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31

파샤드 파르잔키아 아시아 최초 개인전

전시 <만 개의 눈>
이태원에 자리한 파운드리 서울에서 이란 태생의 덴마크 작가 파샤드 파르잔키아(Farshad Farzankia)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만 개의 눈(Ten Thousand Eyes)>이 지난 7월 15일부터 오는 9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16년부터 회화 작가로 전향한 그는 덴마크 미술계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이란과 서구 문화의 중첩 속에서 탄생한 신작 회화 17점과 드로잉 25점을 소개한다.
'파샤드 파르잔키아, Ten Thousand Eyes, 파운드리 서울, 2022' 전시전경 © 노경 Courtesy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파샤드 파르잔키아, Ten Thousand Eyes, 파운드리 서울, 2022' 전시전경 © 노경 Courtesy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 과감한 형태와 단순한 구성, 거침없는 붓질로 눈길을 끄는 그의 그림은 남다른 성장 배경에서부터 출발한다. 1980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난 파샤드 파르잔키아는 이슬람 혁명의 여파로 가족들과 함께 덴마크로 이주했다. 일찍이 덴마크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적, 정치적 제약 없이 다채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파샤드 파르잔키아는 파블로 피카소와 아스거 욘 등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뉴 저먼 시네마 운동을 이끈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던의 영화, 미국 가수 밥 딜런의 노래와 가사에 매료됐다. 이와 동시에 자신이 떠나온 고향 이란의 전통과 문화에도 호기심을 지녔는데, 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문학과 철학자 자라투스트라의 사상 그리고 이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탐구해 왔다. 이처럼 이란의 전통과 서구의 문화를 고루 접해 온 작가의 다문화 경험은 자신의 회화에 잘 녹아 있다.

파샤드 파르잔키아, Guardsmen,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그의 회화에는 각기 다른 문화 요소가 화면 속에 중첩되어 있는데 대표적으로 ‘Guardsmen'(2022)를 꼽을 수 있다. 커다란 화면을 네 개로 분할한 화면 구성, 강렬한 원색 사용 그리고 색채의 대비는 미국 팝아트 작가인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한 화면을 분할하고 대상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구조는 서양의 현대 미술과 그래픽 디자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한편, 화면 속 인물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머리 위에 착용하는 터번을 두르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의 자세는 고대 이집트 벽화처럼 옆모습으로만 표현했다. 파샤드 파르잔키아는 현대 미술과 그래픽 디자인의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화면 속에서는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향한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왼쪽) 파샤드 파르잔키아, Mithra in Darkwater,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오른쪽) 파샤드 파르잔키아, Ahura,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Mithra in Darkwater’(2022)와 ‘Ahura'(2022)에서는 자신이 떠나온 이란의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두 단어 ‘미트라(Mithra)’와 ‘아후라(Ahura)’는 고대 페르시아의 유일신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숭배하는 신의 이름이다. ‘미트라(Mithra)’는 태양의 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아후라(Ahura)’는 신 중에서도 최고의 신으로 오랜 시간 숭배되어 왔다. 파샤드 파르잔키아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을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표현을 시도했다. 특히 ‘Mithra in Darkwater’(2022)에서는 얼굴의 생김새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신화 속 인물의 모습과 오늘날 이란을 상징하는 색이자 국기에서 볼 수 있는 초록색, 흰색, 붉은색을 화면 곳곳에 드러내 눈길을 끈다. 반면 조로아스터교에서 최고 신으로 불리는 ‘아후라(Ahura)’를 표현한 ‘Ahura’(2022)는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의 형상과도 닮았다. 태양과 전쟁의 신 ‘미트라(Mithra)’의 얼굴이 모호하게 표현된 것에 비해 뚜렷하게 그려진 눈, 코, 입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번 신작을 제작하며 자신만의 ‘의미의 사전(Lexicon of Meanings)’을 활용했다. 그는 눈, 불꽃, 사자, 새 등 다채로운 상징체계를 그림 속에 등장시켰는데, 신들의 신으로 불리는 ‘미트라’의 또렷한 눈은 작가가 의도한 상징체계 중 하나로 자리한다.

(왼쪽) 파샤드 파르잔키아, Ghostship,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오른쪽) 파샤드 파르잔키아, Tension of arrival,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파샤드 파르잔키아의 그림 속 상징체계는 ‘Ghostship’(2022)과 ‘Tension of Arrival’(2022)에서 보다 다양하게 등장한다. ‘Ghostship’(2022)의 화면 정중앙에 크게 자리한 새는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시어에서 인용했다. 날개를 활짝 펼쳐 보이는 새는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날아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새는 자유와 움직임을 상징한다. 새와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동물 사자는 ‘Tension of Arrival’(2022)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에 누워있는 사자는 ‘선을 행하고 악에 맞서 싸우라’라는 조로아스터의 교리를 함축하는 상징이다. ‘Atlas and the Eye in the Sky’(2022)에 등장하는 불꽃 또한 악에 대항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가르침을 말한다.

파샤드 파르잔키아, Atlas and the eye in the sky,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그림마다 강조한 ‘눈’ 또한 주목해서 봐야 할 상징이다. 눈은 사람의 진실한 감정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과도 같다. 국가와 지역, 종교의 차이 속에서도 눈의 상징성과 보편적인 의미는 통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림 속 상징이 단순히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관객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시작점이 되기를 선호한다. 전시 제목 ‘만 개의 눈’ 또한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 작가 자신 또한 하나의 문화권에서 자란 것이 아니기에 설득력은 충분하다. 더욱이 그래픽 디자인에서 회화라는 순수 예술의 세계로 들어온 그 배경을 생각한다면 그의 작업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은 작가의 의도에 맞지 않는 처사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고유성이 중요해진 오늘,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파샤드 파르잔키아의 그림은 오늘날 우리에게 고유의 창작 세계를 만들어 가보기를 권유한다.

파샤드 파르잔키아, Negotiations skills 3, 2022 © Malle Madsen Courtesy the Artist, Farshad Farzankia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파운드리 서울

프로젝트
<만 개의 눈(Ten Thousand Eyes)>
장소
파운드리 서울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23
일자
2022.07.15 - 2022.09.08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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