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9

아마겟돈과 리얼월드, 에스파가 누비는 공간

아마겟돈(Armageddon) MV, 에스파 세계관 영상 제작한 비주얼 디렉터 박소희 인터뷰
케이팝 아이돌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 무수히 많은 리액션 영상들이 올라온다.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과 뮤직비디오 스토리에 대한 해석 등 뮤직비디오를 바라보는 대중의 다양한 관점이 쏟아진다. 뮤직비디오라는 하나의 콘텐츠로 인해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하는 격. 단기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낳는 5분 내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성상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 내야 할 때가 허다하다고. 변수에 잘 대응하고 정해진 날짜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될 수 있는 건,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며 짜임새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모니터 앞에서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
ⓒSM엔터테인먼트

지난 5월 27일 첫 정규 앨범 아마겟돈(Armageddon)을 발매한 걸그룹 에스파(aespa)는 ‘슈퍼노바(Supernova)’와 ‘아마겟돈(Armageddon)’ 더블 타이틀 곡으로 연이어 활동하며  두 편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중독적인 멜로디와 에스파 멤버들의 새로운 초능력을 ‘슈퍼노바’에서 보여줬다면 ‘아마겟돈’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중 우주’라는 세계관을 선보이며 앞으로의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 뮤직비디오 디렉션&어레인지먼트 팀에 몸담았던 박소희를 만나 ‘아마겟돈’에 등장하는 AI 작업을 비롯해 직접 제작을 맡은 에스파 영상 콘텐츠 속 가상 공간과 실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with 박소희

비주얼 디렉터
ⓒ헤이팝

에스파 뮤직비디오에 쓰인 AI

— 3D 작업과 AI 작업을 비롯해 다양한 툴을 다루며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돈을 번 첫 프로젝트가 3D 작업물이었고 3D 아트웍을 기반으로 일을 진행해 왔기에 지금까지는 3D 아티스트라고 소개해 왔다. 요즘은 3D를 넘어 AI, 영상 제작까지 여러 매체를 오가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주얼 디렉터’라는 직함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 에스파의 첫 정규 1집 〈아마겟돈〉 타이틀 곡의 뮤직비디오 디렉션&어레인지먼트를 담당했다. 뮤직비디오 디렉션 역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뮤직비디오 전반을 통솔했다고 보면 되겠다. 노래가 먼저 픽스되면 본격적인 녹음이 진행되기 전부터 어떤 방향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기획안을 구성한다. 그 기획안을 짜는 것부터 뮤직비디오 팀의 업무는 시작된다. 그 기획을 영상으로 잘 표현해 줄 감독님(프로덕션 팀)과 스태프를 섭외하고 비주얼 팀과의 콘셉트 회의를 통해 실제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비주얼 방향을 정해 스타일을 비롯한 외적인 부분을 요청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핸들링한다. 물론 혼자 진행하진 않았다. 이런 과정을 잘 아는 SM엔터테인먼트의 정민서 님과 함께 ‘아마겟돈’ 뮤직비디오 디렉션을 맡았다.  

 

— 두 분의 역할 분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엔터 업계에 있던 시간이 짧지 않은 민서 님이 뮤직비디오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나보다 높아 영상 전체 과정을 핸들링했다면 나는 비주얼, 그래픽 CG 관련 부분을 전반적으로 맡았다.. 전공이 패션디자인이라 멤버들의 스타일이 뮤직비디오에 잘 스며들었는지까지도 체크하려 노력했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 아마겟돈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후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으리라 짐작된다.

군무 씬과 멤버들의 얼굴이 나오는 씬들을 제외한 장면들 특히 초인이라고 칭하는 외계인 비주얼에 CG가 많이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현장 베이스 촬영본과 CG 작업물이 서로 이질적이었다. 군무는 힙하다면 CG는 최종 결과물보다 훨씬 더 화려하기 때문이다. 케이팝 씬에서 자주 사용하던 영상 문법에 3D 아트웍을 더한 느낌을 배제하고자 공을 많이 들였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현실 공간과 가상의 공간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이질감이 생기는 건 아직까지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장면과 장면의 연결에 신경을 써서 유기적으로 잘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CG 색감을 누르는 데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2절 후반 절정을 향하면서는 오히려 짧은 장면 전환을 통해 CG 장면을 여럿 삽입했다. 현실과 초인 에스파가 만나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CG 장면을 통해 고도화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 에스파 앨범에는 처음으로 참여했다. 에스파의 지난 활동과 이번 앨범의 연계성을 위해 따로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이전에 나왔던 비주얼을 따라가지 않되, 정체성은 가져가고자 노력했다. 에스파가 데뷔 때부터 사용해 온 CG와 메타버스처럼 이들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키워드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데뷔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전보다 세련된 비주얼로 풀어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 에스파라는  그룹은 최신 기술을 적극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뮤직비디오에서도 AI가 적지 않게 사용되었는데, 작업 현장에서 AI 기술 발달에 따른 변화를 체감했나?

