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프라다의 런웨이 쇼를 관람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튼튼한 종이 판자로 만든 의자에 앉아야 했다. 종이 한 장을 가져와서 네 개의 사각형을 자르고, 그것은 대형 창문과 벽이 된다. 네 개의 사각형을 조립하면 집이 만들어지고 집은 또 다른 집을 만든다. 천장에는 흰색 종이가 매달려 있고, 갈색톤의 부드러운 질감의 바닥은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재료는 줄였지만 메시지는 확장시켰다. 모든 것이 건축가의 모형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부풀린 것 같다. 이 무대 세트는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올해 일흔 일곱의 렘 쿨하스의 최신 컬래버레이션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두 디자이너 간의 흥미로운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1999년 프라다 매장 리노베이션 요청으로 처음 만난 두 디자이너의 인연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오고 있다. 렘 쿨하스는 사색을 유도하는 프라다 컬렉션에 걸맞은 창의적인 공간 제작을 수행하는 작업으로 매 프로젝트 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종이는 단순한 재료지만, 그 의도를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마치 아이들의 상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과 같은 건축 요소로서의 특성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
OMA의 프로젝트 설계자 줄리오 마르게리(Giulio Margheri)는 이번 시즌의 주제가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순진함, 단순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종이를 대하는 방법이자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기본 개념이라고 말한다. 또한 컬렉션과 관련된 정보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의 표현에 기반을 두는데, 작업을 시작할 때 미완성인 컬렉션의 단면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디자인하려는 노력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특히 이번 페이퍼 하우스의 디자인은 관람객이 별도의 방에 앉고 모델이 출입구를 통과하는 고전적인 꾸뛰르 하우스를 연상케 한다. 기본적으로 쇼를 위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직선의 런웨이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제고하기 위한 렘 쿨하스의 의도다. 프라다 측은 이 페이퍼 하우스가 친밀함을 개념화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현실과 일상을 반영한 소재와 이미지를 옷의 배경이 되거나 주인공 그 자체로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식에 도전하는 또 다른 맥락을 펼쳐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부터 프라다 쇼의 무대를 디자인한 렘 쿨하스는 컬렉션을 선보일 새로운 공간을 개발할 때 소셜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특정 색상이나 카메라에 담기는 상업적으로 적합한 구도 등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받았지만, 인스타그램을 위한 세트를 만들지는 않는다고. 이러한 OMA의 대답은 관람객이 없었던 시절 심각한 팬데믹 비디오 쇼를 보듯 흥미로웠던, 바로 런웨이를 영화 세트 스튜디오로 탈바꿈 시킨 쇼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쇼는 소셜 미디어가 아닌 바로 대중의 존재가 보장해야 했던 새로운 종류의 인공성, 혹은 진정성과 관련이 있다.
프라다의 2023년 S/S시즌 남성복 쇼는 ‘선택의 힘’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입을 수 있지만 임팩트가 있는 옷에 관한 것으로, 프라다가 추구하는 패션 철학을 드러낸다. 이 선택의 힘은 미우치아 프라다와 2020년 부터 합류한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Raf Simons)의 새로운 파트너십이 시작된 이래, 패션에서 디자이너가 갖는 창조력의 중요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둘의 시너지로 인해 프라다의 컬렉션은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귀결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렘 쿨하스의 OMA로 인해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번 시즌 남성복 컬렉션의 메인 모티브는 전형적인 기본 아이템인 슈트, 오버코트, 스웨터, 셔츠, 데님, 가죽이다. 익숙한 아이템은 컨텍스트를 통해 재창조되기 마련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결과 뒤에는 의류의 에센스를 빛내기 위한 치밀한 정제 과정이 있다. 이것은 또한 남성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여 남성의 옷차림에 대한 규범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라이프 스웨터, 체크 재킷 또는 가죽 쇼츠와 같이 고유한 고전적인 룩은 새롭게 페어링 됨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몸에 베인 길들여짐 혹은 세련된 것에 대한 동경의 기억을 소환한다. 크롭 팬츠와 모던 카우보이 부츠를 매치한 룩이나 짧은 브리프 코트에 긴 카디건 스타일링이 그 예다. 스키니 팬츠와 칼라가 제거된 블루종 재킷, 바지에 울 리브 스웨터를 매치한 것은 의도적으로 축소된 비율을 드러내며, 컬러 스트라이프는 복고풍을 이야기 한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마찬가지로 렘 쿨하스는 자신의 창작 활동이 사회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이번 시즌에 겸손한 자세로 100%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사치에 대한 특별한 저항”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런웨이 위의 모델들이 수천 달러에 팔릴 트리밍 울 슈트와 핏되는 가죽 반바지를 입고 걸어 나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주장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렘 쿨하스는 의류를 판매하는 비즈니스맨이 아닌, 분위기를 전달하고 사고 방식을 투영하는 작업을 하는 건축가가 아닌가. OMA는 오래 전부터 프라다라는 브랜드와 함께 쇼 공간 디자인에서 자원 낭비에 대한 일정한 저항을 공유해 왔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에서 럭셔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부드러움과 겸손을 전달하는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였다.
OMA는 옷 한 자락도 보지 않고 세트를 디자인했지만 최종 결과물에는 반드시 상호 영향이 뒤따른다고 한다. 파워 숄더와 두툼한 보머가 특징이었던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2023년 봄 여름 시즌에는 마치 원단이 부족한 상태로 제작된 것처럼 갑작스럽게 생략된 디테일들이 눈에 띈다. 가장 화려한 디자인은 교묘한 깅엄 체크였고, 워킹맨 데님으로 4회나 연속적인 룩을 연출했다. 과대 광고의 냄새를 쫓아가는 유일한 액세서리는 빈티지처럼 보이는 광택을 낸 과장된 발가락 웨스턴 부츠였다. 오늘날 사치품이 갖는 다층적인 의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쇼가 끝나면 의류들은 쇼룸으로 보내질 것이다. 그렇다면 세트장은? 철거되고 재활용될 것이다. 이러한 점은 렘 쿨하스와 OMA가 지속가능성에 대한 프라다와의 상호 협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간 생성에 부여되는 가치가 컬렉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렘 쿨하스의 모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 김정아 해외 통신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