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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Walk with] 10. 고요하고 아름다운 ‘편집된’ 공간들, 홍자민 방비방 대표를 따라 걷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머문 장소들
새로운 공간도 공간에 관한 이야기도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선택지가 무수하다면, 미더운 이를 동행으로 삼아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요? 그를 따라 걷다가 매력적인 샛길을 발견할 수도, 혹은 과감하게 들어서고 싶은 공간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헤이팝은 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패션과 미술, 문학과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를 만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좋은 공간’을 한층 다채롭게 정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홍자민

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함께 걸을 열 번째 인물은 홍자민 방비방(VINVIVANT) 대표다. 그는 여행으로 떠난 프랑스에서 와인을 만났고, 그 후 프랑스의 와인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특정한 기준으로 고른 것을 선보이는 일을 하는 셈. 이러한 일 역시 편집과 무관하지는 않을 텐데, 실제로 ‘편집’이라는 키워드는 홍자민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는 여러 재료를 편집한 것에 오래도록 매력을 느껴왔고, 지금의 생활과 취향에도 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 공간마저 아름답게 편집되어 있는 곳을 좋아한다는 그에게 아끼는 공간에 대해 물었다.

Walk with 홍자민 방비방 대표

@jaminh_

— 반갑습니다. 헤이팝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와인 수입사 방비방(VINVIVANT)을 운영하는 홍자민입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생활을 공유하는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자민 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합니다. 출근하면 사무 업무를 보고 발송해야 할 와인의 택배 작업을 해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도 일하고 있기에 관련 업무가 있을 때는 영상이나 광고 작업을 할 때도 있습니다.

집 ⓒ홍자민

— SN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자민 님의 집입니다.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흡사 포토 스튜디오처럼 느껴져요. 그 집의 어떤 점에 끌려 살게 되었어요?

엄청나게 커다랗고 아치 형태인 창문이 매력적이었어요. 나무로 된 바닥도 자연스러워서 좋았고요. 거실이 넓어서 개방감이 드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구조가 독특해요.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구조예요.

 

— 집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나요?

특정한 분위기를 떠올리고 꾸미지는 않았지만, 편안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이 나는 공간이 된 듯해요. 물건을 한 번에 들이지 않고 정말 하나씩 하나씩 들였죠.

아치 형태의 창이 근사한 집 ⓒ홍자민
집 ⓒ홍자민

— 그중에서도 특히 신경 써서 구한 물건이 있다면요?

빈티지 가구, 그중에서도 특히 아르텍(ARTEK)을 좋아해서 마음에 드는 아르텍 테이블을 구하려고 발품을 팔았어요. 태닝이 잘 된 제품을 찾으려고 열심히 검색했습니다. (웃음)

 

— 아르텍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르텍 제품의 곡선과 목재 느낌이 좋아요. 다른 브랜드가 따라 할 수 없는 아르텍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 집뿐 아니라 사무실도 자민 님이 직접 꾸몄다고요. 사무실도 집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인가요?

사무실과 집은 아주 달라요. 일부러 분리했어요. 혼자 사업을 꾸리고 크리에이터로서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집과 사무실을 확실히 분리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사무실에서는 정말 일만 할 수 있게 필요한 책상과 서랍장만 두었어요. 소품보다는 책과 와인 관련 용품만을 두었고요.

사무실. 집에 비해 훨씬 간결한 분위기다. ⓒ홍자민

— 가구나 집기도 집과는 다르게 선택했나요? 집에는 목제 가구나 따뜻한 느낌의 소품이 많은 듯했어요.

집은 온전히 쉬는 공간이기 때문에 제 눈에 가장 편안한 색감으로 꾸몄어요. 또 좋아하는 소품들을 곳곳에 두었고요. 좋아하는 그림으로 만든 액자나 좋아하는 술병처럼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오브제로 꾸몄죠. 그에 비해 사무실에는 메탈과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주로 사용해 조금 더 정신 차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웃음)

 

— 와인 수입과 더불어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활용하는 크리에이터로도 활동 중이죠. 크리에이터의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면 일단 경험해 보는 편이에요. 블로그도 초기부터 운영했고 인스타그램도 나오자마자 가입했어요. 딱히 어떤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내 피드를 예쁘게 꾸미고 싶고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서 사진을 올렸는데 흐름을 잘 탔는지 자연스레 팔로워가 늘었어요. 유튜브도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웃음) 이전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여행을 다녔어요. 그때마다 찍어둔 사진이나 영상이 많으니까 썩히고 싶지 않아서 여행 영상을 만들어 올리게 됐어요.

