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6

3년 연속 방탈출 어워즈 ‘올해의 테마’ 만든 키이스케이프

방탈출은 어떻게 몰입형 경험 콘텐츠가 됐을까

좁고 어두운 방, 굳게 잠긴 자물쇠 하나. 10년 전 방탈출 하면 떠올리던 풍경이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테마만 2,000여 개에 달한다. 탈출을 위해 문제를 풀던 경험을 넘어, 배우가 참여하는 이머시브(Immersive) 포맷부터 4시간 이상의 장기 테마까지. 방탈출은 이제 단순한 취미를 넘어 공간 경험의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키이스케이프(Keyescape)가 있다. 한국 방탈출 어워즈에서 매년 주요 부문을 수상하며 탄탄한 기획력을 선보인 곳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게임 제작자가 아닌 ‘몰입형 경험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라 정의한다. LG전자의 신제품 현장부터 기업의 조직문화 교육에서도 이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키이스케이프의 1호 직원인 김서온 기획자를 만났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나 소재, 장면은 공개하지 않았다.

 

❶ 키이스케이프는 3년 연속 방탈출어워즈 ‘올해의 테마상’을 수상하며 꾸준한 기획력을 보여줬습니다.

❷ “공간과 이야기 중 하나는 일상적이어야 한다” 기획의 원칙 중 하나입니다.

❸ 진짜같음을 설계하지만, 유저는 만들어진 세계라는 걸 알죠. 본능적인 감각인 ‘공포 테마’가 각광받는 이유입니다. 

❹ LG전자, 현대차 등 기업과 협업도 늘고 있어요.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유저가 직접 습득하는 ‘능동성’이 중요해졌어요.

“공간과 이야기 중 하나는 일상적이어야 한다”

― 방탈출 기획자라는 직업은 과거에 없던 영역인데요,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매장에서 파트 타임으로 운영 업무를 담당했는데요. 창작하는 걸 좋아해서 노래도 만들고, 소설도 취미로 썼어요. 그걸 제본한 책을 선물했는데, 읽어보신 대표님이 ‘같이 방탈출 한번 만들어볼래?’라고 제안해 주셨죠. 그렇게 시작해 벌써 6년 차 기획자가 됐어요. ‘메모리 컴퍼니’, ‘로그인1’, ‘바야흐로 여름이었다’부터 B2B까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키이스케이프 김서온 기획자.

― 방탈출 설계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이 큰가 봐요.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방탈출의 가장 큰 매력은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이거든요. 물론 공간, 음악, 장치 연출 같은 요소가 다 중요하지만, 출발점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매력이 뭐냐고 물어볼 때도 ‘내가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라고 설명하거든요. 우리가 만든 세계관에 유저들이 설득되려면, 그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 이야기를 구체화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예전에는 방탈출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좀 생소했거든요. 처음으로 그 작업에 제대로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메모리 컴퍼니’ 지점인데요. 그걸 만들면서 깨달았어요. 공간(배경)이 특이하면 이야기가 일상적이어야 하고요. 반대로 이야기가 특이하면 공간이 일상적이어야 해요. 그래서 좀 특이한 소재를 다루고 싶을 때는 ‘사람들이 공감할 여지가 있나?’를 고민해요. 둘 다 비현실적이면, 흡입력이 떨어지거든요. 예를 들어 ‘메모리 컴퍼니’의 키워드는 ‘기억’이에요. ‘기억’을 다루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죠. 잊고 싶은 기억도 있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잖아요. 현실에 이런 곳은 없겠지만, 누구나 공감할 법한 기억이라는 키워드가 있으면 이야기에 힘이 실리죠.

메모리 카니발점 공간과 포스터. ©키이스케이프

― 언뜻 상상하면 공간과 이야기 모두 비일상적이어도, 전혀 다른 세계처럼 몰입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나요?

