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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 2022-04-04

뮤지션 장기하의 정체성 담은 ‘기하체’

채희준 폰트 디자이너와의 인터뷰!

장기하스러운 글씨는 무엇일까? 뮤지션 장기하가 서체 디자이너 채희준과 함께 서체 ‘기하체’를 만들었다. 얼마 전 공개한 신보 <공중 부양> 음반 표지와 속지에 사용된 서체다. 담백하면서도 찰지게 말맛과 운율을 극대화하는 장기하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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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장기하의 첫 솔로 미니앨범(EP) 표지와 내지에 사용된 '기하체'. (앨범 디자인=김영나, 인물 사진=민현우, 사진 제공=두루두루컴퍼니)

 

‘기하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폰트 디자이너 채희준이 묻고 뮤지션 장기하가 답하다

 

채희준 | 서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해요. 단체가 아닌 개인이 본인을 대표하는 폰트를 제작하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장기하 | 서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지는 꽤 됐어요. 저는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사랑하고, 그걸 음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저의 정체성을 담은 서체를 꼭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채희준 | 설명을 듣고 나니 보내주셨던 데모곡도 새롭게 느껴지네요. 일상 속 말의 운율을 살려서 음악으로 만드시는 점이 기하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돼요. 작업하실 때 보통 말을 캐치하는 것이 먼저인가요, 작곡이 먼저인가요?

 

장기하 | 곡에 따라 달라요. 이번 앨범에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라는 노래가 있어요. 제가 평소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생각이거든요. 머릿속에 활자로만 떠돌아다니던 문장을 실제 발음해 보며서 작곡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진 제공=두루두루컴퍼니)

 

채희준 | 저희가 집중할 수 있는 키워드가 ‘운율’인 것 같은데요. 저는 뭐든지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이미 일상에 떠 다니는 말들의 운율을 토대로 곡을 만드는 것도 같은 이치구요. 표현에 집중하지 않고 뼈대에 집중해서 고민해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기하 | 굳이 뼈에 비유하자면 어떤 연골 같은 요소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음악이 좀 구렁이 담 넘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 같거든요.

 

채희준 | 한 서체 안에서 다양한 속도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무의식을 연골 같은 단어로 묘사하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요. 저마다 다른 속도를 가진 획을 섞어서 구성하면 글자에서 기하님 특유의 억양 같은 것이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획의 맺음도 다양한 속도에 호응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그려내는 게 좋겠어요.

 

채희준 | 협업하는 동안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글짜씨>도 읽어보시고, 타이포그래피 분야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셨는데 어떠셨나요?

 

장기하 | 제가 그동안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여러 창작 분야를 들여다볼 기회들이 많았는데요. 어떤 분야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한 세계가 존재하더라고요. 직접 창작하지 않으면 미처 알 수 없는 디테일이 굉장히 많은데, 서체 디자인에서도 그런 면을 크게 느꼈습니다.

 

 

Interview with 채희준 폰트 디자이너

 

장기하 씨의 첫 솔로 앨범과 함께 서체가 함께 공개됐어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는 데모곡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기존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를 들으면서 뮤지션 장기하를 관통하는 정체성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글자에 반영할지 연구했어요. 특히 장기하 특유의 운율을 글자에 담아내는 게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가 관건이었어요. 이를 테면 글자의 너비를 음절마다 다르게 설정해서 리듬감을 줄 수도 있고, 획의 대비를 크게 주거나 획을 다양하게 분절해서 운율을 부여할 할 수도 있거든요. 이후 공중부양 앨범에 들어가는 데모곡 다섯 곡을 들어보면서 장기하 씨와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담백하게 정제되어 있고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중부양> CD 속 한글 서체가 기하체다.
기하체로 쓴 장기하의 신보 <공중부양> 목업

 

예전 인터뷰에서 ‘작업을 할 때 본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을 읽었어요. 처음 느낀 인상의 근원을 추적해서 어떤 요소들이 그 감정을 만드는지 구체화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고요. ‘담백하게 정제되어 있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뮤지션’이라는 인상을 어떻게 글자에 반영했나요?

‘뼈대’에 집중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운율을 만들어내기 위해 특별한 형태나 장식을 넣지 않고, 글자의 뼈대 자체로만 특유의 억양이 느껴지도록요. 이런 자연스러움에 대한 가치관은 제가 서체를 제작할 때도 추구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창작자로서 가치관이 일치했던 것 같아요.

 

장기하 씨와 나눈 대담을 읽었는데, 디자이너께서 ‘뼈대’에 집중하는 서체를 만들겠다고 하니 장기하 씨가 ‘연골 같은 요소가 서체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대답하셨어요. 뼈대와 연골이 서체에 어떻게 담길 수 있을지 무척 궁금했어요.

처음 장기하 씨의 이야기를 듣고 흘림과 같은 요소를 넣을까 생각했는데,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기하 씨가 어떤 느낌으로 연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지 곰곰이 고민했는데, ‘글자에 다양한 속도를 넣고 싶다’고 느낀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그어진 듯한 획과 평범한 속도로 그어진 획이 공존하는 글자를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진 제공=채희준)

 

점선으로 처리된 부분이 기하님이 원했던 연골 같은 요소예요. 평범하고 곧은 획들 사이에 좀 더 자유롭고 빠른 속도를 가진 획들이 파고 드는 형태로 디자인했습니다.

