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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을지로3가의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중간지점

‘중간적 상태’를 추구하는 공간과 전시 기획의 콜렉티브
신생공간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비영리 대안공간과는 다르게, 2010년대 주로 청년세대 작가군을 중심으로 확장된 자급적 성격의 전시공간을 말한다. 신생공간의 성격은 다양하지만, 공간의 운영자가 창작 작업을 하는 예술가이면서 전시와 공간 기획도 겸하여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artist run space)로 운영되는 곳을 특징적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이곳은 작가가 본인이 쓰던 작업실을 전시공간으로 변형해 자신을 비롯한 주변 작가들과 전시를 기획해 발표하고, 지인과 SNS를 통해 관람객을 모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 특징이다. 신생공간을 통해 활동하던 작가와 기획자가 제도권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이나 시장에 빠르게 진입 후 공간의 활동성을 잃거나 본래의 자생성을 잃어가면서 한때 '신생공간 휘발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2022년인 현재까지도 신생공간으로 명명할 수 있는 다수의 공간이 유지되고 있으며 제도와 시장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며 새롭게 개관하는 모습 또한 보이고 있다.
중간지점이 개최한 전시 전경, 2018, 전시 장소: 공간형 ⓒ 중간지점

‘중간지점’은 을지로 인쇄소 골목의 건물 7층에 위치한 전시공간으로 대표적인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다. 2018년 3월 운영자 두 명의 2인 프로젝트 <짐과 요동>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0여 회의 전시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한쪽 벽면에 창이 있는 작은방 하나 크기의 공간인데, 최근 수리를 하기도 해서인지 매우 깔끔해 보인다. 화이트 큐브보다는 그레이 박스처럼 중간의, 중립적인 인상을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동안 회화와 드로잉, 영상과 설치 등 실험적인 여러 매체 작업이 중간지점의 타임라인을 형성했다.

Interview with 중간지점

전시 전경, 2018 ⓒ 중간지점

중간지점은 어떤 곳인가요?

중간지점은 원래 이은지 작가의 작업실이었다가 2018년 3월 이은지, 박소현 작가의 2인 프로젝트 <짐과 요동>(2018)을 시작으로 전시 공간으로 개관했습니다. 개관할 때부터 김기정, 김옥정 작가도 함께하여 현재 네 명의 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입니다. 저희는 필요한 역할을 나누어서 각자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소 1주일에 1회 이상 회의를 통해 각자가 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공유하고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런 과정은 중간지점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작가들로 이루어진 동명의 콜렉티브로도 활동하며 ‘단체’에서 파생되는 고민을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개개인이 모여 조율하는 과정을 전시에서의 경험적 동선으로 이어보는 시도는 중간지점이라는 공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협업을 강조한 프로젝트만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가 저희의 기획, 공모 선정 등을 통해 중간지점 안에서 펼쳐 보이고 싶은 ‘중간적 상태’란, 개개인의 고민 그리고 누군가와 혹은 공간이나 어떤 조건 안에서 함께 고민하게 되는 과정의 겹침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중간지점 구성원 박소현, 이은지, 김기정, 김옥정 ⓒ 중간지점

중간지점은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네 명의 운영진은 인근에 있는 작업실을 사용하신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운영되는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의 장점이 있나요?

네. 중간지점은 을지로3가에 있고, 네 명의 운영진들은 을지로 부근에 작업실을 쓰고 있죠. 각자 개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두면서 중간지점에서는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곳으로,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어요. 지금의 중간지점은 처음 이은지 작가의 작업실이었던 만큼 완성된 형태로 전시 발표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작업실에서 피어나 올 수 있는 수많은 대화, 과정, 시도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을지로 중간지점 문 ⓒ 오정은

여러 갤러리와 신생공간이 이미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그들과의 차별성이나 공간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운영 초기부터 지금까지 목표하는 것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대학원을 졸업한 이은지 작가가 당시 현장에 관한 궁금함으로 을지로에 왔지만, 골목에서 약간 들어간 건물 7층 작업실에 혼자 있다 보니 자발적으로 좀 더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서 공간의 시작에 관해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생각이 들 때쯤 이은지 작가의 작업실에 박소현 작가가 오가면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고 개관전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명확히 말하면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를 만드는 중에 공간의 개관을 결정한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작은 대화가 전시 그리고 하나의 공간으로 번져가는 경험은 지금까지 중간지점이 목표하는 바와 이어지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하나에서 둘 그리고 넷으로까지 이어진 관계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안에서 저희는 빠른 결론을 짓기보다는 과정을 지켜보는 편입니다. 이러한 지켜봄이 기획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조건 안에서 조율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플랫폼’ 형식의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중간지점을 포함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운영을 지속해도 되겠다는 계기를 받은 일이 있었다면 뭔지도 궁금합니다.

공간을 운영할 때 생각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많아서 내부 체계가 잘 잡혀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반부터 운영진 네 명의 역할을 확실시했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며 끊임없이 함께 대화하고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언가 만들어져 있더라고요.

 

공간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큰 에피소드라면 이 일이 떠오르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던 일입니다. 중간지점에 있는 ㄱ자 모양 창문이 와장창 깨진 적이 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7층 높이에서 창문이 뚫려 있었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말끔하게 보수가 되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합니다. 을지로의 건물은 대체로 낡은 상태이다 보니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건물을 지키는 소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인쇄소 가득한 건물에 유일하게 이상한 짓(?) 하는 저희를 ‘을지로의 딸’이라고 불러주시기도 하면서 응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저희의 주변에 고마운 분들이 많이 있어요.

전시 전경, 2019
전시 전경, 2019 ⓒ 중간지점

지금까지 중간지점에서 기획했던 전시 중 인상적인 것은 어떤 건가요?

