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4

어떤 거짓도 없이, 논픽션

나를 위한 리프레시의 시간.
‘논픽션 NONFICTION’. 론칭 후 1년이 되지 않은 지금 알파벳 열 자를 가지런히 품은 원형 로고를 단단히 각인시킨 프래그런스 브랜드. 2019년 11월 브랜드 발표와 동시에 세계적인 뷰티 스토어 체인 ‘세포라’가 흔쾌히 자리를 내 주었고, 서울을 이끄는 크리에이터들은 앞다투어 팬을 자처한다. 좀처럼 전복하기 힘든 긴 시간과 명성, 패션 브랜드 못지 않은 시그너처 보틀 디자인을 동력 삼아 돌아가는 프래그런스 업계에서 갓 태어난 국내 브랜드가 이런 보폭으로 나아간다는 건 차라리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 물론 초기의 스포트라이트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대표라는, 창업자 차혜영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지만 브랜드는 이미 그녀의 이름을 떠나 또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Interview 차혜영

논픽션 대표

 

창업자의 서사가 중요한 향 브랜드인 만큼 차혜영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스튜디오 콘크리트 대표였단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 밖엔 아는 게 없더군요. (웃음)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의류 사업을 시작했어요. 대학교 앞 작은 매장을 거쳐서 ‘프로덕트’ 라는 이름의 패션 편집매장을 운영했습니다. 의류 사업을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너무 좋아서 시작했던 분야인데도 어느 순간 더 이상 흥미롭거나 궁금하지 않은 때가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던 중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인 배우 유아인 씨가 제안을 했어요. “우리 주변에 반짝이는 재능을 가지고도 스스로를 ‘어필’하기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아티스트가 혼자서 성공하기는 어렵잖아. 누나는 비즈니스를 하고, 나는 알려진 사람이고. 그러니 우리가 힘을 합치면 다 함께 뭐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스튜디오 콘크리트’ 를 창업하게 됐습니다. 저도 워낙 패션만 하던 사람이다 보니, 문화나 예술을 다루는 건 꽤 큰 도전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니 더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웃음)

 

 

논픽션이란 이름도 사뭇 독특했어요. 처음 제품을 봤을 때 이름을 다시 한 번 읽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화장품 이름같지가 않았다고 할까요.

논픽션 말고도 수백 개의 후보가 있었지만, 거창한 뜻을 담으려 한 건 아니에요. 억지로 브랜드 스토리가 풍성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행동만 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자는 정도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헤리티지(브랜드 유산)를 강조하는 일반적인 코스메틱 브랜드와 구분되는 논픽션만의 특성을 꼽으라면, ‘나와 같은 동시대 여성이 만든 브랜드, 소비자가 만든 브랜드’라는 부분일 거예요. 그래서 무엇보다 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향기의 의미에 집중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운영하면서 너무 바쁘게만 살았는데요. 수많은 아티스트, 브랜드, 매체 사이를 오가며 커뮤니케이션 하다 보면 한순간 이게 현실인지 비현실인지조차 구분조차 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나’라는 자아는 없어지고 휩쓸리기 바빴죠. 다들 그렇잖아요. 하지만 목욕하는 시간 만큼은 스마트폰도 치워 두고,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은 채로 쉴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샤워를 다 마치고도 계속 물을 맞으며 욕실에 서 있는 순간이 많아졌어요. 여기서 나가면 다시 모든 게 시작되니까요. 저한테는, 좋아하는 향으로 목욕하는 순간이란 게 그런 의미였어요. 무엇에도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을 들여다 보며 ‘리프레시’ 하는 시간. 그래서 ‘허구가 아닌 있는 그대로’라는 뜻의 ‘논픽션’으로 마음을 정하게 된 거죠.

 

 

론칭과 동시에 세포라에 입점한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솔직히 질문하자면, 어떤 지름길이 있었을까요.

입점 과정에 대해서라면, 모든 브랜드가 거친 과정을 논픽션 역시 똑같이 거쳤습니다. 지름길 같은 것은 없었지만 자신감 만큼은 충분했어요. 제품을 만들어 놓고 세포라에 내놓는 그 순간까지 거절당할 거란 걱정은 솔직히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규 브랜드 입점을 검토하는 MD 미팅을 통해 최선을 다해서 브리핑했고 좋은 피드백을 받아 입점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서울의 멋진 크리에이터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지만, ‘자신감’이란 단어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논픽션의 대단한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건 뭐예요.