 

장기하 씨는 농심 라면 <안성탕면> 한정판 봉지에 한글 제목을 직접 쓰기도 했죠. 서체를 디자인할 때 장기하 씨의 평소 글씨체를 참고하기도 했나요?

결과적으로는 반영하지 않았어요. 사실 첫 회의에서 기하씨에게 간단한 손글씨를 요청했고, 나중에 한 번 더 이름 세 글자를 둥근펜, 각진펜 등 다양한 도구로 써서 보내주셨어요. 히읗의 형태가 독특하길래 이런 특징이 살아있는 손글씨 기반의 형태를 고민했는데, 결국 손글씨를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뮤지션 장기하의 기운과 목소리를 서체가 반영해야 하는데, 손글씨 자체로는 이 방향과 멀어질 것 같더라고요.

 

기하체로 쓴 <공중부양> 가사 (사진 제공=두루두루컴퍼니)

 

서체에 뮤지션 정체성의 담는다는 일이 꽤 막연하게 들리기도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글자를 의인화해서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글자에 나이가 있다면 몇살일 것 같나요?” “30살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저는 기하 씨가 갖고 있는 추상적인 느낌을 구체적인 형태로 이끌어 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양한 설문을 통해서 적절한 힌트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기하 씨를 매체에서 접한 분들은 알겠지만, 가벼운 질문에도 상당히 고민하고 디테일하게 답변하시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이를 테면 “이 글자를 귀엽다 vs 멋지다로 나눈다면 어디에 가까울까요?” 물었더니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귀여움 30%, 멋짐 70%블렌딩으로요” 하시더라고요(웃음).

 

신보 <공중부양> 포스터에 사용된 기하체

 

1차 서체 결과물을 확인한 장기하 씨의 반응은 어땠나요? 수정 사항도 있었나요?

초창기 몇 글자만 작업한 상태에서 보여드려서 글자 수가 적다 보니 확신하지 못하는 반응이었어요. 이후에 조금 더 글자 수를 늘려서 문장으로 보여드리니 좋아하셨죠. 수정사항도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위의 [ㅁ]이 너무 과하다는 피드백이 와서 아래의 형태로 수정했어요. 뮤지션 장기하의 정체성을 담은 서체인 만큼 기하 씨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서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개념적인 요소만 남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제가 뮤지션 장기하의 정체성을 담았다고 설명해도 실제 결과물의 형태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잖아요. 이 서체를 보는 이에게 공감 받아야 하고, 기하 씨의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 제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기하체는 본문용 혹은 제목용 중 무엇에 더 적합할까요? 채희준 디자이너가 선호하는 기하체의 쓰임이 궁금합니다.

본문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서체가 아무런 시각적 개입을 하지 않고 텍스트만 온전히 전달한다고 느낄 때 본문용 폰트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 기준에서는 눈에 무척 익숙하고 편안하게 여겨지는 뼈대를 가진 서체가 본문용 폰트예요. ‘SM신신명조’나 ‘AG최정호체’와 같은 최정호 계열의 바탕체가 그 기준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폰트를 고른다면 ‘기하’는 본문에 어울리지 않아요. 운율이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는데, 사용자가 그런 시각적인 개입을 원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제작자가 본문에 사용되는 것을 고려하여 작업했는가?”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기하’는 본문용으로 적합합니다. 저는 가로쓰기, 세로쓰기, 본문, 제목 모두를 고려해서 제작했어요. 제가 제작한 폰트들 중 ‘청월’과 ‘청조’를 제외하면, 모두 가로, 세로, 제목, 본문을 고려해 만들어졌어요. 개인적으로 본문에 사용된 ‘기하’를 서점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사진제공=오혜진)

 

채희준 디자이너의 서체는 출판사에서, 그리고 문화예술계에서 행사용으로 주로 구매한다죠. 기억에 남는 사용처가 있을까요?

최근 송상희 작가의 <자연스러운 인간>이라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어요. 오혜진 디자이너가 제 서체 ‘신세계’라는 서체를 사용해서 전시를 디자인 해주셨는데요. 송상희 작가의 작품에도 ‘신세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어서 재미있고 뜻깊었어요.

 

채희준 디자이너의 서체 '신세계' 패밀리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새로운 서체 출시뿐 아니라 기존에 출시된 폰트의 업데이트도 병행하고 있어요. 현재 Regular만 출시된 ‘신세계’는 영문 및 숫자 디자인을 리뉴얼하고 3개의 웨이트를 추가해서 패밀리로 출시할 계획이에요. 올해 안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작업할 예정입니다.

 

 
기하
뮤지션 장기하와 서체 디자이너 채희준이 협업해 만든 서체.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에서 운율을 발견하는 장기하의 음악 철학을 바탕으로 그의 특유의 억양이 느껴질 수 있도록 제작했다. ‘레귤러(Regular)’, ‘세미볼드(SemiBold)’, ‘볼드(Bold)’ 3가지 굵기로 출시되었으며 채희준 폰트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유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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