제일 인상에 남는 전시를 꼽자면 아무래도 중간지점이 네 명의 작가이면서 콜렉티브로서 참여했던 <땅따먹기 4P: back and forth again>(2019)인 것 같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둘 이상의 사람이 꼭 필요한 ‘실뜨기’라는 놀이를 빌려 네 명의 협업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넷은 두 명씩 짝을 지어가며 굵은 밧줄을 직접 몸에서 몸으로 옮겨 실뜨기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전시장 곳곳에 유연한 가벽을 설치했고, 그 실뜨기 모양을 따라 네 명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개개인의 작업과 함께 협업의 형태를 동시에 보여준 단체전이었기 때문에 의미 있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 전경, 2020
전시 전경, 2021 ⓒ 중간지점

중간지점에서 202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유일한 연간 전시인 <꼬리에 꼬리를 물고>(이하 <꼬꼬물>)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꼬꼬물> 또한 협업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된 시리즈 전시로, 단체 전시에서 주제 뒤에 숨겨진 작가들 간의 관계를 드러내보는 시도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또 다른 작가를 섭외하는 방식으로 구성원이 정해집니다. 어떤 작가가 모이게 될지 모르는 이 전시에서 중간지점은 단체 안에서도 개개인이 잘 드러날 수 있는 대화 방식을 고민해요. 전시를 만드는 과정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전경, 2019 ⓒ 중간지점

중간지점은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획자 콜렉티브로서 아마도예술공간의 <아마도애뉴얼날레> 등 외부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죠. 이런 공동체 활동에 대해서 더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중간지점 운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저희를 기획자이자 네 명의 작가가 모인 콜렉티브로 인지하고 전시를 함께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2019년도에는 앞선 질문에서 언급했던 <땅따먹기 4P: back and forth again>(2019)과 더불어 <제강이 춤을 출 때>(2019)라는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또, <제8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2021)에서 기획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중간지점과 함께했던 팀 바리테크(서제만, 이주영 작가)는 서로의 작업을 교환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중간지점은 관객들에게 그들의 교환 과정을 각자 다른 언어로 구전하는 역할로 바리테크의 작업 사이사이에 개입하였습니다. 이는 공동의 활동과 개인의 경험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9월에는 여성비평동인 ‘땡땡콜렉티브’와 함께 콜렉티브 간 협업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를 통해 풀어내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전시와 아카이브에 대한 필요성, 관심도가 높아졌죠. 중간지점도 여러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던데 어떤 용도나 의도를 가지고 하는지요?

코로나 이전에도 그랬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더 온라인 플랫폼의 활용과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중간지점의 유튜브는 ‘전시 전경 아카이브’와 ‘See you later Artist’라는 두 종류의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영상 제작은 2020년부터 고정균 작가님과 함께하고 있고요. 웹사이트는 중간지점에 대한 소개 및 공간에 대한 정보 그리고 예정된 전시나 현재 진행 중인 전시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SNS(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를 통해 진행되는 전시의 이미지를 규칙적으로 업로드하며 홍보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전시와 프로그램은 ‘노션’이라는 플랫폼에 아카이빙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한 전시에 대한 모든 정보(전시 정보, 포스터 이미지, 전시 전경 이미지, 유튜브 영상 등)를 한 페이지에서 볼 수 있게 기록해두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중간 중간』이라는 단행본을 매년 발간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단순히 전시의 아카이빙을 위한 책이 아니라, 중간지점이 한 해 동안 보여주었던 전시의 성격과 정체성을 잘 담아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중간지점의 운영계획은 어떤 건가요?

중간지점은 올해 하반기부터 ‘중간지점 둘’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을지로의 공간과 ‘중간지점 둘’의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나로 연결 지어 볼 수 있을지 사이 지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을지로 중간지점은 여태 운영되어온 방향을 유지하여 가을에 2023년 전시 공모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내년부터는 구성원에도 변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네 명이 함께 만들어온 중간지점에 이어서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해 주세요.

전시 전경, 2022
전시 전경, 2022 ⓒ 중간지점

운영진 네 분의 작가로서의 활동 계획은요?

박소현 앞으로도 중간지점 운영과 함께 작가 활동 또한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올 하반기 일민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단체전에 참여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김옥정 저는 올여름 2인전과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요. 10월에는 김기정 작가와 함께 2인전을 여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중간지점 운영진이 아닌, 작가로서의 저와 김기정 작가의 관계를 보여줄 예정이기 때문에 기대가 많이 됩니다.

김기정 옥정 작가가 말한 대로 올해 10월에 옥정 작가와의 2인전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로서, 작가로서 서로를 응원하는 전시가 될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이은지 저는 지금 <한국화와 동양화와>라는 전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갤러리 토우드(Gallery Towed)에서 쿄토의 핀치 아트(Finch Arts)로 순회하며 진행되는 이 전시는, 전시 관련 소책자 발행과 입고 시기에 맞춰 한국에서의 순회전도 추진 중인데요. 올 9월 ‘중간지점 둘’ 개관전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인터뷰에서 밝혔듯, 중간지점은 종로에 ‘중간지점 둘’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공간 개관을 준비 중이다. 의외의 장소를 발견하고 개인과 그룹을 오가며, 단일한 성격으로 규정되기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첨가될 수 있는 개방성을 가지고 활약하는 이들 모습은 오늘날 도시에서 활동 지속성을 모색하는 예술가들의 면면을 대변하는 것도 같다. 제도와 현장, 상업과 예술, 기성과 신생의 중간에서 위치를 찾아가는 동시대 예술의 부단한 움직임까지도.

오정은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중간지점

장소
중간지점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14길 15
Art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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