가상의 배경에 대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 다르거든요. 특히 팀 단위로 기획을 하는데,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다 보니 상상하는 그림이 다를 때가 많았어요.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 차 있는 건 몰입을 깰 수 있겠다 싶었죠. 

가령 우주선이나 마법 학교가 배경이라면, 그 공간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어서 오히려 공감을 사기 어려워요. 뭐라도 하나는 ‘현실에 있을 법하다’ 싶은 게 있어야 세계 어딘가에 이런 곳이 존재할 것 같다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제작자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키이스케이프는 일회성 흥행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완성도를 유지해 온 브랜드다. 매년 한국 방탈출 어워즈의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이를 증명해 왔는데, 2021년 ‘우주라이크’와 ‘네드’를 시작으로 2023년 ‘메모리컴퍼니’와 ‘FILM BY BOB’, 2024년 ‘바야흐로, 여름이었다’가 각각 올해의 카페와 올해의 테마상을 받았다. 가장 최근인 2025년에는 공포 테마 전용관인 ‘후즈데어’의 ‘아야코’가 올해의 테마를 포함해 4관왕에 오르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기획력을 보여줬다. 

'FILM BY BOM', '바야흐로, 여름이었다' 포스터 ©키이스케이프

― 키이스케이프는 매년 주요 테마상을 수상했고, 세계관을 잘 구축하는 걸로도 알려져 있어요. 비결이 뭘까요. 

방탈출의 시작은 당연히 세계관이고, 그 핵심은 ‘우리가 유저에게 어떤 감정을 주고 싶냐’라고 생각해요. 테마가 끝나고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그 질문에서 기획을 구체화해 나가죠. 

특이한 점은 저희는 기획자가 누구인지 대외적으로 잘 알리지 않아요. 보통은 제작자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나기 마련인데, 반대죠. 실제로 많은 사람의 의견을 거쳐 결과물이 나오거든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 때 기획, 디자인, 장치, 음악 담당자가 모여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 몰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어느 지점에서 음악이 들려야 하는지, 어느 정도 거리를 걸어가서 어떤 각도로 돌았을 때 새로운 그림을 보여줄지 같은 디테일이죠. 모든 요소가 유저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가장 신경 써요.


― ‘감정을 설계한다’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나 연극은 관객의 시선을 통제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오프라인 체험 콘텐츠는 동선과 시선을 제어하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그 부분에서 디테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유저가 통제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설계한 흐름대로 탐험하게 만드는 거죠. 저희가 반찬을 차려놨을 때 스스로 ‘흰 쌀밥에 이 반찬을 올려 먹어야지’라고 느끼게 하는 거예요. 일상생활에서 사무실에 불이 났는데 문제를 풀어야 소화기가 나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웃음). 그런 어색함을 줄이고, 모든 과정에 이유가 있도록 설계하는 거죠. 유저가 스스로 세계관의 주인이 돼서 움직이도록요. 

유저의 능동성을 만드는 일

― 작년에는 ‘아야코’로 공포 분야 테마상을 받았어요. 유독 공포 분야가 주목받는 느낌인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맞아요. 최근에 확실히 통하는 키워드인 것 같아요. 방탈출이 아무리 진짜 같아도, 가짜라는 걸 알잖아요. 그런데 공포라는 감정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거치지 않고 직감적으로 와닿는 감정이거든요.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요. 방탈출을 경험할수록 유저들도 점점 더 강한 자극과 진짜 같은 경험을 원하는데, 그걸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게 공포감이죠. 처음 겪는 이야기지만, 몸이 느끼는 감정은 이미 알고 있는 거니까요. 다만 ‘아야코’는 공포감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며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2025 방탈출어워즈에서 올해의 테마상을 포함해 4관왕을 차지한 '아야코'. ©키이스케이프

― 기획자로서 체감하는 또 다른 변화가 있나요.

