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 시대에 한 번 방문했던 곳을 재방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콘텐츠의 변동이 적은 목적성이 뚜렷한 공간이면 더욱이 그럴 테다. 서울 송파구 위례에서 만난 북카페 그래픽 바이 대신은 새로운 자극을 끝없이 제시하는 요즘 시장에서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안정감을 택했다.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라는 서점의 본질적 의미를 담아냄과 동시에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머물다 갈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반짝 흥했다 사라지는 오프라인 공간형 콘텐츠에 지친 이들에게 그래픽은 다시 찾아가고 싶은 대상이 되고자 한다.
지난 11월 그래픽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운영하던 1호점에 이어 특별한 연고 없는 동네 위례에 새롭게 2호점을 냈다. 위례는 핫한 카페나 쇼룸이 아닌 주거 공간이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나들이를 목적으로 찾는 동네와는 거리가 멀다 보니 그래픽이 왜 위례를 택했는지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위례에 새 공간을 오픈한 이유를 듣는다면 금방이고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대신증권과 그래픽이 만났다
그래픽 위례점이 자리 잡은 곳은 대신증권의 건물인 대신위례센터 1관이다. 상업 공간이 아닌 아파트 단지가 감싸고 있는 이 건물의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서점이라기엔 결코 작지 않은 규모로 들어섰다. 지리적으로 1호점과 멀리 떨어진 데에 터를 잡으며 이런 과감한 시도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례점의 공식 명칭은 ‘그래픽 바이 대신’이다. 이름에도 나와 있듯 대신증권과 함께 만들었다. 그래픽 이태원점에 방문한 대신증권 관계자가 대신위례센터에 그래픽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친 까닭이다. 그렇게 대신증권의 후원을 받아 해당 건물이 있는 위례에 새로운 공간을 선보이게 됐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위례를 택하진 않았다. 이태원에 처음 그래픽을 낼 때도 이들은 유동 인구가 많이 몰리는 지역이 아닌 경리단길 깊은 골목을 입지로 선정했다. 대중이 그래픽을 택하는 이유가 지리적 요소가 아닌 공간이 주는 힘 때문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위례까지 그 마음이 이어졌다. 이미 화젯거리인 동네라면 사람들이 그래픽을 찾는 유입 경로가 불분명할 터. 인기가 많은 상권이 아니더라도 좋은 공간이라면 찾아온다는 믿음이 바탕이 되었다.
아이들도 함께하는 공간 조성
그래픽 위례점 주변에는 곳곳에 학원이 들어서 있다. 본디 그래픽은 주류 섭취가 가능해 어른들을 위한 서점이었다. 현재도 이태원점은 성인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그래픽 운영진들은 아이들이 머물 수 없다는 점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위례는 이태원보다 주거지역에 가깝고 아이들이 많은 동네인 만큼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문 열지 않은 지상 2층이 바로 그 바람이 실현될 공간이다.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공간을 가꿔나가는 중이다.
현재 그래픽 위례점은 가오픈 중이다. 가오픈 기간 동안 위례점은 보호자 동반 아래 아이들 입장을 받고 있다. 그래픽 위례점을 운영하는 매니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고. 향후 공개될 지상 2층이 어떤 공간으로 거듭날지 기대된다고 밝혔다.
층층이 소파를 둔 공간 구조
그래픽 위례점은 층고가 높은 계단식 구조다. 지상 1층에서 나선형 계단을 통해 내려오게 되면 메인 공간이 나타난다. 건물의 기존 골자를 활용해야 했기에 그래픽만의 개성을 공간에 뚜렷하게 반영하기 위해 고민했다. 계단식 구조 층층이 소파를 두어 공간의 아늑한 분위기를 끌어올린 것도 그 고민의 결과다. 그래픽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다름 아닌 소파다. 온전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소파의 질감, 높이 등을 조율해가며 직접 가구를 제작했다. 실제 소파에 앉아보니 소파 간의 간격, 소파의 높이를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다.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어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는 장시간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낮과 밤 조도를 다르게 설정해 공간의 무드를 색다르게 보여주는 것도 그래픽 위례점만의 특징이다.
이태원에서는 만나지 못하는 다섯 가지
| 이용 시간 및 이용료
이태원점은 오픈 시간부터 20시까지 이용료 20,000원, 20시부터 23시까지 이용료 10,000원을 지불하면 시간제한 없이 공간 및 제공되는 음료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가오픈 기간 중인 위례점은 20,000원을 지불하면 3시간 동안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인원이 없다면 제약 없이 머물다 갈 수 있다. 위례점도 음료를 무제한 무료 제공한다.
| 창문 유무
이태원점은 창문이 없어 안에서 시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위례점은 넓은 창이 있어 낮과 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 랩톱 공간
위례점에는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랩톱 룸이 마련되어 있다. 이태원점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서비스다.
| 불멍 공간
외부 공기와 순환이 되는 베란다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 불멍을 할 수 있는 에탄올 난로와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잠깐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 이용하기 좋다.
| 피자집
이태원점에는 없던 음식을 파는 공간이 위례점에는 생겼다. 독서하며 피자를 먹을 수 있는 피자집 ‘피저스’가 바로 그곳이다. 피저스는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 있는 피자집이다. 이곳에서 직접 음식을 배우며 레시피를 공유받아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