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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MDW 2024 ①] 디자인은 어디로 진화하는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미래, 살로네 델 모빌레 Salone del Mobile
ⓒ Alessandro Russotti
ⓒ Salone del Mobile.Milano

매년 4월이면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기다리는 축제가 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인 가구 박람회, 바로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이하 밀라노 가구 박람회)’이다. 4월 16일부터 21일까지 로 피에라 밀라노(Rho Fiera Milano)에서 열린 올해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는 총 37만 명의 방문객이 몰렸다. 특히 작년보다 20.2% 증가해 역사적인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고. 35개 국가, 2천여 개에 달하는 참여 브랜드는 물론 전시장이 서울 코엑스몰의 약 4.7배(172,50㎡)라니 수치만으로도 전시 규모를 실감케 한다. 올해 62회째 맞이한 밀라노 가구 박람회는 ‘디자인은 어디로 진화하는가? Where Design Evolves?’라는 주제로 지속적인 미래 디자인과 그 가능성을 엿보는 시간이 되었다. 2년마다 돌아오는 주방·욕실 전문관인 ‘유로쿠치나(EuroCucina)’와 ‘국제 욕실 전시회 International Bathroom Exhibition가 함께 열렸는데 최첨단 기술의 디자인을 경험하는 기회였다. 특히 이번 밀라노 가구 박람회는 전시 기획부터 세부 콘텐츠까지 ‘지속 가능성’에 집중한 눈치다.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찾고 진화하는 미래 디자인을 보여주었던 현장에서 찾은 메시지를 모았다.

전시 디자인도 지속 가능하게

이번 박람회가 더욱 기대가 되었던 건 밀라노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의 회장 마리아 포로의 행보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마리아 포로 회장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던 2021년 여성 최초이자 최연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성으로 시간과 자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실제로 유럽 전시업체 최초로 지속 가능한 실천에 참여하는 UN 글로벌 콤팩트(UNGC)에 가입하는가 하면 유럽 박람회 최초로 ISO 20121(이벤트 지속가능경영)인증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을 맞아 내한하여 디자인의 혁신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 Ludovica Mangini

핵심은 이번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을 보여주었다는 것. 우선 참가 업체들이 재활용이 가능한, 석고 보드 대신 나무 패널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디자인과 기술의 관계, 형태와 기능의 상호작용에 집중하여 미래 디자인을 관람객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고민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박람회에서 눈에 띄는 차별성을 꼽자면 새로운 전시 레이아웃과 박람회장의 동선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방문객 1,200명의 집중 인터뷰와 신경과학 실험 결과를 토대로 행사장 배치를 했다. 더불어 행사장의 통로 수를 줄여 걷는 시간을 10% 줄이고 휴식 공간을 늘려 관람객의 집중력을 높였다.

ⓒ Salone del Mobile.Milano
ⓒ Salone del Mobile.Milano

박람회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생각하는 방(Thinking Rooms)’은 현장에서 긴 줄이 끊임없이 이어질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다. 레드 벨벳 커튼으로 덮인 두 개의 파빌리온은 입구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게 했다. 마치 데이비드 린치의 머릿속에 끌려 들어온 듯 작은 공간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이곳에서 더 나은 생각을 발견하고 에너지, 행복, 창의성을 찾길 바라는 기획의도가 느껴졌는데 “디자인은 규모보다 퀄리티가 중요하며, 우리 주위를 둘러싼 사물을 통해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를 시각화 해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AI와 함께 지속 가능한 일상, 유로쿠치나

© Monica Spezia
© Monica Spezia

“냉장고 한 대 사면 십 년 이상은 써야지”란 말이 이제는 옛말 같다.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기술에 속도를 맞추려면 새로 출시하는 가전제품을 눈여겨봐야 한다. 가장 먼저 기술을 시도하고 진화를 꾀하는 분야이기 때문. 또한 영민하게 인간과 교류하는 기술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유용함과 편리함 덕분에 계속해서 신제품을 찾게 되니 말이다. 이번 밀라노 가구 박람회의 ‘유로쿠치나(EuroCucina)’에서 돋보였던 건 주방을 점령한 AI 기술이었다. 여러 모습으로 활용된 AI는 단순히 트렌드로 읽히기보다 현대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케 했다.

© SAMSUNG
© SAMSUNG

전 세계 여러 브랜드에서 AI를 탑재한 가전 제품과 스마트 빌트인을 앞다퉈 선보이며 유로쿠치나는 하나의 거대한 미래 주방 같았다. 그중에도 유로쿠치나에 참가한 국내 브랜드의 부스가 주목받았다. 삼성전자는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부스를 마련해 ‘비스포크 AI’ 가전 라인업과 유럽 시장을 겨냥한 빌트인 패키지를 전시했다. 삼성전자는 문승지, 장호석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중 문승지 디자이너가 함께 꾸민 ‘우리는 숨 쉰다(We Breathe)’ 존은 AI 기술을 탑재한 가전이 지속 가능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자사 기술로 완성한 AI 기능을 탑재한 가전이 애플리케이션 ‘스마트싱스’ 하나로 정교하고 매끄럽게 연결하면서 일상을 더욱 편리하게 해준다는 시나리오를 구현했다. 특히 신제품인, AI 비전 인식 기술을 적용해 식재료를 스스로 파악하는 ‘비스포크 AI 패밀리 허브 냉장고’와 AI 홈 기술로 기호에 맞는 음식 레시피를 제안해 주는 ‘애니플레이스 인덕션’이 관람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LG전자의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전시존. © LG
© Monica Spezia

