은 저희 계획에 없습니다. 천천히 커 나가며 단계별로 체험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발전하면서 멀티 플랫폼으로 잡지의 활동이 더 커질지 아니면 도태되어 없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모든 것은 태어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까요. 저희는 어느 순간 존재는 사라져야 한다는 모던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죽음도 자연의 이치니까요. 

 

 

— 혹시 이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네, 아주 작은 코멘트가 있습니다. 디자인은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디자인 실험은 어른들을 어린아이로 돌려놓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디자인을 놀이처럼 접근하는 법을 제 친한 스페인 친구이자 디자인 역사학자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에게 배웠어요. 그는 디자인이란 주황색과 푸른 보라색을 띈 환상적인 바르셀로나의 노을 색에 있다고 했습니다. 즉 디자인은 자연에 있다고는 것이지요. 저는 그의 영감어린 말을 듣고 ‘이 사람은 정말 아이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처럼 웃고, 놀고, 움직이고, 프로젝트를 맡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최근 들어 디자인은 그런 순순함을 잃고, 그저 디자인의 중요성의 외치는 것에 핏대를 높이는 전문 분야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자인은 충분히 즐겁고 남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저희는 디자이너를 위해 디자인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디자인 하니까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 감사합니다.

김엘리아나 객원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Subma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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