AI가 디자인 실무에 사용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영상 매체에서는 AI를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추세로, 표현 기법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많은 장면에 AI가 쓰였는데 ‘아마겟돈’ 뮤직비디오를 작업하면서 실무에 사용되었을 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발전되었다는 걸 체감했다. ‘슈퍼노바’에서는 AI인 걸 알 수 있게 일부로 티를 내서 앨범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아마겟돈’ 뮤직비디오에서 AI는 하나의 툴로 사용되었다. 앞으로 AI를 점점 다양하고 적합하게 사용하게 될 것 같다.

누군가가 살던 실제 집을 활용한 ‘에스파의 집’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 정규 앨범을 마무리하며 세계관 영상인 aespa came back home도 직접 맡아서 진행했다고? 

그렇다. 돌아보니 정말 쉴 틈 없이 바쁘게 보낸 것 같다. 콘텐츠 제작을 인하우스 직원이 맡아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라 누굴 탓할 순 없다. 회사 구성원분들을 설득하기까지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다른 업무들도 있는 탓에 직접 제작할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기회에 작업물을 만들면 스스로도 성장할 것 같아 한번 나서봤다. 그리고 ‘아마겟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굉장히 방대했기에 그 내용을 한번 정리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힘들었던 만큼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중 유독 마음이 가는 작업물이 되어버렸다.

 

aespa came back home을 보니 바랜 색감과 집이라는 공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집이라는 공간을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이곳이 세트가 아니라 실제 집이라는 것부터 밝히겠다.. 에스파가 이번 앨범 이전부터 원래 갖고 있던 초능력을 집 안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마겟돈’ 뮤직비디오의 에스파는 다중 우주 속 또 다른 에스파의 모습이고 현실의 리얼 월드 에스파도 존재한다는 것을 B급 감성 영상으로 가볍게 보여주고 싶었다. 현실에서의 에스파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편한 공간으로 집을 설정하게 된 이유다. 마블 영화를 보면 휘몰아치는 내용이 끝난 후 코믹한 영상물이 쿠키 영상으로 나오지 않나. 그 영상 덕분에 마블 캐릭터가 더 친근감 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영화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이 영상도 그런 가벼운 구조로 짜인 영상에서 오는 신선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제작하게 되었다. 에스파의 첫 정규 앨범이 촘촘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대중에게 각인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길 바란다. 아, 에스파의 일본 데뷔곡과 관련된 스포일러도 담겨 있으니 주목해 보면 좋겠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 많은 인원을 이끌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겠다. 

100명이 넘는 제작자와 함께하는 공동의 작업물이니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매니지먼트 팀, 비주얼 팀, 브랜드&디자인 팀을 비롯한 여러 팀의 의견을 듣고 그들이 각기 제시한 가이드를 고려해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하며 ‘관계성’이란 것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보게 됐다. 또, 한 사람만 잘나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 나도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결코 나만 잘나서 이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스파 멤버들 그리고 뒤에서 수고한 모든 분이 있기에 이번 앨범이 주목을 받은 게 아닐까.

ⓒSM엔터테인먼트

디렉터 박소희가 아이디어를 얻는 곳

— 패션을 전공했다니 흥미롭다.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일한 지도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하면 패션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시기 인스타그램에 뜬 3D 작업물을 보고 왠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독학으로 툴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밌어서 만든 작업물을 개인 계정에 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업물이 쌓였고 그걸 보고 외주 작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프리랜서로 정착하게 됐다.

 

—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다.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의 삶을 선택했던 이유가 있을까? 

프리랜서로 안정적인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한 회사에 들어간다는 선택 자체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재직하면서 큰 그림을 구현하기 위한 일부분을 맡는 기술자에만 머무르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면서,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인하우스로 들어갔다. 힘든 일도 분명 있었지만 덕분에 SM의 큰 IP를 활용해 내가 직접 기획해 보고 작업물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주로 참고하나?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영감을 얻곤 한다. ‘아마겟돈’을 기획할 때도  〈듄〉〈콘택트〉를 레퍼런스로 삼아서 기획했다. 최근에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드림 시나리오〉라는 영화를 봤는데 영상의 톤, 색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aespa came back home을 만들 때도 좋은 영향을 받았다. 

 

—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3D 아트웍 작업과 비주얼 디렉팅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또, AI를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프로덕션을 운영하려고 준비 중이다.

김지민 인턴 기자

사진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자료 제공 SM엔터테인먼트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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