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4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 ‘미닝오브’ ①

“기록하고 싶은 소중한 이가 있나요?”
미닝오브는 2019년 청년이 힘을 모아 론칭한 기록 콘텐츠 회사다. 영화, 다큐멘터리, 잡지까지 형태를 넘나들며 콘텐츠를 만들던 이들은 문득, ‘기록’이 모든 콘텐츠의 바탕이라고 느낀다. 조명이 비추지 않아도 면면히 이어온 삶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 삶을 찬찬히 엮고 싶었다. 널려 있어서 날아가 버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미닝오브가 탄생했다.
〈이름 없는 갈비탕집의 이름〉 표지

이들은 개인부터 마을, 도시에 이르는 대상을 산뜻한 눈으로 살피고 기록한다. 44년간 ‘이름 없는 갈비탕집’을 운영해 온 이영자 씨의 삶을 글과 영상으로 묶거나, 개인의 역사를 짚으며 종로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해 왔다.

〈이름 없는 갈비탕집의 이름〉 내지 일부

미닝오브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단체이기 전에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청년 창업’ 하면 으레 떠오르는 방식과 상관없이, 미닝오브 멤버들은 저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사업을 일구고 있다. 2편에 걸친 긴 인터뷰에는 개별적 삶에 보내는 애정은 물론 흥미로운 청년 창업기가 담겨 있다. 미닝오브 장은진 총괄 디렉터, 정경희 디렉터가 참여했다.

1. 영화에 빠져 있던 청년들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이에요.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 경희 궁극적으로는 ‘기록’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는 기업이에요. 기록의 형태는 영상, 출판, 전시, 문화 기획 등 다양하게 차용될 수 있을 것이고요. 기록이란 미닝오브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콘텐츠에는 제작자의 시선이나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명하고 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 대상을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요. 기록은 어떤 본질을 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과도하게 반영하지 않고, 대상의 있는 그대로를 담을 수 있는 것이 ‘기록’이라는 행위라고 보았죠. 사실 그냥 콘텐츠 제작 기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미닝오브가 이 앞에 ‘기록’을 붙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의 태도를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이름 없는 갈비탕집의 이름〉 내지 일부. 페이지 속 QR 코드를 통해 주인공의 삶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멤버들이 영화 잡지 <세컨드>를 만드는 등 영화 관련 일을 계속해 왔다고요. 어떤 잡지였어요?

— 은진 늘 새롭거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세컨드>는 2014년부터 준비해서 2016년에 창간했는데요.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와 여성 서사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을 사는 여성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그런 여성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영화 속 다양한 모습의 여자를 소개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강할 수도 약할 수도 그 둘 다일 수도 있고,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여자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경희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이런 식으로 상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인 행위는 계속 달라지겠지만요. 어떤 무리, 혹은 무엇으로 자꾸만 명명되고 정의되고 있는 ‘누군가’의 다양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그 다양함을 직접 영화로 담다가, 실제 사람들 이야기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기록하여 콘텐츠로 선보이는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닝오브 촬영 현장

기록 콘텐츠 사업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는지 궁금해요. 의미는 물론 금전적 수익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로 보았나요?

— 은진 미닝오브를 비영리단체로 보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때마다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영세한(!) 영리 기업이라고 말씀을 드리죠. 그러면 곧바로 어떻게 돈을 벌고 있냐는 질문이 들어오는데요. 아무래도 기록으로 영리사업을 한다는 점이 생소해서 그런가 보다 짐작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록은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 태도가 담겨 있는 것이고, 모든 콘텐츠의 바탕이에요. 바꿔 말하면 어떤 콘텐츠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결국 미닝오브는 정말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고 그렇게 제작한 콘텐츠로 금전적 수익을 내고 있답니다.

촬영 현장

— 경희 처음에는 ‘스타트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실제로 중소기업벤처부와 기술보증기금에서 진행한 ‘예비창업패키지’로 창업을 시작하기도 했고요. 당시 청년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창업해야 한다, 이러한 루트로 가야 한다, 이런 이야길 많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스타트업을 하면 으레 투자를 받아야 하고, 투자를 받으려면 적어도 몇억, 몇백억 단위로 사업 규모를 키워야 하고…. 이런 말들이요.

이런 방식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사실 청년이 기업을 만드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잖아요. 나는 회사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의지를 고취할 수 있는지, 무엇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 잘 고민해 보고 사업의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에는 그런 목표를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꼈는데 이제는 달라요. 몇백억, 몇천억 이런 단위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시장과 그 가능성을 판단해서 그에 걸맞은 규모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새로운 사업 아이템과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피소 현장

신선한 오픈 파티, 대피소

 

미닝오브는 브랜드와 서비스를 소개하기 위해 2020년 6월 26일부터 3일간 세계관 오픈 파티 ‘대피소’를 열었다. 연극적으로 연출한 공간에 참석한 이들은 미닝오브가 만든 가상 상황에 몰입하며 스스로 삶을 돌아보았다. 모든 프로그램은 미닝오브가 탄생한 이유, 제공하려는 서비스와 연결돼 있었다.

 

일단 지인에게 먼저 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장 연설만 늘어놓으면 지루할 테니 색다른 오픈 파티를 기획했어요.

코로나19가 막 확산하는 시기여서 재난 상황,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여기에 ‘기록’이라는 콘텐츠를 더해 그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짰어요.

