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5

동물 탈을 쓰고 누운 사람들의 사연은?

‘잠’을 해석한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선, 전시 <나의 잠>
잠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에게 필수적인 활동이자 일상적인 행위다. 기획 전시 <나의 잠>은 사회 보편적인 통념을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해석한 국내 19개 팀(작가)의 작업 70여 점을 선보인다.

어떻게 전시 관람하는 것이 좋을까?

(한낮) 김홍석 , 조각(설치) 12점, 2017~2019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구 서울 역사에 동물 탈을 쓴 사람들이 여기저기 누워있다. 무슨 퍼포먼스라도 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미술가 김홍석의 설치 작품 <침묵의 공동체>로 사실 진짜 사람이 아닌 실감 나게 만든 모형이다. 각기 다른 직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동물 탈을 쓰고 이곳에 나와 침묵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상황을 재현했다. 공공의 장소에서 앉거나 드러누운 사람들의 모습은 잠이라는 사적인 영역과 충돌과 흡수를 반복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성한다.

2022 문화역서울284 기획전시 전시 전경 사진: 이소진 기자

이처럼 잠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에게 필수적인 활동이자 일상적인 행위다. 또 삶의 총량에서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쟁과 성공을 위해 줄여야 하는 강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기획 전시 <나의 잠>은 사회 보편적인 통념을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해석한 국내 19개 팀(작가)의 작업 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 총괄한 유진상 예술 감독은 “전시를 통해 ‘잠’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고, 작품에 자신을 투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잠이 ‘나머지’ 또는 ‘여백’이 아닌 삶의 커다란 영역으로 다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잠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1] 한낮: 나의 잠, 너의 잠

김홍석, 스튜디오 하프-보틀, 워드 워크스
(한낮) 김홍석 , 조각(설치) 12점, 2017~2019 | 사진 : 이소진 기자

낮에 자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시에서는 한낮뿐 아니라 공공의 잠에 주목했다. 우리가 공원에 누워 자거나 전철 안에서 눈을 붙이는 상황이라면 계속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적인 잠이 아닌 공공의 잠이다. 조각, 회화,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등 장르를 오가며 작업 활동을 펼치는 김홍석 작가는 가상의 퍼포먼스를 펼친다. 대학생, 주부, 전직 트럭 운전사, 영화 배우, 마사지사, 망명가, 전직 경비원, 현대무용가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대로 가만히 있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들의 사연은 각 인물 앞에 놓인 팻말에 자세히 쓰여 있다. 해학과 재치 이면에 사회의 모순과 시스템의 부조리가 드러난다.

[2] 23:20 반쯤 잠들기

김대홍, 로와정, 이성은, 정민성
(11:20) 김대홍 , 영상설치, 가변공간 설치, 혼합재료, 프로젝터 및 싱글채널 비디오, 33x25x40cm 내외, 2022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11시 20분. 곧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 내일을 위해 이미 잠들어야 마땅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깨어있는 적이 많다면 생각해 보자.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거나 넷플릭스 혹은 쇼핑몰을 전전하느라,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하느라, 마감 때문에 야근을 하고 있거나. 잠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재생 활동이지만 동시에 성취나 즐거움을 위해 줄이거나 미뤄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 10분을 안 자고 공부하면 미래의 배우자가 바뀐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도로에서의 사망 원인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졸음운전이다. 피로 사회가 만든 악몽이다. 전시에서는 이 시간을 ‘연장된 낮’ ‘반명반음chiascuro의 시간’으로 본다. 오늘도 사람들은 이 시간을 즐기고 소비하기 위해 열렬히 깨어 있다.

[3] 1:30 작은 죽음

심우현, 여다함, 최윤석
(01:30) 심우현 , 리넨에 유화, 207x150cm, 2022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사람이 가장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 새벽 한 시라고 한다. 이때는 잠의 주체와 사물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이 순간은 치유를 약속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4] 3:20 잠의 시공간

우정수, 유비호, 이원우
(03:40) 유비호 , 단채널 영상, 31분 55초, 2022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우정수, 미래는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2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의 시간. 인간의 뇌는 이 시기에 기억과 고통에 연관된 많은 정보들을 정리한다. 깊은 잠과 선잠을 번갈아 가면서 대체로 선명한 꿈을 꾸는 시기가 이때라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잠>에서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수많은 사건과 장면들을 연결하면서,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숱한 경험들을 통해 현재의 인간으로 진화해왔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펼친다.

[5] 새벽에 잠시 깨기: 함께 잔다는 것

무진형제, 박가인, 팽창콜로니
(새벽에 한 번 깨기) 무진형제 , 싱글 채널 비디오, 4K, 16:9, 스테레오 사운드, 30분 34초, 2019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6] 7:00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오민수, 최재은, D 콜렉티브
(07:00) 최재은 , 혼합매체설치(소금, 재, 파편, 물방울 소리), 600x300x50cm, 2022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팀 제공

이른 새벽, 잠에 들었다 잠시 깨는 시간. 이때 사람들은 기억도 못 할 만큼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기도 하고 뒤척거리다 잠들기도 한다. 최재은 작가는 잠과 현실의 모호한 중첩처럼 소금과 재를 중첩시켰다. 거대한 소금 설치품에 재와 사슴 모형물이 흩어져 있다. 불의 흔적인 재는 잠의 흔적을 의미한다.

한편, 전시장에는 실제로 쪽잠을 취할 수 있는 간이 공간 ‘슬립존’이 운영된다. 또 사회학, 과학, 예술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한 토크 프로그램 ‘슬립토크’는 <잠의 사회학>, <잠의 예술학>, <잠의 과학> 이라는 주제로 8월 6일부터 3주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문화역서울284 RTO에서 진행된다. 전시 콘텐츠는 이곳에서 온라인으로도 관람 가능하다.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프로젝트
<나의 잠>
장소
문화역서울284
주소
서울 중구 통일로 1
일자
2022.07.20 - 2022.09.12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문화역서울284
기획자/디렉터
예술감독 | 유진상, 큐레이터 | 조주리, 이야호
참여작가
김대홍, 김홍석, 로와정, 무진형제, 박가인, 스튜디오 하프-보틀, 심우현, 여다함, 오민수, 우정수, 워드 워크스, 유비호, 이성은,이원우, 정민성, 최윤석, 최재은, 팽창콜로니, D 콜렉티브
이소진
헤이팝 콘텐츠&브랜딩팀 리드.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라이프스타일, 미술, 디자인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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