간단해요. 향의 퀄리티가 높고 보틀이 아름다워요. 그러면서도 크게 비싸지 않죠. 아름다운 디자인 만으로도 첫 등장에는 이목을 끌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한번 찾은 고객이 계속 찾아주시지는 않을 거예요. 논픽션이 지금처럼 감사한 사랑을 받는 건 품질 자체가 좋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향은 술과도 비슷해요. 깊게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술을 마셔보면 느낌이 오는 것은 분명히 있잖아요. 향도 배워서 아는 게 아니에요. 직관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거죠. 실제로 논픽션의 향은 해외 톱 티어(Top-tier, 업계 최정상급) 브랜드 조향사들과 협업해서 만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국내 브랜드에 사용되는 원료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품질의 향료를 사용합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야길 해볼까요. 원을 따라 논픽션의 알파벳을 배치한 로고와 스페클드 디테일을 더한 짙은 초록색을 기반으로 하죠.

뉴욕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BI를 의뢰했어요. 처음 논픽션을 만들 때 너무 패셔너블 하거나, 쿨해 보이기만 하거나, 미니멀 하기만 한 디자인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미니멀 하고, 요즘 유행하는 폰트를 사용하며 그저 쿨해 보이는 브랜드는 너무 많으니까요. 현대적이면서 세련될 필요가 당연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외할머니 집에 온 것처럼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고 협업을 진행했어요.

 

 

‘외할머니 집 느낌’이란 뭐예요.

제가 20대 중반에 뉴욕에서 잠시 유학을 했거든요. 아파트 하나의 방 세 개를 룸메이트들과 나눠쓰던, 지극히 학생다운 생활이었죠. 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게 그때도 니치 브랜드의 향초와 온갖 좋다고 하는 보디 제품만은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것들을 사용하는 시간들로 행복을 크게 느끼는 편이었고, 식비를 아껴서라도 그건 써야 했던 거죠. 저부터가 향 제품의 헤비 유저였던 거예요. (웃음)

 

당시 어떤 프래그런스 브랜드 매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전혀 세련된 매장이 아니었는데 그곳에 들어선 순간 받았던 좋은 느낌만큼은 너무나 선명하거든요. 평범하고 어린 손님이었으니 의례적인 태도로 대할 수도 있었는데, “(제품을) 안 사도 되니 좋은 향도 마음껏 느끼고, 이걸로 기분 좋게 손도 씻어 봐”라는 태도로 맞아주더라고요. 그 순간 느낀 기분이 마치 외할머니 집에 놀러간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감정이었어요. 논픽션을 준비하면서 줄곧 그때의 느낌을 생각했어요. ‘환대하는, 친근한, 자연스러운, 균형감 있는, 겸손한, 놀라운, 조화로운’ 같은 단어가 논픽션에서 공간을 꾸미거나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상기하는 감정들입니다.

 

 

향 종류에 따라 원과 반원, 스퀘어로 구성된 탄탄한 디자인 시스템을 따르죠.

네 가지 향의 첫 라인업 중 ‘상탈 크림 SANTAL CREAM’은 무화과를 포함한 포근한 우디 계열, ‘젠틀 나잇 GENTLE NIGHT’은 그린티와 우드, 모스, 스웨이드가 변주되는 중성적인 향, ‘가이악 플라워 GAIAC FLOWER’는 강렬한 플로럴 머스크, ‘포겟 미 낫 FORGET ME NOT’은 바질 샴페인 노트의 상큼한 시트러스 향조를 대표해요. 최근 출시된 인더샤워 향은 패츌리, 비터 오렌지, 캄파리 어코드의 시트러시 우디 계열을 새롭게 해석한 향인데 포겟미낫과 같은 도형과 컬러에 라인업 되는 식이죠.

 

 

프래그런스 브랜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을 눈에 보이는 디자인으로 치환해야 하죠. 논픽션이 따르는 시각화의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친구들 등 여러 분야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향에 대한 감상 평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해 가는 거예요. 조향사로부터 받은 향의 노트(향을 구성하는 원물 요소)를 확인하기 전에, 직접 향을 맡아 보고 이미지를 자유롭게 떠올려 보는 편을 선호해요. 서로 감상을 주고 받다 보면 신기하게 이거다, 싶은 게 나오죠.

 

 

패키지의 경우는 어때요. 향 브랜드에 있어서 보틀 디자인이 브랜딩에 기여하는 바는 절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향 브랜드는 레이블 자체로도 내 취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향입니다만 특히 향수의 경우라면 향기 하나만으로 온전히 평가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향수를 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떠올려 보면, 좋은 향은 기본이고 그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 여기에 보틀 디자인까지 연장선상에 놓이며 총체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유미진

자료 협조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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