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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07-05

2022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기획한 사람은?

“저에게 아름다운 책이란, 공간을 내어주고 싶은 책입니다.”

책은 정신 산물의 기록이자 시공간을 초월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기능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절대적일 것만 같았던 책의 권위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 앞에서 점차 무너지고 있다. 변화가 가속화되는 현 사회에서 정신 산물을 기록할 수 있는 매체는 많아지고 또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선정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 대한출판문화협회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종이책은 e-book이나 웹사이트 등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종이책의 가치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종이책이 정보 전달만을 수행하는 ‘읽히는 대상’이 아닌 ‘보이는 대상’으로 확대됐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종이책이란 대량생산으로 획일화되는 출판물이 아니라 예술성을 가미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보고 듣고 만지는 등 인간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매체여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열렸던 2022 서울국제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전시는 이러한 시각에 맞닿아 있다. 전시는 종이책의 효용성과 가치를 논할 때 내용적 측면에만 방점을 두지 않는다. 책의 형식과 내용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표지와 내지, 편집 구조, 종이와 인쇄, 제본의 완성도 등 책을 이루는 모든 디테일을 고려한다.

* 최대 규모의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은 2020년부터 공모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뽑아 전시를 열어 왔다.
2022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 전경 © heyPOP

읽히는 대상에서 나아가 보이는 대상으로서 종이책. 전시는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대상을 크게 확대하고 잉크가 아닌 빛을 통해 제시했다. 옥외광고를 연상시키는 책의 면모에 관람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전시를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 기획자는 종이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책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부각하고자 했을까? 전시를 기획한 워크룸의 유현선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Interview with 유현선 디자이너

사진 제공: 유현선 디자이너 © 워크룸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2020년부터 워크룸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이미지 프로젝트 그룹 파일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지.

저는 전시로 대상을 보여줄 때 ‘모든 내용을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할지’ 보다 ‘중요한 내용을 어떻게 강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먼저 생각해요. 전시는 읽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은 지난 3년간 디자인을 기준으로 서른 권의 책을 선정했어요. 제목처럼 ‘아름다운’ 서른 권의 책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책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어요. 이미지와 글이 대표적인 요소로 간주되긴 하지만 피와 땀이 들어가는 ‘작은’ 요소도 있지요.

책은 대체로 한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종이 묶음이에요. 디자이너는 이 손바닥 크기의 정육면체 안에서 여러 선택을 하게 됩니다. 글과 이미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쪽 번호는 어디에 배치할지, 서체와 종이는 무엇을 선택할지, 제본은 어떻게 할지, 후가공은 어떻게 더할지 등을 고민해요. 서른 권의 책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을, 별로 티도 나지 않는 선택과 고민이 조화를 이뤄 거둔 성과입니다. 이 사소한 고민을 아주 크게 확대해 보여주었어요.

사진 제공: 유현선 디자이너 © 워크룸

출판물 형태가 아니라 빛이 나오는 간판처럼 구현한 점이 흥미로웠어요. 잉크CMYK를 빛RGB으로 제시한 이유는.

버스 정류장이나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광고판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발광하는 빛으로 밝혀진 광고판 속 대상은 자신을 과시하며 관람자의 시선을 빼앗지요. 대형 광고판에 담긴 책은 단순히 내용을 담는 그릇이 아닌, 광고 속의 매력적인 상품이 됩니다. 책은 CMYK 잉크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RGB 이미지로 다가와 낯설면서 동시에 친숙한 무엇이 돼요.



CMYK를 RGB로 구현할 때, 색과 디테일에 변화가 생기지 않나요?

CMYK를 RGB로 그대로 구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RGB 상태의 이미지가 최대한 빛나면서 보이길 바랐습니다. 어차피 실물 그대로를 옮겨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자체로 빛나는 대상으로 보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정 도서 촬영은 김경태 작가님께서 해주셨어요. 높은 선명도와 아이소메트릭(Isometric)*에 가까운 구도로 촬영하시는 작가님의 평소 작업 스타일이 서른 권의 디자인을 잘 보여주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작가님께서는 각 책의 디자인 특징이 사진에 극적으로 담길 수 있도록 연출해 촬영해 주셨어요.

* 아이소메트릭은 대상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X축과 Y축, Z축을 각각 120도가 되게 해 물체를 표현하는 투시도법을 지칭한다.
사진 제공: 유현선 디자이너 © 워크룸

책 간판을 어슷한 구조로 구현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공간 디자인은 포스트스탠다즈의 김민수 실장님과 함께 작업했어요. 관람자가 전시를 볼 때만큼은 거대한 책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을 받았으면 했습니다. 어긋나게 놓인 책 광고판은 관람자로 하여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책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책과 제목을 배치할 자리를 마련하다 보니 좁은 옆면이 생겼는데,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책처럼 보이기도 해요.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동일한 행사를 올해 4월에 열린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는 2022년 선정작이 발표되지 않아 2020년, 2021년 선정작만 전시했어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보고타로 출장을 다녀왔고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고타국제도서전에서의 전시는 해외에서 열린 전시인 만큼 현장 설치에 한계가 많았어요. 그래서 변수를 최소화한 구조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구조에 사용하는 나무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작이 용이한 단순한 구조로 설치물을 기획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전시는 비교적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예산 범위 내에서 원하는 형태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나무 패널을 라이트 박스로 변경하고 모서리 마감을 이전보다 신경 써 제작했습니다. 보고타국제도서전의 전시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진 제공: 유현선 디자이너 © 워크룸

디자이너님에게 종이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저에게 종이책과 전자책은 내용을 전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따금 종이책의 가독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볼 수 있지만 매일 스크린으로 텍스트를 읽는 현시점에서 더 이상 유효한 의견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은 종이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책 디자인은 보통 매체와 시스템에 종속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판형은 스크린 비율이나 A4 등의 규격에 맞춰 만들어지고, 심지어 폰트나 행간을 포함한 판면은 주어진 몇 개의 옵션에서 독자가 선택하게 되어 있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종이책의 디자인 양상과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디자이너님에게 ‘아름다운 책’은?

저는 ‘읽고 싶은 책’ 대부분을 전자책으로 구입하고 있어요. 악명 높은 서울 땅값을 생각한다면 공간의 일부를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아름다운 책’이란 공간을 내어주고 싶은 책입니다.

하도경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워크룸, 유현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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