초기 방탈출이 퍼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세계관에 들어가 직접 이야기를 경험하는 ‘종합 경험’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연극배우가 등장하는 ‘이머시브’ 부터, 길게는 4시간짜리 테마까지 종류도 다양해졌죠. 소비자로서도 반가운 일인데, ‘디즈니랜드 안 가고도 이걸 내 눈으로 보다니(웃음)’ 싶은 연출도 가능해졌거든요. 

또 하나는 다른 산업과의 결합이에요. 브랜드 팝업이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방탈출이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저희 역시 이머시브 공연, 팝업, 브랜드 체험 공간 등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있고요. 앞으로 이런 흐름은 점점 가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 기업이나 공공기관과 협업도 늘고 있다고요. 

니즈는 같다고 봐요. 주입식 정보 전달이 아니라, 유저가 직접 체험해서 능동적으로 정보를 얻게 하고 싶은 거죠. 팀 빌딩을 할 때 ‘동료와 사이좋게 지내세요’라고 말하기보다 방탈출 한 번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것처럼요. LG ThinQ 방탈출 카페나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조직문화 팝업,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문화교육센터 프로젝트 모두 마찬가지예요. 홍보나 교육이라는 목적을 대놓고 드러내기보다, 세계관 안에서 미션을 풀며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게 만드는 거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게 협업하는 분들이 가장 원하는 지점이라 생각해요.

키이스케이프와 협업해 만든 LG그램 팝업 ©키이스케이프
대한법률구조공단 법문화교육센터 프로젝트 ©키이스케이프

숏폼,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수단

방탈출 테마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테마마다 다르지만, 평균 3개월 이상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기획, 디자인, 공간, 음향, 장치 등 다양한 팀이 협업해 구현해 내는 과정이다. 키이스케이프는 2025년 한 해에만 ‘후즈데어’와 ‘메모리 카니발’을 비롯해 ‘버디’, ‘용팔도령’, ‘무비무드’ 등 10여 종의 신규 콘텐츠를 선보였다. 

―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이 지치진 않나요?

항상 힘들고, 또 항상 즐거운데요(웃음). 아이디어는 어디서든 나오는 것 같아요. 영화나 음악, 책은 물론이고, 그냥 길 걷다가 본 전단지나 친구랑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에서도요. 심지어 숏츠 같은 것도 영감이 돼요. 유행의 휘발성이 강하니까 그 소재 자체를 몇 달 뒤에 고스란히 쓰긴 어렵지만, 요즘 유행하는 밈이나 말투를 보면서 ‘사람들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이해하는 거죠. 그걸 우리 식으로 패러디할 수도 있고요. ‘자, 지금부터 영감을 찾아야지’ 한다고 찾아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저 평소에 보따리를 계속 채워두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디어로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 기획자로서 느끼는 즐거움과 괴로움은 무엇인가요?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이게 진짜 괜찮은 건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참 어려워요. 창작이라는 게 사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었다고 해서 그 시간만큼 결과물이 딱딱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고민해도 진척 없이 자책하며 퇴근하고, 또 어떤 날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걸 해치우고 돌아가기도 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가 실제 공간으로 나오기까지가 정말 오래 걸리고 힘든데, 이 일의 매력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노래도 만들고 글도 쓰면서 뭔가를 만드는 창작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만든 세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유저들이 그 안에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 그게 제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예요.    

창작이 취미인 김서온 기획자. 직접 쓴 소설 '파아란―날'. 지금도 창작한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즐거움이다.

― 마지막으로 목표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단단한 기획자’가 되는 게 목표예요. 방탈출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호흡이 긴데요. 그 과정에서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찾아오거든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네’ 싶을 때요. 그때마다 적당히 넘기지 않고, 끝까지 모든 힘을 쏟아서 일하고 싶어요. 

팀으로서는 머리를 싸매며 만들고 있는 이 테마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잘 만드는 것입니다.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키이스케이프

김지오
자기만의 길을 걷는 브랜드와 사람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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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방탈출 어워즈 ‘올해의 테마’ 만든 키이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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