파리 출장에서 ⓒ홍자민

—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다 보면 다양한 공간에 들르게 되죠? 자민 님도 패션 브랜드의 숍이나 팝업 등에 종종 방문하는 듯했어요. 혹시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패션 브랜드 낫띵리튼(NOTHING WRITTEN)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먼저 떠올라요. 단지 옷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공간에 놓인 작품이나 소품도 눈에 띄고요. 그런데도 집처럼 편안해서 옷을 둘러보거나 피팅할 때도 부담스럽지가 않아요. 낫띵리튼이라는 브랜드가 만드는 옷도 클래식하면서도 편안한데, 제품이 풍기는 무드를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어요.

낫띵리튼의 쇼룸에서 ⓒ홍자민

모노하(MONOHA)의 한남동 숍도 생각나네요. 그곳 2층은 전시 공간에 가까워요. 대표님이 작품 모으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이 드러나는 옷과 소품, 작품들이 진열된 공간이 근사해요.

모노하의 쇼룸에서 ⓒ홍자민

— 한정된 기간에 진행되는 팝업이나 전시 같은 이벤트도 자주 찾나요?

관심사와 관련 있는 행사에는 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2022년에 문화역서울 284에서 프리츠한센 150주년을 기념해 〈Shaping the Extraordinary – 영원한 아름다움〉이라는 전시가 열렸는데요. 문화역서울 284는 옛 서울역 공간이잖아요. 오랜 세월 존재한 공간에, 오랜 시간 존재한 브랜드인 프리츠 한센의 제품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새로운 것도 좋아하지만 옛것을 다시 가져와 편집한 것을 살펴볼 때 즐거워요.

〈Shaping the Extraordinary - 영원한 아름다움〉 전시에서 ⓒ홍자민
〈Shaping the Extraordinary - 영원한 아름다움〉 전시 ⓒ홍자민

비슷한 결로 플러스준 스튜디오에서 열렸던 〈신혜림 사진전: 무언의 말투〉 전시도 떠올라요. 전시가 이뤄진 공간은 60년 전에 세워진 교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어진 스튜디오예요. 당시 건축의 흔적을 살렸다는 것과 그 안을 채운 빈티지 가구와 사진들이 멋있었어요.

〈신혜림 사진전: 무언의 말투〉 전시에서 ⓒ홍자민
〈신혜림 사진전: 무언의 말투〉 전시 ⓒ홍자민

— 새롭거나 유행을 타는 공간보다는 좀 더 시간이 묻은 장소들을 좋아하는군요.

조용한 장소가 점점 더 좋아져요. 미술관과 도서관에 자주 가요. 전시 때문에 미술관에 간다기보다는 미술관에 가는 김에 전시를 보는 편에 가깝죠. (웃음) 그중에서도 장욱진 미술관과 파주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특히 좋아해요. 정독도서관과 MMCA 디지털문화관도요. 이 공간들은 전부 건축물의 선이 단정해서 보기 좋아요. 내부에 놓인 사물들도 정적인 느낌이고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찾아다니게 되는 듯해요. 이러한 공간에서 제가 가장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니, 혼자 가더라도 타인과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장욱진 미술관 ⓒ홍자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홍자민
정독도서관 ⓒ홍자민
MMCA 디지털문화관 ⓒ홍자민

— 자주 여행하죠? 여행지에서 찍은 영상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평화로워서 보는 데 부담이 없었어요. 여행지에서는 어떤 공간을 찾곤 해요?