한편 LG전자는 ‘식(食)문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콘셉트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주방의 모습을 그려냈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부터 매스 프리미엄 제품군까지 선보였는데 이번 전시는 동서양 하이브리드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앤피가 공간 디자인에 참여했다. AI를 접목한 오븐 제품도 첫 선을 보였다. 내부 AI 카메라로 재료를 식별하고 다양한 요리법과 조리에 최적화된 온도와 시간 설정해 주는 기능을 담아 편리하고 지속적인 일상을 제안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AI 가전을 만날 수 있었다. 유로쿠치나에 가장 큰 규모로 참가한 독일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 보쉬(Bosch)는 아마존 알렉사를 통해 음성으로 코스를 선택하는 오븐을 선보였고, 독일 가전 브랜드 밀레(Miele)는 손잡이 없이 센서로 문이 열리는 빌트인 가전을 공개했다. 중국 가전기업 하이얼(Haier) 또한 인오븐(in-oven) 카메라 ‘바이오닉 비전’ 기술과 냉장고 속 재고를 파악하고 인덕션을 켜고 끄는 등 연결성을 높인 애플리케이션을 제안하며 이목을 끌었다.

물 절약으로 실천하는 지속 가능성, 국제 욕실 전시회

AXOR Citterio C / Antonio Citterio © Ramona Balaban
(좌) Victoria + Albert Ledro (우) Kohler Rista 3D © Ramona Balaban
(좌) Ceramica Cielo Nu / Studio Inma Bermúdez (우) Arbi Arredobagno Master © Ramona Balaban

유로쿠치나와 함께 열린 ‘국제 욕실 박람회’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제시했다. 올해로 10회째 맞이하는 국제 욕실 박람회는 180여 개의 브랜드가 참가하여 신기술과 디자인을 선보였다. 전체적으로 돋보였던 건 소재. 마감재부터 수전, 액세서리 등 욕실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친환경적인 소재를 활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몇 년간 럭셔리 인테리어가 인기였던 욕실이 개인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면서 다채로운 디자인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음성 인식 시스템, 스마트폰 연동 서비스, 헬스 케어 등의 기술로 사용자에 밀착한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 Salotto.NYC © Paolo Riolzi

이번 국제 욕실 박람회는 ‘물 절약’을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표면 아래(Under the Surface)>라는 특별 부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과의 관계,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일상에서 실천하며 습관되어야 하는 물 절약에 대한 중요성을 전했다. 몇몇 브랜드는 물 절약을 유도하며 샤워, 세면에 따라 물의 양을 알맞게 설정하게 하는 제품들을 소개했다.

유연한 가구의 사용으로 제안하는 지속 가능성

Poliform © Monica Spezia
Arper_Workplace3.0 © Monica Spezia

이제 가구들을 인테리어 요소로만 국한하여 보기 어려울 듯하다. 밀라노 가구 박람회의 주인공 격인 가구들은 실내에서 밖으로 나왔다. 카르텔, 까시나를 비롯해 수많은 브랜드에서 아웃도어 가구를 선보였는데, 단순히 야외에서 사용하는 가구가 아니라 실내에서도 유연하게 활용 가능한 디자인이 많이 보였다. 이전에는 인도어, 아웃도어로 나누어 장소에 따라 역할을 구분 짓는 듯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그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러면서 가구에 사용하는 소재도 달라졌다. 가죽과 우드보다 패브릭을 사용하는 추세. 아웃도어로 동시에 사용하기에 내구성 역시 강해졌다. 빗물과 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방수와 방염 처리를 하거나 태양열에도 뒤틀림이 적은 로프나 스틸을 섞어 완성한 디자인도 꽤 많았다. 한편 실내에서의 조화를 의식해서인지 오프화이트나 베이지, 라이트 그레이 등 밝은 컬러의 가구들이 주를 이뤘다.

Flexform © Monica Spezia
Kartell © Ramona Balaban

원천적인 재료에서부터, 살로네사텔리테

© Ludovica Mangini | Salone del Mobile.Milano
© Ludovica Mangini | Salone del Mobile.Milano
© Ludovica Mangini | Salone del Mobile.Milano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도 불리는 ‘살로네사텔리테(Salone Satellite)’는 32개국 600명의 디자이너가 참가했다. 1998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 처음 등장한 살로네사텔리테는 35세 이하 젊은 디자이너들의 재능을 글로벌 무대에서 선보이는 전시로 신흥 디자인 트렌드는 물론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올해 살로네사텔리테는 지속 가능성을 원천적인 재료에서부터 찾았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버려지는 건축 자재들이나 플라스틱, 금속 등을 활용했고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들로 디자인한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1등(the First Prize) 중국의 Studio Ololoo 수상했다. ‘압력의 변형(Deformation Under Pressure)’이라는 타이틀로 공기로 형태를 만드는 PVC 알루미늄 결합의 조명 디자인이었다. 2등은 나사와 접착제 없이 목재의 결합으로 책장을 디자인한 이탈리아덴마크 출신의 Filippo Andrighetto, 3등은 독특한 작업 방식의 3D 프린팅으로 브라스 컵을 선보인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 EGOUNDESIGN 수상했다.

디자인프레스 김소현 수석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Salone del Mobile, SAMSUNG, LG전자

Art
김소현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게 생기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ENFP. 그저 잡지가 좋아 에디터가 되었고 글 쓰기가 좋아 몇 년 째 기자를 하고 있다. 즐겁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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