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8

숨겨진 걸작을 만날 기회!

미술계 한 획 그은 예술가 14인의 그룹전
딴딴한 알맹이로부터 솟구치는 에너지, <더 히든 마스터피스(The Hidden Masterpiece)> 전을 관람하는 내내 이 생각이 맴돌 것이다. 서울시 용산구 갤러리 BK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구본창, 김근태, 제여란, 서용선, 차계남 등 한국 화단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의 대규모 그룹전이다. 갤러리 BK는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온 국내 중견·원로 작가 14인을 다시 조명하며, 그들의 작업을 새로이 큐레이션 했다.
BK 이태원 1층. 박다원 작품이 걸려 있다.
BK 한남 3층. 김동유, 구본창 작품이 걸려 있다.
김춘수, ULTRA-MARINE 2173, Oil on canvas, 200 x 200㎝, 2021

 

구도(求道)하듯 올곧게 정진하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 개성이 확실한 만큼 이들의 작품이 한곳에 모인 모습을 단번에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갤러리 BK는 BK 한남, BK 이태원 두 곳으로 나뉜 갤러리 특성을 알맞게 활용해, 공간과 작품, 작품과 작품을 부드럽게 잇는다. 김호득의 꿈틀대는 먹빛 선과 김춘수의 아쿠아마린이 각각 고유한 한편, 더불어 신선한 생동감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제여란, USQUAM NUSQUAM, Oil on canvas, 110 x 110㎝, 2017

 

BK 한남과 BK 이태원은 걸어서 약 6분 거리. 공간 위치와 모양에 어울리게 작품이 놓였다. 대로변에 자리한 BK 한남 1층에는 길을 걷는 누구나 쳐다볼 만큼 에너지가 강렬한 작품이 걸렸다. 제여란의 <어디든, 어디도 아닌(USQUAM NUSQUAM)>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치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Interview with 갤러리 BK 최민지 디렉터

 

박다원, Now here-Becoming, Acrylic on canvas, 90 x 232㎝, 2019

 

<더 히든 마스터피스>라는 전시명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 작업 방식으로 꾸준하게 활동하며 국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과 함께하는 전시다. 그들의 숨겨진 작품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다시 한번 조명한다는 뜻을 담았다.

 

서용선, 자화상 56St. 3, Acrylic on canvas, 101.7 x 76.2㎝, 2019-2021

 

거장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보기 드문 전시다. 이러한 전시를 기획한 배경이 궁금하다.

지난해 10월 갤러리 BK 대표님과 대화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모두가 즐길 만한 전시를 기획하고 싶은데 요즘엔 젊은 작가의 힙한 작품이 대세라는 것이지. 대세에 맞는 기획전을 해야 할지, 정말 하고 싶은 전시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오랜 염원을 이루자고 마음을 정했다.

 

김동유, Grace Kelly (Clark Gable), Oil on canvas, 194 x 155 cm, 2011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 14인 그룹전이다. 작가를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50대 이상 70대 이하 연령대의 중견 및 원로 작가들로 구성했다. 포스트 모노크롬이나 동양화, 서양화 사조에서 주목받는 예술가를 주로 고려했다. 대표님과 장장 3개월에 걸쳐 작가를 조사했고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예정된 계획 때문에 참가가 어렵다는 분들은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작가와 연이 있는 분이 있다면 그분에게 부탁도 해 보고 정말이지 백방으로 노력했다. 다른 갤러리와 전속계약이 되어 있는 작가도 있었다. 각 갤러리(국제갤러리, 아트사이드갤러리, 아트스페이스3)의 도움으로 무사히 진행하게 되었다.

 

석철주, 신몽유도원도 21-17, Acrylic and gel on canvas, 112 x 145.5㎝, 2021
석철주 시리즈가 놓인 공간은 신비롭다. ⓒ designpress
김근태, 2021-148, Mixed media on canvas, 162 x 130㎝, 2021

 

오랜 세월 작업한 분들인 만큼 작품도 아주 다양했겠다. 어떤 기준으로 전시작을 결정했나?

구작, 신작 상관없이 작가의 특징적인 무드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를 바랐다. 각각의 개성을 시원스레 드러내고자 100호에서 150호 정도로 큰 사이즈 작품을 선택했다. 컬렉터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50호 미만의 소품 역시 함께 소개했다. 전시작을 정하며 작가 선생님들에게 부탁을 많이 드렸다. 존경하는 분들이므로 아주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모두 전시 기획 의도에 공감하셨다. “이런 전시에는 잘 나온 작품, 좋은 작품을 걸어야지!” 하며 흔쾌히 출품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BK 한남 1층에 전시된 제여란 작품 ⓒ designpress
장승택, Layered Painting 150-11, Acrylic on canvas, 220 x 170㎝, 2021

 

BK 한남, 이태원 두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한다. 전시관 구성 시 특히 고려한 점은.

모든 작가가 스타일이 확고하다. 색감이나 농도가 강한 작품이 많아서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 BK 한남, 이태원의 분위기가 달라 공간에 맞게 작품을 선정했다. 이를테면 한남점 1층에는 제여란 작가와 장승택 작가의 150호 사이즈 작품을 설치했다. 통유리창을 통해 외부에서 보아도 강렬하리라 판단했다. 개인적으로 제여란 작가의 팬이기도 한데, 작가의 150호 작품 두 점을 한 점처럼 붙여 설치했다. 크기, 고유한 분위기, 자유분방한 붓 자국에서 오는 아우라와 압도감이 엄청나다.

 

BK 이태원 지하 1층에 자리한 김호득 작품 일부 ⓒ designpress

 

이태원점 지하 1층에는 동양화 대가로 일컬어지는 김호득 작가의 작품이 자리한다. 기존에 공개된 한지나 광목천에 먹으로 작업한 작품이 아니라,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일필휘지로 내리꽂는 한 획의 멋과 거장의 새로운 접근법을 느껴 보라. 올 하반기 갤러리 BK 전관에서 김호득 작가의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니 관심 부탁드린다.

 

공간과 어우러지도록 작품을 배치했다. ⓒ designpress

 

갤러리의 고민과 정성이 드러나는 전시다. 이곳을 찾는 이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니라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지는 전시를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각 공간의 구도나 분위기를 고려한 구성을 즐기길 바란다. 무엇보다 작가 14인은 색의 향연이면서 절제이기도 한, 구상이면서 추상이기도 한, 한 획이면서 회화이기도 한 세계를 화폭 위에 펼쳐냈다. 각기 다른 표현법과 조형 언어로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삶에 대해 성찰하는 그들의 깊이를 온몸으로 경험한다면 좋겠다.

 

BK 이태원 3층에 자리한 최진욱 작품 일부 ⓒ designpress

 

이번 전시가 어떤 시도로 남기를 바라나?

오랜 시간 공들여 기획하고 준비했다. 일반 상업 갤러리에서는 보기 힘든 전시이기도 하다. 내적 통찰로써 피어난 결과물이 연결되고 동서양 회화가 공존한다. 개별 작품의 매력은 물론 그들이 어우러지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모두 느낄 수 있다. 보다 탐구적인 전시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김유영 기자

장소
BK 이태원, BK 한남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42길 56,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25
일자
2022.01.20 - 2022.02.24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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