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작품에서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작품은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 같고, 소리를 내지 않지만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작가는 작품이 주는 신비한 힘을 ‘덫’에 비유한다. “제 작품은 관람자를 사로잡고,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마치 덫 같아요.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지요.”
유리구슬 조각 작품으로 유명한 장-미셸 오토니엘의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야외조각공원, 덕수궁 정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열렸던 전시 이후 최대 규모다. 총 74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작가가 최근 10년 동안 발전시킨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전시의 주제는 ‘정원과 정원’.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정원과 고궁을 거닐며 장소성에 대해 고찰했고, 한국의 자연과 상징이 결집된 공간인 덕수궁을 전시 장소로 선택했다. ‘정원과 정원’은 작품이 전시된 장소들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통해 다시 환기해 보는 장소의 의미와 관람자 마음에 맺히는 사유의 정원을 모두 포괄한다.
전시 주제를 통해 다시금 환기하게 되는 ‘장소성’이라는 키워드. 작가의 작품 세계에 있어 장소성은 특히 중요하다. 야외 정원 속에 작품이 놓이는 위치와 방식, 맥락에 따라 작품이 발산하는 빛과 반사상, 뿜어져 나오는 마법 같은 효과가 상이해지기 때문이다. 실내에 전시된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의 조도와 방향 그리고 작품이 놓여있는 공간의 규모와 작품 사이의 맥락까지 모든 요소들이 유리조각 작품의 인상과 뻗어져 나오는 효과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정원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아울러 유리 조각의 마법 같은 힘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산되는 것인가?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Interview with 장-미셸 오토니엘

작가님은 유황과 유리, 왁스, 인 등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요. 열을 가한 재료는 액체와 고체 사이를 오가며 형태가 변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우연성이 개입할 것 같아요.
저는 우연성을 굉장히 중시해요. 그래서 모든 작업의 단계마다 제가 함께합니다. 예를 들어, 유리 공예가들이 입으로 유리를 불어 만들어낼 때나 금속 공예가들이 금속을 찍어낼 때 저는 항상 가까이에 있어요. 단계를 중시하다 보니 발생하는 우연성이나 사고, 결점들도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을 하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유리 공예가들의 작업을 보면 염색, 염료가 모두 천연이기 때문에 만들어내는 유리벽돌마다 색이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저는 이런 차이가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지점이 디자인과 차별화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디자인은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과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과정 속의 불완전성이 작품의 완전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디자인 범주와는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동시대 미술의 영역에서 조각의 범위는 넓어졌습니다. 기성품을 가져와 전시하는 ‘레디메이드’ 나아가 3D 프린터 등 첨단 기술공학 발달로 인해 ‘테크놀로지 아트’가 등장하게 된 것인데요. 작가님은 이러한 흐름 안에서 장인의 수작업이 요구되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수작업이 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작업 루틴을 들으신다면 그 가치에 대해 헤아릴 수 있으실 겁니다. 저는 가장 먼저 작업실에 나가 제가 생각하는 모든 형태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제 아이디어를 형태로 구현해 줄 수 있는 공예가들을 찾습니다. 그들이 유리 공예가 일 수도 있고, 금속 공예가 일 수도 있고, 자수 공예가 일 수도 있어요. 저는 작업에 있어 무엇보다 ‘수작업을 통한 협업의 과정’을 중시합니다.
주로 어떤 분들과 협업을 하며, 협업의 과정에서 어떤 가치가 만들어지나요?
저는 해당 분야의 최고 공예가들과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년째 같은 공예가분들과 일을 하고 있어요. 그분들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기도 하고, 인도에 있기도 한데요. 명인이죠. 예술가와 공예가 사이에서 형성되는 대화를 통해 창작물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작가님에게 ‘협업’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저에게 협업의 과정은 음악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작곡을 하는 거죠. 제가 작곡한 음악을 잘 연주할 수 있는 연주가분을 찾고요. 어떤 때는 거기에 지휘까지 할 수 있는 분을 찾아 위임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설명하실 때 음악적인 비유를 자주 사용해요. 음악은 공중에 흩어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고, 작가님 작업은 물성을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작품이 우리에게 닿으면서 비치는 느낌에 따라 무한대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기 위해 움직입니다.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작품에 반영되는 관람자의 모습에 따라 작품은 계속 바뀌게 됩니다. 음악의 예는 연못에서 진행한 작업에서 배가됩니다. 연못 수면에 비치는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음악처럼 흘러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형상이 다양한 변주의 효과를 준다는 점에 있어 음악과 유사해 비유했습니다.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작업도 선보이고 있어요. 수채화가 캔버스에 스며드는 과정과 유리 조각을 제작하는 과정이 유사하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저는 머릿속에 갖고 있는 형상을 그림으로 구현을 해요. 그다음에 그것에 적합한 소재나 형태를 찾는 편입니다. 수채화는 물을 이용해서 물감을 가지고 효과를 다르게 줄 수 있잖아요. 유리도 천연염료를 사용하다 보니까 유리 공예가들이 물을 섞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다른 색이 나타나요. 그런 면에서 수채화랑 비슷한 것 같아요. 수채화와 유사하고,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저는 유리 염색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조각 작품이 지니는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장소와 환경이 중요해요. 작가님의 시선에 한국의 정원은 어떻게 비쳤는지.
이번 전시는 관람자의 상상 속에 있는 정원과 실재하는 정원 그리고 실제 우리가 보는 정원과 유리벽돌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정원 등 서로 다른 정원들이 소통하고 서로에게 대화를 건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전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한국 정원을 처음 마주했을 때 세상에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를테면 일본 정원의 경우 다소 폐쇄적이고 미니어처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한국의 정원은 마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 정원의 열려 있는 면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정원이라는 테마로 전시를 하게 된 것이고요.
덕수궁 정원은 마치 연못 위에 신비로운 보물섬이 떠 있는 것 같아요. 연못은 물로 감싸져 있지만 물에 비친 하늘을 보면 마치 하늘을 감싸고 있는 신비로운 섬 같습니다. 실제 정원에서 비치는 면, 상상 속의 정원에서 비치는 면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저의 주요 아이디어입니다.
영감은 어디서 얻으며, 작가님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제 영감은 주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것이 사람들 간의 만남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고, 지금은 곁에 있지 않은 친구에 대한 경험일 수도 있는데요. 마치 일기를 써 나가듯이 작품으로서 표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조심스럽고 수줍음이 있는 사람이라서 무언가를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들어가면서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작품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 작품은 보자마자 빨려 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마치 덫 같아요. 사로잡을 만한 모습을 통해 관객들을 스며들게 만들지만 사실 제 작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작품은 건축 구조처럼 한자리에 있지만 마치 우주의 별자리와 같아요.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한 번에 사로잡는 것 같지만, 단순한 외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이해를 깊이 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장-미셸 오토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