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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모던 건축가의 인간미 넘치는 가구들

<장 프루베 더 하우스> 전시에 초대합니다.
<장 프루베: 더 하우스ㅣ샬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 전시는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가구보다는 덜 알려진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샬로트 페리앙과 피에르 잔느레가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디자인한 작품들을 그들의 젊은 시절 작품과 견주면서 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이다.
왼쪽부터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샬로트 페리앙

 

샬로트 페리앙은 20대 시절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에 입사해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그의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디자인한 LC 시리즈 가구들로 유명하다. 이 가구들은 대개 강철관을 프레임으로 하고 순수 기하학 형태의 엄격한 모더니즘 스타일을 보여준다. 샬로트 페리앙은 1927년부터 1937년까지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주로 가구 디자인 부문에서 작업을 했다. LC 시리즈의 가구들을 보면 역시 페리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가구의 홍보도 맡아 그녀는 LC4 셰즈 롱의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이 직접 모델이 되기도 했다.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샬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LC 시리즈 가구들
전시장이 전시된 '누아주(Nuage)' 선반, 1950년대 생산된 제품

 

페리앙은 1937년부터 아틀리에 장 프루베 Ateliers Jean Prouvé 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으나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스튜디오가 잠시 문을 닫는다. 이때 운 좋게도 일본 정부로부터 산업 디자인에 대한 자문을 해줄 것을 요청 받고 곧 독일에 점령당하게 될 프랑스를 떠나 일본으로 가게 된다. 일본의 장인들과 교류하면서 일본의 전통 실내 디자인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교토에서 본 선반에 그녀는 매혹 당하는데, 그 선반은 구름의 형태로 벽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형태가 공간에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선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페리앙은 1950년에 ‘누아주 Nuage’ 선반 시리즈를 디자인했다(정식 생산은 1956년). 아틀리에 장 프루베에서 장 프루베와 함께 가구를 디자인하던 시절이다. 불어인 Nuage는 ‘구름’이라는 뜻으로 교토의 그 선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선반은 모듈 방식을 채택해 구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알루미늄과 나무를 결합한 이 선반 시스템은 구성 방식뿐만 아니라 선반 문짝의 색상도 다채로워 무수히 많은 버전을 낳는다. 누아주 선반 시리즈는 페리앙의 대표작인데, 이번 전시에 아주 독특한 버전이 출품되었다.

 

자유로운 형식의 커피 테이블(Forme Libre Dinning Table), 1960년대

 

‘자유로운 형식의 커피 테이블 Forme Libre Coffee Table’이라는 가구는 페리앙이 젊은 시절 디자인했던 엄격한 모던 가구와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는 점에서 볼만 하다. 엄격한 순수 형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있는 비정형의 조약돌 같은 형상이다. 모던 가구들이 대개 날렵하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인 반면 이 테이블은 상판이 아주 두껍고, 모서리를 둥글둥글하게 굴렸다. 이 테이블이 1960년대에 생산되었으니 페리앙의 나이 60대에 디자인한 것이다. 페리앙이 디자인한 스툴 역시 모던과는 거리가 먼 전통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푸근하고 인간적이다.

 

찬디가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들. 왼쪽부터 인도의 공학자 P. L. 베르마,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피에르 잔느레가 디자인한 인도 펀잡 대학 간디 바완 빌딩

 

이번 전시에 주목할 만한 가구로 피에르 잔느레의 의자와 책장이 있다. 피에르 잔느레는 르 코르부지에의 사촌 동생으로 1920년대부터 함께 작업해왔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르 코르뷔지에가 나치의 괴뢰 정권인 비시 정부에 협력하는 태도를 취한 것에 반해 피에르 잔느레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며 둘 사이는 영원히 틀어진 것처럼 보였다. 전쟁이 끝난 뒤 노년에 접어든 르 코르뷔지에는 그의 건축 인생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독립국 인도의 새 수도가 된 찬디가르를 근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일이다. 이때 르 코르뷔지에는 피에르 잔느레를 부르게 된다.

 

피에르 잔느레는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인도로 가서 15년 동안 머물렀다. 건강이 악화돼 스위스로 돌아가 2년 뒤 사망했다. 스스로의 유언에 따라 잔느레의 유골은 인도 찬디가르 수크나 호수에 뿌려졌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가 프로젝트에서 빠진 뒤 찬디가르 프로젝트의 수석 건축가겸 도시계획 디자이너로 찬디가르를 모던 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그가 살았던 찬디가르의 집은 2017년에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전시장의 잔느레 오피스 체어, 1950년대 중반
피에르 잔느레가 디자인한 인도의 재료들로 만든 토속적인 의자들

 

이 기간 동안 잔느레는 여러 종류의 의자를 디자인했다. 이 의자들은, 형태는 모더니즘의 형식을 취하지만, 재료는 인도의 고유한 재료를 이용했다. 전반적인 프레임은 티크 나무를 썼고, 등받이와 좌석에는 나무 줄기를 이용했다. 이 의자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디자인으로 피에르 잔느레의 고유한 디자인 철학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자 프레임의 다소 두꺼운데, 이것은 그가 젊은 시절 참여했던 LC 시리즈 의자들과 확연히 차별화되어 있다. 또한 인도 고유의 티크 나무와 나무 줄기를 써서 토속적인 느낌이 난다.

 

전반적으로 차갑고 엄격한 모던 가구와 견주면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성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찬디가르의 의자들은 합리적이고 엄격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포근한 어떤 언어성을 구축하고 있다. 인도의 경험이 없었다면 좀처럼 태어나기 힘든 디자인이다. 그밖에 르 코르뷔지에가 찬디가르의 펀잡 대학에 설치했던 간행물 책장도 볼 수 있다.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그만큼 자의식을 버리고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빈티지 가구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다.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장소
갤러리 L993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3길 22)
일자
2021.05.11 - 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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