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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아침부터 밤까지, 몬스터들의 하루

스티키몬스터랩의 국내 첫 대규모 전시, <스틸 라이프>
서울시 성수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그라운드 시소가 몬스터들의 도시로 뒤바뀌었다. 아티스트그룹 스티키몬스터랩(STICKY MONSTER LAB, 이하 SML)의 국내 첫 대규모 전시 <스티키몬스터랩: 스틸 라이프(STICKY MONSTER LAB: STILL LIFE)>는 13개 공간에서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헤이팝

SML은 다양한 창작 배경을 가진 최림, 부창조, 강인애 디렉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2007년 디지털 영화제 레스페스트(Resfest)에서 공개한 <더 러너스(The Runners, 단편 애니메이션)>를 시작으로 활동을 넓히고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작업 방식을 통해 ‘몬스터즈(Monsters)’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스틸 라이프>는 그간 SML이 선보였던 전시와 비교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첫 번째 오프라인 전시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야외 공간 서 진행되었던 <2009 미술관 습격 사건>, 〈SML X 카페 포제 팝업〉 등 5명이 채 안되는 SML 멤버들이 자력으로 진행했던 전시와 차별점이 있다면 이번엔 아트 피규어 전문 기업인 블리츠웨이(Blitzway)가 함께한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도시 엠-시티(M-city) 속 순간들을 조각·영상·그래픽디자인·인터랙티브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13개 공간, 1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스틸 라이프>. 우리의 일상과 닮은 몬스터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SML의 여정을 지금 함께 따라가 보자.

몬스터 외형을 띈 구조물이 점차 줄어들고, 그 끝자락에서 ‘퍼플몬’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헤이팝
ⓒ헤이팝

Morning: 하루를 시작하는 몬스터들의 아침

도넛을 먹으며 쉬고 있는 ‘경찰몬’, 극장 간판에 영화 타이틀을 붙이고 있는 ‘스탭몬’, 로켓을 배달하는 ‘로켓배달몬’ 등 이들은 저마다 아침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왜일까? 동글동글한 쉐입의 바디에서 느낄 수 있는 귀여운 모습과 달리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얼굴엔 표정이 없다. 몬스터들의 무표정함은 역설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이를 활용해 감정이 섞이지 않은 표정에 나의 감정을 대입해 보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내면을 느끼는 색다른 관람이 될 수 있다.

ⓒ헤이팝

Mid-day: 몬스터에 더하는 27개의 이야기

이번 전시의 제목 <스틸 라이프>는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광고 필름 가운데 한 장면을 골라 현상한 사진을 의미하는 ‘스틸 컷(Still cut)’의 ‘스틸(Still)’과 인생, 삶을 의미하는 ‘라이프(Life)’와 같은 낱말로서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는 ‘정물화(Still Life)’를 뜻하기도 한다. 각각의 정물화처럼 개별 아트워크로 존재하길 바라는 방향성을 확고히 하는 전시인 것.

ⓒ헤이팝

미드-데이(Mid-day)존은 ‘정물화’의 의미를 관통하는 곳이다. 27개의 화이트 큐브 속 각기 다른 몬스터가 배치되어 있는 이곳은 자신만의 이야기로 장면을 해석해 연결할 수 있다.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운동 중인 몬스터부터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몬스터, 택배 상자를 들고 가는 몬스터까지. 특별한 순간만이 아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도 준비 되어있다.

굽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해 질 녘의 엠-시티를 관람해보자. ⓒ헤이팝
조명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몬스터들의 그림자. ⓒ헤이팝

Afternoon: 저무는 해를 맞이하는 몬스터들

어느덧 오후 시간이 되었다. 네온사인으로 불 밝힌 엠-키오스크(M-Kiosk) 공간을 지나면 나오는 엠-시티의 메인 광장은 시장 ‘에그몬’이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SML의 그래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지는 선셋(Sunset) 존. 저 멀리 드리운 그림자와 함께 노을 진 이곳에서는 해 질 녘 시간을 보내는 몬스터들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조명은 시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다. 어두운 주변을 희미한 조명이 비추는 아침, 천장의 백색 등이 주변을 모두 밝히는 정오, 네온사인이 켜진 오후, 해 질 녘 굽은 길을 붉게 비추는 조명. 그림자의 색과 형태의 변화는 시간에 따른 흐름을 간접적으로 알린다.

