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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06-17

마음이 보여주는 몽글몽글한 그것, 홍시야 그림

평면 그림으로 4차원 시공간을 그리다

낯선 여행지, 처음 가는 길 어딘가에서 우리는 무작정 걷다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살며시 이정표를 찾는다. 그렇게 시야에 들어온 이정표는 대개 초록 바탕에 흰 글씨, 노란 바탕에 검정 글씨로 큼직하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 의미를 바로 알아챌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그렇다면 커다란 캔버스에 담긴 한 폭 그림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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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야 Still sea, 53 x 45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홍시야 Sea of peace, 80 x 65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캔버스 속 그림은 한눈에 들어오기는 해도 다양한 피사체를 작가의 감정으로 표현해놓았기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의 시선을 끌면 대성공이다. 그때부터 그림에 시선을 빼앗긴 관람객은 낯설지만 매력적인 하나의 세계에 빠져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그 낯설지만 매력 넘치는 세상을 자연과 평화, 그리고 공존으로 수놓고 있는 따뜻한 화가, 홍시야. 그의 작품과 삶, 속 깊은 이야기를 힐링의 섬 제주에서 나눠보았다.

Interview with 홍시야 작가

작업실에서 ⓒ 홍시야
작업실 전경 ⓒ 홍시야

홍시야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독자도 있을 텐데,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뭘까요? 저는…(웃음).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를 한 단어로 정의 내려 본 적 없어 어렵네요. 어릴 때부터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욕심 없이 산 거 같아요. 성인이 된 현재까지 그 모습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고요. 화가가 될 거야, 제주에서 살아 볼 거라는 계획이 없었고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 일상적으로 숨 쉬듯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 그림 속에 담긴 느낌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의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나요?

저라는 통로를 통해 나오는 여러 감정이 다양한 장르로 표현돼요. 드문드문 다른 것들이 재밌을 때도 있어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싱잉볼을 이용해 사운드 드로잉을 하기도 하는데, 전 그런 것들이 모두 예술이라 생각해요. 예술을 하고 싶었는데 그림이 하나의 도구가 된 거죠. 요리를 할 때 다양한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듯 내가 뭔가 예술이라는 것을 할 때 그림, 연주, 글쓰기 등이 그때그때 나오는 것을 사용해요.

제 가장 큰 화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곳에 있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에요. 그래서 제게는 명상이 중요해요. 시작한 지 8~9년쯤 되었는데, 그 이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명상이었나 봐요. 계획해서 그린 건 아니고, 매일 캔버스 앞에 앉으면서 ‘난 그림 수행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책도 마찬가지예요. 출판 계획을 가지고 나온 건 아니에요. 매일매일 집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편집자님께서 방문하셨어요. ‘저거 뭐예요?’, ‘아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에요’해서 「그곳에 집을 짓다」가 탄생했고, 여행 에세이 「서른의 안녕한 여름」도 여행을 다녀온 후 ‘엮어봅시다’ 해서 세상에 나왔네요. 저는 꾸준히 기록하고 그림을 그리며 지냈는데 좋은 기회가 제게 온 것 같아요. 계속 기록하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시점과 운 좋게 만나 모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

홍시야 Heart to heart (2), 116.8 x 91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홍시야 공존, 177 x 140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현재 서울에서 그룹전을 하고 있어요. 전시 중인 작품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중요한 테마는 공존인 것 같아요. 핑크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여러 색이 하나의 캔버스에서 조화롭게 존재해요. 숲의 형식일 수도 있고 바다나 하늘, 땅의 형식일 수도 있어요. 어떤 존재가 우위에 있지 않은. 다 어우러져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 화두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하나로 연결되는 걸 보면 우리 모두가 결국 다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작든 크든, 미물이든 거대한 무엇이든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현재 전시 중인 작품들의 중요한 메시지는 ‘함께 살자, 우리’입니다.

 

 

작품에서 자연에 대한 강한 생명력이 느껴져요. 당신에게 현재 거주하는 제주는 어떤 의미일까요?

여행을 좋아하던 시절 파리에 여러 번 가서 오르셰 미술관이나 루브르에 갈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정작 그곳에 가는 것보다 공원에 앉아 있고, 숲에 숨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느꼈어요. 제가 자연, 특히 산을 좋아하는구나(웃음). 실제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공간들이 모두 인왕산, 북한산 아래였네요. 도시에 살 때도 자연이 늘 필요하고 좋았어요. 제주는 꿈을 통해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꿈속에서 마주친 이미지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했고, 일부러 집을 구하러 다니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거처가 마련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주가 저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해요.

홍시야 Emptiness, 91 x 116.8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과거 드로잉(drawing), 소묘는 다음 작품을 위한 밑그림 정도로만 인식되었지만 현대 미술에서는 독립된 하나의 미술 장르로 자리 잡고, 일러스트라는 전문 분야를 만들어냈다. 드로잉과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있는 크로키는 작가에게 있어 가장 직접적이며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반 크로키는 움직이는 사물이나 사람을 순간 포착해 담아내지만 작가의 마음 크로키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심상들의 순간을 붙잡고, 떠올리며 드로잉으로 옮기고 있다. 또 드넓은 캔버스에 올려지는 다양한 오브제는 기존에 사로잡힌 사유의 틀을 깬다. 1차원 세계에 존재하는 선을 이용해 4차원 시공간 이미지를 완성해가는 작가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는다.

 

‘마음 크로키’라는 장르에서 일명 개척자라 불리시는데요. 마음 크로키를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또,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요?

