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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2-09-19

형상이 있으면서 가장 단순한 바다

6년 만의 오병욱 개인전 《BLUE HOUR》

기간 2022.08.26 - 2022.09.24
장소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3번지)

6년 만에 오병욱 작가의 개인전 《BLUE HOUR》이 아트사이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붓 하나로 수만 가지 바다의 표정을 담고도 도랑 몇 개를 건넜을 뿐이라 겸손히 말하는 그가 그리는 바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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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HOUR》 전시 전경

갤러리에 들어서면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 같다. 바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연이어 들린다. 처음 바다를 맞이할 때 느꼈던 감동이 밀려온다. 붓으로 뿌려낸 빛들이 바다 위에 모여 잔물결을 만든다. 물결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하늘과 맞닿는다. 수평선 너머 그려진 여명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이의 간절한 마음, 지는 해의 아련함도 느껴진다. 한없이 긴 호흡으로 지켜보게 되는 오병욱 작가의 바다이다.

Interview with 오병욱 작가

Sea of My Mind 2205073,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22
Sea of My Mind 2205015, acrylic on canvas, 162x97cm, 2022

오랜 시간 그려온 바다는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실제 바다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바다에 대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산, 나무, 들판 등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다른 대상과는 달리 바다는 보고 싶다,라는 지점이 있습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라는 말처럼 아무 제한 없이 저쪽 수평선 끝까지 보이는 장대한 거리감 때문인가?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면 시원하게 느끼고 위로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일상 지쳐있다가도 바다를 보는 순간 잡다한 순간을 모두 떨쳐낼 수 있는 것이 바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작업실 전경

작품이 진행되는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진짜 바다처럼 반짝이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어떻게 반짝거리는 것을 잘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울퉁불퉁한 표면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캔버스에 미디엄을 섞어 넓적한 붓으로 두들겨서 입체적인 표면을 낸 후 서너 번의 젯소칠과 컬러링을 해서 베이스를 만듭니다. 그 후 붓으로 가느다란 입자의 물감을 수십 번 겹쳐 뿌리죠. 그러면 요철같이 튀어나온 부분은 물감이 묻어 반짝이고 밑에 부분은 묻지 않아 자연스러운 명암과 입체감이 생깁니다. 내가 사용하는 물감(골덴 인터퍼런스 아크릴 물감)을 빛의 삼원색으로 섞으면 갈치 비늘과 같은 반짝이는 흰빛을 냅니다. 그렇게 섞은 물감을 뿌리는 횟수를 조절하며 밝기와 레이어를 조절합니다. 완성된 작품은 빛에 예민한 물감의 특징 때문에 자연광과 조명에 따라 달라지고, 날씨에 따라 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그림이 됩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도 빛이 나고 밤에도 빛을 내는 바다라고 생각하곤 해요. 

 

작가님의 바다는 복잡한 그림이 아님에도 오래 감상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하시나요?

작품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으면 앉아서 오랫동안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나의 바다는 어쩌면 감정의 도화선 같은 것이에요. 그 폭발은 작품을 본 사람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작품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본 바다의 기억을 꺼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다의 색과 비교해 보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파도 소리, 바다 냄새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머릿속의 감성들과 시각적 요소들이 밀물 썰물처럼 만나고 멀어지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해요. 작품 안에서 각자의 바다를 꺼내어 생각하며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신작 회화 설치 작품

이번 작품은 기존의 직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 원과 아치, 평행사변형 등 다양한 프레임에 담긴 바다를 그리셨어요. 마치 창문 너머 보이는 바다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바다는 물이기에 어떤 잔에 담기냐에 따라서 변하는 가변적인 성질이 있어요. 그래서 바다를 여러 프레임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아치형의 큰 프레임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완성하고 나서 생각한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서 다행입니다.

 

멀리서 바라만 봤던 바다가 아니라 가까이 당겨 놓은 듯한 바다도 보입니다. 작품에 담은 새로운 시도들이 궁금합니다.

물결처럼 보이는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주름일 수도 있고, 사막의 모래 바람이 남긴 흔적일 수도 있고 시멘트 벽에서 흘러내린 오래된 퇴적물의 흔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이 없어져서 그림이 조금 더 추상적으로 변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의 그림을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은 늘 잘게 쪼개진 파도를 봤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조금 큰 물결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길게 죽 이어진 파도를 그렸습니다. 물의 형상을 변화시켜 또 다른 울림을 주고 싶었습니다.

