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2

2022년 밀라노와 베니스 장면들

버려진 군 병원에 6만 명이 다녀간 사연?
밀라노디자인위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 코엑스와 같은 전시장에서 열리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 di Milano)'와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장외 전시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다. 박람회가 올해 인테리어 트렌드를 전달한다면, 푸오리 살로네는 전통적인 가구 산업뿐 아니라 패션, 제품, 자동차, IT, 아트 영역까지 아우르며 도시 전체를 축제로 물들인다. 올해 기억해야 할 푸오리 살로네 장면을 먼저 소개한다.

알코바(ALCOVA)

밀라노디자인위크의 Must-visit 스폿
알코바 전경 © Mattia Parodi
알코바 로고

지하철 1호선 Inganni 부근의 다소 한적한 거리, 6월 초라하기에는 꽤 뜨겁고 습한 날씨에 알코바가 아니었다면 밀라노 서쪽 외곽까지 특별히 올 일이 없었을 테다. 늘어선 군용차와 삼엄한 모습의 군인들, 우뚝 솟은 삼나무와 우거진 수풀이 공존하는 이 의외성 가득한 풍경은 알코바의 첫인상이었다. 알코바는 국제적으로 이름난 작가부터 신흥 인재를 큐레이션 하는 독립 플랫폼으로 밀라노 군사 병원의 버려진 공간에서 4번째 막을 올렸다. 올해는 소수의 국제 출품 업체를 선정해 무대를 제공하는 ‘Curated by ALCOVA’도 추가했다.

CAFFÉ POPULAIRE © ArseniKhamzin
CAFFÉ POPULAIRE와 SUPERFLOWER © ArseniKhamzin

모두가 주목한 카페

6월 5일 프레스 프리뷰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스폿은 알코바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Caffè Populair’다. 몬트리올 조명 스튜디오 Lambert&Fils와 밀라노 디자인 스튜디오 DWA는 모두에게 힘겨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물리적 영역으로의 복귀를 환영하며 감각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야생화가 만발한 원형 테이블 위 알루미늄 소재의 조명 Silo 컬렉션, 여기에 듣기 좋은 잔잔한 물소리가 더해지니 풍요로워진 기분이다. 이를 사이에 두고 마련된 양쪽 공간은 서로 공기마저 다를 만큼 동서양의 차이가 극명했다. 좌측 SUPERFLOWER는 꽃을 모티프로 고전적인 콘셉트의 패턴 벽지를 소개했다.

Curated by ALCOVA. Duyi Han의 Ordinance of the Subconscious Treatment © Mattia Parodi
Curated by ALCOVA. Leilei Wu의 Bonny Tale © Mattia Parodi
Curated by ALCOVA. Studio Malm의 Ugress(Weeds) © Matteo Parodi
Curated by ALCOVA. The Back Studio의 n.66 © Mattia Parodi
Curated by ALCOVA. Jorge Penadés의 Tape! Tape! Tape! © Mattia Parodi

알코바의 초청작 5

‘Ordinance of the Subconscious Treatment’는 풍부한 감정을 일으키는 지각적 경험을 유도하며 정신 건강을 탐구한다. 특히 Curated by ALCOVA로 선정된 1994년생 중국 작가 Duyi Han은 검은 단발머리에 진녹색 의상의 동양미 가득한 차림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아래 4개의 프로젝트가 Curated by ALCOVA에 함께 선정됐다. 비주얼 아티스트 Leilei Wu의 ‘Bonny Tale’은 신고딕 동화를 콘셉트로 하이브리드한 형태의 조각을, 스튜디오 Malm의 ‘Ugress(Weeds)’는 표현주의적 가구 시리즈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면모를 유기적 형태로 표현했다. The Back Studio의 ‘n.66’은 건축 조각과 네온의 만남을 주제로 건축 과정 중 보이지 않는 요소를 드러내며 이중성을 논했다. 스페인 디자이너 Jorge Penadés의 ‘Tape! Tape! Tape!’는 인체 부상에 사용되는 키네시올로지 테이프에서 영감을 받아 나무와 테이프 만으로 야외 설치물을 완성했다.

Plastique, Snøhetta, Fornace Brioni의 Common Sands - Forite Tiles © Mattia Parodi
SolidNature와 OMA의 Monumental Wonders 내 Sabine Marcelis의 핑크 오닉스 오브제 © Marco Cappelletti
SolidNature와 OMA의 Monumental Wonders © Marco Cappelletti

