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알아두면 좋은 트렌드 소식을 엄선하여 받아보기

2021-11-02

묘하게 끌리는 기이한 그림들

네오 라우흐 x 로사 로이, 경계에 핀 꽃
부부이자 동료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의 회화를 선보인다. 두 작가가 빚어낸 환상적인 세계는 작가의 내면과 인간의 본성을 반영한다.

 

전시 <경계에 핀 꽃>은 신라이프치히파(독일의 다원주의적 리얼리즘)를 대표하는 작가인 네오 라우흐(Neo Rauch)와 로사 로이(Rosa Loy)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35년간 부부이자 동료 예술가, 훌륭한 조언자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작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가진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자세히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도 알 수 있는 기회다.

 

네오 라우흐 & 로사 로이 , 2018. 이미지 제공 | 스페이스K 서울

 

팔이 여섯 개 달린 인형을 끌고 가는 신사, 버섯 우산을 쓰고 걷는 아이, 거꾸로 매달린 여자, 하늘을 날고 있는 뿔 달린 악마… 회화 작가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의 합작품 <경계(2018)>를 보고 있으면 판타지 영화 <판의 미로>가 생각난다. 환상적이지만 암울한 정서가 지배적인 두 작가의 그림은 괴상한 형체와 관습을 깬 구상으로 인하여 묘한 이질감도 느껴진다.

 

로사 로이 2019, 2004. 이미지 제공 | 스페이스K 서울

 

로사 로이의 작품에는 항상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주문(2003)>에서처럼 가사 노동과 밭 일을 하기도 하고, <의상(2008)>처럼 옷을 만들기도 하며, <긴 하루의 저녁(2021)>처럼 휴식을 취하며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림 속 여성들은 타인의 지시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집중한다. 이처럼 로사 로이는 자유롭게 다양한 행동을 하는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여성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드러낸다.

 

로사 로이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쌍둥이 여성은 작가가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라이프치히로 왔을 때, 상실감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던 상상 친구다. 그리고 동시에 로사 로이의 분신이다. 전시장 2층에서 상영되고 있는 ‘작가와의 대화’ 영상에서 로사 로이는 “그림을 그리는 나 자신까지 포함하여 쌍둥이는 총 3명이 된다.”라며 쌍둥이에 대해 설명했다.

 

네오 라우흐 , 2016. 이미지 제공 | 스페이스K 서울

 

여성이 환상 속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로사 로이의 작품과 달리, 네오 라우흐의 작품에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내리막길(2009)>에는 산을 타고 내려가는 남성, <베르그페스트(2010)>에는 작품을 몰두하며 만드는 장인, <밀어닥침(2016)>에서는 중세 시대 커플과 예술가가 나타난다. 각각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네오 라우흐의 그림으로 들어오는 순간, 미스터리한 존재로 바뀐다. 게다가 작가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며 그림 속 오브제들은 개연성 없이 결합되어 관객들을 점점 더 미궁 속에 빠지게 만든다. 때문에 네오 라우흐의 그림에는 관객은 알 수 없는 서사가 흐른다. 이러한 모호함은 네오 라우흐의 특징이자, 관객이 스스로 서사를 상상하고 그림을 해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 스페이스K 서울

 

환상성은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하지만 서사 방식, 표현 방법, 주제의식에서 두 작가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로사 로이의 <추측(2013)>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겨울 풍경을 연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로사 로이의 환상성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기억과 꿈, 혹은 여성들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로사 로이의 그림에서는 환상적인 배경이나 내러티브보다는 여성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여성의 역할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하고 질문한다.

 

한편, 네오 라우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공간과 오브제가 하나의 그림 안에서 결합되고 혼재되도록 한다. <순응(2020)>에서는 그림 속에 또 하나의 프레임을 두어 한 세계를 둘로 나눈다. <악한 환자(2012)><밤의 수호자(2014)>에서는 시골 풍경과 실내에 둔 침대가 대비되면서 선과 악, 건강함과 병약함, 몸과 영혼 등 이분법적 세계관을 전달한다. <프로파간다(2018)> 속 기괴한 생명체, <밀어닥침(2016)><전환(2018)>의 비율이 다른 생명체처럼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피사체들도 네오 라우흐의 환상성을 더 부각시킨다.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 스페이스K 서울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두 작가가 그려낸 세상이 낯설게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괴이함에 끌리는 본성이 있다. 그러므로 호불호를 판단하기 전에 이 묘한 끌림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면, 작품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의 세계가 어렵다면 각 작품을 자세히 해설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작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천천히 뜯어보며 보는 것도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허영은

자료 협조 스페이스K 서울

장소
스페이스K 서울 (서울시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일자
2021.10.28 - 2022.01.26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묘하게 끌리는 기이한 그림들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