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베이글뮤지엄 대표이자 최근 산문집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출간한 브랜드 디렉터 료(RYO)가 이번에는 글과 사진, 그림 등 다양한 형식의 창작물을 큐레이션한 전시를 선보인다. 복합문화공간 LCDC SEOUL에서 10월 21일까지 열리는 그의 첫 기획전 〈PHILOSOPHY RYO〉다.
이번 전시는 료가 오랜 시간 기록해 온 생각들을 작품으로 풀어내고, 이를 공유하는 자리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바탕이나 재료가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이는 망설임 없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그의 개인적인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탁월한 미감으로 인정받아 온 디렉터의 전시인 만큼 눈이 즐거운 전시이지만, 조금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정리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료의 작품들은 캔버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림 옆의 오브제, 아래 놓인 의자, 숫자와 텍스트까지 하나의 장면을 완성한다. 사진 속 그림은 료가 반복적으로 그려온 캐릭터 중 하나인 ‘토마’. 검은 뿔테 안경과 터틀넥을 착용한 그의 모습에서 그로테스크한 무드가 느껴졌다는 작가는 성경과 문구를 새긴 손을 오브제로 제작해 작품 주변에 배치했다. 캔버스를 넘어 주변 사물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확장한 셈이다. 디테일을 살피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 큰 장면을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료의 전시는 모서리와 틈까지 ‘읽는’ 재미가 있다. 료가 직접 남긴 낙서들이 전시장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 액자 테두리, 벽 모서리, 심지어 콘센트까지 작은 캐릭터와 손글씨 문장이 전시에 입체감을 더한다. 어떤 낙서는 위트를, 어떤 낙서는 작품의 해설 역할을 한다. 걸음 속도를 낮추고 프레임 너머의 틈까지 살펴보자.
마음껏 시도하기
작품을 준비하는 모습과 라이브 아트 드로잉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 료 인스타그램
전시 오프닝이 있던 날, 료는 관객들 앞에서 라이브로 아트 드로잉을 진행했다. 전시장 벽면을 캔버스 삼아 별도의 스케치도 없이 쓱쓱 선을 그었고, 불과 1분 남짓만에 그림 한 편이 완성됐다. 〈PHILOSOPHY RYO〉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꼽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무언가를 표현하는 용기가 아닐까. 그는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이, 직업,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무엇이든 실행할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 같아요. 잘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어려워지는 일이 많잖아요. 그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로 완성되는 인생의 결과물들을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메모 앱에 문장 한 줄, 주머니 노트에 선 하나처럼 무언가 나만의 것을 시도할 때 비로소 이번 전시는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