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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7

불확실성의 지대로 초대: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Inside the new blind spot〉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 <새로운 사각지대 안쪽에서(Inside the new blind spot)>는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현시대를 사각지대로 비유함과 동시에, 우리의 시점을 사각지대로부터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기획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각도를 가리켜 사각지대라고 한다. 보아야 하고 고려해야만 하는 대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그것이 사각지대에 있다면 볼 수 없다. 사각지대를 지속적으로 간과했을 때 사고는 발생한다.

현재 PKM에서 열리고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 《새로운 사각지대 안쪽에서(Inside the new blind spot)》는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현시대를 사각지대로 비유함과 동시에 우리의 시점을 사각지대로부터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기획됐다.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2003)로 대중의 의식에 깊은 각인을 새겼던 올라퍼 엘리아슨. 인공 태양과 인공 환경을 설치의 형태로 구현하면서 그는 자연에서 인간이 체험하는 몰입과 치유의 경험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동의 자세로 작품을 관람하던 관람자들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과 만나 자세를 바꿨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태양을 즐기기 위해 엎드리거나 눕는 등의 자세를 취하기도 했으며 능동적이면서도 주체적으로 전시를 체험했다.

Olafur Eliasson, The weather project, 2003, London: Tate Modern ©Olafur Eliasson

작가의 작업은 ‘관람’했다는 표현보다 ‘체험’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만큼 공간의 분위기와 온도, 냄새,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관람자들의 행위 등이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을 하나의 언어와 단어로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확고하면서도 꾸준한 심지 중 하나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키워드다.

움직였을 때 보이는 것들

올라퍼 엘리아슨, , 2022 ©PKM Gallery

5년 만에 개최되는 작가의 국내 개인전이다. 평소 기후의 문제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과학적인 연구와 사고의 과정을 어떻게 예술 영역 안에서 구현해 낼 수 있는지 실험을 거듭해왔다. 이번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은 색채 현상 탐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감성의 플레어 바라보기(Seeing Sensitivity Flare)>는 ‘렌즈 플레어’ 현상에서 기인한다. 렌즈 플레어 현상은 렌즈의 정규 굴절 이외의 광선이 렌즈에 들어와 영상이 뿌옇게 되거나 둥근 흰 반점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태양이나 빛나는 물질을 촬영할 때 주변으로 작은 원이 나타나는 빛의 형상이 포착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렌즈 플레어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렌즈 플레어 현상은 영화나 사진 분야에서는 폐기해야 할 요인으로 간주돼 왔다. 실제 대상이 파생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아슨은 오류로 간주된 현상을 오히려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핵심 요소로 전환하고 예술로서 우리에게 드러내 보인다.

올라퍼 엘리아슨, , 2022 ©PKM Gallery

전시장 한편에는 노란빛이 공간을 휘감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과시하고 있다. 하나의 결정체가 어떻게 다채로운 시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Your Polyamorous Sphere)>은 보여준다. 이 작품은 ‘플라톤의 입체’ 형태를 지닌 조각 작품이다. 플라톤의 입체란,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를 물, 불, 흙, 공기로 본 플라톤이 네 가지 요소와 우주를 정다면체로 연결한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신의 폴리아모리 영역’이라는 제목도 흥미롭다. 폴리아모리는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을 뜻한다. 엘리아슨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투과와 반사가 동시에 일어나는 색채 효과 필터 유리를 사용했다. 총 세 개의 색유리 층이 사용됐으며 각도에 따라 예기치 못한 색상의 구조와 조합이 드러난다.

올라퍼 엘리아슨, , 2022 ©PKM Gallery
올라퍼 엘리아슨, , 2022 ©PKM Gallery

<밖으로 향하는 궤도의 실재(Orbital Centrifugal Presence)>와 <가깝고도 우연한 만남의 궤도(Orbital Close Encounter)>는 제목이 암시하듯 어떤 궤도를 구현하고 있다. 궤도를 따르고 있는 듯한 다양한 구는 저마다의 크기와 구도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구의 일부에 페인트를 칠해 각각의 구마다 빛의 투과율이 달라지도록 했다. 그 결과 작품을 비추고 있는 빛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맺히는 상이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엘리아슨은 천구의 자오선을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이동하고, 중심축을 따라 회전하는 점의 궤도를 추적하는 수학적 모형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올라퍼 엘리아슨, , 2005 ©PKM Gallery ​

별관에 배치된 <색채 스펙트럼 연작(The Colour Spectrum Series)>은 프리즘을 통해 가시화되는 빛의 스펙트럼 근사치를 안료로 변환한 작업이다. 총 48점의 유닛에는 딥 바이올렛에서부터 다크 크림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상 전환이 매끄럽게 일어난다.

올라퍼 엘리아슨, , 2022 ©PKM Gallery
올라퍼 엘리아슨, , 2022 ©PKM Gallery

색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빛이 물체의 표면에 도달하고, 그것이 튕겨 나와 우리의 망막에 맺히는 것이기 때문에 색은 그 자체로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색에 고유한 명칭을 부여하고 마치 절대적인 대상인 양 간주한다.

전시를 이루는 작품들은 엘리아슨이 수학, 천체물리학 등을 연구하며 포착한 정보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수와 양을 헤아리는 학문이 예술의 언어와 만나 우리의 불완전한 시각과 인식의 틀 전환을 요구하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Inside the new blind spot》 전시 전경 ©PKM Gallery

작가는 색채를 분석하는 것과 우리 자신을 분석하는 능력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절대적인 기준이 돼 왔던 관습과 고정된 시점, 가치 등을 분석함으로써 현재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 혹은 간과했던 과거를 상기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가치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신작 조각들과 대형 판화, 회화 등으로 꾸려진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 도록과 아티스트 북, 워크숍 자료집, 스튜디오 매거진 등 주요 출판물 39종도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보게 하기 위해 작가가 어떤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는지 체험하길 바란다. 전시는 오는 7월 30일까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PKM 갤러리, 올라퍼 엘리아슨

프로젝트
<새로운 사각지대 안쪽에서(Inside the new blind spot)>
장소
PKM 갤러리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40
일자
2022.06.15 - 2022.07.30
링크
홈페이지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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