ⓒ헤이팝

Night: 어둠이 내려앉은 엠-시티

늦은 밤 지친 모습으로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몬스터와 홀로 바에 앉아 쓰러진 몬스터는 어둠 속 홀로 밝은 조명 아래 위치한다. 고요한 밤, 꺼질 듯한 조명은 몬스터들의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극대화하며 작품마다 작게 들려오는 고유의 사운드는 그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감정까지 드러낸다.

약 3분간 조명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모습. ⓒ헤이팝

SML 세계관 엠-시티의 택배회사 모넥스(MonEx) 빌딩을 거대한 디오라마로 제작했다. 거리 한 부분을 그대로 재현한 모넥스 존은 약 3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의 시간 변화가 이루어진다. 거리를 거니는 몬스터, 정차되어있는 자동차 등 바깥 공간을 모두 관람했다면 건물 속 깊은 부분을 들여다보자. 우리의 삶과 닮은 듯 다른 일상을 보내는 몬스터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슬슬 하루가 끝나간다. 모든 여정이 마무리되기 전, SML의 대표 영상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자동차 극장이 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총 5개의 영상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아래 소개한다.

SML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자동차 극장 존. ⓒ헤이팝

01 The Runners(2007) 03:42

와플 장사를 하는 몬스터와 러너 몬스터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로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작품.

 

02 The Monsters(2008) 09:30

몬스터 도시 엠시티의 전반적인 세계관, 에그몬 시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03 The Father(2009) 03:05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펼쳐진 양쪽 책자에 표현해 서로 연결되면서도 상반되는 아이러니한 스토리를 담았다.

 

04 The Loner(2011) 04:04

외로움에 익숙한 주인공 로너가 우연히 켈을 만나 변화하는 모습을 관조적 시점으로 바라본다.

 

05 SML Life(17 Episode, 2017) 04:22

24시 편의점 SML 24에서 근무하는 레드몬(Redmon)의 일상적인 스토리를 여러 편에 나눠 표현한 숏 스토리.

ⓒ헤이팝

전시 <스틸 라이프>는 지난 9월 21일 공개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관람한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조명으로 표현된 시간의 흐름, 몬스터들의 세계로 금방이라도 빠져들 것만 같은 사운드, 피규어들의 섬세한 디테일이 아마 한몫했을 터. 내년 1월 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를 더욱 생생하고 알차게 즐기기 위한 SML의 이야기를 헤이팝이 준비했다. 몬스터 피규어의 기획·제작 과정,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노하우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금 소개한다.

Interview with 스티키몬스터랩

ⓒ헤이팝

SML은 다양한 창작 배경을 가진 멤버들이 모여 설립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다. 2007년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 <스틸 라이프>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을 것 같다. SML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나.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SML의 콘텐츠를 만들 때는 물론이고 브랜드들과 협업을 하거나 제품을 만들 때도 우리가 지금 왜 이것을 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건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게 된다. 진행 중에 비용이나 공간의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지만 초반에 고려했던 컨셉이나 맥락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SML의 성격이나 세계관과 동떨어진 작업은 지양하는 편이다.

세탁소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몬스터와 워크몬의 모습. 각 사물에 귀를 기울이면 고유의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헤이팝

-SML의 몬스터 캐릭터는 귀엽고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의 어두운 면을 담고 있다. 캐릭터에 이런 이중적 면모를 부여한 이유가 있나.

즐겨보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도 흔한 전개의 스토리나 캐릭터들보다 뒤틀리고 날 선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의외의 요소들 때문에 더 공감하게 되고 창작자와 나와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캐릭터를 구상할 때에도 외형과 대비가 되는 스토리나 표정들로 이런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유 없이 밝고 유쾌한 기존의 캐릭터들에 대한 단순한 반발심으로 이중적인 요소를 적용하게 된 부분도 다분하다.  

