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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샌드위치에 진심입니다, ‘샌드위치 프레스’ ①

종잡을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지는 개성
현시대에 가장 뜨겁게 회자되고 있는 용어가 있다. ‘부캐’ 그리고 ‘N잡러’다. 그야말로 이것저것 다하는 사람이 다수의 인정을 받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의 우물만을 파야 성공한다는 과거의 통념과 제약에서 벗어나 자아가 지닌 가능성과 유동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고 있다.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하는 주혜린 대표도 이러한 흐름 사이에 있다.
샌드위치 프레스 로고 ©샌드위치 프레스

주 대표는 디자인 연구자이자 강사, 작가, 출판사 대표, 디자이너다. 그가 운영하는 샌드위치 프레스는 출판사이지만 굿즈도 제작하고, 디자인도 한다. 샌드위치 프레스가 발간한 책도 뚜렷한 장르나 기준이 없다. 샌드위치 프레스를 알린 대표적인 책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은 1980년부터 2010년 사이에 개봉한 해외 영화에 등장하는 샌드위치 장면을 수집한 도감이다. 주 대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샌드위치에 어떤 서사가 얽혀 있는지 70개의 장면을 엮어 도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책을 발간했다. 눈과 돌아간 입, 흐릿한 배경, 특유의 키치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대충 그린 이모티콘에 대하여>다. 이 책은 사람들이 낙서 형태의 이모티콘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회문화적 현상에 비추어 탐구한다. 주혜린 대표의 관심 주제는 본캐와 부캐를 아우르며 긴밀하게 연결되고, 서로의 위치를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하는 주혜린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Interview with 샌드위치 프레스

주혜린 대표
주혜린 대표

— 샌드위치 프레스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샌드위치 프레스는 출판사입니다. 주된 업무는 출판업이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그래픽 작업도 병행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 출간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여건을 충족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림 도시’나 ‘언리미티드 에디션’ 등과 같은 북 페어에 나갔을 때 출판사를 홍보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도 느끼게 되면서 책이나 샌드위치와 관련된 굿즈도 판매, 제작하고 있어요.

 

— 출판사를 운영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가 2015년도였어요. 그때 저와 같은 랩실에 있던 지인이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에 참여했었어요. 그 그룹이 만든 책이 있었는데 잡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고,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덜 정제돼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출판물이었습니다. 그때 독립출판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독립서점에 자주 가게 됐고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접하게 됐어요. 책이라고 하면 딱딱한 물성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로 엮은 것도 있고, 구멍을 뚫은 것도 있고,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책도 있었어요. 자주 보다 보니 창작 욕구가 생기게 됐어요. 무언가를 만들고는 싶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였어요. 일단 많이 보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라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 샌드위치 프레스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처음에 사업자 등록을 했을 때 출판사 상호명은 ‘누나온더비치’였어요. 누나온더비치에서 저는 주로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드로잉 위주의 작업들을 출판했어요. 그때는 제가 출판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석사 논문 작품을 독립출판물로 시작했던 주제의 후속 작업으로 생각할 만큼 독립출판물에 대한 애정이 컸는데, 본질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표현 매체에 대한 한계를 체감하게 됐어요.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샌드위치 책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생겼어요.

소다미술관 〈WE ARE COLLECTORS!: 나의 반려그림〉 참여작 〈만끽〉 ©샌드위치 프레스

— 어떤 사람들은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을 ‘샌드위치의 인문학’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샌드위치 도감은 어떤 계기로 출판하게 됐나요?

대학원에서 역사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수업에서 ‘분더캄머(Wunderkammer)’라는 개념을 접하게 됐어요. 분더캄머는 놀라운 것들을 모아 놓은 방이라는 뜻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시초가 된 개념이에요. 저는 분더캄머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나는 어떤 것들을 모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대상 자체가 흥미롭지는 않지만,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찾았던 것 같아요. 그때 마침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어요. 또 제가 샌드위치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 바쁘잖아요. 샌드위치 한 끼가 너무 든든한 거예요. 한 번에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면서 포만감을 얻을 수 있는 ‘샌드위치’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 샌드위치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유심히 봤어요. 그때까지도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은 ‘누나온더비치’였거든요.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 1쇄가 나오고 2쇄가 나왔을 때 상호명을 ‘샌드위치 프레스’로 변경을 하게 됐어요. 1막이 끝났으니, 2막이 시작될 차례라는 의미에서요.

내지 ©샌드위치 프레스
내지 ©샌드위치 프레스
표지 ©샌드위치 프레스

— <영화 속 샌드위치 도감>의 표지 디자인이 과감합니다. 길쭉한 판형을 활용해 확대한 샌드위치를 집어넣었어요. 제목을 포함해 글자들은 모두 뒷면에 표기했고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샌드위치들이 책의 주제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화적인 느낌을 표지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표지의 상단과 하단에 영화적인 이미지를 배치하려고 했는데, 샌드위치만을 배치해도 영화처럼 보일 수 있도록 제작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책의 판형도 길쭉한 형태로 선택했어요.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보이는 스크린의 비율을 떠올릴 수 있게요. 아무래도 표지이다 보니 제목이 들어가야 하는데 전면에 샌드위치 이미지를 넣고 나니까 부수적인 요소들이 들어왔을 때 방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방해되는 요소들은 모아서 뒤표지에다가 넣었습니다. 

 

 

— 출판사 이름을 ‘샌드위치 프레스’로 결정하기까지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샌드위치 프레스를 검색하면, 샌드위치를 압축하는 기계가 나와요. 샌드위치 압축 기계라는 명칭이 이미 있기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죠. “프레시 샌드위치 프레스는 어떨까?” 그런데 샌드위치 프레스 앞에 ‘프레시’를 붙이니까 지인들이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 같다는 거예요. 발음이 너무 어렵기도 해서 샌드위치 프레스로 결정하게 된 거예요. ‘샌드위치 프레스’를 검색했을 때 저희 출판사 홈페이지가 상단에 배치됐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굿즈 제작이랑 디자인 외주 작업도 하고 있는데, 업무는 어떻게 분배하는지 궁금해요.

전체적인 업무 중 외주 작업에 할애하는 비율이 60% 정도 되고 남은 시간에 개인 작업을 해요. 외주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외주 작업을 하고 나면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더라고요. 특히나 저는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어려워하는 편이거든요. 저는 무언가를 주도하는 일을 잘 하고 또 좋아해요. 어렸을 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음반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친구들의 포지션을 지정하고 분배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업무 지시를 효율적으로 내리고 또 잘 해낸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제가 일에 주도권을 잡고 있으니까 그 안에서 소통하는 방식에는 능숙했어요. 하지만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시키는 일만을 하는 업무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외주 작업은 60% 정도로 분배하고 있는데, 그중 40%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이고, 20%는 이제 브랜딩이나 그래픽 작업입니다.

샌드위치에 진심입니다, ‘샌드위치 프레스’ ①
▼ 2편에서 계속됩니다.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샌드위치 프레스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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