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8

먼 타국에서 우주를 바라본 두 여성 예술가

에텔 아드난·이성자 2인전 〈태양을 만나다〉

화이트 큐브 서울은 2026년 새해 첫 전시로 에텔 아드난(1925–2021)과 이성자(1918–2009)의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를 개최했다. 화이트 큐브는 1993년 런던에서 설립된 이후 홍콩, 파리, 뉴욕, 서울 등 주요 도시에 공간을 운영하며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국제적으로 소개해 온 갤러리다.

 

이번 전시는 레바논 출신 작가 에텔 아드난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자리이자, 서로 다른 지역과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두 작가의 추상적 사유를 하나의 대화로 엮는 시도다.

두 작가의 만남: 타국에서 만난 우주

하얀 벽면을 배경으로 두 작가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국적도, 장르도 다른 두 아티스트의 작품이지만, 전시는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냈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형성된 작업이 마치 하나의 연작처럼 이어지며, 이질감보다는 리듬이 먼저 감지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화이트 큐브 글로벌 아트 디렉터 수잔 메이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비슷한 시대를 통과한 두 화가의 예술 세계가 평행선처럼 어우러진다”고 말한다. 전시는 두 작가의 작업을 비교하기보다는 각자의 언어가 어떻게 같은 질문을 향해 나아갔는지를 보여준다.

이주 이후 형성된 추상의 언어
1980년대 프랑스 아틀리에에서 이성자

이성자와 에텔 아드난의 추상은 단절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성자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전쟁은 그에게 단순한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가족과의 강제적인 분리와 귀환 불가능성을 동반한 사건이었다. 고향과의 물리적 거리, 언어와 문화의 이질성 속에서 이성자는 구체적 재현 대신 선, 사각형, 원과 같은 원초적 형태를 통해 세계를 다시 구성해 나갔다.

에텔 아드난 ©Patrick Dandy

에텔 아드난 역시 레바논 내전을 계기로 망명을 경험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레바논 베이루트를 오가며 작업하던 그는 내전 이후 파리에 정착했다. 아드난에게 망명은 기억과 정체성이 끊어지는 경험이었고, 이는 절제된 추상 회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두 작가에게 추상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단절 이후에도 세계를 사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였다.

하늘을 넘어 우주를 바라본 두 여성 예술가

1960년대는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우주탐사 열기가 치밀었던 시기다. 달 탐사를 시작으로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확산됐고, 이는 두 작가 모두에게 결정적인 창작 동력이 됐다. 아드난의 회화와 태피스트리에는 태양과 달의 실루엣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글쓰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시 제목 ‘태양을 만나다’ 역시 아드난이 1968년에 발표한 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를 추모하는 애가이다.

Untitled(2018), Etel Adnan
Farandole(1960s), Etel Adnan

이성자의 작업에서 우주는 보다 구조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는 지구와 행성계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조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배치하며, 질서와 균형을 탐색해 왔다. 이는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지는 ‘우주 시대’ 연작으로 본격화되면서, 그의 예술적 탐구를 대지에서 도시, 하늘, 더 나아가 천문학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My Sweet City(1962), 이성자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지역과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두 작가의 작업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추상이 개인의 삶과 시대적 감각을 어떻게 흡수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에텔 아드난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전시는 1월 21일부터 3월 7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관람할 수 있다.

김기수 기자
자료제공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
장소
화이트 큐브 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6
일자
2026.01.21 - 2026.03.07
시간
화요일 -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월요일 정기 휴무)
기획자/디렉터
수잔 메이
참여작가
이성자, 에텔 아드난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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