이때 참석한 분들이 훗날 미닝오브를 다양한 이유로 찾아 주었답니다.

소중한 이를 기록하고 싶다거나 회사 기록물을 제작해 달라는 이유 등으로요.

대피소 기획 계기에 대해, 경희

대피소 현장

‘역사를 기록하고 정돈해 콘텐츠화한다’는 중심은 갖고 있되, 아우르는 주제는 다양해 보여요. 개인, 동물, 여성, 청년, 노인,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등으로 뻗어 나가죠. 미닝오브가 기록하는 대상의 기준이 있나요?

— 은진 기록하는 대상의 기준을 딱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삶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사회 주변부의 목소리를 발굴하자는 회사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모든 개인은 소수자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미닝오브는 이런 부분을 수용하고 각 개인을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 경희 아무래도 이런 태도에 동의하는 분이 대체로 의뢰하세요. 그래서인지 의뢰인을 만나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유사한 것 같기도 합니다.

2. 개인의 역사를 콘텐츠화하는 일

영영의 〈생애기록집〉

미닝오브는 지난해 8월 바이오그래피 브랜드 영영(永永)을 론칭한다. 대표 상품 <생애기록집>에 관심 있는 개인 고객을 위한 B2C 브랜드다. <생애기록집>은 일종의 자서전. 이제까지 이 서비스를 이용한 이들 중 자신의 생애기록집을 스스로 의뢰한 사람이 전혀 없다는 점이 놀랍다. 생을 화려하게 꾸며 남기기 원한 적 없는 이들은, 자녀의 의뢰를 통해 <생애기록집>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영이 만든 책에는 장엄한 기승전결이나 영웅적 서사는 없다. 맞은 날을 아무튼 살아내는 동안 쌓인 흔적이 가지런히 놓였을 뿐이다.

〈생애기록집〉 패키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해 만든 콘텐츠라면 자서전과 닮았을 것도 같아요. 두 분은 자서전 대필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고요. 기존 자서전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 은진 자서전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포장’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점이 크게 아쉬웠어요. 인물의 삶을 듣고 문학적으로 가공해서 한 편의 소설처럼 만드는 일이 대필 작가의 몫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영웅적 서사를 만들기 위해 삶을 합리화하는 과정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자료를 모아 디지털화한다

— 경희 물론 어떤 부분에서 합리화가 필요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삶을 성찰한다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치유한다는 것은 합리화보다는 수용의 과정에 가깝지 않을까요? 합리화가 가득한 책은 결국 외면받기 쉬워요. 자서전이 완성돼도 자녀조차 읽지 않는다거나, 이벤트용으로 제작해서 책장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놓여 있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자서전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쓴’ 사람, 즉 주인공을 위한 콘텐츠라고 많이 인식하는데, 우리는 이 부분이 달라져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모든 콘텐츠는 끝내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을 고려해서 만들어지잖아요. 그런데 자서전은 유독 그렇지 않았어요. 오로지 자서전을 쓴 사람을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되다 보니 읽히지 않고, 심지어 다른 누군가를 상처입히기도 하거든요. 이런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이런 지점을 보완해서 새로운 자서전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몇 년 동안 연구했어요. 그렇게 자서전 상품 <생애기록집>이 나오게 됐죠.

직접 쓴 글, 편지 역시 귀한 자료가 된다

영영의 생애기록집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나요?

— 경희 두 가지 루트로 기록을 진행해요. ‘생애 구술 기록’이라고 해서 기록 대상자의 삶을 면밀하게 조사해요. 인터뷰로 구술 기록하기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삶 이야기가 나오도록 구성하지요. 이런 이야기는 문학적 가공을 거치지 않고 말투를 그대로 살려 실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집해요. 그리고 기록 대상자의 삶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를 찾아내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한답니다. 기록 대상자가 사는 공간, 손때 묻은 물건, 일상에서 남긴 수많은 메모, 일기, 편지, 사진 등을 모아 디지털로 기록하고 이미지화해요.

〈생애기록집〉 촬영

구술 기록 작업 과정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만날 것 같아요.

— 은진 이 일을 하면서 청년과 노년의 언어가 정말 다르다는 걸 절감해요. 일례로 80대 여성과 구술 작업할 때 며느리 되는 분이 통역해 주실 정도로요. 사투리 영향도 있겠지만 여성 청년으로서 제가 자주 구사하는 감정 표현의 언어, 가치 지향적 언어가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 장소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곳이 어디예요?”라든가 “그때 어떤 기분을 느끼셨어요?”라든가…. 우리가 굉장히 익숙하게 쓰는 언어가 그분에게는 전혀 와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작업을 위해 오래된 앨범을 열어 보거나 글을 남기는 모습

그 뒤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기록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사람의 언어와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대화에 적용하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계속해서 실버 세대와의 대화를 연구하는 이유예요.

홈페이지에서 자서전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올려 두었더라고요. 기록 콘텐츠, 특히 자서전을 주력 콘텐츠화하는 일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 은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닫힌다.’ 미닝오브의 비전이에요. 기본적으로 기록 대상자가 되는 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는 태도를 지니려고 무척 애를 써요.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해 다방면으로 공부하게 되거든요. 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편견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걸 계속 깨닫고 있어요.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 ‘미닝오브’ ②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미닝오브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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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 ‘미닝오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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