Like Waves 220701, acrylic on canvas, 194x112cm, 2022

물의 모양에 따른 다른 울림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물의 가변성을 화폭에 담았다는 이야기도 상당히 과학적이고 재미있습니다. 물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물처럼 움직이는 것들은 모양도 다 닮아 있어요. 실핏줄, 나뭇잎의 잎맥,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 나일강 지류들 모양이 보면 비슷합니다. 물이 스스로 잘 흘러가도록 진화해 나가는 게 있어서 그런지 물이 흘러가 모양 대로 난 파이프 모양들은 비슷한 것 같아요. 물은 소리나 모양 흐름들로 우리에게 많은 느낌들을 줍니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거나 모양 보면 물의 움직임을 느낄 수가 있는 것 같아요. 물이 주는 동조 효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물이 가진 이런 성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강가나 바다에 앉아서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리곤 했잖아요? 물은 분명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작업실 전경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라는 산문집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아이의 5세 때부터 오감을 자극해 주는 아빠의 모습이었습니다. 각별한 사랑과 교육관으로 키운 아들도 결국 아들도 주목받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상주에서 오영준 화가님과 지내시는 일상이 궁금합니다.

산문집은 절판되었다가 작품 안에 나온 청설모와 호두나무 부분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화가가 되겠다던 아들은 나와 같은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해 선후배 사이가 되었어요. 형상화 된 그림은 아들이 나보다 잘 그립니다. 작품에 대한 말은 서로 많이 아끼는 편입니다. 작업은 나의 작업실 옆 교실을 나눠서 작업하고 있어요. 같이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로 출근합니다. 나는 물을 그리고 아들은 나무를 그립니다. 우리의 작업은 오행적으로도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나무를 만지거나 책을 읽어요. 작가라는 직업이 본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서 예전부터 여러 종류의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목공도 책을 읽으며 독학을 하다 보니 원서를 포함한 목공 책들을 3-400권은 읽은 것 같습니다. 작업실 한 방에는 대패, 망치, 도끼, 자귀 등 목공 연장으로 가득 차 있어요. 기계 작업은 별로 안 좋아하고, 수공으로 하는 작업들을 좋아해요. 나무를 다루는 것, 특히 대패질은 묘한 중독성이 있어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추상화를 그려오셨어요. 작가님이 추상화 작업을 하실 때 고민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이는 내 그림을 추상이라 하고 어떤 이는 구상이라 말하기도 해요. 추상과 구상의 경계적 작업이라고 보는 이도 있는데 제 작품은 추상이 맞습니다. 추상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애매모호함입니다. 추상은 쉽게 설명 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인데 그래서 추상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추상화를 하나의 사이클로 보자면 나는 반쪽만 창조하고 나머지 반쪽은 보는 사람이 해석을 만들어 붙이면서 전체 창조의 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추상화가 형상이 없기 때문에 작가는 커튼 뒤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릴 뿐이고, 책임감이 없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추상화로 내면 세계의 충격과 감동을 어떻게든 전달해 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현대미술의 추상화는 복잡한 화면 구성들이 많아요. 복잡하면 이게 뭐지? 하면서 그때부터 머리가 돌아가는데, 단순하면 한순간에 가슴을 쿡 찌릅니다. 나는 가슴에 와 닿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형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단순한 바다를 선택했습니다.

Sea of My Mind, 2205014, acrylic on canvas, 180x90cm, 2022
Sea of My Mind, 2205074,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22
Two Islands, 2016, Acrylic on canvas, 260x130cm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그림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은 미인과 같아요. 첫눈에 확 띄고 가까이 가서 봐도 대단하구나, 멀리 떨어져 어떤 각도에서 봐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그림입니다. 자꾸 쳐다보고 싶고, 헤어졌는데도 생각만 하면 여운이 남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림을 보고 난 후 집에 돌아와 생각해도 아른아른한 여운이 남는 그림이 좋은 그림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계속 보고 싶은 그림, 멀리서 가까이로, 좌에서 우로 자꾸만 보게 되는 그림, 기분 좋은 상념, 여운, 출렁거림이 가슴 속에 계속 남아있는 그림, 그래서 그 그림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림. 나는 수십 년간 그런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30년 넘는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셨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가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예술가, 성직자, 교육자들은 세계의 혼탁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깨끗하고 맑고 고귀한 것들을 가지고 가꾸어서 열린 창문, 따뜻한 달빛처럼 다른 이들을 다독여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시대에 넘쳐나는 것을 깎아내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 넣는데 주로 정신적인 것을 책임진다고 생각해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작가 이중섭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 훌륭한 그림을 그렸어요. 찬물에 몸을 씻고 좋은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고 바위산에서 종종 기도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의 문제가 아니고 진선미가 통합되는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신선한 바람, 예술 정신, 순수에 대한 열망들로 스스로를 채워 시대의 아픈 부분을 조명해 위로하고 약한 부분을 보강해 주는 치료사 같은 역할이죠.

이혜진 객원 에디터

자료 제공 아트사이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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