랜드마크 보는 것보다는 그냥 그 나라를 느끼는 걸 좋아해요. 에어비앤비를 하나 잡아두고 계속 걸어 다니죠.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고, 그러다가 마주친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추천받기도 해요. 프랑스 파리의 와인 바 랏 오브 와인(Lof of Wine)도 그렇게 알게 된 공간이에요. 내부가 동굴처럼 생겼는데, 와인에 둘러싸여서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어요. 파리이기에 가능한 공간이었어요. 그런 공간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요.

랏 오브 와인 ⓒ홍자민
프랑스의 슈농소 성에서 ⓒ홍자민

또 파리의 이봉 랑베르(Yvon Lambert)라는 서점도 좋았어요. 다양한 예술 서적을 섬세하게 큐레이션한 관점이 돋보이는 편집숍이자 서점이에요. 지금은 이곳 같은 공간이 한국에도 좀 생기긴 했지만, 처음 이 공간을 알았을 때는 무척 색다르다고 느꼈어요. 당시에는 공간이 넓지는 않았는데요, 좁은 공간임에도 편안하며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이봉 랑베르의 문 ⓒ홍자민

— 여행하며 머무른 숙소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곳이 있어요?

제주의 탈로제주(Talojeju)를 꼽고 싶어요. 아르텍의 가구, 소품, 책들이 가득한 공간이에요. 오랜 세월에 걸쳐 아르텍의 물건을 수집해 온 분이 만든 숙소예요. 아르텍과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 알토(Alvar Alto)의 소품도 무척 많아요. 그 수집품들과 어울리게 타일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공간 자체도 인상적이에요.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덕후’의 공간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르텍의 덕후가 만든 탈로제주, 대표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모노하도 그렇고요.

탈로제주 ⓒ홍자민
탈로제주 ⓒ홍자민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민 님은 잘 ‘편집된’ 공간에 매력을 느끼는 듯해요. 미술관이나 도서관도 넓게 보면 편집된 공간이죠. 모노하도 옷을 일반적으로 진열해 둔다기보다는 다양한 오브제 등 여러 요소를 알맞게 편집해 둔 공간에 가깝고요. 탈로제주 역시 아르텍의 물건들을 알맞은 자리에 섬세하게 배치한 곳이에요.

학교에서 예술을 전공했는데, 당시에도 깔끔하게 정리된 콜라주나 미디어 아트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다양한 재료를 편집해서 만든 작품들이요. 이 성향이 좋아하는 옷과 책, 공간 등 취향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빈트갤러리에서 만난 디자이너 ‘피에르 잔느레’의 가구 ⓒ홍자민
모노하 ⓒ홍자민

— 자민 님의 와인 수입사 방비방도 팝업을 열었죠? 서울 서촌의 부트 카페에서 진행된 걸로 알아요. 〈와인 잔치〉라는 이름으로 와인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팝업이었죠. 자민 님의 팝업을 또 만나볼 수 있을까요?

부트 카페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곳이에요. 그런 공간에서 와인을 마시면 잘 어울릴 듯해서 언제나 하고 싶다는 마음은 품고 있었어요. 방비방의 와인, 부트 카페의 디저트, 오니쿡의 요리를 같이 즐길 수 있는 행사였어요. 아무래도 도매를 위주로 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요. 다양한 고객에게 저희 와인을 알리고 싶어서 팝업을 열게 됐어요. 앞으로도 바나 레스토랑 등 여러 공간과 협업해서 팝업을 열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와인 잔치〉 ⓒ홍자민
about heyMAP Curation

홍자민 방비방 대표가 도시에서 사색을 찾는 공간

홍자민 대표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사색하기를 즐기는데요. “전시 때문에 미술관에 간다기보다는 미술관에 가는 김에 전시를 보는 편에 가깝다”라고 말하는 홍자민 대표. 적막하고 편안하며 또한 섬세히 ‘편집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를 그가 직접 골랐습니다.

▼ 홍자민 대표의 추천 코멘트를 참고해 도시에서도 고요히 머물며 예술을 만나는 경험을 해 보세요.

홍자민 큐레이션 전시와 그의 추천사를 위 카드를 눌러 확인해 보세요.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홍자민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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