빼놓을 수 없는 소재 탐구

브뤼셀 기반의 스튜디오 Plastique, 노르웨이 건축집단 Snøhetta, 이탈리아 타일 제조사 Fornace Brioni가 3년의 연구 끝에 재활용 유리 타일 ‘Common Sands – Forite Tiles’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EU의 엄격한 재활용 규정에 따라 전자 폐기물 소재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속 가능하고 스마트한 차세대 건축 자재 개발에 긍정적 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 천연석 업체 SolidNature는 렘 콜하스가 설립한 건축 회사 OMA와 ‘Monumental Wonders’를 소개했다. 9가지 타입의 오닉스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장식한 입구는 기대감을 고조시키며 포토존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Sabine Marcelis의 핑크빛 오닉스를 활용한 모놀리식 오브제는 미학, 물질성, 형태와 기능 간의 섬세한 균형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Bohinc Studio의 Peaches © Mattia Parodi
Elisa Uberti의 Poetic Jungle © Mattia Parodi
Serena Confalonieri의 Venus © Mattia Parodi
TABLEAU + Post Service의 Confessions © Mattia Parodi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

까르띠에 디자이너 출신으로 가구를 대하는 신선한 시각을 지닌 Lara Bohinc의 Bohinc Studio는 지극히 곡선적이며 새빨간 패브릭으로 업홀스터리된 ‘Peaches’를 소개했다. 그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여성의 몸을 반영한 여성성을 부각시켰다. 패션 업계의 경력을 지닌 Elisa Uberti가 선보인 스톤웨어 ‘Poetic Jungle’은 전통과 현대, 다양한 광물, 유기적으로 연결된 요소들 간의 균형을 찾아간다. Serena Confalonieri의 ‘Venus’는 여체의 곡선미에서 영감을 받아 탄성 좋은 라이크와 금속 소재로 조명을 완성했다. ‘고백’을 의미하는 ‘Confessions’는 덴마크 스튜디오 TABLEAU와 치료 클리닉 Post Service, 그리고 14명의 남성 작가들이 참여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어온 남성 정신 건강을 이야기한다. 특히 남성성이 강한 군사 기관에서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대한 고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공간, 여전히 남아있는 당시 소품과 창 너머 싱그러운 녹색 풍경까지 오늘의 주인공들을 위한 완벽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Hello Human과 ADITIONS의 This is America © Jonathan Hokklo
This is America 내 박재연의 Ski Chair & Tennis Chair © Jonathan Hokklo
URNE.RIP의 장례용 항아리 © Mattia Parodi
TIPSTUDIO와 STUDIO F의 DISRUPTED STABILITY © Mattia Parodi
Beni Rugs의 Spoken Line © Matteo Parodi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각은 언제나 환영

인종·성별의 포용성에 대한 소명을 지닌 PR 그룹 Hello Human과 경험 디자인 스튜디오 ADITIONS가 함께한 ‘This is America’는 전시명 그대로 오늘날의 미국 디자인을 다양한 언어로 소개했다. 그중, 디트로이트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박재연 작가는 우리 주변의 흔한 사물을 향한 섬세한 시각이 깃든 ‘스키’ 및 ‘테니스’ 의자를 선보였다. 다채로운 노란색이 섞인 에폭시 클레이와 일상의 소재가 만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오브제를 통해 삶과 사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URNE.RIP는 장례 예술 장르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탈리아 장인과 장례용 단지를 소개, 상실과 부재의 개념을 재고한다. TIPSTUDIO와 STUDIO F의 ‘DISRUPTED STABILITY’는 자연재해 후 버려진 목재를 회수해 가구로 재탄생시키며 절망과 희망의 관계를 보여준다. Beni Rugs의 ‘Spoken Lines’는 모로코식 러그의 전통과 현재, 과거의 유산과 현대성을 탐구했다. I Never Read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아티스트들의 플랫폼으로 예술적 생산을 위한 도구로서의 책을 얘기한다. 야외에는 잠시 쉬어갈 장소들과 함께 다양한 마실 거리가 마련됐다. 로테르담 소재 디자인 스튜디오 Cream on Chrome이 개발한 태양열 설비 ‘The Solar Energy Kiosk’는 빛으로 오렌지 주스를 짜내며 태양 에너지 가득한 상큼함으로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소시켰을 것.

Cream on Chrome의 The Solar Energy Kiosk © Mattia Parodi
알코바 설립자 Valentina Ciuffi & Joseph Grima © Studio Piercarlo Quecchia

군 병원에서 진행된 비하인드 스토리

4번째 알코바는 6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가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한자리에 모인 글로벌 창작자들은 건축, 디자인, 예술, 공예 등 장르를 넘나들며 기능적이고 아름답고 지속 가능하며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서로 관계를 맺고 협업을 통해 그 시너지를 더하고 있었고,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여 주었다. 한편, 알코바 설립자 Valentina Ciuffi는 “밀라노는 여전히 발견할 것이 너무 많은 도시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장소를 탐색한다.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일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지난 기억을 언급했다. 최초 알코바 진행 당시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고. 투기적 관점의 개발 업자들과 경쟁할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알코바의 무대가 될 사이트의 소유주에 대해서도 더욱 신중히 고려하게 됐다고 한다. 이번 알코바를 이탈리아 육군이 관리하는 국유지에서 진행한 이유를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 내년에는 또 어떠한 버려진 공간이 새 의미를 찾을지, 화제성 가득한 알코바의 밀라노 매핑은 지금도 계속된다.

유승주 해외 통신원

자료 제공 알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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