어릴 때부터 꿈을 자주, 또 생생하게 꾸는 편이에요. 제 보물 창고는 꿈이죠. 깨어 있는 현실보다 레이어가 더 많아요. 제게 현실은 2D인데 꿈은 4D죠. 그래서 더 진짜 같고, 거기서 경험하는 것들, 보는 것들, 만나지는 인연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이미지와 느낌이 작품으로 옮겨져요.

그림 작업을 시작했던 이십 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결되는 것 같은데, 제주에 와서 구체화된 것 같아요. 추상화, 혹은 풍경화라 하기에는 좀 다르거든요. 마음에서 느껴진 순간의 장면이나 감각된 느낌과 색채를 가능한 한 빨리 꺼내야 하는 작업이죠. 드로잉 작업은 초반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심상을 빨리 꺼내어 작업해야 하니, 어쩌면 크로키에 가깝죠. 마음이 보이는 거니까 ‘마음 크로키’라 붙여봤는데(웃음). 이 단어를 사용한 지는 7~8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작업실에서 ⓒ 홍시야
홍시야 Island of dreaming, 53 x 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21

제주도에 왔을 때 어려움이라고 할 것은 특별히 없었지만 예전부터 저는 말, 언어가 좀 어렵고 불편했어요. 제한적이라 할까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어요. 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제게 공존에 관한 이미지를 세상에 잘 꺼내놓아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나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그래서 저는 더 잘 해야겠다, 조금 더 많은 이들과 이 마음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제주에 오기 전에도, 제주에 와서도 대중과 소통하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드로잉과 에세이가 결합한 책을 출판하거나 생태문화예술학교 강사, 명상 프로그램의 일환인 사운드 드로잉 진행, 큰 화폭을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작가님 작품을 엽서나 캘린더, 실크스크린 에코백 등의 굿즈로 제작해 접근성을 높여주셨습니다. 따뜻한 마음이라 생각해요. 그런 원천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제 옆에 있는 좋은 사람들이요. 특히 남편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작품 원본은 하나지만 굿즈로 제작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할 수 있다고 남편이 이야기해 줬어요. 그게 예술가의 역할일 수 있다고. 그래서 용기 내어 굿즈 제작을 했죠. 책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생태문화예술학교에서 하는 강사의 경우는 사연이 있어요. 사실 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에 조금 반감이 있었어요. 저는 제도권 내에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서 가르친다는 것이 좀 불편했죠. 저만의 속도로 혼자 독학하거나 필요할 때 배우러 다녔어요. 그래서 교육은 특히 예술은 하지 말자라는 마음이 강했는데, 생태문화예술학교를 기획하신 분이 제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교육은 가능할 것 같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좋은 씨앗을 심어주면 아이들은 좋은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냐’라고 하신 거죠.

작업실 모습 ⓒ 홍시야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고 있어요. 연필, 파스텔, 크레파스, 수채물감, 아크릴물감까지 도구를 선정하는 기준이 특별히 있을까요?

계획을 세우지 않는 제게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호하고 사용하죠. 사실 가장 좋아하는 재료는 연필과 도화지예요. 드로잉이 베이스일 수밖에 없는 제게 빨리, 재빨리 마음을 꺼내놓기 위해서는 연필과 종이가 가장 적합하고 좋았어요. 사실 드로잉북을 병행하고 있고요. 메인으로 사용하는 캔버스 그림에서는 점차 화폭이 커지지만 물감을 사용할 때 또 다른 재미가 있죠. 레이어가 계속 생기는데, 거기서부터 재창조와 재변형이 일어나고, 층층이 쌓이며 생기는 묘미가 있어요.

싱잉볼을 연주하는 작가 ⓒ 홍시야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리조트 티앤메디테이션 ‘취다선’에서 싱잉볼을 이용해 ‘사운드 드로잉’을 하고 계신데요. 싱잉볼을 이용한 명상은 일반 명상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마음을 그리고 있는 저로서는 소리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체험되는, 감각되는 예술이라 생각하는 거죠. 7, 8년 전 발리에서 우연히 경험한 싱잉볼은 강렬했어요. 명상은 그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싱잉볼을 통한 명상은 쉽고 편하면서 빠르게 고요한 상태로 들어갔거든요. 사실 명상은 육체적으로는 마치 고행을 하는 것처럼 좌선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거든요. 저희 남편처럼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육체적으로도 괴로운데 평온한 마음을 만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싱잉볼을 통하면 누워만 있어도 명상의 상태로 다소 손쉽게 들어가요. 명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라 생각했고. 저는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림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겠지만 사운드 드로잉으로 이 멋진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 공간 안에서 나는 소리로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 공간 안에서 명상을, 예술을 경험하게 된다면. 명상과 예술은 분리되어 있는 거 같지 않거든요. 

홍시야 모호행성 (2), 60.5 x 60.5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홍시야 모호행성 (3), 60.5 x 60.5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홍시야의 그림 속 세상은 작가가 명상을 통해 만나는 무의식 속의 풍경이다. 작가는 20년 가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치유와 성찰을 지시하는 음악과 미술로 평온한 그곳 세상의 이야기와 풍정을 표현해왔다. 그녀의 그림이 조용조용 말을 걸어오는 것은 이와 같은 심상의 고요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 나태주는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평화주의자 홍시야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커다란 화폭에 그려진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색채와 경계 없이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오브제를 보고 있자면, 이 시가 살며시 떠오른다. 멀리에서 보면 알록달록 따스한 색감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가까이에서 보면 선을 긋거나 위, 아래 나눔 없이 한 캔버스에서 공존하고 있는 오브제들 모두 다 예뻐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작가 홍시야는 인생의 긴 여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를 꾸준히 기록하며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명상을 만나며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이를 전파하는 그림 수행자가 되었다. 명상을 통해 더 단단해진 화가 홍시야의 작품이 더 기대된다.

박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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