 

전시에서는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도시 엠-시티 속 아침부터 밤까지의 여정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중 시간대를 구분 짓는 ‘조명’이 인상적이다. 조명을 고르고, 세팅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조명 전문가와 조명 업체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 되었지만 전시 관련 조명을 다뤄보지 않아서 결과물에 대한 예상이 어려웠다. 특히 일반 전시에서 사용하는 스팟 조명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온·오프 시간대와 조명 컬러, 모넥스 건물 내·외부 조명까지 함께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라 조명 세팅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소품의 작은 라벨 하나까지 신경 쓴 모습. ⓒ헤이팝
전시의 마지막 아웃트로(Outro) 존에 전시되어 있는 일상의 사물들. ⓒ헤이팝

물통의 손잡이, 간판의 높낮이, 창문을 닦은 후 남은 비누의 결, 식당의 케첩 통, 여행 가방의 나사 하나까지 이토록 섬세한 SML의 피규어 기획, 제작 과정이 새삼 궁금해진다.

두 명의 디렉터가 먼저 컨셉을 기획하고 디자인을 하면 디자인을 조형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블리츠웨이 피규어 팀과 논의해 보고 제작하게 된다. 블리츠웨이가 이제까지 쌓아온 노하우 덕분에 우리가 디자인한 이미지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구현 가능했다. SML과 블리츠웨이 서로 처음 합을 맞춰보는 작업이라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국엔 좋은 방안을 찾아서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스틸 라이프>의 공간 중 특별히 소개해 주고 싶은 곳이 있다면?

‘모넥스 빌딩 존’이다. SML이 처음 시도하는 방식의 조형물이라서 감회가 새로웠고 확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관람객들도 몬스터들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들에 공감을 해주시는 것 같다. 몬스터들이 살고 있는 엠-시티 속의 한 건물일 뿐이지만 추후에는 여러 채의 몬스터 빌딩이 늘어선 모습도 표현하고 싶다.

ⓒ헤이팝

-SML은 다년간 CJ, 나이키, 닛산 등 글로벌 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왔다. 얼마 전엔 메종 마르지엘라와 함께 카톡 이모티콘을 출시하기도 했다. 기업과의 협업을 진행하되,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노하우가 궁금하다.

브랜드 협업은 우리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브랜드의 성격도 조금씩 다른 색과 섞이면서 희석될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협업 할 때에는 더욱더 맥락적 요소를 중요시하게 된다. 단순히 SML 브랜드 캐릭터를 앞세우기보다 캐릭터가 브랜드와 유기적으로 잘 엮여있어 보이도록 만들어야 두 브랜드 간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협업해 보고 싶은 브랜드나 진행해 보고 싶은 몬스터 컨셉이 있다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생활 속에서 쉽고 단순한 것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니 대부분 의식주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트워크 작업을 차치하고서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여러 방면으로 쉽게 쓰임이 될 수 있는 제품이나 작업들을 해보고 싶다.

ⓒ헤이팝

-SML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SML에 합류하지 말고 본인이 또 다른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는 MZ세대들을 사로잡기 위한 활동 계획이 있나.

세대를 나누는 말들은 무의미해 보인다. 정말 좋거나 멋있는 것들은 누구에게나 좋고 멋있다. 우리가 좋아하면 누가 봐도 좋아해 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만들고 보여주고 싶다.

주최 블리츠웨이

프로듀서 배성웅

총괄 디렉터 최승원, 권혁철

총괄 매니저 강인애

전시 제작 블리츠웨이 R&D 디자인 팀

황대환, 김건국, 오광세, 김길섭, 유한솔, 김인구, 최일환, 신창호, 고봉기, 이수빈, 정용준, 최지원, 주 해, 이은지, 김성현, 김덕현, 민지수, 정유지, 오채영, 윤상혁, 남현우, 김정우, 김시원, 이병훈, 김아라, 유현욱, 김민하, 손예지

애니메이션 조연학

공간 디자인 권혁철, 꼬모디자인

음악 STUDIO 360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프로젝트
<스티키몬스터랩: 스틸 라이프(STICKY MONSTER LAB: STILL LIFE)>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주소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17길 49, 생각공장 데시앙플렉스 지하 1층
일자
2023.09.21 - 2024.01.07
시간
10:00 - 20:00
(매월 첫째 주 월요일 휴관)
이신영
누군가의 최애였던 소품을 모으는 수집가. 콘텐츠와 디자인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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